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미정, 노을이 질 때 만나!
어떠한 조각의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코스모스가 그렇고, 아침의 물 향이 그렇고, 저녁 약속 전 약간의 설렘과 조금의 배고픔이 그렇다. 길을 걷다 길냥이와 만난다거나 당신과 손을 잡았다 놓기까지의 모든 순간. 그리고 가을의 노을이 그렇다. 노을이 지는 그 한 시간 동안, 시간은 부피를 입는다. 색과 온도, 촉감과 향이라는 선들이 만들어내는 부피. 누구에게는 흘러가는 점과 같은 시간이 어떤 이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무한한 차원의 시간이 되는 이유다.

“매일 산책해랑
가을 금방 가부림”
– 출처: 엄마 발신 카톡
책을 가까스로 혼자 읽을락 말락 할 수 있게 될 무렵의 동화들은 특히 더 기억에 남는다. 아직은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이 훨씬 많았을 무렵, 내가 아는 세상의 문법 그 이상의 세계를 읽고 마주하고,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상과 곱씹음이 필요했을지. 그래서인지 그 무렵의 책들은 온통 익숙함 덩어리인 지금의 나에게도 무언가를 자꾸만 상상하게 하고 찾아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마도 – 단순하고 뻔하지만 결국엔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 그리고 어른이 됐을 때쯤에는 되려 잊혀 희미해지는 가치들. 그런 씨앗 같은 의미들이 예쁘게 포장되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결국엔 이 책을 말하고 싶어서 꺼낸 얘기다. 우리 삼 남매의 올타임 최애 동화책 – ‘땅거미 질 때 만나! (느낌표 필수!)’. 어둠이 오면 사라지는 낮 유령과 동이 트면 도망가는 밤 유령이 우연하게 땅거미가 질 때 만나는, 그래서 서로를 알게 되는 이야기.
자신의 인생 평생을 통틀어 이 세계에 유령은 자기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던 둘은 어느 날 서로를 발견한다. 여느 때처럼 사라지려는, 그리고 도망치려는 찰나에. 그 찰나에 왜인지 같은 공간에 존재해버린 것이다. 땅거미가 질 때 말이다. 처음 본 서로는 모든 것이 반대면 반대였지 닮은 점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그렇기에 반갑기보다는 두려운 존재임이 당연했다. 그러나 차츰 외형적 다름에서 오는 두려움과 경계심을 극복하고 나서는, 서로에게 서로는 땅거미가 질 때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매일 한 조각의 시간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동시에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그런 사이.
비슷한 점은 없어도 같이 구경할 물그림자는 있으니까.
땅거미가 질 때 – 해가 저물고, 달이 보이는 그 사이의 시간은 분명한 오묘함을 지닌다. 그 오묘함은 아마도 변화가 주는 연쇄적 다양성에서 오는 것일 테고. 하늘은 매 분마다 다른 색을 입고, 공기는 매 초마다 다른 온도를 지니게 되는 시간. 그래서 시간은 곧 공간이 되고, 공간은 수많은 그림이 되는 그런 시간 말이다. 그 수많은 차원 아래 서 있으면 나는 종종 당신이 보고싶어지고는 한다. 이 모든 예쁨과 놀라움을 나누고 싶어서. 함께 무엇이 아름답고 또 무엇이 신기한지 조잘조잘 얘기하고 싶어져서. 같이 녹진히 눌러앉아 맛있는 걸 먹고 또 이렇다 할 가치는 없더라도 무해한 대화를 하고 싶어서.

빛과 어둠이 노랑과 파랑의 형상을 띨 때,
그리고 서로 다른 것들이 아름답게 만나 부딪힐 때.
갑자기 왔다가 홀연히 떠날 가을의 저녁 6시. 그 시간이 너무 아깝고 예뻐서, 그래서 당신과 홀연히 시간을 나누고 싶은 곳이 생겼다. 노을과 땅거미를 딱 반씩 닮은 곳. 적당히 눅진하고 적당히 퐁신거리는 곳. 미정이다.

놀랍도록 한적한 연희 골목의 끝자락에.
미정(未定),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한자 읽기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사실은 미정(味停)이라는 걸 세 번째 방문까지도 알지 못했다. 맛 미에 머무를 정. 뜻을 알고 나니 픽 웃음이 나왔다. 맛있고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면 게임 끝이지 뭐야, 하고. 음식과 술을 내어주는 공간에서 그 두 가지를 충족하면 말 다 한 것 아닌가. 간단해 보이지만 둘 다 갖춘 공간을 찾기란 꽤나 어렵기에 더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의미를 알기 전 내가 멋대로 느끼고 좋아했던 미정의 모습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어서, 그래서 웃음이 났다. 미정. 이름, 참 잘 지으셨네.

안녕하세요, 이름 값 하는 미정입니다.
때는 어느 와인을 마시고 싶었던 일요일. 신촌의 모든 (물론 내 마음에 드는) 와인 바가 거짓말처럼 휴무를 선언한 날이었다. 더 이상은 아는 데가 없는데, 하고 우울하게 검색창을 켰던 것 같다. 그 날 나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조금은 덜 의심하고 아주 조금 더 용기를 냈다. 그렇게 그 날, 미정을 만났다.
첫 기억은 목소리였다. 여기마저 닫거나 자리가 없으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극 J의 기질이 발동해버린 나는 사장님의 핸드폰으로 추정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혹시 6시 반쯤 1명도 예약 가능한가요?”
“아,
그냥 오세요. 아무때나.”
끝. 아니 사장님. 6시쯤 갑자기 사람이 엄청 많이 와서 제 자리 없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 여기 아니면 진짜 갈 데 없단 말이에요 엉엉.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때 한 걱정이, 아니 그 때 한 질문 자체가 웃기긴 했다. 사장님은 혼자서 웨이팅할까봐 두려움에 떨며 전화한 이 포텐셜 손님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웃기셨을까. 아니 근데! 그 당시의 나는 꽤나 심각했단 말이다. 사실 그냥 대충 예약 받는 흉내라도 내셨을 법도 한데. 무심하지만 강단 있는 성격과 예의있지만 살갑지는 않은 말씨. 그게 미정, 그리고 사장님의 첫 인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와는 딱 봐도 너무나 다른 성격일 것 같은 까닭에 퍽 두려우면서도 내심 기대가 되는 방문이자 만남이었던. 물론 20초도 채 안됐던 통화로 미루어 짐작한 점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내 오만과 편견으로 얼룩진 판단이라는 점은 절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지금은 인스타 친구.
물론 맞팔입니다^^
나는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시는 가게들을 유독 좋아한다. 공간과 사람이 같은 향과 온도와 밀도를 지니게 되는 걸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런 가게를 여러 번 들르다 보면 사장님의 성격을 가게 구석구석에서 발견하게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오는데, 그런 순간들은 언제나 묘한 감동을 선사하곤 한다. 한 사람이 한 공간과 오롯이 함께한 시간들이 피부로 느껴져서,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안에 든 노력과 정성이 눈에 선해서. 텅 빈 공터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의 성격이 온전히 묻어나는 모퉁이들을 가지기까지, 그 공간과 나눈 시간들이 참 소중해서. 그런 가치를 지닌 시간들을 내가 조금이라도 엿보고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우쭐해져서, 그러다가도 가끔은 한없이 부러워져서.
미정은 신기하게도 특히 더 사장님과 닮아 있다. 아니,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아직까지도 사장님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어서 약간은 염치 없는 말이지만, 처음 미정을 봤을 때부터 첫눈에 느껴진 닮음이다.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아 open/closed 표시가 없으면 미어캣처럼 가게 안을 기웃기웃거리게 될 정도의 낮은 조도와, 그와는 상반되게 들어가자마자 훅 감겨오는 노란색 온기. 그리고 그 빛과 온도를 아우르는 목재의 질감과 무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따뜻한 묵직함’ 정도가 되겠다. 그런 미정의 공간감은 꼭 사장님의 첫 인상과 어딘가 묘하게 겹쳐 보였는데 – 그건 아마도 인사가 요란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나에게 말을 걸고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안달이 난 게 아닌, 그냥 가만히 존재해주는 공간. 말은 별로 없지만 그 적은 말들 사이에 적당한 관심과 필요한 무관심을 담아 담백하게 건네는 사장님. 모두가 호들갑을 떨 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 말 하지 않아주는 사람이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지 않은가. 나에게 미정과 미정의 모든 것들은 아마도 그런 사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맨날 다 못 먹고 엄청 많이 남기고 간다고 툴툴대시면서도 꼭 조용히 후식은 밀어놓고 가시는,
그런 사장님식 표현
따뜻한 사람이 건네는 조용한 위로처럼, 미정에게는 편안함이 있다. 그리고 그 편안함이 주는 포용력이 있다. 미정에 처음 간 날 가장 신기하게 봤던 건, 다름 아닌 바 테이블 가장 끄트머리에 사장님의 전용 좌석이 있다는 점이었다. 노트북과 잡동사니 몇 개가 놓여 있어서 혼자 온 손님이 잠시 화장실을 가셨나, 했는데 별안간 사장님이 앉으셔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보통 사장님의 전용 좌석은 셋 중 하나다. 없거나, 수시로 바뀌거나, 숨겨져있거나. 그런데 이곳엔 사장님의 전용 좌석이 있는 건 물론이고 항상 그 자리 그대로이며, 잘 보이는 곳에 드러나 있다는 거다(!). 능숙한 뒷모습으로 솩솩 요리를 해서 내어주신 뒤에, 딱히 할 일이 없으시면 사장님은 전용 좌석에 앉아 시간을 보내시는 것 같았다.
바 자리에 사장님과 같이(옆 자리지만 거리는 꽤 있었다) 앉아서 나는 와인을 마시고 사장님은 노트북을 하시는데, 그게 또 묘한 편안함을 줘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내 맘대로, 눈치보지 않고 내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사장님이 보이는 곳에 계셔서 언제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여쭤볼 수 있다는 마음에 편안했고, 또 동시에 사장님이 불편하게 서 계시지 않아서 편안했다. 내 행동 하나하나를 다 신경쓰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전해져 편안했고, 그렇다고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지 않아 편안했다. 그래서 나는 사장님 옆에 앉아 글도 썼다가, 갑자기 나혼자산다도 봤다가, 노래 들으며 멍도 때렸다가, 책도 읽었다가,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었다. 밀착된 거리나 과도한 관심에서 오는 일종의 불쾌감에 대한 걱정 없이 향할 수 있는 공간. 미정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그래서 가벼웠다.

본격 각자도생 프로젝트
편안함의 종류에는 다양한 것이 있다. 이를 테면 스스럼 없는 편안함, 혹은 기댈 수 있는 편안함, 또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그런 종류의 편안함. 그렇다면 미정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편안함일까. 곰곰이 떠올려 보면, 미정은 언제나 부담이 없는 곳이었다. 부담이 없는 데에서 오는 편안함. 혼자서도, 사랑하는 여럿과 함께 오기도 부담스럽지 않은 곳. 어떤 술을 마시고 싶던 간에 큰 제약 없이 올 수 있는 곳. 가고 싶은 날 언제든 요일을 체크하고 가지 않아도 되는 곳. 좋은 자리와 조금 앉기 싫은 자리가 특별히 존재하지 않아서 자리만 있다면 아무데나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곳. 또 아까도 말했지만, 바 테이블에 앉더라도 딱히 사장님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 그런 종류의 편안함.
모든 장소에는 장단점이 있지 않은가. 음식은 너무 맛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술을 팔지 않는다든지, 모든 것이 좋은데 의자가 딱딱하다든지, 갑자기 가고는 싶은데 혼자 가기는 좀 부담스럽다든지. 그러나 미정은, 미정으로 향하기에 약간은 부담이 될 수 있는 걸림돌들이 이미 잘 치워져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미정은 어떤 날, 어떤 기분, 어떤 사람과만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언제나 가고 싶으면, 딱 하나 – 가기만 하면 되는 곳이 된다. 그렇기에 미정을 갈 수 있는 조건은 타이밍도, 분위기도, 오늘의 주종도 아닌 단지 ‘가는 것’이 되는 것이고 말이다.

술집의 가장 큰 부담 중 하나, 화장실의 안 밖 유무.
역시 안에 있다.
내가 미정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 그것은 사실 부끄럽지만 당신에게 있다. 처음 미정을 만난 것은 혼자였지만, 혼자 앉아서 보낸 두어 시간 동안 나는 정말로 그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여기 정말 좋아할텐데, 이거 정말 먹여봐야 되는데, 하고. 단절과 고립의 몇 해 동안 너의 취향이 많이 변했더라도, 그치. 여긴 좋아할거야, 하는 확신으로. 그렇게 나는 한참동안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렸다. 노을이 지는, 그리고 희미하게 배꼽시계가 울리는 이 시간에 그대가 좋아할 공간에서 함께 맛있지 맛있다 하며 먹고 마시고, 또 이내 조금은 함께 행복해지고 싶어서.
내가 이토록 미정에 확신을 가지는 이유는 정말로 단순하다. 미정(味停)의 미(味), 바로 맛이다. 생각해보니 역순으로 돌아온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머무를 정(停)에 대해서만 잔뜩 이야기한 것 같다. 논문이었으면 절대 용납 불가한 부분.),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고 하지 않는가(얼렁뚱땅). 내가 미정에서 당신을 떠올리게 된 가장 크고 맛있는 촉매제. 미정의 음식이다.

먹고 싶은 거, 마시고 싶은 거 뭐든 말해 다 해줄게.
???: 전 지갑을 열게요.
음식에 있어서 나는 안전한 선택을 우선으로 두는 타입이다. 무슨 말이냐면 – 한번 맛있는 메뉴를 발견하고 나면 같은 식당에서 새로운 메뉴를 잘 선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그만 위장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한 끼에 큰 리스크를 걸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경험으로 이미 맛있음이 보장된 메뉴를 두고 다른 선택을 했을 때 메뉴 선정 실패에서 오는 아쉬움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도전하면서 메뉴판에 숨겨진 맛있는 음식들을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26년 인생을 바탕으로 한 귀납적 추론에 의하면… 고심해서 시킨 첫 메뉴가 대부분 제일 맛있다(!). 다시 말하면 ‘처음 먹어 본 메뉴의 황홀함을 잊지 못해 다시 방문한 식당에서의 다른 메뉴’에 많이 데여 본 자의 이유 있는 소심함이랄까나.
미정에도 물론 가장 유명한 메뉴가 존재한다. 조금이라도 후기를 찾아보고 온 사람이라면 으레 주문하게 될 그런 메뉴. 그리고 나도 당연히, 처음 방문 때 먹은 미정의 첫 음식, 소꼬리찜 라구 파스타다.

라구의 혁명.
전 기꺼이 오른팔이 되겠습니다.
이미 사진만으로 와인 반 병쯤은 거뜬히 비울 수 있을 것 같은 미친 비주얼의 소유자. 하지만 무슨 감탄사든 간에 일단은 라구 소스를 잘 섞어 한 입 가득 먹기 전까진 아껴두기로 하자. 깊고 진하지만 너무 절여지지 않아 오히려 신선한 느낌의 라구와 납작한 면의 식감, 그리고 푸짐하게 숭덩숭덩 곁들여진 부드러운 소꼬리의 조합이 너무 완벽해서 한 입 한 입을 귀하게 먹었던. 입이 짧고 한 가지 음식에 매우 쉽게 질리는 나도 다른 게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신기하게 물리지 않는 맛이었다. 이번에는 면만, 이번에는 소꼬리만, 이번에는 소꼬리를 큼지막하게 잘라 면에 올려, 또 이번에는 바삭하게 구워진 바게트에 소스를 발라서… 이렇게 먹다 보니 어느새 와인 한 병이 사라져 있었던 건 비밀이다.
소꼬리 라구를 먹고 생각했다. 역시 부동의 첫메뉴제일맛있음의 법칙이라고. 당신과 함께 온다면 꼭 이 메뉴를 먹여야겠네, 하고. 그러나 역시나 섣불렀고 언제나처럼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던 걸까. 미정의 두 번 째 방문에서 먹은 메뉴는 나의 어딘가 허술한 경험적 이론에 보기 좋게 예외의 펀치를 선사한다.

아니 사장님. 진짜 진지하게 뭐하시는 분이세요.
그냥 주먹도 아닌 핵주먹의 주인공은 바로 갯가재 비스큐 소스와 파케리. 파케리 면을 한 입 잘라서 치즈와 함께 먹는 순간 다짐했다. 무조건 미정의 모든 메뉴를 다 먹어볼 때까지 이곳에 올 거라고. 메뉴 선정에 보수적인 성향 따위 집어치우고, 미정 한정 무한한 탐험가가 되어보겠다고. 순전히 맛이 주는 감동이 이렇게 클 수 있었나, 한참 곱씹게 될 정도로 황홀한 맛이었다. 아직도 그 첫 입의 순간이 찌르르- 기억날 만큼.
두꺼운 면일수록 씹다 보면 어느새부터는 그저 밀가루 맛만 느껴지기 마련인데,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면에 진하게 달라붙어 있는 비스큐 소스, 그리고 눅진한 느낌의 소스와 미쳐버린 궁합을 자랑하는 상큼한 토마토와 치즈. 이 파스타도 마찬가지로 이번엔 이렇게, 다음엔 저렇게 – 어떻게 먹을까 궁리하며 먹는 재미가 있다. 대체적으로 미정의 음식들이 그렇다. 하나의 큰 접시에 나오지만 계속 같은 음식을 먹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 작은 디테일들이 계속해서 배치되어 있어 자꾸만 다른 한 입을 창조하고 싶은 그런 음식. ‘난 이번에 얘랑 얘를 같이 집어서 먹어볼래’ 말하고 ‘넌 어떻게 먹는 게 제일 맛있어?’ 물어보고 싶은 그런.
용맹한 개척자의 정신으로 지금까지 만나 온 미정의 메뉴들은 하나같이 모두, 정말 맛있었다. 정석의 맛을 구현하지만 평범하거나 따분하지 않고, 재료가 풍부하고 다채롭지만 각자의 맛을 잘 간직해 드러내는. 맛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싶다가도 항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킥에 헉, 놀라게 만드는 한 접시. 매력적인 이들이 그러하듯, 미정의 음식에는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가 있다.

오늘 가면 뭘 먹지.
안녕이라는 말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안녕을 말하기에 이는 종종 별 알맹이 없는 습관성 언어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 안녕에는 분명 힘이 있다. 그 안녕이 짧은 목례를 곁들인 눈짓이든, 출근하며 외치는 활기찬 안녕하세요! 든, 단톡방에 보내는 대충 생긴 이모티콘이든, 멀리서부터 달려가 전하는 찐한 포옹이든, 안녕은 그날의 너와 나를 이어주는 첫 매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안녕은 힘이 있다. 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나와 너로 시작한 하루가 잠시 동안 우리가 되게 하는 주문과 같은 것이기에.
미정의 안녕은 그래서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이렇게 맛있는 안녕은 또 처음이라서.

안녕!
미정의 안녕은 이런 모양을 띤다. 보들보들하고 촉촉한, 또 다채롭고 풍미 가득한 모양. 매 방문 때마다 미정과 나는 이 프리타타로 처음 이어진다. 그날의 메뉴와 술을 주문한 다음 조금 기다리다 보면 사장님이 별안간 이 웰컴 푸드를 슥 내미시는데, 안녕이라는 뜻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술과 함께 먹고 있을 수 있도록 그냥 만들어주시는 프리타타. (아, 프리타타는 이탈리아식 오믈렛 요리라고 보면 된다!) 프레첼이나 올리브는 받아 봤어도 세상에, 프리타타라니. 심지어 돈을 억지로 내고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어. (가끔은 이 프리타타가 생각나서 미정에 가기도…) 아무튼. 그 인사가 너무 정성스럽고 예뻐서, 그리 친하지도 않은 나한테 건네는 안녕이 너무 무해해서, 미정에 가면 늘 그렇게 무장해제가 되곤 한다. 그 때 아마 꽤 한참 동안 생각했던 것 같다. 아, 안녕은 분명 힘이 있구나, 하고.

나는 너에게 지금까지 어떤 안녕을 건네왔을까.
너와 나에 대해 생각하면 나는 가끔 두려워진다. 내 무지가 당신을 해칠까봐. 내 오만이 당신을 깎아내릴까봐. 내 편견이 당신을 가릴까봐. 나의 얄팍한 의도가 굴절되어 그대를 찌를까봐. 나의 안녕이, 그대를 힘들게 하는 모양이었을까봐. 그리고 나는 늘 두렵다. 내가 당신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비추어질까봐. 나의 작은 일부가 당신에게는 전부로 해석될까봐. 그리하여 당신이 나를 간편히 오해할까봐. 사실, 가끔이 아니라 늘 두려웠겠지.
그렇기에 나는 결국 의심한다. 나의 행동과 당신의 의도에 대해. 그리고 어느새 불안해진다. 혹여나 내가 당신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해 영원한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하고. 그리고 나도 결코 이해받을 수 없는 건 아닐까, 하고. 그러나 나는 동시에 뼈저리게 안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당신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을. 그래서 당신을 만나는 모든 시간 동안 어떨 때는 잔잔한, 어떨 때는 밀물 같은 상처를 줄 것이고, 나도 기어코 언젠가는 그 상처를 돌려 받을 것임을.
그러니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에는 얼마나 큰 리스크가 따르는 것일까 생각한다. 의심과 불안과 상처와 자기방어, 그리고 죄책 – 그리고 또 다시 의심이 따르겠지.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당신과 보내는 시간이란 그렇다. 그 모든 리스크를 걸고도 도전하는 것. 당신을 이해하려는 도전. 그와 함께 나의 영원한 무지를 인정하는 과정. 그리고 혹시나 땅거미가 질 무렵, 당신과 나는 기적적으로 만나 무해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걸어보는 운과 같은 것. 너와 나의 세상이 아주 조금이라도 겹쳐지는 그 순간의 노을을 그려보는 것.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무채색이기도, 유채색이기도 하겠지.
그래서 나는 당신과 미정에 오고 싶다. 미정과 사장님이 만나 가꾸어 놓은 이 시간들 위에 앉아 있노라면 당신과도 함께 노을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지로 시작되어 무지로 끝나는 관계일지라도 그 시간만큼은 서로의 곁에서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또 가끔은 그로 인해 적당한 온도로 같이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당신과 나의 여섯시부터 여덟시 언저리까지의 시간을 겹쳐서 예쁘게 칠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있잖아, 낮 유령과 밤 유령은 사실 너와 내가 아닐까.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은 분명 여러 차원에 걸쳐 나누어져 있지만 – 그래서 당연하게도 두렵고 막연하지만, 너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언젠가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된다. 너와 내가 존재하는 한, 우리가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 어떠한 조각의 시간에. 아침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게 돌연히 울적해질 때. 무작정 걷고 싶은 여름 밤에. 배는 고픈데 입맛이 없을 때. 그리고 땅거미 혹은 노을이 질 때. 그러니 우리는, 너와 나는, 웃으며 헤어질 수 있다. 다음 땅거미 질 때 만나! 하고. (물론 이때도 느낌표는 필수다.)

그렇지만 분명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알아.
시간을 나눈다는 말은 참 신기하다. 시간은 분명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나누는 걸까. 눈빛과 말들, 위로와 다독임, 혹은 두께 있는 논리들을 나누는 것이려나. 아니면 약간의 불편함과 슬픈 기운, 혹은 안타까운 소식을 나누는 것일 수도. 그렇게 생각하면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이 모든 상호작용을 통해 기억을 나누어 갖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너의 기억과 나의 기억. 함께 존재했던 조각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반쪽의 기억만을 가지고 돌아갈 수 밖에는 없으니까. 내가 바라본 너와 나를 둘러싼 차원은 오로지 나만 기억할 수 있겠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 기억으로 인해 나는 너의 세계를 더욱 이해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세계로부터 한 발짝 멀어지거나 혹은 영원히 도망치고 싶어질 수도 있을 거야.
시간을 저장하는 기억은 나에게는 너를, 너에게는 나라는 사람을 소조하는 점토가 된다. 인간은 좋으나 싫으나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존재이기에. 너와 각자 나누어 가졌던 그 기억은 다음 번의 만남을 기약해주기도 할 테지만, 되려 그러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혹여 당신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대와 함께 했던 순간의 조각들은 분명 나에게 다른 하나의 미완성의 세계를 선물했다고. 그 작은 조각의 세계를 통해 나는 조금 더 넓고 깊어질 수 있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갈망한다. 그대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기를. 당신과 더욱 많은 부피의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를. 그리고 그 모든 리스크를 짊어지고서라도, 너라는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내가 되기를.
추신. 초가을의 여섯시 즈음에 당신을 떠올렸는데,
정말로 금방 겨울이 왔네요.
참.
내가 보고싶다고 말했던가요,

미정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가길 53
0507-1362-4454
매일 17:00 –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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