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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2 · 05 · 31

346. 우연한 인연

Editor 사무엘

2022.05.31

 

  버스를 타기 위해 신촌역으로 향하던 중 버거킹 연세로점 옆을 지나쳤다. 버거킹 왼쪽에는 지하로 향하는 작은 문이 존재한다. 그곳에는 ‘뉴캐슬’이라는 술집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있었다. 이 가게도 코로나를 피하지는 못했나보다. 양주를 바틀로 싼 가격에 파는 술집이었다. 새내기, 그리고 헌내기 시절 한창 양주에 빠졌던 나는 뉴캐슬을 밥 먹듯이 들렀다.

  뉴캐슬에서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면접형’ 친구들이다. 같은 면접형 전형에 지원해 대학교 면접 후 대기실에서 처음 만나 친해졌다. 내가 이 친구들에게 양주를 알려줬고, 양주 맛을 알아버린 이 친구들에게 나는 가장 이상적인 비율로 열심히 술을 섞어줬다. 새내기 때는 정기적으로 모여 모든 양주를 섭렵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술을 먹었지만, 이제는 한 학기에 한번 모이기도 어렵다. 

  다른 친구들은 나와의 만남들을 기억하고 있을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머릿속에서는 면접형 친구들과 함께 했던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억들은 꼬리를 물어 나를 우리의 시작인 2017년까지 데려다줬다. 잠깐 시간여행을 떠나 우리의 여정을 추억해볼까 한다. 내 기억을 먼저 들려주면 친구들도 자신들의 기억을 들려주지 않을까?

 


2017.10.14

 

  너희는 내가 신촌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야. 지금 생각해도 우리들의 첫만남은 특별했다고 생각해. 물론 모든 만남과 인연은 특별하고 운명적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야. 나는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에 면접형이라는 수시 종목으로 지원했어. 너무 접수를 일찍해서 그런지 수험번호가 1번이었고 자연스럽게 면접도 첫번째 순서였어. 그때 면접장에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아. 단 하나 기억나는건 영상 편집 관련 답변을 하다가 페이드 아웃*을 *페이드 어웨이**라고 말했던 거야. 10분이었던 면접시간은 1분처럼 지나갔고 나는 면접 후 대기실에 도착했어. 당연히 내가 첫번째 순서였으니까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 면접 시작 시간은 오전 9시였는데 나는 오후 1시가 되어야 면접 후 대기실을 떠날 수 있었어. 

*페이드 아웃: 페이드 인과는 반대로 영상이 서서히 어두워지다가 까만화면이 되고 음향은 소리가 서서히 작아지는 것을 말한다.

**페이드 어웨이: 농구에서 비스듬하게 뒤쪽으로 점프해 수비를 피하면서 쏘는 점프슛을 말한다. 

  4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뭘 할지 고민하고 있는 순간, 대기실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어. 그 사람은 내 자리에서 정확히 두 칸 옆으로 떨어진 자리에 앉았어. 그 사람의 표정은 면접을 잘 봤는지 못 봤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어. 4시간 동안의 지루함을 견딜 수 없을 거 같아서 나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어. 면접은 잘 봤는지, 문제는 뭐가 나왔는지 등 면접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갔고 그 사람은 내 옆자리로 왔어. 그런데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니까 나와는 다른 기계공학과인거야. 그 때 대기실 문이 열리고 다른 사람이 들어왔어. 그 사람은 우리 옆에 앉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처럼 보였어. 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도 말을 걸었어. 이 사람도 기계공학이더라구. 이때 이후부터 나는 대기실에 얼어붙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다 말을 걸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나한테서 어떻게 그런 인싸력이 생긴지는 모르겠어. 4시간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버틸 자신이 없고 문과인 나와는 다른 이과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신났었나 봐. 

  이제 이 뒤의 이야기는 너네도 다 잘 아는 이야기일 거야. 면접을 본 너희들이 문을 열자마자 나는 MC마냥 말을 걸었고 그렇게 우리 대기실은 왁자지껄해졌지. 너희는 내 단발머리를 보고 의류학과에 잘 어울린다며 꼭 붙을 거라고 말했었어. 의류환경학과 1명과 기계공학과 20여명은 진행요원한테 조용히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은 대화를 나눴어. 어느덧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켰고 우리는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대기실을 빠져나왔지. 이 중에서 몇명만이 학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말야. 

 


2018. 05.02

 

너네도 알겠지만 새내기였던 나는 머리를 가만두지를 못했어.

 

  나는 정말 운 좋게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에 합격했어. 이때는 머리 스타일을 단발머리에서 삭발로 바꾸고 학교를 입학했어. 너희의 존재에 때해서는 아예 잊고 지내던 중 학교 안 카페에서 낯선 사람이 갑자기 나한테 “너 상민이 맞지?”라고 말을 걸었어. 난 ‘이 사람이 어떻게 나를 알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 기억나? 정원이야!”라는 질문에 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어. “우리 면접 후 대기실 같이 썼었잖아!”라는 너의 말에 잊고 있었던 우리의 첫만남이 떠올랐어. 그렇게 너는 내 번호를 따갔고 우리는 5월 2일에 처음으로 같이 술자리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어. 첫만남 이후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서 그런지 나는 너희 얼굴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어. 

  10시 약속에 맞춰 캠퍼스타운역 근처에 있는 ‘캠퍼스 포차’로 향하면서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어색하지는 않을지 많이 걱정했어. 술집에서 너희와 같이 테이블에 앉았을 때는 많이 어색했어.  새내기 생활이 어떤지, 학과마다 재밌는 일은 없는지, 누가 학교에 합격했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어색함을 깨기 위해 빠르게 소주잔을 비웠어. 1시간 동안 인당 1병 반 정도를 마시고 2차는 ‘블라블라’로 자리를 옮겼어. 늦게 신촌에서 출발한 상화는 2차부터 합류했어.

  같은 대기실에 있던 20여 명 중 6명만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어. 상화의 밑잔을 참을 수 없었던 우리는 “상화야, 약먹자~”하면서 친절하게 소주잔에 남은 술을 숟가락에 따라서 먹였었지. 담배와 함께 마신 소주는 몸을 빠르게 데웠고, 나는 싱거운 나가사끼 짬뽕탕 한 숟가락을 뜨며 소주의 역겨운 맛을 덮으려고 애썼어. 직후에 우리는 잔을 한 번 더 부딪혔고 그 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뜨니까 난 기숙사 침대에 있었어.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필름이 끊기는 건 전혀 좋은게 아니라고 생각해. 전해 들은 “상민아, 넌 정말 깔끔하게 죽었어. 걱정하지 마.”라는 말은 앞으로 너네들과 같이 할 수 없다는 선고처럼 느껴졌어. 너무 부끄러웠거든. 하지만 정말 다행히 너네도 다 기억이 온전치 못했어. 정찬이도 나처럼 필름이 끊겼고 어머님이 주신 우산까지 잃어버렸더라고. 모두가 정상적이지 못해 내심 안심한 나는 용기를 내서 한 번 더 만나자고 했어. 다음 주에 만난 그날 너희는 첫 양주로 내가 섞은 진토닉을 맛있다며 마셔댔지.

 

이때는 너네한테 정말 맛있는 술을 먹게 해주고 싶었어.

 

  첫술을 양주로 배운 나 때문에 1년동안 우리는 시간이 될 때마다 만나서 노상으로 양주를 마셨어.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도 패딩을 껴입고 얼음컵에 열심히 양주를 섞으며 잔을 나눠주는 내 사진을 보면 참 행복했었나봐. 다른 대학생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학교 내 취사장도 예약해서 고기를 구워먹기도 했어. 너희를 매일 본건 아니었지만 2주에 한번 너희와 함께 한 술자리는 내 학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줬어. 

 

지금 보니까 6명이 함께 한 사진은 이 사진 뿐이네.

 


2020.01.08

 

  2019년 3월 17일에 형섭이가 입대를 했고 4월 2일에 정찬이가 입대를 했어. 그리고 우리는 이제는 송도가 아닌 신촌에서 학교생활을 했어. 신촌에서의 2학년 생활은 여러모로 바빴나 봐. 나는 한창 디제잉에 빠져서 바쁜 너네에게 파티에 오라고 일방적으로 카톡만 남겼었네. 가끔 한 명씩 만나서 밥을 먹는 걸 제외하면 2019년에 4명이 한번에 모인적은 한번도 없었어. 그렇게 날짜도 맞추지 못하고 미루다가 우리는 2020년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어.

  2020년 1월 8일 우리는 신촌에 있는 ‘포석정’에 모였어. 거의 1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거지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어. 그때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굉장히 재밌었던 걸로 기억해. 나는 한결같이 정원이를 옆에서 괴롭혔고 원석이와 상화는 그런 우리를 보며 웃었어. 우리는 1년동안 직접 듣지 못했던 서로의 경험과 에피소드들을 공유하며 잔을 비웠어. 예전처럼 양주만 고집하지도 않았고 술을 지나치게 빨리 먹지도 않았어. 딱 대화하기 좋은 양만큼, 대화하기 좋은 속도로. 

 

항상 찍어주기만 했는데 찍힌거는 처음이었어.

 

  이 때 만남을 뒤로 우리는 차례차례 입대를 했어. 내가 4월 13일에 가장 마지막으로 입대를 했지. 서로 입대 시기가 엇갈렸고 코로나로 휴가가 막히면서 우리는 2년 가까이 만날 수 없었어. 그래도 군대에 있을 때 간간히 톡방에 올라오던 나를 찾는 카톡은 반가웠어. 너네가 나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어. 그렇게 내 전역 전까지 우리들의 만남은 긴 동면에 들었어.

 


2022.02.04

 

  가장 먼저 군대를 갔던 형섭이는 제대 후 반수에 성공해서 전북대 의대로 가게 되었고 원석이와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닿지 않게 되어. 내가 제대를 하고 나 남은 사람은 나 포함 4명이었어. 그리고 그 사이에 상화는 원광대 한의대에 합격해 익산으로 내려가야했어. 한의대에 입학한 상화가 대단하기도 하고, 다시 새내기가 된 게 부럽기도 했어. 상화의 송별회를 위해 우리는 추운 겨울 신촌 ‘고향’에 모였어. 

  나는 정원이와 먼저 도착해서 고기를 구웠어. 오랜만에 구워 먹는 고기라 그런지 육즙이 녹아 흐물거리며 불판에 달라붙는게 반가웠어. 2년 만에 본 너희들 모습은 놀랍도록 그대로였어. 나만 나이를 먹은 느낌이더라고. 머리가 매번 달라져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군대에서 전역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군대 얘기가 주를 이뤘고 각자의 근황 얘기도 오갔어. 군대를 빨리 갔다온 정찬이를 제외하면 전역한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다들 특별한 일이 있지는 않았어. 이번 학기에 우리는 다시 복학을 할 예정이었고 수업에 허덕이는 복학생이 될 운명은 모르고 있었지. 

  2년 전과 다르게 코로나란 게 있었고 오후 10시에 무르익어가는 재미를 뒤로 하고 가게를 나와야했어. 앞으로 언제 다시 모일 수 있을지 모르기에 내가 인생네컷을 찍자고 제안했어. 너네는 무슨 남자 4명이서 인생네컷을 찍느냐고 비난했지만 막상 가니까 정말 열심히 찍더라. 포즈도 미리 정하고 첫번째 사진이 마음에 안들어서 두번이나 찍었어. 

 

다들 인생네컷에 이렇게 진심일 줄은 몰랐어.

 


2022.05.31.

 

  5년이라는 시간을 빠르게 여행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있었고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왔다. 제일 좋아하는 자리인 버스 뒷문 바로 앞에 자리가 비어있어 미끄러지듯 앉았다. 창밖을 바라보니 버스는 빠르게 신촌 로터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다음 우리의 만남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형섭이와 원석이는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고 상화는 다른 학교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정찬이는 와뎀이라는 동아리에서 운영진을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고 정원이는 2학년으로 복학했다. 

  면접 후 같은 대기실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뭉쳤다. 그때 만난 6명 모두가 함께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를 추억한다. 내가 양주를 마시자고, 양꼬치를 먹자고, 도삭면을 먹자고 할 때마다 이 친구들은 언제나 흔쾌히 함께였다. 나는 의도치 않게 이 친구들에게 항상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인도자가 되었다. 첫만남에서 필름이 끊겨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 친구들은 나를 끝까지 책임지고 기숙사에 데려가 눕혀줬다. 모든게 새로웠던 새내기에서 이제는 화석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복학생이 될 때까지 내 대학생활에서 이 친구들은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의 인연은 우연이었지만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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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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