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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3 · 11 · 08

209. 당신의 행복은 무엇으로부터 오나요?: 카페 27도씨

Editor 시나리

 

K가 있는 방 안으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하기 그지없었기에 여간 불쾌한 소음이 아니었다. 이내 비척이며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한 형상形像. 질질 끌려온 그림자의 상반신이 바닥에 축 늘어진다. 이 기이한 존재를 대하는 것이 익숙한 듯, K는 짧은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지쳐 보이네요, 고된 하루였나요?

 

(······)

 

이리 와서 앉아 봐요. 그리고 오랜만에 내 이야기 한번 들어 볼래요?

 

K는 옆으로 움직여 자리를 내어 주었다. 이윽고 털썩– 몸을 누이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다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오늘 찾아올 줄은 알고 있었어요. 건방지게도 우울한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거든요. 그럼에도 내가 마냥 당신에게 짐만 보태는 이가 될 순 없으니··· 그래서 오늘은 조금 밝은 이야기를 준비해 두었답니다. 당신,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형상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K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을 뿐이었다. K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이어갔다.

 

행복이라는 건요, 그다지 별다른 게 아닌가 봐요. 예컨대 요즘은 거리에 핀 작은 꽃들이 머금은 생명력을 마주하며 행복을 얻곤 해요.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채 고고하게 서 있는 그들로부터 위안을 받는 거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바라볼 때도, 골목을 지나다 갓 구운 빵 냄새가 코 끝을 스칠 때도. 유독 밤바람이 선선한 날에도, 멀리 있는 이의 소식이 들려오는 날에도. 그래요, 지금 당신과 대화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어쩌면.

아, 그리고 행복은요, 나눌수록 커지는 거래요. 나의 행복을 당신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해도, 내게서 그것이 사라지거나 훼손되지 않으니 총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겁니다. 과학적인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이지요. 그러니 언제든 당신에게 내 행복을 전해 주고 싶었어요. 늘 당신이 행복하기를 가슴 깊이 바라니까요. 아, 오늘처럼 속을 썩일 때가 있어서 미안하구요. 그렇지만 가끔은 이런 만남도 있어야겠지요. 분명 당신이 그리워질 테니까요.

 

자, 떠날 시간이 된 것 같군요. 이제 내 행복 하나를 알려 줄 테니, 이쪽으로 와 볼래요?

 

어둠이 내린 방 안에 K의 눈동자만큼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그가 환하게 웃으며, 옆에 앉은 이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아잡고는 어스름이 드리운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림자 두 개가 또 다른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오늘도 그의 악의 없는 권유를 뿌리치지 못했다. 해사하게 웃는 모양이 꼭 태양을 닮았다. 그 해맑은 표정을 볼 때마다, 이 세상의 어떤 아픔이 K라는 인간을 잠시나마 우울에 젖게 하는지 의문을 품는다. 나와 같이 때묻은 육신과 함께해야 하는 운명이, 저리 순수한 영혼에게는 가혹하다고 때때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가 보여 주는 세상은 언제나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그를 따라가다 보면 축복 같은 하루가 훌쩍 넘어가 있곤 했다.

 

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어느 건물의 지하였다. 가는 길이 헷갈렸는지 조금 헤매다가, 이내 방향을 찾고는 머쓱한 듯 웃어 보이는 그였다.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건물 바깥도 안도 아닌 오묘한 장소에 도달했다. 조용한 어둠 속에서 따뜻한 빛을 품은 가게 하나를 보았다. 

 

 

Cafe 27···

 

너무 어두운 나머지 희미하게 보이는 글자를 속으로 읊었다. 25, 26도 아닌 ‘27도’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지, 작은 궁금증을 품은 채 시선을 낮추자 개나리색 문틀이 눈에 들어왔다. 그 주위로 섬세하게 꾸며 놓은 식물 장식들을 보니 작은 비밀 정원과 마주친 듯했다. 아기자기한 내부와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처음에는 이곳을 찾는 데 더 오랜 시간을 헤맸다며, 이런 곳에 카페가 있는 것이 신기하지 않냐며 신이 난 듯 이야기를 늘어놓는 K. 나는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그와 이 공간의 분위기가 조금 닮았다는 생각을 몰래 흘렸다. 

 

 

K의 뒤를 따라 조심스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게 주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디저트를 골라 접시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이건 마들렌, 이건 휘낭시에, 이건 까눌레··· 즐거움이 묻어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형형색색의 빵과 과자를 눈에 담았다. 나는 살며시 어린아이같이 들뜨기 시작한 마음을 억누르려 애를 썼다. 익숙한 일이었다. 

 

나는 늘 만일의 상황을 염려하며 도망치기 급급한 채 살아왔다. K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이자 총체인 나는, 도처에 있는 이들의 감정을 검게 물들일까 봐, 행복한 순간에 끼어드는 일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우려와 달리 K와 함께하는 동안 불상사가 생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는 그의 초대를 거부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이다. 그를 둘러싼 세상에는 –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 행복이 흔들리는 순간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롯이 K의 영향력 덕분일 것이라 믿었기에, 나는 근거도 없는 죄악감에 휩싸여 늘상 눈치를 보고, 말을 삼가며, 감정을 숨긴 채 쥐 죽은 듯 살았다. 그게 편했다.

 

 

K로부터: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플레인 휘낭시에, 오리지널 까눌레, 볼케이노 얼그레이 마들렌, 황치즈 휘낭시에. 모두 훌륭한 풍미를 자랑한다.
특히 까눌레의 바삭한 식감과 황치즈의 짭쪼름한 맛이 일품이다.

 

 

다만 지금처럼 달콤한 디저트를 맛보며, 충만한 행복을 투명하게 내비치는 K를 보고 있으면, 제아무리 불행을 짊어진 나라도 마음 속에 감도는 온기를 느낀다.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나에게 허용된 가장 큰 사치이자 유일한 안식이다.

K가 나에게 마들렌 하나를 권했다. 오늘 그가 나에게 전하고자 한 행복은 아마도 이쪽일 것이다. 그러니 그의 존재 자체가 가장 큰 행복이라는 낯 뜨거운 말은 아껴 두기로 하자.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입안에 퍼지는 달콤한 감각 – K가 종종 ‘디저트의 마법’이라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반론의 여지 없이 훌륭한 행복이다. 어째서 디저트는 필연적으로 행복을 부르는가. 밀가루와 설탕 외에, 다른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어느새 K는 가게 주인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내용이었기에, 적어 두었던 작은 기록을 첨부한다.

 


Memo.

 

 

K: 사장님, 사장님의 디저트는 늘 맛있어서 먹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제 소소한 일상 속의 행복이에요. 행복을 전하는 디저트를 만드는 비법이 있나요?

note.

가끔 K는 나와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최고의 맛과 식감을 살리기 위해 매일 열심히 연구… 더불어 디저트를 받는 사람에게 행복한 하루를 선물하겠다는 생각으로 만들고 있다는 답변.

비밀 레시피는 정성과 노력, 행복을 전하려는 마음이었던 것인가. 그는 어쩌면 K와 비슷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역시 늘 나의 행복을 바라며 최선을 다해 주고 있으니.

 

K: 멋지네요. 그렇다면 반대로 사장님의 행복은 어디로부터 오나요? 역시 디저트를 맛볼 때일까요? 하하··· 

note.

그렇기도 하지만, 내가 선물한 디저트와 함께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하던 K의 말을 기억하는가? 행복을 주고받는 공간이라니, 들어오자마자 느껴진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는 이 때문이었을까. 분명 K와 닮은 느낌···

 

 

K: 사장님, 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왜 하필 27도씨인 건가요? 

note.

첫 번째로 빵을 반죽할 때 기준이 되는 온도. 두 번째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하고 편안한 온도라는 뜻. 혼자 와도, 여럿이 와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그렇다. 이곳은 불안 속에 사는 나조차 편안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평소라면 행복한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에 위축되어 있었을 터인데, 이곳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안심이 되었다. 차분한 음악 덕분인지, 연노란색 벽지 덕분인지, 혹은 은은한 바닐라빈 향 덕분인지 알 수는 없겠지만.

 

K: 맞아요, 여긴 정말 편안해요.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늘 즐겁구요. 저··· 사람들이 앞으로 이곳을 어떤 공간으로 기억하도록 하고 싶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note.

“음··· 누가 오더라도 같은 자리에서 늘 반겨 주는 공간으로 남고 싶어요. ‘돌아갈 곳이 있다는 느낌’으로요.”

.
.
.


그제서야 K와 이 가게가 줄곧 겹쳐 보였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이곳에 K라는 인물이 선사하는 안식처의 감각을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갈 곳 없는 존재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K. 한 번쯤은 비루하고 피폐한 나에게 질릴 법도 한데, 변함없는 우정으로, 사랑으로 감싸 주며 스스로를 희생하던 그였다. 그는 나의 안식처였고, 숨 쉴 틈이었고, 돌아갈 장소이자 빈틈 없는 행복이었다. 

그리고 K를 닮은 이 공간 역시 그런 곳일지도 모른다며, 어렴풋이 희망을 품었다. 차디찬 세상 속에, 편안히 몸을 기댈 장소 하나 정도는 기대해 봐도 좋겠다고. 그림자 같은 존재에게도 소망할 자격 정도는 있겠다고.

남겨 두었던 마들렌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뒤엉킨 외로움의 굴레마저 사르르 녹여 버리는 달콤한 마법을 느끼며.

 

 

바깥을 향한 두 그림자는 정처 없이 걸어갔다. 

여전히 드문드문 말을 던지고 있는 이는 K뿐이었으나, 그림자 사이가 전에 비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그는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걸음이 차차 느려질 무렵에 멀리서 동이 트기 시작했다.

K는 그제서야 멈춰 서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살짝 내려간 눈매나 총명한 눈빛, 부드러운 밤색 머리칼과 갸날픈 어깨 따위가 제 모습을 쏙 빼닮은 소년의 형상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늘 작별하는 순간은 익숙지가 않아, 그렇죠?

 

K는 담담하게 말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늘 행복한 감정만 안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림자가 있어야 빛도 있는 것 아니겠나요. 시답잖은 이야기까지 전부 들어주면서, 잊고 있던 행복의 감각들을 되새기도록 하는 당신은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랍니다. 아낌없이 내 행복을 나누어 주고 싶은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당신이 있기에 내 행복도 존재한답니다. 그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어요. 

 

(······!)

 

입술을 달싹이는 소리가 났으나 무슨 말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K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벅차오른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기다릴게요, 또 만나는 날까지.

 

K는 고개를 돌려 다시 앞을 향했다. 새벽 공기는 그다지 차갑지 않았다. 두 갈래였던 그림자는 이제 하나가 되어 소년과 발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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