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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8 · 11 · 14

102. 궁뜰 어린이공원

Editor 키튼

빵지순례니 카페스타그램이니 하는 유행으로 이곳저곳이 북적이는 요즘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름 있는 제과점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즐비한 연희동이 특유의 고즈넉함을 지켜내고 있는 건, 그 곳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덕이 아닐까.

 

왜인지 나에겐 관광객들보다도 동네사람들이 눈에 띄는 연희동 거리.

 

사러가 쇼핑센터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린아이, 고단한 하루를 시작하는 중인지 찌푸린 표정으로 연대 서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오르는 자취생. 연희동 거리 곳곳을 채우고 있는 공기의 팔 할은 그들 일상의 평범함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단조롭고 평화롭다. 요란하고 정신없는 바깥에 지쳐 집처럼 잔뜩 늘어지거나 꽁꽁 숨어 버릴 어딘가가 필요할 때, 내가 종종 연대 서문 골목을 내려가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평범한 주택가 같지만, 사실은 인스타 핫플 디저트샵과 수요미식회 나온 떡집 한곳이 숨어있는 풍경.

 

그러나 그 생활친화적인 느낌이라는 것이 늘 편하게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연희동의 명소들은 단골인지 오래인 주민들과 뜨내기 방문객들 모두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종종 한산할 것 같은 외관에 혹해 들어갔다가 만석인 것을 확인하고 되돌아나오거나, 한참동안 줄을 선채로 기다려야하고는 했다.

이조차 내부에 자리가 놓여있을 때 이야기이고, 머무를 공간 자체가 협소한 매장도 꽤 많은 편이다. 예컨대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콜드브루를 내리는 매뉴팩트 커피나 정성이 느껴지는 젤라또를 파는 콜드레시피, 6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네 한구석을 지켜온 독일빵집 등등. 애초에 동네사람들이야 어디든지 귀갓길에 잠시 들렀다 나오면 그만인 까닭일 테다. 그러나 이 곳에 집 없는 이들은 산 음식을 길거리에서 해치우던지 먼길을 되짚어 다시 온 곳으로 되돌아가던지 해야 하는 것이다.  

 

골목 한켠에 보이는 연희김밥. 연희동 안에 분점이 있을만큼 잘나가는 곳이지만 앉아서 먹을 자리는 없다.

 

신촌 통학을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을 마음 속 두 번째 집으로 삼았지만, 이러한 애로사항 탓에 나 또한 한동안 온전히 여유를 즐기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해준 연희동의 숨겨진 꿀스팟이 있었으니. 그 곳은 다름 아닌 동네 놀이터.

 

 

놀이터의 정식 명칭은 궁뜰 어린이공원이다. 안내판에 적혀있는 동네 소개로 미루어보건대 궁뜰이라 이름붙인 것은 ‘현재 연세대학교가 있는 자리로 추정되는 연희궁 터의 이름에서 유래’한 연희동의 뒤편에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널찍한 공원의 풍경을 쭉 둘러보면 꽤 잘 맞아떨어지는 이름이구나 싶다. 기와 지붕이 올려진 정자와 소나무 조형물 대신 아담한 나무 쉼터와 놀이터 미끄럼틀이 푸른 녹음에 둘러싸인 곳. 21세기 버전 궁 안의 뜰.

 

 

 

이곳은 아침이나 이른 저녁에는 어머니와 아이들의 산책 공간이 되었다가, 학교와 어린이집이 문을 연 시간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궁궐 안 사람들이 틈틈이 드나드는 생활공간인 셈. 그와 동시에 나와 같은 이방인에게는 늘 앉을 자리를 내어주는 고마운 쉼터이기도 하다.

어딘가의 주민이라는 말은 그곳에 언제든 머무를 수 있는 장소 한켠을 갖추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놀이터가 있으므로 나도 아주 조금은 연희 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며 연희동 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다보면 정말로 그들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나의 연희동 또한 그들의 그것처럼 오롯이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느껴진다. 그 익숙함이 나를 위로하고 안심시킨다.         

 

물론 이건 전지적 내시점. 동네사람들은 혼자 놀이터에 앉아 흐뭇한 표정을 짓고있는 학생을 어떻게 보려나.

 

이런 궁뜰 어린이공원의 효용은 연희동을 헤매다가 예상치 못하게 쉬어가야 할 일이 생길 때에도 빛을 발한다. 얼마 전, 수업을 마치고 이 동네에 잠시 들렀다가 길 한가운데에서 갑작스럽게 세찬 소나기를 만났다. 우산으로는 막을 수 없던 비바람에 얼룩 투성이가 되어버린 흰 외투와 가죽 신발. 울며 겨자 먹기로 카페에 들르고 싶지는 않았던 그 날도 내가 갈만한 곳은 딱 한 장소 뿐이었다. 마침 이름난 두텁떡을 맛보려고 동네 한구석의 떡집에 다녀오던 차.

모두 집으로 돌아가 텅 비어버린 놀이터에 슬그머니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궁 뜰 정자 밑에서 짐을 내려놓고 봉투에 담긴 떡을 주섬주섬 꺼내어본다. 이내 임금님이 좋아하셨다는 간식을 한가득 베어물며 빗방울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잔뜩 움츠렸던 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른히 나무 기둥에 기대어진 채이다. 이 또한 나쁘지 않구나. 그제야 달갑지 않던 이 날의 날씨를 용서해 줄 만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내 집 안에서는 어떤 날씨도 낭만적으로 보이는 법 아니던가.

 

여러분도 한번쯤 연희동 사는 척 하러 들러보시길.

 

곧 망중한을 즐기러 다시 연희동으로 향할테다. 그때에도 이곳 저곳을 두리번대기만 하다 무엇 하나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떠나야하는 방문객이고 싶지 않다. 동네 사람들처럼 천천히 머무르며 여유를 느끼다 가련다. 그러려면 아기자기한 상점들에 들러 맛난 간식거리와 따뜻한 음료를 챙긴 뒤 어디로 가야할 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당신도 마찬가지. 연희동 명예 주민이 된 것을 환영한다.

 


궁뜰 어린이공원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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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튼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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