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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3 · 07 · 31

394. 허지원, 디자이너 지구

Editor 왕 잔치

잔치의 푸른별, 디자이너 지구

 

지구 님,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올해 초에 잔치 디자인 팀에 새로 합류하게 된 이화여대 동양화 주전공, 디자인학부 부전공 19학번 허지원입니다.

 

에디터명 ‘지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 말장난에서 시작되었어요. 제 이름인 지’원’ 에서 평면인 원이 입체가 되면 ‘구’ 가 되니까 지’구’ 라고 하자, 하는 비하인드가 있습니다. 에디터명은 곧 저의 또다른 이름인데 ‘원’이 ‘구’가 되면서, 제가 나보다 훨씬 큰 지구가 되는 게 의미있게 느껴졌달까.

다른 SNS 계정 같은 곳에서는 저희 어머니 성인 ‘이’를 붙여서 ‘이지구’로 정말 이름처럼 사용하는데 이것도 내가 사는 ‘이’! 지구라는 의미로 느껴져서 좋아요. 내가 사는 별, 내 세계 자체를 의미하는 거니까 딱 내 이름이잖아요.

 

지금까지 본전공에 복수전공까지 해내느라 학교 생활이 바빴겠어요. 지난 학기에는 휴학을 하고 잔치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휴학에 대한 소감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휴학하면서 동아리 2개를 했는데, 두 개 모두 널널한 동아리가 아니었어요. 처음에 두 개쯤 하면 괜찮겠지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생각보다 할 게 많더라고요. 주변에서도 너 왜 이렇게 안 놀고 바쁘게 사냐고 하고. 그렇지만 그 동아리 활동이 다 재밌고 유익했어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 할수록 잘한 선택이었다고 느껴져서 좋았어요. 휴학하는 동안 너무 나태해져서 아무것도 안 할까봐 걱정이 컸는데, 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생각보다 아웃풋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 거기서 또 좋은 잘 맞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더 좋았어요. 그래서, 지난 한 학기는 만족스러웠어요. 엄청 힘들지 않으면서도 할 건 하면서 잘 지낸 느낌!

 

언제나 잔치의 발행물을 멋지게 표현해 주시는 디자인 팀!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팀에서는 어떤 업무가 이루어지나요?

디자인 팀의 제일 기본적인 업무는 카드뉴스 제작입니다. 플레이스팀, 아트팀, 피플팀 각각 글이 발행되는 요일이 다르잖아요. 디자인 팀에서 각자 한 팀씩 맡아서, 글이 올라오는 날부터 작업을 시작해요. 회의 있는 시간 전까지 완성해서 구글 닥스에 올려놓으면 됩니다. 작업은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이루어져요. 디자이너가 각 글을 읽어보고 변형하고 싶은 건 기본 틀에서 살짝 변형하는 식이에요. 카드뉴스에 싣고 싶은 사진을 셀렉하는 것도 완전 자유입니다. 자율성이 많이 보장되는 작업이에요.

물론 처음 시작하면서 기반을 다질 때는 카드뉴스 기본틀을 만들고, 담당 팀을 정하는 과정에서 공동의 의견 조율이 필요했지만 그 이후에는 온전히 각자의 기량을 펼쳐보라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에디터 분들 글 쓰는 거랑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잔치 활동 전에도 카드뉴스 제작 경험이 있었나요?

아니요. 카드뉴스도 종류가 다양하잖아요.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기사 카드뉴스라든가. 혹은 홍보성 카뉴. 그리고 지금 잔치에서 하는 것 같은 매거진 타입 카드뉴스가 있고. 콘텐츠의 유형마다 카드뉴스가 다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신문사 발행 정보성 카뉴들과는 달리, 잔치는 에디터들의 사적인 내용들도 많이 담겨있다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디자인의 자율성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디자이너에게 해석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있고. 또 에디터마다 개성이 다르니까 또 다르게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디자인이 고정된 틀을 벗어나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느낌. 그래서 생각보다 더 재밌었어요.

 

자율성이 있는 작업을 선호하시나요?

자율성이 너무 크면 그 안에서 헤매기도 해요. 잔치는 딱 내가 재미를 느낄 만한 자율성의 정도를 잘 지켜준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좋았달까. 

저는 플레이스팀을 담당했는데 장소가 가진 분위기도 매번 크게 달랐고 그 글을 쓴 에디터들의 느낌도 달랐어요. 고정된 틀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부분이 많진 않고, 색이나 폰트 하나씩을 바꾸는 등의 사소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는 게 재밌었어요. 

 

글을 읽을 때부터 디자인을 생각하면서 읽으시겠어요.

네, 완전히요. 

읽을 때부터 ‘이거 어떻게 만들까’를 생각하면서 읽어요. 이걸 직업병이라고 할지, 전공병이라고 할지. 원래부터 무엇이든 생각을 하면 시각적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글은 이런 색감이 어울리겠다’. ‘이 글은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있으니까 손글씨로 표현해도 괜찮겠다’. 

글의 무드가 이미지적으로 잘 상상되는 글이 재밌어요.

 

시각적 표현을 위해서 글의 분위기까지 완전히 읽어내야 하네요. 글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높아야겠어요. 그 과정을 이번 23-1 학기 작업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담당한 플레이스팀 에디터 네 분 기준으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들 각자만의 개성이 있으셨거든요.

다람 에디터 경우에는 ‘러블리함’. 예쁜 색감의 사진으로 올려주시고, 글에서도 아기자기한 표현이 많고. 딱 느껴지는 이미지로 정립이 돼 있는 느낌. 그래서 카드뉴스 만들 때도 그런 무드의 색깔을 많이 사용했고, 귀여운 요소나 컬러포인트를 넣었어요.

별 에디터는 글에서 장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요. 타코몽도 블랙번즈도 정말 좋아해서 소개해주는 느낌이라 내용이 풍부했어요. 그만큼 에디터의 추억이 여기저기 녹아있어서 느껴지는 애틋함이 있었구요. 에디터가 꾹꾹 눌러담은 내용들을 카뉴에도 최대한 실어주고 싶었습니다.

개미 에디터 글은, 되게 시원시원한데 통찰력이 있는 느낌. ‘마을로써의 신촌’ 같은 글이 되게 신기했어요. 생각하지 못했던 신촌의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어서 카드뉴스 할 때도 정겨운 느낌을 표현하려 했어요. 사진을 너무 잘 찍어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따뜻한 사진을 많이 셀렉하려고 했어요.

로스 에디터는 누구나 느끼겠지만, 정말 ‘청춘’ 같았어요. 정말 신촌을 잘 즐기시는 듯한. 

지구 디자이너의 첫 카드뉴스 작업물, 로스 에디터의 <대운동장>

제 첫 카드뉴스가 <대운동장>이었거든요. 그 때의 임팩트가 컸어요. 처음 플레이스팀 들어왔을 땐 식당, 카페를 작업할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첫 카뉴가, ‘대운동장?’ 상상도 못한 정체였기 때문에…

아, 진짜 ‘신촌’이다. 청춘의 느낌 그 안에서 뛰어다니는 사람들. 축구하는 사람들 굴러다니는 공들과 그런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되게 정말 청춘이 가득한 신촌. 그게 첫인상이었어서, 저에게 로스 에디터는 ‘청춘’의 이미지로 남은 느낌이에요.

 

플레이스팀과 유독 정 들었겠어요.

맞아요, 내적친밀감이 있어요. 글로 맨날 본 사람들! 

 

작업물에서 나타나는 지구 디자이너만의 스타일이 있을지?

카드뉴스는 웹진 글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글의 흐름을 어느정도 담아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카드뉴스는 최대 10장까지라 내용을 다 넣기는 어렵지만 그 안에 기승전결이 갖춰져 있었으면 했죠.

인트로, 본문, 아웃트로의 구성. 웹진 글 내용의 비율을 어느정도 맞춰서 가져오고 싶었어요. 인스타에서 보는 게 접근성이 더 좋으니까, 사람들이 카드뉴스를 먼저 보고, 더 알고 싶어서 웹진으로 들어가게끔 유도해야 하니까요. 글의 내용을 다 보여주지는 않으면서도 충분히 맛 보기는 할 수 있도록 해 줘야하는. 어떻게 보면 전략적인 면이 있는 작업이죠?

글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키워드들은 카드뉴스에서도 꼭 살리려고 했고, 앞서 말한 순서 상의 흐름을 신경썼어요.

그리고, 가끔 에디터 님들이 글에 특이한 요소를 하나씩 넣어줄 때가 있단 말이죠. 그런 건 꼭 넣어주면 재밌겠다 싶어요. 다람 에디터가 글에서, 메뉴 이름에 색깔로 하이라이트를 넣은 적 있었는데 그게 사진 색감이랑 잘 맞았어요. 그런 거 해주시면 카뉴에도 그대로 넣죠. 블랙번즈도 반씩 하이라이팅하는 요소, 흰검 배경 교차해주신 부분 넣어야겠다 싶었어요. 에디터 분들이 신경써주신 점을 최대한 넣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어요. 그걸 찾아내고 싶었고요.

카페 ‘블랙번즈’를 표현한 별 에디터의 202. 블랙번즈, 그리고 그 글을 온전히 담아낸 지구 디자이너의 카드뉴스

 

말로 표현하니 장황한데, 실제로 작업할 때는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한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들이 스쳐가요.

 

체화되신 거네요.

잔치에 녹아들어버렸어요.

잔며들었다.

망했다.

네? 

학교에서 작업 중인 지구 디자이너의 모습

 

처음 잔치 디자인 팀에 들어올 때 어떤 생각이었나요?

 

카드뉴스/실물잡지 제작 작업한다고는 알고 들어왔어요. 원래부터 편집디자인에 관심이 있었어서 실물잡지 작업이 끌렸고, 카드뉴스 같은 경우에는 요즘 필요로 하는 곳이 워낙 많으니 한번쯤 제대로 해 보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주요한 두 업무 모두 저에게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와서 작업을 할 때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재밌기는 했죠. 잔치가 가지는 특성이라고 해야 될까요. 에디터들이 다 제 또래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랑 같이 동아리를 꾸려가는 입장이니까. 업무적으로 ‘이 사람은 에디터고, 난 디자이너’. 이런 딱딱한 관계가 아니라, ‘내 친구가 글 써준대. 내가 디자인할게’. 이런 느낌. 그래서 좀 더 재밌었어요. 우리 열심히 해보자, 으쌰으쌰! 이런 분위기였으니까. 그래서 열심히 해서 진짜 괜찮은 결과물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지구 디자이너의 생일날 달성한 잔치 인스타그램 계정 500 팔로워. 뼛속까지 잔며든 지구 디자이너는 이를 선물 같았다고 표현했다.

 

잔치에서의 활동은 지구 디자이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제 디자인 결과물을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원래는 교내에서 활동하면서 같이 미술을 하는 사람, 혹은 교수님에게 보여드렸죠. 잔치에 들어오면서 디자인 비전공자에게, 그 사람들의 글을 재해석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입장이 되어서 부담감도 살짝 있었고, 동시에 기대감도 있었어요. 어떤 피드백을 주실까, 어떻게 느낄까. 처음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설렘이 있었어요. 

또, 잔치가 제 첫 동아리예요. 첫 동아리 너무 잘 만났지.

 

편집디자인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실물잡지 발간 활동과 관련이 있을까요?

그렇죠. 기대했던 작업을 잔치에서 한 셈이에요. 실물잡지 자체를 전부 디자인해서 출판해보는 기회는 개인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실물잡지 작업 중 지구 디자이너가 그린 일러스트. 량이 에디터의 <연냥심>에 삽입되었다

 

실물잡지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잡지의 모든 부분에서 빠짐 없이 디자인적 완성도가 높아 감동적이었어요. 디자인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제가 담당한 첫 실물잡지 글이 너무너무 충격이었어요. 황혼! 사진이 확정이 안 났다고, 최종적으로 없을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분량을 채우려먼 그래픽적인 요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 점에서부터 큰 일을 떠맡은 느낌이었어요. 과제 같은 느낌이었죠. ‘텍스트로 된 글을 주고, 이걸 네 마음대로 해석해서 이미지로 표현해라.’

글을 마구 읽고, 키워드에 하이라이팅을 했어요. 흐름은 이렇군, 시각적으로 어떤 느낌이 떠오르고. 어떤 색감이 어울릴 것 같고, 정렬은 또 어떻게 해야될 거 같고, 디자인 요소는 어디에서 모티브를 따와야 될 거 같고. 정리하고 레퍼런스찾고 일러 켜고…

단 에디터의 <황혼> 실물잡지 페이지 중 일부

첫 글에 쏟아부은 노력이 컸어요. 스스로 그래픽 자체를 그려내는 데는 그렇게 자신감이 있진 않았거든요. 편집디자인을 좋아했던 이유도 그래픽 자체보다 텍스트를 배치, 정돈, 하는 게 좋아서예요. 첫글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었어서 부담이 있었어요.

 

글자를 다루는 작업이 좋다는 마음이 궁금해요.

편집 디자인이 좋다는 마음은 제 전공이 동양화인 것과 연관성이 있어요. 동양화에서 쓰는 종이, 그 재료의 느낌을 좋아해요. 동양화 종이로는 한지를 쓰는데, 그 종이의 촉감이 되게 좋단 말이죠. 펄프에서 느껴지는 느낌이요. 종이의 물성을 좋아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마 편디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틀 자체의 속성도 좋고요. 백지에 텍스트들이 막 써 있는 모습이 되게 예뻐보이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굳이 내용을 읽지 않아도, 하얀 종이에 까만 글씨가 잘 정돈된 모습이 좋았어요. 사실 글자는 이미 형태가 정해져 있으니까, 가독성을 지키는 선에서는 거기서 변형을 줄 수 있는 폭이 엄청 크진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디테일의 차이가 되게 중요해져요. 디테일을 조정하는 아주 사소한 작업들에 따라 눈에 들어오면서 느껴지는 미감이 달라지는데, 그런 세계가 되게 묘하고, 재밌는 것 같아요.

지구 디자이너의 편집 디자인 공부 흔적

 

잔치에서 한 작업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업이 있나요?

제가 자발적으로 담당하고 싶다고 골랐던 유일한 글이 다람 에디터의 <내 사랑>이었어요. 그렇게 뱉어놓은 이상, 정말 잘 뽑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다람 에디터가 레퍼런스를 같이 올려줬었는데 그 레퍼런스의 느낌이 제 취향이랑 많이 일치하기도 했고, 언젠가 이런 작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하겠다고 선뜻 말했어요.

다람 에디터의 <내 사랑> 실물잡지 페이지 중 일부

 

그래서 할 때도 재밌었고, 하고 나서도 만족감이 컸어요. 다람 에디터가 그 글을 읽을 때 같이 들으라고 노래도 알려줬는데, 그게 제가 되게 좋아하는 노래였어요. 실제로 작업할 때도 그 노래를 들으면서 했어요. 그 글의 분위기랑 되게 동화되어서 작업한 거죠. 그 노래가 조이가 부른 곡이랑 백예린이 부른 곡으로 버전이 두 개인데, 둘 다 들었어요.  

 

그 노래가 뭔데요?

<그럴때마다>!

 

디테일한 부분의 미학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음미하는 섬세함은 지구 디자이너만의 특징인 것 같아요. 개인적인 취미가 필름카메라라고 들었는데, 주인과 너무 잘 어울리는 취미라고 생각했어요. 

필름 카메라는 제가 아주 느리게 즐기는 취미예요. 저는 매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모든 과정을 최대한 즐기는 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고 저는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그런데 필름 카메라는 지나간 그 과정들을 되짚어볼 수 있게 해주는 거죠. 게다가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들은 거의 제한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 금방 찍고 금방 잊어버리는데 필름은 그렇지 않잖아요. 찍을 때도 한 장, 한 장이 소중해서 정성들여 찍고 다 쓰면 필름을 되감아서 현상소에 찾아가 몇 시간을 기다려서 사진을 받고. 또 현상된 사진을 디지털로 받아볼 수 있는데 저는 꼭 인화까지 해요. 봉투에 담아주신 사진을 꺼내고 손으로 넘겨가면서 보면 그때의 기억과 느낌이 새롭게 다가와요. 그 자리에 사진 속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 같이 있다면 더 즐거운 경험이 되고요. 집에 가서는 사진 스크랩까지 하면서 또 되새기게 돼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뜻깊어요. 모든 게 바쁘고 빠르게만 흘러가는 일상에서 필름 카메라를 통한 시간은 아주 느린 템포로 흘러가는 게 왠지 모를 위안을 주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어요.

 

잔치에 지구 디자이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나 든든한데요. 지난 학기와는 또다른, 다음 학기에 대한 새로운 포부가 있을까요?

다음 학기부터는 제가 디자인 팀장이에요. 저, 이제 가장이라구요. 이제 식구도 뽑아야되고. 지금까진 다들 날 챙겨줬었는데 다음학기는 다 내가 챙겨줘야되고… 이끌어가야 되니까 그런거에 대한… 부담. 각오.

 

포부 있냐고 물어봤는데… 부담만 얘기하시네요.

네. 나 이런 감투 쓰는 거에 약한데. 나 부반장만 하던 여잔데…… . 열심히 하겠습니다.

 

잔치의 상징색은 오렌지잖아요. 지구 디자이너 자신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어떤 색일까요?

전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흰색이라고 말했었는데, 이후에 생각을 해 보니 조금 정정을 하고 싶더라구요. 종이 색에 ‘미색(米色)’이란 표현을 써요. 제가 좋아하는 종이들은 표백을 안 한 미색이었단 말이죠. 원래의 종이 색깔. 나를 표현하는 색이라면 그 색이 아닐까.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실제로 주전공 수업을 듣고 졸업전시를 하며 많이 쓰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런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맥락에서도, 저를 미색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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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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