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빠짐 주의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탈 때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하다.
신촌역의 스크린도어를 보면 발빠짐에 유의하라는 문구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열차가 도착하면 발빠짐 주의, 라는 기계음이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사방이 주의문이다. 처음에는 뭘 저렇게까지 유난을 떠나 싶었지만 … 이후의 나는 지하철을 탈 때 마다 휴대폰을 멈추고 유의문구를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왜 그러냐구요? … 저도 알고 싶지 않았어요.
작년 오늘, 기숙사 짐을 정리하고 집에 오던 길. 스크린 도어에 붙어있던 발빠짐 주의라는 경고문이 유독 그날따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무거운 짐을 옮기느라 더위를 먹기라도 했는지 몸에 영 힘에 들어가지 않던 차였다. 멍하니 휴대폰 속의 세상을 바라보다 도착한 열차를 타기 위해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문이 열렸는데,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났다. 화면 속에 시선이 고정되어있었던 만큼, 나는 소리로만 이 세상을 보고 있었고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는 충돌 직전이었다. 문이 열리며 다급하게 뛰쳐나오는 사람을 피해 올라타려다 발걸음이 꼬였다. 짐의 무게 때문인지 쉽사리 잡히지 않던 균형. 당황해서 휘청거리다가 발을 짚었는데 아래는 허공이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이 찾아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
무거운 짐들과 깜깜한 허공이 내 발을 붙잡았다.
애석하게도, 나는 통증을 느끼기보다 주변을 의식하기에 급급했다.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 까맣기만 한 공간에 발이 빠졌고··· 요란스럽게 넘어진 내게 처음으로 든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애석하게도, 주변의 눈치를 꽤 보던 시기의 나로서는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상황을 모면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종이가방들을 주워 절뚝거리며 앉았다. 다리를 굽히자 욱신거렸고, 무릎에 감각이 없었지만 웃기게도 그때의 나는 무릎에서 피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새로 산 청바지였는데.
위험한 틈새에 대해 – 신촌러들은 꼭 명심할 것.
집에 가기 위해서는 을지로입구역에 내려야했다. 지하철이 속도를 늦춤과 동시에 몸을 일으켰는데 찌릿한 통증과 함께 눈물이 났다. 이를 악물고 절뚝거리며 지하철에서 내렸지만, 내 앞에 남은 것들은 높디 높은 계단들 뿐이었다. 어떻게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래, 집에만 가면 돼. 집에 도착하면 모든게 다 괜찮아질거야··· 마음 붙일 곳 없는 서울에서, 나는 자꾸만 집을 그리워했다.
이후 왜 병원을 가지 않았냐,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냐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말들을 듣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엔 나는 너무 독립적인 사람이었고ㅡ또 내 문제를 과소평가하는 사람이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픈 무릎의 통증보다 새로 산 청바지의 얼룩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내 문제는 내게 별 게 아니였다. 오히려 주변 친구들을 걱정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지인들의 불행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그건 내 문제가 아니였는데. 나는 잘못된 문제들을 풀고 있었다. 오답인줄도 모르고. 타인으로부터 백점짜리 시험지를 받아내기 위해 문제를 풀고 있었던 거다.
손잡이를 붙잡고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계단들을 올랐다. 걸을 때 마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방금 막 슬개골이 골절된 상황 속에서 그렇게 걸어다닌게 용하다, 애썼다.
나는 애를 썼다.
넓은 간격에 대해 – 슬개골 골절에 주의할 것.
뺄 겨를도 없었던 에어팟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양쪽 귀가 꽉 막혀있었던 것에서 오는 답답함이었을까, 혼자 소리 죽여 울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흘러나오던 노래가 점점 희미하게 멀어져만 갔다.
세계에서 추방당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눈 앞이 노래진다’는 진부한 문학적인 표현에 대한 기존의 반감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노랗게 흐려진 세상이 이질적으로만 느껴졌다. 내가 발 붙이고 있는 곳은 다른 세계였다. 어떻게든 지상에 붙어있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서있을 수 있을지 에 대한 그 방법을, 혹은 내가 이 세상에 이렇게 서있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다. 휴대폰 너머로 기계음만이 들려오던 순간 나는 정말 홀로 남은 기분이 들었다.
견딜 수 없는 상황 속 가쁜 숨을 내쉬다가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계단을 오르고 카드를 찍으려는 순간 세상이 고꾸라졌다. 정확히는 내가 쓰러진거였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며 나는 기절했고, 다시 눈을 떠보니 당황한 사람들이 나를 부축하고 사방으로 흩어진 내 짐들을 모아주던 참이었다. 벨트를 푸른 버스 기사 아저씨가 다급하게 다가왔고, 나는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에 괜찮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진짜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해요. 어느 어른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학생을 걱정하지 않았겠냐만은··· 그때의 나는 남에게 극도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하던 인간이었다.
걱정을 가득 안고 도착했던 병원에서는 한시가 급하니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을 꺼냈다.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생각하기에는 너무 아팠고 불안했다. 고통이 좀먹은 뇌는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어쩌다보니 휠체어에 앉았다. 눈을 감았다 뜨자 병상 위였고, 코로나로 인해 엄격해진 병원 규칙 때문에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피를 뽑고, 주사를 맞고, 수술 전 준비라며 이런저런 검사들을 진행하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갑작스럽게 잡힌 아침 수술 전까지 나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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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떨며 홀로 잠이 들었던 그날 밤이 지났다.
다행스럽게도 수술을 취소했고, 2달동안 꼼짝않고 붕대를 칭칭 감은채 침대에서 살았다.
친구들은 내 안부를 물었고, 걱정 어린 마음을 잔뜩 꺼내보여주었다. 자잘한 선물들이 자꾸만 집에 도착했다. 얼굴을 오랫동안 보지 못할 수는 없다며,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집에 찾아와준 친구들의 애정에 나는 잠식당했다. 혼자 슬퍼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매일을 주변인들의 애정과 사랑으로 버텨냈다. 그 시기가 지나고나니 나는 한결 사랑받은 사람이 됐다.
아팠던 날들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것은 지나고 나면 쉽다. 이 쉬움이 때로는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지나기만 한다면. 그토록 간단하게 내 원동력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에서 썩 나쁘지만은 않다.
체에 거르듯 무언가를 차분히 걸러내고, 그 아래 남은 것들만 끌어모으기
찾아와준 친구들의 마음에서 발견한 애정에 보답하는 내 사랑과
우려와 걱정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기꺼운 마음!
그런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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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수렁에 빠지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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