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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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3 · 09 · 20

204. 정신착란증의 신촌

Editor 개미

제목은 렘 쿨하스(Rem Koolhaas)의 정신착란증의 뉴욕(Delirious New York)을 인용했다.

 

모든 곳이 번쩍거리고, 새로운 것들이 더욱 조밀하게 들어온다.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유행에 따라 변하는 신촌의 가게들은 신촌의 역동성을 반영하는 지표 같기도 하다.

신촌은 유흥 위주의 소비를 부추기고, 자본주의적 부동산 논리에 따르는 소규모 상업 건물들로 가득 찬, 도시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있는 무장소성의 공간이라는 평가도 있다. 다만, 신촌의 상업주의와 무장소성을 나쁘게만 보는 것은 신촌을 제대로 읽어내기에는 유효하지 않은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신촌의 혼잡함과 높은 밀도는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그것이 곧 신촌 특유의 활력 넘치는 거리와 독특한 문화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공부 장소를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카페들, 유흥을 담당하는 네온사인이 만발하는 술집들 그리고 쉼과 데이트, 미팅 장소가 되어주는 예쁜 카페 및 식당들로 이루어진 건물의 군집. 이들과 신촌의 다양한 사람들이 맺는 긴밀한 관계는 신촌을 활기차게 만든다.

 


신촌을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오른다.

내가 살던 곳에선 볼 수 없던 다양한 프랜차이즈들.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수 있다는 놀라움.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는 ‘빨간 잠망경’ 앞의 한국적 광장의 모습.

신촌이 나의 주거지가 되자, 이 활기와 자유는 혼란과 괴로움이 되었다.

가끔 신촌을 걷다가 너무 정신없다는 생각이 들면 종종 도망가게 된다. 신촌의 터줏대감으로 알려진 평화로운 카페에 가기도 하고, 새로운 도피처를 찾아내기도 한다.

당신들도 가끔 신촌이 내게 정신착란을 선사하는 것 같을 때
버스킹 소리 하나하나는 아름답지만, 그 모든 소리가 섞여 미쳐버릴 것 같을 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자꾸만 모르는 이들이 말을 걸 때
신촌의 활기참을 잠시 멀리하고 싶을 때

자신만의 도피처를 찾아보라 권하고 싶다.

먼저, 나의 도피처를 소개하며.

 

 

———

 

송준옥(宋寯屋)

 


최근에 문을 연, 신촌의 술집 골목 한가운데 있는 국밥집이다.
국밥집이라는 이름에서 배어 나오는 기름기와 돼지고기 잡내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얀 종이에 정갈하게 쓰인 글씨를 닮은 공간과 음식이 따끈하고 평화롭게 나를 달래주는 곳이니까.

 


입구에서부터 가게 안까지 붙어있는 판본체의 서예에서 한국적인 미니멀함을 느낄 수 있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하얗고 깔끔한 공간이 맞이해 준다.

 

글씨체를 판본체로 통일해 메뉴판을 바꾸며 수육샐러드가 리뉴얼 되었다.

 

하나로 통일된 메뉴는 나에게 복잡한 고민을 남기지 않는다.
‘순살뼈국’이라는 이름의 국밥.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배고픈가 한 가지뿐이다.
이 단순한 의사결정 과정이 마음에 든다.

 

순살뼈국은 기본적으로 맑은 국물에, 야채와 고기 그리고 밥이 한 그릇에 나오는 음식이다.
방문할 때마다 들어가는 야채 고명과 고기의 구체적인 부위는 다르다.
메뉴가 하나뿐이지만 깔끔한 맛과 항상 달라지는 야채는 순살뼈국을 계속 찾게 만드는 요소다.
맑은 육수는 담백하면서도 구수하고, 고기는 부드럽다.
고기를 찍어 먹을 간장 소스를 주시는데,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히 톡 쏘는 느낌이 진한 육수를 질리지 않게 거들어준다.

잔술도 매번 종류가 바뀌니 어떤 종류의 술인지 여쭤보는 것도 좋다.
맥주도 밥과 곁들이기 적당한 용량으로 준비되어 있다.
굳이 술을 주문하지 않아도 좋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차가 국밥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

 

메뉴판 리뉴얼을 거치며 수육 샐러드가 더 맛있어졌다.
순살뼈국에 사이드로 곁들여도 좋고, 수육 샐러드를 단독으로 공기밥을 추가해 안주 삼는 방법도 있다.
고기의 감칠맛과 시원하고 아삭한 식감의 샐러드 그리고 레몬 신맛의 조합이 훌륭하다.

 

———

 

 

다음 도피처를 소개한다.

 

 

———

 

파티오(Patio)

 

Patio 즉, 중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식물이 가득한 마당을 끼고 있는 한옥 카페로, 신촌의 터줏대감 중 하나이다. 빠르게 변하는 신촌에서 옛 모습 그대로 버텨온 세월만큼이나 유명한데도 그 분위기는 여전해 언제고 다시 찾는 나의 도피처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식물 군집은 화려한 네온사인에 지친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건만, 이곳에서는 도시의 소음조차 멀어진 듯하다. 파티오에 올 때마다 모임을 하는 아주머니들을 보게 되는데, 다른 카페에서는 유독 시끄럽게 들리는 수다 소리도 그저 정겹다. 한옥 특유의 노출된 목재 지붕과 시선이 모이는 중정의 녹음이 주는 마음의 여유가 소란스러운 대화조차 소음이 아닌 배경음으로 들리게 만들어 준다.

 

메뉴는 쌍화차부터 각종 커피와 음료, 허브티 등 정말 다양하다. 심지어 맥주, 와인, 칵테일 같은 주류도 시킬 수 있다. 내가 고른 음료와 함께 묻지도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나오는 제철 과일이 파티오만의 매력이다. 누군가는 이 기본메뉴에서 가성비를, 누군가는 감성을 느끼겠지. 나는 이 기본메뉴에서 집에 가면 식사 후 엄마가 깎아주는 과일에서 느껴지는 애정을 느낀다.

 

어느 자리를 가나 안쪽으로는 중정의 자연을, 바깥쪽으로는 전시 중인 그림 작품과 화분에 담긴 식물을 그리고 테이블마다 놓인 서양 난 혹은 장미를 감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중정과 더 가까운 창가를 선호한다. 종종 과제를 들고 도망 오기도 했는데, 신촌의 카페답게 자리마다 사용할 수 있는 콘센트가 넉넉해 편리했다. 하지만 멍하니 식물을 보며 한참 시간을 보내느라 과제를 제대로 끝내본 적은 없다.

 

비가 와 중정에 있는 분수 같은 조형물에 물이 고이면, 여기에 놓인 물고기 모양 장식이 웅덩이를 헤엄치는 것같이 보인다. 바로 옆에 있는 조형물은 부처님 조각 같아 보이는 게, 괜히 사찰을 떠올리고 명상하는 기분으로 물웅덩이와 금붕어 모형을 쳐다보게 된다. 사자 머리가 붙어 있는 용도 불명의 내부 조형물도 시선을 잡아끈다. 이렇게 여기저기 놓여있는 조각들이 한옥이라는 한국적인 분위기에 이국적인 매력을 한 스푼 더해준다.

 

———

 

 

여기까지가 나의 도피처들이다.

 

이제는 당신들의 도피처도 알고 싶다.

 

정신착란증의 신촌 속에는 얼마나 많은 오아시스가 있을까?

 

 



송준옥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7안길 24-4, 2층

월-금 11:30~15:00, 17:00~20:30
토, 일 11:30~15:00
*재료 소진 시 조기마감

 


파티오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5다길 28

매일 12:00~24:00

개미
AUTHOR PROFILE
개미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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