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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3 · 10 · 09

쓸모에 대한 고백

Editor 왕 잔치

안녕,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

 

한 소년이 있었어. 

소년은 주변 어른들의 기대를 받고

또래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

뭐, 그런 평탄한 길을 걸어왔지.

 

우등생이었던 소년은

나름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고

주변의 축하를 받으면서

앞으로의 삶에 기대를 잔뜩 걸었어.

 

그 뿐이었어.

소년은 자신보다 뛰어난 친구들을 마주하게 되고

처음 느껴본 열등감과 패배 의식에 당황하고 말았어.

그런 상황에서 무기력은 덤이었지.

 

그런 소년에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

 

‘나는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생각의 방향에 따라 

성장의 원동력이,

혹은 

스스로를 해치는 독극물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질문이지.

 

소년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 질문에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고

매 순간 무너져 가는 마음을 손 놓고 바라보기만 했어.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다시 낮이 되는 동안


찬란한 빛깔들은 애써 무시하고

자기 삶은 무채색이라며 남을, 세상을 탓했어.

만족은커녕 불평불만 늘어놓는 삶이었더랬지.

 

그런 그 소년은 ‘신촌 새내기’가 되었어.

 

젊음이 숨 쉬는 듯한 분위기와

붐비는 사람들 틈바구니의 활기 속에서

세상 물정 모르던 어린 대학생은

낯섦에 압도되어 여기저기 기웃대기 바빴지.

 

 

시끌벅적한 각종 소음

눈을 어지럽히는 불빛들

술에 취해 홍조 띤 얼굴들

 

이런 신촌의 단면은 매력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어딘가 공허한 마음에

나이에 걸맞지 않는 한숨만 점점 늘어갔어.

 

결국

세상이 미워서

사람들의 웃음이 싫어서

밝은 신촌의 모습에 이골이 나서 

 

소년은 

낡은 생각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리고

한동안 그곳을 향한 발걸음을 끊었어.

 

그러다

해가 지나고

앳된 얼굴에 각이 지며

흔히들 말하는 화석이 되던 해,

 

문득 그 소년은 

어떤 이야기를 듣게 돼.

 

신촌에서 무엇을 했다더라,

신촌에 이런 곳이 생겼다더라.

신촌에 무슨 축제가 열렸다더라.

 

처음에야 별 관심도 가지 않았지만

이야기꽃을 피우는 열기 띤 얼굴에서

소년은 조금 더 생기있었던 과거의 자신이 비쳐 보였어.

 

약간 샘이 나기도 했어. 

자기도 마음껏 웃고 싶었거든.

 

 

그래서 

자기가 내치고 말았던 대학가를 다시 찾아보기로 했어. 

추억도 떠올릴 겸, 약간의 기대를 안고 거리를 다시 찾은 거야.

 

그런데

오랜만에 찾은 그곳은 무언가 달라져 있었어.

 

변함없이 예전처럼 소년을 반겨주던 신촌인데

이전에 보지 못했던

‘흉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등 떠밀려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너무나도 하찮아 보이는 것들.

 

눈길 줄 여유조차 없었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런 못난 것들 말이야.

 

그곳은 바뀐 게 없는데

시간이 흘러 소년의 생각이 바뀐 게지.

 


자기 처지를 비관하던 

몇 년 전 모습이 떠올라 

한 번씩 더 들여다보기로 한 거야.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주차금지 팻말,

 


담배꽁초 수거함,

 


이리저리 놓인 실외기들,

 


건물 밖으로 튀어나온 파이프들

 

분명 필요에 의해 세상에 나와

그 누구도 관심 주지 않는 쓸모에 의해

자리를 지키거나 쓰임을 다하고 있었어.

 

이 흉한 것들이 어느 순간

신촌의 뒷면에서 앞면을 밝히고

신촌의 풍경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신촌의 여러 장면을 완성하고 있었다더라.

 

여기 이걸 좀 볼래?

 


누가 신경이나 쓸런지 싶은 화분인데

버려진 꽁초와 쓰레기통들 그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생명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지?

 

이 쓸모없어 뵈는 것들 덕분에

저 초록색이 그렇게 눈이 부시더래.

 

소년은 깨달은 거야.

세월에 바래지고

필요에 등 떠밀려

흉물이라 불리지만

 

이들 또한 

어딘가에서 쓰임새가 있었음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것, 그 자체에서

이들이 쓸모 있음을.
.
.
.
.
.
.

 

참 재미없는 이야기 아니니?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너희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그거 알아?

 

우리가 가늠조차 할 수 없이 빠른 빛 있잖아,

그 1조 배의 속력으로 달려도 

우리는 저 광활한 우주의 중심에 도달할 수가 없대.

 

우주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곳인 동시에 이해하기 버거운 곳이지.

 

그 광대함 앞에

 우리도, 흉물들도

그저 한 점의 먼지에 불과하고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야. 이 사진을 보고 칼 세이건 박사는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으로 묘사했어.

 

우리가 살아가는 삶 또한

억겁의 세월 앞에서는 찰나에 지나지 않지.

 

그래.

 


우리가 우러러보는 것들도

우리가 낮추어 보는 것들도

우리가 쓸모를 따지는 것들도

 

결국 세월이 흐르면 너무나 하찮아질 뿐이고

 

우리가 제멋대로 부여한 의미 안에서

헤엄치다가 제명을 다할 뿐이야.

 

너무 허무하지 않으냐고?

그럼,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의미 없는 것 아니냐고?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럼 내가 질문 하나 할게.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네 삶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자유는

오로지 너에게 주어진 것 아닐까? 

 

남들이 매기는 점수와

사회가 판단한 쓸모가

너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어? 

 


결국 네 쓸모와 가치는

네 결정에 달린 것일 텐데.

 

소년이 

자신의 쓸모에 대해 의심했던 곳에서 

다시 자신의 쓸모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권유도, 강요도 아닌

자신의 선택이었지.

 

너희도 마찬가지야.

 

너희의 삶을 온전히 판단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너희뿐이니까.

 

너희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야.

난 그저 너희에게 고백하고 싶었어.

그 소년이 나라고.

 

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탓에

삶이 너무나도 무거웠노라고.

 

하지만 깨달았다고.

 

나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인정해 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임을.

 

그리고 나서야

무언가 해낼 용기가 생겼다고.

 

그냥, 그렇다고.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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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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