326. LONELY CITY
CH1. 그리움
나에게 신촌 사람이라고 하면 나정이, 쓰레기, 해태, 삼천포, 윤진이, 빙그레가 전부였던 때가 있다. 보라색 버스를 타고 순천의 하나뿐인 시내만 오갔던 나에게, 캠퍼스 한복판에 있는 넓은 잔디밭에 앉아 대낮에 맥주를 마시는 신촌 대학생들은 한없이 멋져 보였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대학생이란 캠퍼스 잔디밭에서 맥주도 마시고, 좋아하는 사람을 데리고 일일 호프에 가기도 하고 – 안(못?) 데려가면 벌금이 있다는 게 무서웠다. – MT에 가서 주야장천 술 게임을 하며 술을 한 사발째로 마시기도, kfc에서 미팅을 하며 비스킷을 20개 정도는 시키는. 귀엽기도, 멋있기도 한 사람이었고 나도 그들 중 한 명이 되기를 꿈꿨다. 그리고 그 바람 속엔 당연히 그때의 주변 사람들과 함께였다.
내가 알던 비스킷이 아닌데
그 시기쯤 발매됐던 포스트맨의 ‘신촌을 못 가’라는 노래는 신촌에 대한 환상을 더 극대화했다. (본가 친구들에게 신촌 하면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신촌을 못 가’를 말한다.) 신촌에는 사거리에 포장마차가 있구나. 우리는 가보지도, 봐보지도 못한 신촌에 못 간다며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신촌을 못 가. 한 번을 못 가.’ 노래 가사 속 헤어진 애인을 그리워하는 인물에게 과한(?) 감정이입을 했고, 당시엔 진심이었던 중학생 연애의 헤어짐에 평생의 사랑을 잃은 것처럼 열창했었다. (그리고선 일주일 뒤면 전 남자친구의 친구를 사귀곤 했었다.)
그땐 사실 신촌이 뭔지도, 어딘지도 몰랐다.
그러던 나에게 신촌은 혼자서도 산책하듯 가는, 어쩌면 지금은 본가보다 더 가까운 곳이 되어버렸다. 평생 함께일 것 같았던 친구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이고, 옆 동네 잔디밭이 없는 학교를 다니는 탓에 잔디밭에 앉아 맥주 한 캔 마셔본 적도 없지만, 신촌은 이제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 되어버렸다. 또한 나와 신촌을 공유한 사람들은 어느새 내 일부가 되어 항상 함께일 것 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아직도 어릴 적 꿈꿔왔던 동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신촌, 그리고 서울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 이제 알았다.
“혹시 그런 느낌 알아? 갑자기 뭔가 불안한 느낌! 그게 뭐가 불안한 거고 뭐 때문에 그런 건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그냥 그런 느낌”
신촌역 2번 출구 앞 투썸에서 친구를 만나 빨간 잠망경 방향으로 걸어가던 때였다. 간간이 그런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 순간 또 느껴져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다 연희동으로 통하는 동굴에 적힌 ‘LONELY CITY’라는 문구를 보자 불현듯 깨달았다. 이 평화로움이 지속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언젠가 이것도 그저 한 기억, 한 추억에 불과한 것으로 남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삼 남매 중 둘째로서 항상 괜찮은 척해왔던 사람이기 때문인지 정말 괜찮은 것과 괜찮은 척하는 걸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 그게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틈틈이 날 일깨웠던 것이었다.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이렇게 말이다.
CH2. 익숙해져버린, 그래서 한편으로는 슬프기도한.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낀 순간부터 난 을이 되어버린다. 익숙함이 돼버린 순간 내 삶에서 없어지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 왔다는 건데, 사라져버리면 남겨진 건 나뿐일 테니까.
가족보다 가까웠던 친구들과 1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가 되었고, 그마저도 관심사가 달라져 할 이야기가 없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보는 내내 과몰입하며 이건 인생 드라마다 외쳤지만 다시 보진 않는 그저 ‘말만 인생 드라마’로 남았고, 추억으로 가득하지만 어느새 사라져있는 가게들까지. 지나버리면 그저 기억 속 수많은 사진들 중 하나가 되어버리기에. 자연스레 익숙해지고 내 일상이 되어버린 신촌도, 신촌으로 묶인 사람들도 그렇게 될 것 같아 슬퍼졌다. 늦은 밤 시간대에 혼자 연희동 동굴을 지날 때 느낀 헛헛함을 잊을 수 없다. LONELY CITY를 쓴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LOVELY CITY?
겨우 한 획 차이였다. LONELY와 LOVELY. O 옆에 딱 붙어있는 N을 보자니 순간적으로 V로 보여 깜짝 놀랐다. 내가 잘못 봤나 하고 눈을 한번 비빈 후 다시 봤는데 확실히 N이 맞았다. V였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을까?
“너무 좋아하는 노래는 질릴까 봐 잘 못 듣겠지 않아?”
듣는 당시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 것 같았다. 오랜만에 너무 좋아했던 영화가 보고 싶어 틀었는데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재미가 없어 도중에 꺼버렸다. 그때의 허탈감이란. 내가 알고 있던 감정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더 이상 그 자리에 같은 상태로 있지 않을 때, 혹은 그대로지만 내가 다르다 느낄 때. 누가 변했는지는 영영 알 수 없다는 게 더 슬프게 다가왔다. 항상 적당하게, 그저 그런 정도로만 남기는 게 정답인 걸까?
우리 지금 서로 너무 애틋하지만, 헤어지면 남이니까
CH3. 시작? 끝?
늘 그렇듯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좋아하는 모든 걸 다 챙기면서 시간을 따라가기엔 벅차기에, 놓기 싫어도 놓고 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노을, 기차, 헤드셋, 음악과 같이 쓴 순간의 감정이 잔뜩 담겨있는 내 잔치 지원서( : 다신 열어보고 싶지 않은 감성 글)가 완성되는 순간, 나는 잔치가 나의 22살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줄 알았을까? *해태 역을 맡은 손호준 배우가 순천에 왔을 때 가장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부랴부랴 새벽부터 택시 타고 호수 공원으로 향했던 고등학생이 그럴싸한 신초너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꿈과 가끔씩 느껴지는 행복에 대한 불안감 모두 놓아 버리고 싶지도, 품고 가고 싶지도 않다. 그저 너무 허전하진 않게 미리, 캘린더 속 비어있을 날들을 무엇으로 채워나갈지 고민해 봐야겠다.
*응답하라 1994에서 해태는 순천에서 상경한 대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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