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orgettable
저도 어느덧 잔치에서 마지막 글을 쓰는 차례가 오네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소감을 말하자면, 후련하기도, 후련하기도, 후련하기도, 하네요.
첫번째 후련함은 더 이상 업로드의 부담이 없다는 단순한 감정의 후련함,
두번째 후련함은 나의 모자람을 글의 형태로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면의 후련함,
세번째 후련함은 잔치에 있던 기간 동안의 걱정이 조금은 해소된 것 같아, 나름의 격려와 안도감의 필 베러.입니다.
hu-ryeon-ha-da
이렇게 겁이 많은데 애초에 무슨 생각으로 잔치에 발을 들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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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꿈.
오늘 밤은 이상하리만큼 잠에 잘 들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피곤해서 움직일 수는 없는데, 반대로 잠 들기엔 너무나도 쌩쌩하여 괴롭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나 배가 너무 고파서 잠에 들 수가 없었죠.
그렇게 해가 뜨고 지쳐 잠들자 꿈을 꾸었어요. 정말 특이한 꿈.
설명을 하자면, 제가 고등학교를 떠난 이후, 18살 때 만났던 학원의 아는사람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여러 인연들 중 그 분은 저와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던 사이였는데요,
그 분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너 (000) 이 기억하니? 라고 물었습니다.
굉장히 오랜만에 만난 것임에도 불구, 꿈 속에서는 말도 안되는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마치 18살때로 다시 돌아가기라도 한듯, 아니? 전혀 기억이 안나는데? 누군데? 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000이라는 사람이 내가 어떻게 사나 궁금해했다며, 난리 법석이더군요.
그러나 허무하게도 돌이켜보니 000은 허구의 인물이였습니다.
저는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요.
나름 어린 나이의 첫 좌절을 경험하고 애써 외면해온 기억들을, 그리고 그 때 함께 했던 인연들을 억지로 잊으려 했기 때문인것 같네요.
잊을 수 없는 것을 잊으려 하면 언젠가 이렇게 개꿈으로라도 나타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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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s Playlist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친해진 미국인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Mark.
저의 이름은 영어로 발음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냥 저를 Julia 라고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꼭 나의 한국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며, 어려운 한국식 발음을 몇차례 연습하시고 갔습니다.
이제는 저를 꼭 사리(가명)라고 불러줍니다.
나의 이름을 기억해준다는 것, 불러주려는 노력이 얼마나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Julia는, 그저 영어 선생님들이 나라는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급하게 만든 명칭 정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도 마크라 하지 않고 혀를 굴려서 Mark라고 해보겠습니다.)
처음 Mark는 맥주따르는 저에게 nice pouring! 이라고 말을 건냈고, 그 후 저흰 제법 자주 얘기를 나눴습니다.
Mark는 저희가게의 노래가 좋다고 하였고, 나름 열심히 맞장구를 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저는 music is my life…인간이 되어있었는데요,
Mark는 그 후 저에게 선물이 있다며 웬 종이를 건네 주었습니다.
Songs for Song~
이 종이 한 장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순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급하게 앤 마리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말을 기억하며 run away라는 노래가 제 취향일 것 같다고 했는데요, 그 노래가 3분 내내 고함만 지르는 음원이였어도 저에게 최고의 노래였을 것입니다.
나의 이름, 나의 관심사를 누군가 잊지 않아준다는 것.
생각보다 더 따스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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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두바이
지난 5월, 약 1주일동안 두바이로 갔습니다.
약 4년만의 해외여행이자, 제 인생에서 가장 먼 곳이었고, 심지어는 제가 모든 책임을 지어야하는 여행이었죠.
늘 어리고, 늘 내 말은 틀렸고, 늘 모르기만 하는 저에게 한순간에 인생은 각자 사는거라며 세상에 던져졌을 때의 그 배신감.
성인이 된 후 조금씩 느껴왔던 감정을 타지에서 경험할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것들이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늘 궁금한 것은 참 많지만 동시에 소심하여 나의 솔직함을 내비치는 것보다 관심 없는 척을 택해버립니다.
그냥 한마디로, 음식점에서 직원에게 말을 거는 것 조차 망설이는 쫄보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타지에서 ‘외국인’이라는 찬스를 사용하여 궁금한 점들을 마구 냅다 쏟아내고 다니니 그렇게 해방감을 느낄 수 없더군요.
처음 느껴보는 그 묘한 해방감은 저에게 이상하리만큼 강한 용기를 주었습니다.
심지어는 주메이라 모스크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국인과 약 2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는데, 덕분에 많은 두바이 여행 팁을 전수 받았습니다. 다시 뵐 수 있다면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이력서 한 줄을 위해 온 두바이에서 온 고생은 다 하시다가 2주만에 한국에 돌아가신다던 그 분은 부산에 잘 계시겠지요. 과연 부산에서 다시 호텔로 취직은 하셨는지 괜히 궁금해집니다.
우연히 만난 그 분에게 저는 얼마짜리 기억이였을까요, 혹은 공항에서 한국드라마를 좋아한다며 저와 악수까지 나누신 공항직원께는 저는 얼마짜리 기억이였을까요, 사막 사파리에서 같은 차를 탄 브라질 커플에게 저는 얼마짜리 기억이였을까요.
가령 10분도 되지 않는 기억이더라도 좋습니다. 처음으로 낯섦이라는 것에 애정을 갖게 된 것으로 만족합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다녀온 대부분의 여행이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아예 나질 않아요. 그리고 제가 그저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꽤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네요.
처음으로 어리지 않았고, 내말이 틀려도 고칠 기회가 있었고, 아무것도 몰라도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요.
두바이는 공항시계도 로ㄹㄹㄹㄹ렉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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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신촌?
잔치에 들어오기 전 지원서에
신촌에 오면 특별해야할 것 같은데, 특별하지 않아서, 신촌이 괜히 싫었다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지금은 신촌이 주는 평범함이 좋더군요.
예를 들어 고삼이의 고등어구이는 정말 촉촉하고 바삭해서 2그릇을 먹어도 감동적이고,
샐리스의 로투스 크림 도넛은 디저트를 잘 먹지 않는 친구에게 가져다 주어도 합격을 받으며,
신촌에 있는 하루필름은 다른 지점보다 줄을 덜 서도 되어서 만족스럽습니다.
저에게 잔치는 어떤 기억이었을까요. 그것은 시간이 꽤나 지나서야 알 것 같습니다.
비록 회의에서 정신 못차리는 잔꾼이였어도,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잔치는 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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