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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2 · 05 · 09

차가운 도시에 파도가 치면

Editor 앵두

ocean floor, wave to earth

 

0:49  ─────────  4:01

           ◁  II  ▷          ↻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밤이 많아졌다. 

뚜렷한 경계 없이 어둠과 햇빛이 뒤섞이는 밤낮의 변화는 복잡한 머릿속을 그대로 하늘에 펼쳐놓은 것 같다. 형용할 수 없는 마음과 닮았다. 익숙한 새벽의 공기로 숨쉬다보면 극점에 위치한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파도쳐온다. 분류할 수 없는 생각들, 계속해서 물은 밀려오고 명확한 구분은 불가능하다. 확실한 분리, 선택, 결정, 굳은 심지에서 연결되어 나오는 생각과 말들이 해안가에서 부서진다. 곧은 수평선에 맞춰 해안을 따라 걸으며 결국 내가 확언할 수 있는 건 나는 유약한 사람이라는 것 뿐이었다. 

거품을 내뱉는 파도는 처절하고, 그러면 나는 홀린듯 들어가 속절없이 물살에 휩쓸린다. 

 

─── 밀물 ılı.lıllılı.ıllı.

중간고사가 끝났다. 벌써 대학생으로서 5번째 -계절학기까지 포함하면 6번째로- 맞이하게 되는 시험이었다. (물론 과목별로 생각해보면 숫자를 조금 더 곱하거나 더해야겠지만,) 높은 학문적 성취에 이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를 벌써 그만큼이나 평가받아본 것이다. 모니터 속 평가란에 입력되는 것은 간단한 알파벳 한 글자지만 내가 채워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 스스로는 채울 수 없는 나의 조각을, 외부에서부터 바라보고 틈 사이에 채워 넣어주는 객관적인 척도. 그건 끼워 넣는걸까, 밀어 넣는걸까. 

완벽하게 틈에 들어맞을 수 있을까? 

틈, 사이. 공간적 정의에서 벗어나 시간과 기회에 대해 생각한다. 별거 없는 3학기, 평이한 수준의 교양 강의들로만 틈들을 가득 채웠던 지난 1학년의 시간표를 곱씹게 되는 순간. 1년이 흘러갔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나와는 어울리는지 아닌지 모르겠는 전공 수업들과, 4개의 선택지 중에서 아직도 선택하지 못한 채 하나의 계열로 남아있는 나. 인문 계열이라는 단어만이 대학에서의 나를 수식하는 공적인 언어로써 존재하고 있다. 어쩌면 그 어떤 수식어보다 나한테 더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잃어버린 확신에 선택을 유예하고 한발짝 멀리서 관망하는 건 익숙했다. 무언가를 정하지 못하고, 모호하게 일렁거리는 하나의 큰 주제만이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것.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의 갈등, 쉬운 길과 어려운 길 사이에서의 가늠. 가지 않은 길의 강도를 멋대로 속단하고 포기하려다가도, 도전해봐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다시금 발걸음을 돌리지만 그대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일은 쉽지가 않다. 반면 멈춰서기는 쉽다. 휴식과 안정, 심사숙고와 고뇌를 이유로 들면 더욱 간단해질지도 모른다. 그래, 한 번 생각해볼게. 물론 시간을 갖고 고민해본들 쉽사리 결정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 걸 알고는 있었다.

그저 무엇이든 유야무야하게 넘겨버릴 속셈이었다.

 

─── 썰물 ı.ıllılı.lılılı.

2호선 안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간다. 도착지인 신촌에 내려, 계단을 부산스럽게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응시하면 모두가 가지각색이다. 말 그대로 각 ’색’ 이다. 여러가지 색상이 한데 어우러진 머리, 원색에 가까운 강렬한 색깔의 머리, 하얗게 탈색한 머리, 머리, 머리… 살짝 내린 시선에 포착되는 외양 또한 그렇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본인을 덮은 사람부터, 이와는 반대되게 다양한 파스텔 톤으로 옷을 물들인 사람, 단정한 정장 느낌의 옷을 입은 사람, 무난한 후드티와 백팩으로 학생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까지. 덧붙이자면 편안해보이는 원피스, 몸에 딱 달라붙는 크롭티, 넓은 통의 바지 등등. 신촌에는 본인의 개성을 외형에서부터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모두가 어떻게 그렇게 옷을 다 다르게 골라 입을 수 있나 싶다.

 

신촌의 거리에 나가보면 모두가 자신만의 취 향()을 풍긴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렇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인지하고 관련된 것들을 찾아나선다. 취향으로 가득 찬 개인의 눈빛에는 반짝임이 가득하다. 본인만의 세계로 주변을 치장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진심으로 동경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단순히 깊이 없이 보여지기만 하는 취향을 선망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찌되었든 그것 또한 그 사람의 확고한 선택이자 곧은 마음이기에 마음 한켠에 부러움이 남는 건 찝찝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취향을 전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또 누구나 할 수 없다. 어찌되었든 그 향에 홀려 흩뿌리고 다니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지 않았겠는가. 

 

모두가 각자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색채를 안고 그림을 그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괜히 물통을 엎어버리고픈 심술이 났다. 내 도화지는 여전히 백지였고 사람들의 그림에 그어진 선들은 화려해보일 따름이었다. 하다못해 팔레트에 물감을 짜놓기라도 했잖아. 원하는 물감의 색을 정하고 선을 그었잖아.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부리다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물감들을 바라보면 숨이 턱 막혔다. 무엇을 택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이런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팔랑거리는 귀는 선호, 인기, 유망과 같은 것들을 빠르게 잡아냈다. 남들을 따라 물감을 고르고, 적당한 크기의 붓을 잡아 적절하게 물을 묻히고 무난한 것들을 그려내면 제법 괜찮은 말들을 들었다. 넌 재능이 있나봐, 잘 어울린다.  어울리나요? 어쩌면 이건 내가 나와 어울려보이게 그린 것일 수도 있는데도요? 누구를 향한건지 모를 날 선 말들이 빠져나올까 입을 다물고 고개를 까닥거렸다, 까딱하면 헐어 찢어져버리기 전이었던 얇은 캔버스 상태가 들통날 것 같아서.

붓질을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해안가 ..ıı.lıılıı….

시기와 질투의 감정으로 변질된 동경심에 잠식되기 전에 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 나온다.

밤은 생각보다 짧고, 아침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는 잠잠하다. 고요한 바다를 뒤로하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성적 마감 기간이 지나 확정된 중간고사 성적을 보면서 이정도면 내가 잘한걸까? 가늠해보기도 한다. 괜한 바람이 불어 질의응답에도 활발히 참여하며 수업을 열심히 듣기도 하고, 시집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을 사진 찍어 간직하고. 단지 눈길이 간다는 이유로 선택한 영화를 보고 이름 모를 밴드의 음악을 듣는다. 모든 선택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취향일수도 있었겠다. 

 

그래, 이곳에서의 매 순간은 선택의 연속이고 이를 결정짓는건 나다. 유보하거나 양보하는 것이 습관이었던 나도 조금은 선택하는 법을 배웠다. 아무거나 다 좋아. 상습적으로 내뱉던 문장을 이제는 단어를 조합하는 도중 주저하게 되었다. 

하나로 정의하지 못한다 한들 무엇이 문제일까. 아직은 찾아가고 있다.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좋아해요···

 파도를 담은 노래들이 좋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물결이 데려온 조개껍데기들이 가득하다. 반짝거리는 것들을 모아 엮으면 금세 아름다운 공예품이 된다. 지금은 흩어져있어도ㅡ.

앵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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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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