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호흡
“전시 처음 해보고 제일 좋았던 거? 난 모르는 이와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더라. 사람이 사람과 닿는 거, 그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잖아. 굳이 닿으려고 하지도 않고. 우린 사람 뒤에 이야기가 있다는 걸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아.”
“그러게. 무심코 지나쳐버리지.”
“무심해지더라, 내 삶 챙기기 급급하니까. 타인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는 거지. 언젠가부터 세상이 너무 빨라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드는 거야. 조금은 익숙함에 상주해도 된다고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더라.”
“그랬구나.”
“다들 그렇겠지. 그래서 나한텐 이번 전시가 정말 행복한 기억이었어.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이기에 더 솔직해질 수 있던 것 같아. 조금은 느려도, 아직은 몰라도 괜찮다는 말을 간접적으로나마 누군가에게 건네는 게 좋더라고. 나한테는 그게 오히려 숨 쉴 구멍이 된 거지.”
“어떤 부분에서 그걸 제일 크게 느꼈는데?”
“많았지, 그건.”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정연의 공강은 목요일.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이었지만, 내일이 바로 전시 첫날이기에 할 일이 많았다.
정연이 사는 곳은 기숙사다. 강의실과 가깝다며 부러워하는 남들의 시선과는 달리 학교 꼭대기에 위치한 기숙사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면 한숨부터 새어 나오고는 했다. 기숙사의 극악무도한 위치와는 별개로 맨 위층 복도 가장 끝에 위치한 작은 방은 기꺼웠다. 정연은 온전한 자신의 공간에 들어가면, 마치 고래의 배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다는 걸 알려주듯 느리게 수축했다가 이완하는 고래의 배 속은 기분 좋게 따뜻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창문, 그럼에도 정연의 취향으로 가득 찬 벽과 책상. 커다란 인형과 베개. 정연은 익숙함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정연은 방과 함께 숨을 쉬었다. 들이마셨다,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정연이 담은 정연의 방.
정연은 쉼의 공간에서 빠져나와 전시장으로 향했다. 급하게 나왔음에도 어제 인화한 사진들을 들고 가는 건 잊지 않았다.
“언니, 그거 뭐야? 사진?”
“아, 어제 인화한 거.”
“어제 하루 종일 암실에 있었다더니, 이거 인화했구나?”
정연은 대답하는 대신 룸메이트를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 사진을 보여달라는 말에 잠시 멈춰서 빳빳한 필름지를 손에 들고 다시금 천천히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그리고 암실에 처음 들어갔던 순간을 떠올렸다. 으슥한 듯 깜깜하게 빛나던 좁은 방. 인화에 필요한 용액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 먼지 쌓인 채 옆에 방치된 필름들. 오래된 동방은 그만큼 낡아 있었고, 그 옆에 딸린 암실도 그러했다. 정연은 덩달아 낡은 기계들이 바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필름을 인화한다는 행위에 너무 기대를 걸었던 탓일지.
그 후 시간은 정연을 암실로 거듭 데려왔다. 전시 준비로 바쁜 정연이 그곳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낡은 암실은 마음에 들기도 전에 익숙해졌다. 마음에 들어온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무료함을 우려해 핸드폰 방해금지 기능을 켜두고 옷 깊숙이 노래를 틀어놓은 채 암실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인화지에 상을 맺히게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번거로웠고,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의 단조로움은 정연이 평소에 겪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네 번에 걸쳐 용액에 사진을 담그고 빼는 과정에 노래가 어색하게 얹히기를 원치 않았다. 대신 정연은 대화했다. 입으로 하나, 둘, 셋을 헤아리며 본인의 사진과 대화하고, 같이 암실에 들어간 동기와 대화했다. 대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정연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익숙함 뒤에 스민 경험들은 제법 즐거웠다.

정연이 인화 작업에서 가장 까다롭다고 느끼는 요소는 시간이었다.
“언니는 이번에 몇 초로 할 거야?”
“넌 몇 초였지? 일단 그 정도로 해봐야겠다.”
적절한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사진은 탁하거나 아예 까맣게 변해버리기 일쑤였다. 동기의 사진은 13초가 가장 적절했다. 몇 번이고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알아낸 정확한 시간. 정연도 본인의 필름을 묵직한 기계에 끼우고 13초를 기다렸다. 빨간불이 깜빡거리며 시간이 다 흘렀음을 알렸다.
“어, 까맣다.”
“그러게. 13초는 아니었나 봐.”
정연의 시간은 13초가 아니었다. 1초씩 줄여보며 가장 적절한 인화 시간을 찾았다. 10초도, 8초도, 6초도 아니었다. 정연의 사진은 3초가 딱 적절했다. 정연은 찰나가 사진의 생존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오묘하다고 생각했다. 눈이 깜빡이는 순간 순식간에 멀어질 현재가. 날숨 한 번 내뱉는 순간이.
그렇게 인화했던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다 무심코 시계를 들여다본 정연은 걸음을 재촉했다. 부원 다 같이 준비한 스크랩 작품을 오늘 안에 완성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전시 준비가 늦게까지 이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들 하나씩 의견을 내고 더 좋은 배치를 고민하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다들 일단 밥을 먹자는 얘기를 꺼냈고, 정연은 배달을 기다리며 바닥 아무 곳이나 골라 털썩 앉았다.
그리고 오늘 본인이 몇 번이나 뱉은, “벌써 내일이 전시구나, 시간이 너무 빠르다.” 따위의 상투적인 말을 다시 곱씹었다. 내가 이런 낡은 말을 하다니. 웃음이 픽, 하고 새어나왔다. 정기 사진전은 1년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 그리고 난 1년을 담은 사진들을 1년마다 한 번 진행하는 전시에 선보이고 있다. 곱씹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정연은 1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스물하나의 정연은 본인의 스물하나가 이렇게 지나가도 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정연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온 1들은 어느새 주욱 구부러져 질문을 던졌다. 정연의 스물하나는 구부러진 물음표로 가득했다. 내가 뭘 좋아하지? 내가 뭘 하고 싶지? 내가 뭘 해야 하지? 그런 질문들은 정연의 스물하나에 은은하게 스며있었다. 정연은 답을 모르지 않았다. 답을 찾는 방법을 모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적절할 수도 있겠다. 언제나 결론은 — 그냥 해보는 것. 모두가 말하듯이. 그게 답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정연이 내키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정연에게 특별했다. 일단 좋아하는 건, 사진 찍기. 일상에 스며있는 행복감을 포착하기. 그래서 정연은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셔터를 눌렀다. 치열하게 명백한 답을 찾아가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익숙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버거운 일이었다. 세상이 정연을 재촉해도 정연만은 정연을 재촉하지 않으려 했다. 그저,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당장은 확인할 수 없는 결과를 음미하며 기다렸다. 그건 정연과 닮아있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정연이 숨 쉴 수 있는 순간이 조금씩 늘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무심코 숨을 머금고, 카메라를 내리면 탁, 터지듯이 숨을 내뱉었다. 정연이 사랑해 마지않는 찰나였다.




정연이 포착한, 일상에 스민 행복.

정연의 전시작품.
3일 동안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 사실이 무색하게 사람들의 흔적은 크게 남지 않았다. 전시장 한구석을 바라보면 조용히 오고간 사람들의 모습이 잔상처럼 보였다. 그들의 눈짓이 닿는 곳에는 품을 들인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A언니가 찍은 저 사진은 처음 나간 출사 때 찍은 거였지 아마. S는 내 사진을 보고 멋들어진 코멘트를 달아줬었어. P는 저 사진을 보여줄 때 눈이 반짝반짝 빛났어. 모두의 사진 뒤에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시간이, 대화가, 기억이 가득 들어차 넘실대고 있는 게 보였다.
필름 카메라는 그 물성 탓에 가장 소중한 순간에만 셔터를 누르게 된다. ‘정해진 횟수 안에서 어떻게 하면 피사체를 잘 담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사진마다 은은하게 서려 있다. 정연은 사진전에 온 사람들이 그런 걸 알아줬으면, 하고 생각했다. 당신에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듯이 정연에게도, 전시된 사진들에도 이야기가 있다고. 고민의 흔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잔잔한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정연이 담은 전시장.
정연은 본인의 사진이 담은 이야기가 실마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흘러가듯 아득한 시간 속에서 숨을 돌릴 수 있는 작은 구멍. 끊임없이 새로움을 요구하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익숙한 꿋꿋함을 잃지 않게 하는 무언가. 정연의 기록들은 길을 잃지 않고 단단히 서 있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어쩌면 본인이 느끼는 이런 단단함이 물음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시 숨을 가득 머금은 상태로 셔터를 누르고는 후, 소리를 내며 내뱉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충만했다.
전시를 마무리하던 날, 사진으로 가득 차 있던 전시장의 벽은 부원들의 손짓 몇 번으로 다시 새하얘졌다. 이곳저곳 배치해 둔 소품들을 바쁘게 정리하던 정연은 두꺼운 방명록을 꺼내 들었다. 판판했던 방명록은 며칠의 전시를 겪으며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다. 첫 장은 구깃구깃해졌네, 정연은 혼잣말했다. 쓰다듬듯 표지를 탁탁 털고 열어본 방명록에는 사람이 담겨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본인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이상해졌다. 정연은 오늘 기숙사를 나와 강의를 듣고, 신촌 길거리를 지나와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이 전시장으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스쳤는지를 헤아렸다. 교양 강의에서 만난 사람들, 개강 총회 때 친해진 동기들, 룸메이트들과 동아리 사람들, 신촌 거리 한복판의 눈에 익은 가게 사장님들, 가족들과 친구들. 정연은 그 모든 사람 중에 본인이 ‘그들의 이야기’라고 할 만한 걸 내밀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했다. 그리고 정연은, 열 손가락이 다 접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이야기들이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다는 사실은 정연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조금 기뻤다. 방명록에 남겨진 짧은 문장이 정연이 세상에 기대하고 있는 바를 작게나마 충족시킨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사진 뒤에는 사람이, 사람 뒤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안에서 알록달록한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틈새가 될 찰나가 우리를 숨 쉬게 하길, 정연은 작게 읊조렸다.
“그냥 고요하게 사진 들여다보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어. 이 사진은 언제 어디서 왜 찍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전시장 걸어 다니며 즐기고. 사람들이 그 시간만큼은 숨 쉬었으면 좋겠어. “
“왜?”
“나도 그랬으니까. 나를 호흡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니까. 사진을 매개로 같이 숨 쉬어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특별해. 그게 참 좋았어.”
이화여자대학교 필름사진학회 이미지스트
제57회 정기 사진전 [ROOM-IES]
이화여자대학교 ECC B328 대산갤러리
2023.11.9~2023.11.11



글 정말 좋네요,,
장면장면이 글과 함께 사진처럼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