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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3 · 11 · 15

210. 온전히, 꽃 한 송이

Editor 도리

꽃 선물,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거 있잖아요. 받았을 때 가장 난감한 선물 Top 3! 

그럴 때마다 종종 꽃이 언급되는 것 같아요. 저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어요.

 꽃은 언젠가 시들어 버리고, 꽃말은 어차피 사람들이 마음대로 붙인 거고, 

꽤 비싼데 차라리 그 돈으로 실용적인 선물이 낫지 않나. 

 

 

 

 

 

세상을 조금 삐뚤게 보는 게 편하던 제게 꽃은 무의미한 선물 중 하나였어요.

언제부터인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 의미와 무의미를 나누는 기준을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의미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 어떨 땐 세상이 온통 무의미투성이처럼 느껴진 적도 있고요. 

이 넓은 우주에 나라는 존재가 너무 작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어떨 땐 고통스러웠어요. 

그런 생각으로 숨이 턱턱 막힐 때 나를 숨 쉬게 해준 순간을 더듬어 보곤 합니다.

 

 

특별한 날도 아닌, 그냥 무수한 날 중 하루.

‘널 닮아서 한 송이 사봤어.’하고 건네받은 노란 해바라기.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워서 멋쩍은 웃음과 함께 ‘꽃을 한 송이만 팔기도 하는구나!’ 하고 건조하게 받아버렸어요.

그렇지만 꽃 한 송이 쥐고 집에 가는 길에, 꽃을 사는 당신의 모습, 그 속의 마음을 되짚어 보니 웃음이 났어요.

꽃은 역시 곧 시들었지만, 꽃과 함께 온 따듯한 마음은 그대로였어요.

무의미가 나를 짓누를 때, 한 송이 꽃을 생각해요.

나를 생각해 꽃 한 송이를 사 온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

또 작은 씨앗이 꽃을 피우기까지 겪은 비, 바람 그리고 햇빛.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은 이게 다예요.

혹시 꽃 한 송이를 선물해 볼 맘이 생겼다면

한 송이에도 마음을 담아 건넬 수 있는 신촌의 꽃집 두 군데를 소개할게요.

 

 

<만남의 장소 빨간 잠망경 앞 꽃집>

신촌역에서 U-Plex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신촌의 빨간 잠만경을 볼 수 있습니다.

으레 ‘빨잠 앞에서 만나!’ 하고 약속 장소가 되지요.

어느때랑 비슷하게 6시에 빨잠 앞에서 보자 하고 약속시간에 늦은 적이 있어요.

약속 장소에 제때 나오기 위해 상대가 들인 정성과 추운 날 밖에서 기다릴 시간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더라구요.

제때 준비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짜증도 났어요. 

“괜찮아! 나 여기서 꽃 구경 하고 있어. 겨울에도 꽃이 다양하더라? 국화가 색깔 별로 있어.”

자책할 저를 위해 건넨 그 한 마디가 얼마나 따듯하던지.

마음을 표현하는 데 늘 서툰 제가 또 다정을 배운 순간이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빨간 잠만경 앞에 꽃 선물 초보자도 근사한 꽃 한 송이 살 수 있는 꽃집이 있어요.

 

종종 꽃 가격이 붙어있지 않은 곳이 많아 골라 놓고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여긴 꽃의 이름과 가격이 모두 붙어있어서 확인하기 좋아요.

꽃 선물 초보자에게 추천합니다! 약간만 더 보태면 한 송이라도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할 수 있어요.

진열된 꽃을 고르면 사장님이 정성 들여 포장해 주십니다.

조금 오글거리지만, 너를 기다리다가 한 송이 준비했다고 말해보세요.

돌아올 걸 기대하지 않고 그저 주고 싶은 마음에 상대를 떠올리는 건 생각보다 따듯하답니다.

 

스노우폭스플라워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19

월-금 9:30~22:00

 

 

<푸드트럭 사이 낯선 노점 꽃집>

양옆에 아이스크림 와플과 닭강정을 파는 포장마차 거리에 뜬금없이 꽃이 널려있습니다.

우산꽂이 같은 무채색 플라스틱 통에 무심히 담겨있는 꽃들이 낯설게 느껴져요. 근데 그게 오히려 매력적인 것 같아요.

길 가다가 냄새에 이끌려 닭강정 한 컵 사듯, 향기에 이끌려 꽃도 한 송이 살 수 있을 것만 같잖아요.

 늦은 밤까지 학교에 남아 과제하다 돌아가는 길,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닭강정 한 컵을 주문했어요.

닭강정이 철판에서 다시 뜨거워지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다 노점 꽃집을 처음 발견했어요.

지도에 나오지 않는 간판도 없는 이 꽃집.

사장님께 여쭤봤더니 10시 30분부터 늦은 저녁 10시까지 문을 열어두신다고 해요.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꽃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며 어느새 맛있게 완성된 제 닭강정을 찾으러 돌아갔어요.

그리고 그 늦은 시간에 제가! 한 송이 사서 갔답니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학생보다 더 늦게 집에 들어오는 가족을 위해서요.

아침에 정신없이 나갔다가 저녁이 되면 물먹은 스펀지마냥 축 쳐져서 돌아오던 모습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거든요.

화려하진 않지만 달콤하고 싱그러운 향이 나는 백합을 골랐어요.

웬 꽃? 하고 무심하게 답하는 울 엄마 딸은 말이랑 다르게 집에서 가장 그럴싸한 병에 꽃을 담아둡니다.

봄에는 프리지어와 튤립. 여름에는 해바라기와 장미.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목화.

그 계절에 많이 나는 꽃이라면 와플에 아이스크림 추가 하는 정도의 돈으로 생각보다 그럴싸한 꽃다발을 만들 수 있답니다.

초록 잎 한 줄기, 색이 비슷한 꽃 두 송이 골라서 포장하는 걸 추천해 드릴게요.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사장님께 부탁드려보세요. 전문가의 솜씨를 발휘해주신답니다. 

 

프리저브드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12 

10:30- 22:00



때로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온갖 무의미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게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다정한 말 한 마디, 뜬금없는 한 송이 꽃 같은.

내가 생각한 따듯하고, 포근한 의미를 온진히 꽃 한 송이에 담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요.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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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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