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여기는 신촌랜드!

오라고. 빨리 안 뛰어?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신촌랜드로~
신촌 전체가 사유화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6명의 술자리에서 나온 가정을 확대시켜보는 것이다. 거대 자본이 들어와 신촌이라는 지역 전체를 인수했다. 신촌의 주인은 특이하게도 신촌의 자율적인 시장경제를 존중해서 모든 매장의 수익 중 2%만 받고 현재 신촌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기로 한다. 그래도 사업주란 자고로 추가적인 수익 창출을 원하는 법. 자본의 유혹에 홀린 신촌의 주인은 신촌랜드를 구축해 ㈜신촌랜드 회사를 만들고, 신촌 사업을 시작한다. (보존한다고 했지 않냐고 반발해도 어쩔 수 없다. 계약서 마지막 7pt로 써진 “갑은 신촌지역을 신촌의 본질을 현저하게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갑의 경제적 수익 창출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라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계약서를 잘 읽어야 한다.)
어서 오세요, 행복을 드리는 신촌랜드입니다~

오세요 신촌랜드!
- 신촌랜드요?
신촌랜드는 일명 ‘신촌’이라고 불리는 지역들을 놀이공원처럼 묶어서 만든 곳으로, 놀이공원처럼 놀이 기구는 없지만 체험, 식사, 음주,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군인한테 말했더니 ‘아~ 시가지형 놀이공원이구나~’라고 했다. 갑자기 팍 식었다.) 무엇보다 신촌랜드는 시간제한이 없다. 신촌랜드 안에는 에버랜드 숙소처럼 거주지도 있어서 매달 일정한 돈을 지불하면 거주도 가능하다. 대신 신촌 밖을 다녀올 때마다 성인은 500원의 입장료가 발생한다. 자유롭게 상업활동도 할 수 있어서, 일정한 월세와 수익의 2%만 사업주에게 납부하면 영업시간제한 없이 영업 가능하다. 신촌랜드만의 특별한 위치 지정 퍼레이드, 일명 ‘버스킹’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은 사전에 허가만 받으면 사업주에게 비용을 지불할 필요 없이 진행 가능하다.

신촌랜드 구역표. 왜 커플존이 제일 작냐구요? 에디터 마음~
신촌랜드의 입구는 5곳이 있다. 창서초등학교 인근에 하나, 홍익문고 앞에 하나, 연세대학교 정문 쪽에 하나, 신촌 CGV 앞에 하나, 신촌역 경의중앙선 앞에 하나. 친절한 직원들이 당신을 맞이해줄 것이다. 눈과 말투에 영혼이 없어도 이해해 주자. 4교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에 6시간씩 일하는 직원들은 간절하게 인류멸망을 기원하고 있을 테니.

솔로는 한 분/커플은 두 분/친구는 여럿/다다 절입니다
(술에) 젖는 겁니다/절일 겁니다/젖는 겁니다~
2. 신촌랜드에는 누가 있나요?

신촌랜드 알바생1 : “야, 물류 받게 장갑 껴.”
앞으로 신촌랜드를 구성하게 될 사람들을 인터뷰해보자. 우선, 오픈 알바생부터. 신촌 안에 있는 모 아이스크림 매장의 알바생을 만나봤다.
안녕하세요.
“어, 야 왔으면 물류 받는 것 좀 도와줘. 날 더워져서 아이스크림 빨리 녹더라. 야 장갑 껴.”
인터뷰하려고 하자마자 인터뷰하고 싶으면 물류부터 나르라는 폭력적인 인터뷰이 덕분에 아침 8시 반부터 근력운동 조졌다. 매장 오픈 청소까지 도와주고 나니 오픈까지 딱 20분이 남아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근데 너 드라이 깰 줄 알지? 나중에 바쁘면 좀 깨주라. 어우 와서 다행이다. 매일 오면 안 되냐?”
저는 인터뷰하고 갈 건데요? 주위에 있는 매장 중에 가장 먼저 오픈하는 매장인데, 신촌을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신촌의 아침은 어떤 느낌인가요?
“매정하네. 신촌의 아침은 이질적이고 피곤합니다. 신촌에 거주하는 사람이기도 한 저는 신촌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모두를 맞이하는 사람이에요. 밤에는 왁자지껄하고, 사람들이 흥에 돋아 덩실거리거든요. 그런데 아침이 되면 대부분이 사라지죠. 싸늘한 아침에 맞이하는 조용한 신촌은 이질적이에요. 그리고 피곤한 이유는, 절대 매장의 시작은 상쾌할 수가 없어요. 물류가 함께 오기 때문이죠. 누구보다 무겁고, 피곤하고, 빡치고, 사장님은 물류를 왜 저렇게 많이 시키는지… 그래도 거리에 아무도 없어서 일할 때 노래 크게 틀고 신촌을 여는 기분은 꽤 좋습니다.”
그렇구나. 신촌랜드가 만들어지면 어떨 것 같으세요?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신촌 자체가 관광산업의 대상이 되는 거니까, 사람 많아지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도 많은데 어우 그런 짓 안했으면 좋겠어요. 알바생은 아무도 없는 매장이 좋아요. 우리 매장이랑 콜라보해서 신촌 이벤트라도 해본다고 생각하세요. 이게 무슨 일이야. 저 벌써 담배 피우고 싶어요.”
영양가 없는 인터뷰를 끝내고 만난 신촌의 다음 인터뷰이는 신촌의 밤을 마감하는 사람인, 신촌의 민속 주점에서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신촌랜드 알바생2: “신촌의 밤이요? 광란이에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죽을 것 같아요.”
네, 신촌의 아침을 담당하는 사람을 만나고 왔는데, 신촌의 밤을 마무리하는 사람으로서, 신촌의 밤은 어떤가요?
“신촌의 밤이요? 광란이에요. 우리나라가 이렇게 음주 강국인지 저는 처음 알았어요. 제가 교회를 다녀서 술을 안 마시거든요. 근데 나만 빼고 다 마시나 봐요. 술집에서 일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마셔서 당황스러워요. 주(酒)여…”
신촌의 밤에서만 느껴지는 낭만이나 특별함이 있나요?
“낭만이라고 하면, 신촌에는 숨겨진 장소들이 많아요. 제가 새벽 2시에 알바가 끝나고 나면 그래도 사람들이 슬슬 집에 들어가거든요. 그러면 숨겨진 장소들이 드러나는데,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커플들 싸우는 단골 장소도 있고, 조용히 앉아서 생각할 수 있는 곳도 있어서 좋습니다. 시끄러운 곳에서 일하다가 조용한 곳에서 호흡하면 숨통이 좀 트이더라고요.”
거기가 어딘가요.
“숨겨져 있으니까 알려주지 않을 겁니다. 알아서 하세요.”
네, 신촌랜드가 구축된다면 어떨 것 같나요?
“좋겠다.”
신하균이신가요.
“아, 신촌랜드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입장권 무료로 해주면 좋겠고, 신촌랜드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 매달 3회 무료 참여나 신촌랜드 내에 있는 가게 20% 할인 같은 직원 혜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희망사항 말고 어떨 것 같냐고요.
“좋겠다.”

인터뷰가 장난이야?
신촌랜드가 구축된다면 저런 사람들이 신촌랜드에서 근무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손님은 물지 않으니 상호 친절하게 대해주자. 우리들은 모두 어린 양이고, 신촌랜드에 입장한 당신도 신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일 테니. (무엇보다 신촌 바닥은 좁다.)
3. 신촌랜드만의 특색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세요!

신촌랜드로 오세요!
신촌랜드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은 신촌에 방문하는 고객들의 특성별로 나누어져 있다. 우선, 커플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창천문화공원에서 열리는 ‘커플만 와라’ 프로그램이 있다. 창천문화공원 즉, 일명 ‘커플존’에 들어가려면 우선 혼자여서는 안된다. 둘이서 손을 잡고 있던, 팔짱을 끼고 있던 커플임을 드러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솔로끼리 왔다가 들키면 나가야 한다.

커플존 홍보 포스터

커플존 배치도
커플존에는 커플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우선, 커플 사주 포차 구역이 있어서 커플끼리 궁합 사주를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진로운 같은거 안 봐준다. 오직 연애운, 궁합만 봐준다. (나는 사실 잘 믿지 않는다. 될놈 될이다. 연애운으로 된다고 해도 안되는 사람은 안된다.) 사주 보러 다니는 커플들 많으니까, 여기 와서 다 같이 보면 된다. 또, 연애상담 구역이 있어서 커플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무엇이든 물어보살’처럼 와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대신 상담가의 대답을 듣고 화내지 말자. 그 사람도 너네 얘기 안 궁금한데 들어주고 있지 않은가. 다 알바생이다. 마지막 구역인 FCZ(Free Couple Zone)에는 정말 커플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구역이다. 앉아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대화해도 좋고, 뒤집어지게 싸워도 좋다. 그래도 폭력은 안된다. 누구든 폭력을 휘두르면 관리자가 당신이 신속하게 솔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친구존 홍보 포스터
친구존도 있다. 친구존에서는 친구끼리 온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술집들이 몰려있는 공간을 주 지역으로 한다. 친구들이랑 모였으면 술 한 잔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친구존에서 자유롭게 술 마시면서 근황도 얘기하고, 진로도 얘기하고, 상사욕도 해보자. 진정하게 청춘을 응원할 수 있는 존재는 우리 청춘밖에 없을 테니까. 친구존에는 술집, 카페, 흡연 구역이 있어서 자유로운 우정 생활을 할 수 있다.

독립존 홍보 포스터
신촌문화발전소 옥상 전경
마지막으로는 독립존이 있다. 사람에 치인 사람들은 위한 힐링공간인데, 신촌문화발전소 옥상과 창천근린공원 두 군데에 있다. 여기는 신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혼자 조용히 신촌만 바라보고 쉬는 곳이다. 말을 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와 친해질 필요도 없다. 옆에 있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으면 쪽지 보내서 친해지고, 친해진 즉시 독립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당신의 친분이 누군가의 독립존을 독립적일 수 없게 만든다면, 독립존 밖으로 나가주는 것이 맞다.

어때요. 신촌랜드, 꽤 매력적이지 않나요?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신촌랜드 같은 걸 누가 생각하나, 이런 얘기는 왜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사람 또한 술에 취해 나누는 얘기들이었으니. 그래도 신촌랜드가 전적으로 신빙성 없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촌랜드 같은 회사랑 사업주도 없고, 신촌 창천문화공원은 커플존 대신 넓은 공간과 버스커들의 노랫소리가 있다. 친구존도, 독립존도 없다. 그래도 신촌에 있는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친구존이라고 명명한 구역에서는 신촌의 많은 우정들이 술잔과 커피잔을 기울이며 만들어지고 있다. 신촌은 어쩌면 지금도 나름대로의 신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입장료도 없는 신촌랜드를 누릴 수 있는 지금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신촌을 즐겨보자. 새벽 2시에 퇴근하는 알바생처럼 거리를 돌아보며 나만의 신촌 코스도 찾아보고, 연인이 있다면 둘만의 커플존을 만들어보자. 친구랑은 같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우정존도 기획해 보고, 혼자 있고 싶다면 지친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조용한 카페 하나쯤 찾아보자. 도망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일같이 치이는 사회생활에 작은 위로가 될 테니.
당신이 만든 신촌랜드는 얼마나 근사할지 기대된다. 모두의 ‘신촌랜드 기획안’이 모여 거대한 신촌랜드가 될 때까지, 신촌의 당신을 응원한다. 한때는 신초너였던, 신촌을 벗어나 새로운 사회로 나간 당신도 응원한다. 소중히 여기는 신촌의 모습이 있다면 꼭 당신의 기획안을 버리지 말고 간직해 줬으면 좋겠다. 언젠가 ‘신촌랜드’가 만들어질 때, 당신의 기획안이 필요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 안녕~ 어라 왜 인사 안 받아줘요? 사람이 사람한테 인사를 했죠?


신촌랜드라닠ㅋㅋ 아 신촌을 사랑하는 사람 입장에서 넘 공감됩니디.. 이 주제로 계속 연재하는 거 보고싶어요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