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 창작자의 자정, <나의 선한 친구에게> 이윤선 감독
우리의 삶 앞에 놓인 선택과 도전의 문들엔 빗장이 걸려 있다. 그 빗장을 풀어헤치는 과정에는 많은 상처와 고독이 온다. 이따금 뚜렷하지 못한 미래에의 불안이 우릴 찾아올 때면, 우린 꼼짝 없이 짓눌려 갇혀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앞에 마주한 거대한 불안과 공백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하루를 마냥 저무는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을 때 우리의 키는 자라난다.
이윤선 감독은 오래 지속된 거리두기 중에도 처음 촬영을 시작하였고, 벌써 몇 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 되었다. 여러 방면으로 꿈의 자취를 좇는 그를 바라보면 ‘열망(熱望)’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꿈을 빚어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그 모습은 주변 이들에게도 큰 영감이 되어준다. 오늘, 창작자의 자정을 함께 맞이해보았다.
0시 인터뷰 ㅡ 이윤선 감독 (지망생)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연세대학교 국문과에 재학 중인 이윤선입니다.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현재 단편 영화 위주로 찍고 있어요. 기타 예술 장르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것들을 융합한 형태의 예술 분야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Q. 연세대 영화 동아리 ‘몽상가들’, 워크스테이션 ‘공감(_,感)’ 프로젝트, 단편영화 촬영 보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걸 봤어요. 영화 관련 활동은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궁극적으론 그 활동을 할 때 가장 재미있고 힘이 나기 때문에 시작한 것 같아요. 사실 체력이 정말 안 좋단 얘기를 많이 들어요. 하지만, 영화 관련 활동을 할 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울 수도 있게 되더라고요.

‘공감(_,感)’ 프로젝트에서 촬영한 ‘청년’ 뮤직비디오 中 이윤선 감독의 모습.
이들은 음악의 3요소를 시각적 디자인으로 치환한 배리어 프리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였다.

제1회 동아리 영화제의 이윤선 감독
Q. 이런 영화 활동이 재밌다고 처음 깨달았을 때는 언제인가요?
중학교가 자유학기제 시범학교였어요. 3학년 때 학교에서 처음으로 영화 제작 수업을 듣게 되었죠. 원래는 영화를 관람하는 입장에만 머물렀었는데, ‘아, 제작이라는 것도 있구나’하고 인지하게 되었어요.
후에 중학교 3학년 늦여름쯤에 <타이타닉>을 보았는데 진짜… 미칠 것 같은 거예요. 너무 죄책감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영화를 관람했던 태도 같은 것들에 대해서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그 무게감이 너무 크게, 몸이 아플 정도로 크게 느껴졌어요. 그 후에 삼 일을 울었어요. 밥 먹으면서 울고, 운동하다가 울고.. 좀 심했었어요.
그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타이타닉>의 감독인 제임스 카메론의 자서전도 찾아보면서 영화란 분야는 되게 매력적이란 걸 느꼈어요. ‘더 해보고 싶다, 더 해야겠다’란 생각이 엄청 강하게 들었어요. 그때 받은 충격으로 지금까지 영화를 하는 것 같아요.
그 뒤로 한 번 더 충격이 있었어요. (중학생 때)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건 단순한 생각에 불과해서 별 고민 없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아무 방향성 없이 공부한다는 사실에 무기력해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도 좋지 못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스트레스를 영화를 보는 것으로 풀었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은 그것조차 아무런 소용이 없어서 더 우울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멀티미디어실에서 찾았던 영화가 자비에 돌란의 <마미>였어요. 빨랫대에 빨래가 걸려 흔들리는 게 인트로 장면인데 그것부터 미칠 것 같았어요. 유일하게 연속으로 두 번을 봤고, 살아있다는 걸 느낌과 동시에 영화가 주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되었어요. 대학교에 가서 꼭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윤선 감독 作 <나의 선한 친구에게>
해당 영화 1회차 촬영을 무사히 끝낸 이윤선 감독은 펑펑 울며 “영화가 더 좋아져서 어떡해. 난 망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쌓아온 열정이 폭죽이 되어 하늘로 터지던 순간이었으리라.
Q. 영화가 점점 더 좋아져 큰일이라고 쓰신 글을 보았어요. 영화를 하거나 볼 때, 즐거움을 느끼시는 건가요?
기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즐거움뿐이라기보단… 너무 다양한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사실은 영화를 즐기는 법이 매번 달라요. 고등학생 때는 기분이 좋으면 코미디물을, 기분이 안 좋으면 엄청 우울한 영화를 봤어요. 감정을 극대화해서 해소하는 방법이었죠.
지금은 이미지적인 충격을 즐기는 것 같아요. 영화를 봤을 때 ‘이런 이야기를 이런 이미지로 표현한다고?’ 부류의 충격을 받는 걸 좋아해요. 내러티브*가 강한 것보단 이미지가 강한 게 좋아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와 대하는 마음가짐이 매번 달라지는 것 또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을 설명하는 것 또는 기술(writing)이라는 행위에 내재되어 있는 이야기적인 성격을 지칭하는 말.
Q. 그렇다면 최근 개봉작 <헤어질 결심>을 감명 깊게 보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셨나요?
맞아요, 엄청 좋아해요. 똑똑하게 잘 만든 영화예요. 일단은 영화를 찍다 보면, 영화에 이성적으로 접근하게 돼요. 앞에 보이는 이미지뿐 아니라 뒤에 스태프들의 행동까지 예측이 같이 되기 때문에 영화 감상이 되게 끊기거든요. 하지만 <헤어질 결심>은 최근 본 영화 중에 가장 그런 이성적 흐름이 들어오지 않았던, 영화 자체의 흐름에 맡기게 되었던 영화였어요. ‘네가 생각하기에 사랑을 가장 잘 다룬 영화는 뭐야?’라는 질문을 종종 받았는데, 이제는 주저 없이 <헤어질 결심>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영화_이윤선’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그의 브이로그들. 일반 브이로그에선 찾아볼 수 없는 감성의 편집 기술과 내용이 돋보인다.
Q. 유튜브에서 윤선 님 브이로그를 보고 살짝 충격을 받았어요. 1분 내로 끝나는 것도 있고, 한 번 봐선 어떤 내용을 전하려는 것인지 파악이 어려운 영상도 많더라고요. 굉장한 개성이 느껴졌는데, 이런 브이로그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인지 궁금해요.
영화를 찍다 보니 굳어지는 게 심한 것 같아서 최근에 브이로그를 시작했어요. 원래는 ‘영화 같은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거든요. 딱 봐도 ‘아, 이게 영화지’ 싶은 것들이요. 그러다 보니 영화가 도대체 뭔데? 하는 질문이 들더라고요. 그냥 영상이 나에게 표현의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영화는 영화적으로 찍어보자는 마음이었다면, 브이로그는 사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영화는 콘티가 있고 거기에 갇힌 느낌이 드는 데다가, 콘티에 무조건적으로 맞추다 보니 오히려 놓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좀 유연한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한편으론 보는 사람을 놀리고 싶은 것도 같아요. 제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이에요. 시나리오를 쓸 때도 ‘나는 사과를 먹는다’라는 문장이 있으면‘언제’, ‘왜’, ‘어떻게’ 등 따라붙는 질문 중에서 가장 생소한 것을 찾거든요. ‘’나는 사과를 먹는다” – “어떻게 사과를 먹어?”처럼 제일 낯선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걸 찾아요. ‘이거 다음에 이거 넣을 건데 어때? 몰랐지?’ 이런 포인트를 주고 싶었어요.
Q. 그런 면에서 전 충분히 놀림당한 것 같은데요!
그렇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웃음)

Q. 신촌에서 영화 활동을 하고 계신 윤선 님에게 신촌은 어떤 느낌이나 감상을 주는 곳인지 궁금해요.
신촌은 영화를 굉장히 많이 찍었던 곳이라, 신촌 곳곳의 영화 로케에 대한 향수에 되게 젖는 것 같아요. 여기는 어떤 영화, 여기는 어떤 영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에겐 ‘영화가 잘 묻어있는 공간’이에요. 영화를 찍으면 그때의 그 장소가 기록되잖아요. 그런데 신촌도 매번 건물이나 분위기가 바뀌고, 영화를 찍을 때와 다른 시간대에 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신촌에 이런 분위기도 있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돼요. 또, 영화를 찍으면서의 추억도 많이 떠오르는 장소이죠.
Q. 자정에도 작업(창작 활동)을 하시는지요.
작업을 하죠. 그 시간에 예민해지는 것도 있겠지만, 학교 갔다 와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때쯤이면 12시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곤란할 때가 많아요. 새벽이 쉽게 오고, 한번 몰입하면 끝장을 봐야 하니까 아침 해도 종종 보고… 근데 그러면 낮에 힘들어지니까요. (웃음)

21년 겨울, 단편영화 <한 시> 촬영지의 이윤선 감독
Q. 그럼 자정, 혹은 0시, 혹은 24시를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까요?
오늘과 내일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되는 시간인 것 같아요.
Q. 지금 자신의 인생은 24시 중 몇 시쯤 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24시에 있다고 할래요. 오늘 내일을 가장 열심히 불안하게 고민하고 있을 것 같거든요.

24시를 맞이하는 태도는 제각각이다. 우리는 저마다 창작자가 되어 작업을 하고 꿈을 꾸고 손을 뻗어 불안한 미래를 그려본다. 24시, 어쩌면 아득할 만치 막막하게 느껴지는 이 시간의 또 다른 이름은 0시.
0이라는 숫자는 굴리지 않아도 알을 닮았다. 0시이자 동시에 24시인 자정, 깨어지지 않은 시간. 그 안에 내재된 잠재력은 무한하다. 깊은 잠과 끝을 고민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사실은 얼마든지 새로이 깨어나 시작할 수 있는 – 다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가능성의 시간인 것이다.
다시금 활기를 찾아가는 신촌이다. 그 속엔 팬데믹 속에 많은 좌절을 겪었으나 주저앉지 않고 여러 갈래의 구불대는 곡선을 걸었던 너 나 우리, 또 그들 저들이 있다. 그 기간 동안 열심히 각자의 자정을 괴롭히고 벽을 쪼아댔을 부리가 비로소, 천천히, 우릴 조여오던 세계의 균열을 불러오고 있다. 오늘 자정엔 우리 모두 가득한 열망을 지니고 0의 세계를 부수어 보자.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interviewee

이윤선 (@leesun_x)
YOUTUBE “영화_이윤선”
<나의 선한 친구에게> 감상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DDuc-5YrSZs&t=593s
공감(_,感) 프로젝트, <청년>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0DUD-WIxGHo
진심어린 답변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윤선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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