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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 11 · 23

328. 지금은 내 성장소설의 어디쯤일까

Editor 니디오

며칠 전 인터넷에서 이런 심리테스트를 발견했다. 

 

 

나는 자두 – 단풍 – 퍼즐 – 대파 순서로 골랐다.

 

 

재미 삼아 해본 건데, 왠지 맞다는 생각이 드는 게 신기해서 친구들에게도 보내줬다. 

 

 

‘자두가 눈에 젤먼저 띄지않음?’

 

 

아무튼, 내가 첫 번째로 고른 ‘자두’ 해석이 ‘오….’했던 부분이다. 

 

 

숨겨져 있는 나의 잠재적 성격

 

‘활력 넘치고 독창성이 뛰어나다. 승부욕이 강해서 지는 것을 싫어하며 한 번 결심한 일은 이루고자 하는 열정이 크다’

 

‘오….’

 

예전에는 나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성격. 

나는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했으며, 매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정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고2, 고3, 재수 시절을 지나면서 주어진 공부와 생활에 급급하게 살다보니, 점점 새로운 것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이사를 와서도, 익숙한 것들로부터 휴식을 얻었기에 무언가를 새로이 다짐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요 근래 자주 드는 궁금증이었다. 

 

‘나는 왜 음식 주문하는 걸 잘 못하겠지?’

‘나는 왜 피플팀 에디터가 되었는데도 낯선 사람 인터뷰는 못 하겠지?’

‘나는 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상황들을 피하고 싶어하지?’

사실 이러한 물음은 정말 원인을 몰라서가 아니라,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에서 읊조리는 것들이었다.

“돌아가고 싶다. 나는 예전의 내 성격이 더 마음에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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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촌에 갔다가 버스킹을 봤다. 

 

친구를 기다린다고 벤치에 앉아 있다가, 노래 소리에 이끌려 버스킹 자리 앞으로 갔다. 빨간 잠망경 앞에 있던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대개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시큰둥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흩어지고 분산된, 넓은 그곳에 우뚝 섰다. 버스킹하는 분과 마주보며. 아주 감미로운 목소리로 내가 좋아하는 Coldplay의 ‘Fix you’를 부르고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만히 서서 지켜보자, 버스킹하는 분이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이후에도 중간중간 계속 나와 눈을 맞추며 노래하셨다. 과대해석일 수도 있지만, 나는 왠지 그 눈빛에서 기댈 수 있는 기둥을 발견한 듯한 고마움, 안정감 등을 느꼈다.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교감할 수 있을 지도….’

 

 

그때 머릿속을 스쳐간 ‘나에게도 기대게 되는 기둥같은 눈빛과 말이 있는데….’ 라는 생각. 

 

“서지! 너는 대학 가면 아주 잘 살거야. 진짜 잘 될거야.”

 

중학생 때 다녔던 영어학원 선생님이 수업 도중에 갑자기 하신 말씀이다. 선생님께서 나를 늘 ‘서지’라고 부르셔서 그런가, 당시 선생님의 말투와 눈빛이 생생하다. 

처음 이 학원에 온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1년 일찍 수업을 듣고 있었던 같은 반 친구들에 비해 실력이 뒤쳐졌다. 나는 그냥 소개를 받고 우연히 왔을 뿐인데, 처음 보는 고등학교 모의고사 영어와 TEPS 문제들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그때 속으로 ‘아니, 어떻게 저 애들은 문장의 5형식을 다 외우고 있지?’ 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학교 생활만 열심히 했던 어린 나에게 이것은 처음 겪는 힘듦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도전이었다.

‘그래서 포기할 거야?’

저녁까지 학원을 다녀본 적 없었던 내가 저녁 9시에 집에 들어와도 부모님한테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이런 것들도 안다고 자랑했다. 나도 따라가고 싶었고, 알고 싶었다. 이후, 수업시간에 대답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더 이상 재시험을 치지 않고, 다른 친구들과도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수업에 적응했다. 

‘뭐야, 나도 할 수 있네.’

 

나이가 들면서,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곧 나의 적응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적이지만 모나지 않게, 잘 융화되면서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적응력.

대학이 어떤 곳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는 건 매한가지지만, 왜 선생님이 내게 ‘어떻게든 잘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린 나는 그때 “네??” 라고 대답하며 웃어 넘겼지만, 21살이 된 지금까지 문득문득 저 말이 생각난다. 새로운 도전에 맞닥뜨리거나, 무언가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거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들 때 기둥을 붙잡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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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항목의 테스트 결과가 생각났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나의 지난 모습을 잊고 살았던 것도 같다. 참여하는 것보다는 단절되는 것을, 이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을 나의 ‘적응’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내가 가장 편할 수 있는 쪽으로 나를 맞추려다보니 도전정신과 열정은 점점 사라졌다. 그러나 이것들이 새 출발점에 선 나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은연 중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어쩌면 나는 가장 적응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적응해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 버스킹을 보는데, 갑자기 신촌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곳에 나름 적응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닌 것 같다.

 

 

 

내가 마지막으로 고른 ‘대파’ 항목의 해설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팁>

‘지나치게 침착하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가끔은 적극적으로 부딪혀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 부딪혀보지 않고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 수 없지. 참여하지 않고서는 의미와 깨달음을 얻을 수 없지..’ 

 

 

올해 나름대로 내 몫의 노력을 다하며 잘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해의 끝에서 갑자기 신촌이 낯설게 느껴지다니.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은 것 같다. 그동안 신촌에 적응하려는 마음가짐이 내가 원하고, 또 충분히 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의 기둥의 의미를 되새기고, 최근에 들었던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말이다. 

결국 내게 중요한 것은 태도였다. 새로운 도시에서 20대를 시작하는 지금, 어떤 마음가짐으로 적응해갈 것인지… 이제 남은 것은 성장뿐이라는 생각에, 기분 좋게 신촌을 나왔던 것 같다.

심심풀이 심리테스트가 내게 준 팁을 아마도 꽤 오래 간직할 것 같다.

니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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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디오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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