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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2 · 09 · 30

183. 오서

Editor 해안

18시, #8C591B

 

 신촌에 거주하기 시작한 지 한 달 째. 집을 떠나서 생활하는 것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한 달 동안 열심히 신촌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바빴다. 그 사이에 개강을 하고, 초장부터 몰아치는 과제를 해치우고, 동아리와 학회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봉사활동에, 알바에, 공모전 준비에, 와중에 처음 맞는 대학 축제도 제대로 즐겨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있었다. 어색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나에게는 낯선, 이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데 급급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정도로 꽉 차다 못해 결국 흘러 넘쳐버린 한 달을 보내고, 나는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드디어 자유시간을 획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어진 자유시간을 누리기에는 심신이 너무나도 지쳐 있었다. 마치 미친듯한 업무량에 시달리다가 6시 정각의 퇴근 시간을 맞이한 직장인과도 같았다. 업무에서 자유로워졌으나, 남은 저녁 자유시간을 즐기기에는 기력을 전부 소모해버린 소강 상태.

 나의 신촌 생활 적응기도 24시간으로 따지자면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오긴 했으나, ‘그럼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뭘 하지’라는 질문에 답을 낼 수 있을 만큼의 힘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남은 시간을 즐기려면 재충전이 필요했다. 잠시 타임아웃을 외치고 기운을 차려 하루의 제 2부를 만끽하기 위함이다.

 

하루의 마지막 햇살을 쬐며 목적지로 향했다

 

 ‘오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충전을 위해 방문한 곳이다. ‘휴식이 필요해’, ‘힐링하고 싶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나에게, 떄마침 ‘오서’의 소개글 중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와닿았다. …오서의 다양한 도자기와 식물들을 통해 여러분의 일상에 작은 휴식을 얻기를 희망합니다. 나는 일상의 작은 휴식을 얻기 위해 이곳으로 향했다.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성산로 376 2층, 오서

 

 밖에서는 평범한 입간판 하나 보이지 않는 이 건물이 오늘의 목적지임을 알려주는 것은 오직 도로명주소 표지판뿐이다. 카카오맵으로 몇 번이나 주소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빛과 그림자는 하나의 오브젝트였다

 

 낡고 흔해 빠진 건물이라도 내부는 그렇지 않은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내가 닳도록 애정하는 연희동의 특징 중 하나이다. ‘나 연희동 좀 다녀봤어’ 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건물의 겉모습에 속아버렸기 때문일까, 새삼스레 겸손해지고 말았다. 어쩌면 검은색 간판 옆에 의도한 것 마냥 드리워진 햇빛과 그림자를 목격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연이 만들어낸, 해가 질 무렵 딱 이 시간에만 즐길 수 있는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한참 동안 계단에 서 있었다.

 

분재를 위한, 분재에 의한

 

 ‘오서’가 분재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임을 미리 알고 방문해도, 내부를 처음 마주하면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분재들의 향연에 숨을 헉, 하고 들이쉬게 된다. 넓지 않은 쇼룸, 꾸밈없는 바닥과 간결한 선반, 어스름한 실내를 은은하게 밝혀주는 조명은 오서가 자랑하는 분재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공간은 분재를 위해 존재하고, 분재 역시 공간을 위해 존재한다.

곳곳에 나 있는 창은 때에 따라 빛의 방향과 세기가 달라지는 자연 조명 역할을 해 준다. 방문했던 시간인 오후 6시에는 햇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 전체적으로 분재가 짙은 색깔을 띠어, 차분함과 고급스러움이 한층 강조되었다. 반면에 해가 한창 떠 있을 시간에 이곳에 오게 된다면 식물의 푸르른 빛깔을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겠다.

 

공간을 품은 분재

 

 분재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속에도 또다른 공간이 존재한다. 도자기 안의 작은 정원. 이곳에 있는 분재는 동일한 것이 하나도 없다. 각각의 분재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간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 이곳이 좁은지, 넓은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 각기 다른 공간을 읽어내기에 바쁠 뿐이다.

 식물이 주가 되는 공간을 생각하면 보통 식물원이나 화원처럼 넓은 장소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곳은 작은 공간 안에 또 작은 식물들이 꽉꽉 채워져 있는 곳이다. 즉 ‘오서’는 분재라는 작고도 오롯한 공간들의 집합인 셈이다.

 

정성의 집합체

 

 ‘오서’의 분재는 시간과 노력의 응집이다. 본격적으로 분재를 꾸미기 전, 기반 역할을 하는 도자기를 완성하는 데도 한 달 남짓 걸린다고 한다. 사용할 수목과 수석도 절대 허투루 고를 수 없다. 분재에 사용되는 수목은 크기는 작지만 나이는 꽤 된다. 한순간에 뚝딱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자, 슬쩍 보고 지나갔던 것도 다시 발걸음을 돌려 더욱 조심스럽고 자세하게 관찰하게 됐다. 정성이 만들어낸,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가시 돋친 생명력

 

쇼룸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제법 큰 분재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었다. 꼿꼿하고 고상하게 서 있는 나무가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분재라 해도 길거리의 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지만, 가시 같은 잎이 날카롭게 뿜어내는 생명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농도가 짙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것

 

 쇼룸의 한쪽 면은 작은 분재들이 전시된 장식장이 차지하고 있다. 오밀조밀 꾸며진 분재를 감상하기 위해 고개를 쓱 들이밀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유명한 시 구절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아름다움을 최대한 음미하기 위해 자세히, 오래 보았다. 여기에 새겨진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면서.

 

흙이 주는 안정감

 

 쇼룸 너머에는 도자기를 만드는 공간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직접 도자기나 분재를 만들어볼 수 있는 다양한 클래스가 진행된다. 대부분 1:1이거나 소수 정예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해 지식이 없어도 부담없이 수강할 수 있다고 한다. 조금 더 동적인 휴식을 원한다면, ‘오서’에서 진행하는 클래스를 수강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곳곳에 놓인 굽기 전 도자기의 흙 빛깔은 오후 6시의 색깔과 맞닿아 있었다.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휴식과 안정, 차분함을 주는, 자연 그대로였다. 단단한 땅처럼 모든 것을 수용하고 버텨낼 색깔이었다.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기도 한다. 구워지기 이전의, 갓 형태가 정해진 도자기는 앞으로 어떤 것을 품게 될지 모르는 상태이다. 도자기가 품게 될 내용물을 맞이하기 위한 중간 준비 단계에 놓인 것이다. 마치 오후 6시, 하루의 또다른 시작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이 시간처럼 말이다.

 

‘오서’의 소개글 첫 문장이 떠올랐다.
흙이 우리에게 주는 정서적 안정을 찾기 위해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오서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 376 2층

수~일 13:00~19:00 (단, 일요일은 15:00 오픈)

TEL. 0507-1404-7156

instagram. @ohseo.sho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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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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