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는 인간
A Woman Called Mi-so(미소라는 아이)
오디오와 함께 읽어주세요. 소리가 끊기지 않게 여러 번 되감아 주세요.
나는 꾸밈없이 쓰지 못한다.
꾸미지 않으면 나의 그럴싸한 외피가 곧 벗어젖힐 허물이라는 사실이 속속들이 밝혀질까 봐서다.
글을 전개하다 보면 뒤와 앞 문장이 쉽사리
뚝
툭
끊긴다.
자기의 입말을 술술 써 내리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못 견딜 지경이다.
내가 쓰는 글은 결국에는 기똥차지 않은 문어체로 형편없이 필생을 마감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서 마침내 그 진리가 탄로 날까 봐 꽁꽁 싸맸다.
숨겨진 불씨가 많은 줄 알았는데 실은 바람에 흔들리며 금방 꺼질 촛불이었고,
골똘하니 사유 모임의 일원인 줄 알았는데 그저 생각의 초상을 본뜬 조각상이었던 거다.
고향에서는 꾸밈없는 내가 된다. 살짝 뒤집을 뿐.
좋은 문장을 뽑아내기까지 전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창작을 하고 싶다고 꾸준히 말하고 있다.
작곡, 사진, 아무 글….
아름다운 것들을 비뚤배뚤한 손거울에 담아내어 천 개의 망막에 더 아름다운 상이 맺히도록 매개하는 그런 쓸모.
여기서 잠깐. 모순이 또다시 적용된다.
작곡은 한여름부터 배울 예정이고, 핸드폰 화소 수 못지않게 큼지막한 카메라 렌즈에 차차 익숙해질 것이며, 국문과 타이틀이 부끄러워 도망 다니지 않으려면 종이의 질감과 정제된 섬유 향을 바쁘게 체화해야 한다.
맙소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하나도 없다.
심지어 시작하지도 않은 게 두 개나 된다.
그렇다면, 나란 별난 인간은 무얼 믿고 이렇게까지 배기고 있는 걸까.
신이 내게 재능을 점지해주신 것도, 타고난 운명을 선사해주신 것도 아니다.
내가 가진 건 오직 꾸밈없음에 대한 동경 내지 갈증뿐이다.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사진-CGV아트하우스
소공녀, 2018
당장이라도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매끈한 포장도로에 진입할 수 있다.
에서 경영학이라는 2지명 이정표를 따라 토익과 컴활 등의 플라스틱 엔진을 탑재하고 CPA와 CTA, 로스쿨 혹은 공시의 꽁무니를 좇아 목적지에 이르는 매뉴얼이 있다. 편도 4차선 도로 위에서는 초보 운전 라벨을 부착하지 않아도 된다. 판판한 도로의 끝, 지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주행 평론가들은 적확한 경로로 운전했느냐보다 빠르게 도착하였는가를 기준으로 속이 투명하리만치 아릿한 바늘을 들고 당신의 연한 고막 조직을 콕콕 찔러댈 것이다.
운전석에서는 촌스러운 푸른색 유리를 뒤로 하고 머리털에 스프레이를 잔뜩 뿌려 단단히 동여맨 후 싱거운 의상에 걸맞은 전략적인 미소를 단속 카메라에 비치게끔 언뜻 전시하면 된다.
하지만, 그건 너무 재미없어.
이제 지구인들은 내게 답답함을 뿜어낼 것이다.
돈은 벌어야 하잖아.
응. 그치만 그게 내 인생의 최종 목표가 될 수는 없어.
먹고는 살아야지.
어떻게든 살아 낼 궁리를 찾겠지.
예술 하면 굶어 죽어.
한다는 것 자체가 고픈(hope) 거겠지.
그냥…. 내가 보는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잊지 않게 해주세요. 그 풀이 나에게 처음 말을 걸어왔던 밤을 잊지 않게 해주세요. 세상 모든 것들을 이렇게 생생한 눈으로 사랑하는 법을, 살아 있는 동안 잊지 않게 해주세요.
내 이름은 태양꽃, 한강 동화·김세현 그림
좋아서 하는 일에 권태로 맥이 풀리면 잠시 고개의 방향을 돌렸다 바로잡는 것이 가능하다. 저만치 떨어진 돛대가 수평선에 가려 시야 밖으로 나지만 않으면, 황홀경이 당신 근처에 다분하다. 각도를 살짝 틀었다는 이유로 항구의 성실한 직원이 기부하는 온화한 불빛의 그림자를 벗어날 일이 없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 말이야. 그게 쉬워?
뒤통수를 좇을 수밖에 없는 타이어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쉽지 않지. 번민으로 흥건해진 수많은 파동의 흔적을 묵살하려는 게 아니야.
신촌이라는 물살은 여전히 내게 차고 나는 거기서 한낱 객체일 뿐이라서.
…….
그래서 지금 여기 이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네.
“
이 하늘이 둥글다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딛고 사는 것이지
그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비행의 발견, p.216
”
신촌 앞바다에서 나는 별을 보았다.
수없이 오고 가는 눈맞춤의 번뜩임.
번쩍번쩍 타성에 젖은 가로등을 공명하는 나그네의 찬연한 멜로디.
찰깍 잔 부딪치는 소리에 비실비실 타들어 가는 알싸한 연기.
이 모든 환상을 덮는 공허한 대화와 무자비한 막차에 팔딱거리며 멀미.
꾸밈없음이란 망망대해에서 새초롬히 자기의 살림을 꾸려 나가는 것.
훗날 쉼이 되어줄 짐 가방을 갓난아기처럼 고이 품고서.
그곳에는 나를 감시하는 음침한 카메라나 집요한 실체 따위 없다.
비로소 본연의
를 묵묵히 맡을 준비가 됐다.
“
“You have the conn(지휘권을 넘긴다)”
이 배가 네 것이며 비행 ‘갑판’이 이제 네 손 안에 있다는 뜻이다.
p.283
”
갑판 위로 샛별이 지나갔다.
고된 영혼들이 곯아떨어진 밤중에도 샛별은 명랑한 발자취를 남겼다.
잠결에도 눈이 부시게 간지럽다면 온 신경을 꿈뻑이며 깨워 보아라.
이 샛별이 네 것이며 신촌 ‘갑판’이 이제 네 손 안에 있다는 뜻이다.
‘안꾸’라는 필자의 대의에 서슴없이 동참하길 원한다면,
의연히 걷는 짐보따리의 악상을 되뇌는 것이 좋다.
♩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
Waltzing Matilda는 춤추는 마틸다가 아닌, 의연히 걷는 짐보따리 정도로 해석된다.
“
WALTZ INGMA TILDA
태즈먼 해의 하늘 지도에는 웨이포인트를 나타내는 삼각형들이 오선지의 음표처럼 뉴질랜드 쪽으로 둥글게 걸려 있고 WALTZ INGMA TILDA라고 표시돼있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비공식 국가(國歌)인 ‘왈츠를 추는 마틸다Waltzing Matilda’를 인용한 것이다.
p.109
”
웨이포인트는 하늘길의 이정표이며 다섯 글자의 대문자로 표기한다.
tmi 투척. 디트로이트 상공에는 에미넴(EMINN), 캘리포니아에는 스누피(SNUPY)가 존재.
‘안꾸’길에 웨이포인트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WALTZ INGMA TILDA의 서정시를 빌리겠다.
무엇보다 주파수를 맞추세요. 그러면 잡음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요.
이성복, 무한화서
꾸밈없는 것과 꿈이 없는 것은 완연히 다르다.
나는 꾸밈없는 꿈을 꾼다.
이 꿈은 가장 젊은 날의 태동이다.
사적인 새벽, 서늘하게 맴도는 유분기가 거름으로 거듭나는 날.
그날이 적힌 잎사귀에 아침을 여는 순정한 숨 방울이 맺혀도,
을 쓴 것처럼 희끄무레한 터뷸런스에 휩싸여도,
Walking, Waltzing, Way making.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덧붙이는 말.
*중간에 엉성하게 삽입된 글자 조각들은 모두 마크 밴호네커의 『비행의 발견』에서 발췌한 덩어리다.
*순서대로 237, 283, 287페이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