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피망과토마토
만화를 좋아한다. 매력적인 스토리텔링 뿐 아니라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을 볼 수 있는 만화를.
만화책을 좋아한다. 손가락을 끊임없이 종으로 혹은 횡으로 움직여가며 봐야 하는 기계 속 .jpg가 아니라 사각사각 종이를 넘기는 소리를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만화책을.
돈 주고 사기에는 엄마의 눈치가 신경쓰인다. 어렸을 적 손잡이가 닳도록 드나들었던 대여점은 시대의 풍파 속에서 하나 둘 씩 자취를 감췄다. 드문드문 만화책을 구비해 놓은 카페가 있다지만, 내가 이러저러한 만화책이 보고 싶으니 사서 구비해달라고 말하기는 너무 민망하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성인이 되고 신촌에 입성한지 얼마 안 되어 만화카페라는 장르를 알게 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피망과 토마토>(이하 피토)가 신촌에 있다는 것은, 두 말 할 것 없이 행운이다.

피토는 재밌는 곳이다. 만화책이 아니라 만화카페가 웃기는 곳이다. “흡연가능, 10만원 내고”, “카드 환영, 현금 존경”같은 안내문이나, “2092년 상용화를 목표로 진행 중인 도서자동회수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으니 그 전까지는 책을 본 뒤 제자리에 반납해달라”는 부탁문(?) 같은, 다른 데서는 웃길래야 웃길 수 없는 것들이 나를 웃기니 자꾸만 방심하며 피식 소리를 내게 된다. 심지어는 사장님의 직함까지 나를 웃긴다. 그의 직함은 이 곳의 “대표이사”이자 “망가 컨설턴트”. 망가 컨설턴트가 하는 일은? 당연히 만화를 추천해 주는, 전문성이 없으면 절대 하지 못하는 그런 일.

망가 컨설턴트 항시대기!

하하! 정-말 신기하다.

난 흡연을 포기하겠다!
그렇다면 만화카페로서 응당 갖추어야 할 양질의 도서와 편안한 의자는 구비하고 있는가 한다면, 답은 더할 나위 없이 yes! 80년대-00년대 보아왔던 익숙한 만화들 뿐 아니라 최근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웹툰서적도 꼼꼼하게 책장에 자리잡고 있어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만화책 뿐 아니라 영화 관련 잡지나 서적 또한 준비되어 있어 있다. 사장님의 목표는 이외에도 시집, 잡지, 취미서적 등을 다양하게 비치하는 것. 일행 따라 놀러오긴 했는데 만화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게 하긴 싫으니까.
의자 또한 엄청나다. 몇 주 전 이사를 오긴 했지만 2007년부터 신촌에 자리 잡은 피토는 그 때 구매한 의자를 지금도 쓰고 있다. 그리고 이 의자에는 섬유 대신 마약이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분명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신발 벗고 다리 올린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편한 의자에 내 방같은 편안함을 주는 피토의 분위기가 가세한 덕이다. 물론 이는 2인석에서만 가능한 행위예술이므로 혼자 온 사람이라면 손님이 적은 평일 오후에만 이런 사치를 누리도록 하자.

고마워 다행이야
피토는 열일이 곧 본분인 만화카페다. 말할 것도 없이 그의 본분은 재미. 그러나 만화카페의 재미는, 피토의 재미는 단순히 만화책을 왕창 구비해놓은 것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다. 만화책을 다 같이 즐기기 위해 지켜야 될 점을 보는 사람의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위트 있게 써내려 가고, 만화책의 상태를 점검해가며 상태가 안 좋은 책은 새 것으로 바꾸고, 독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국어 가사가 없는 시끄럽지 않은 음악을 선곡하고, 휴지가 없을 때 직원을 호출하기 위해 화장실에 꽹과리를 비치해두는 노력과 애정으로 이루어진 재미다.

이 분 최소 배우신 분

피토X영화관 Collaboration

낡은 책을 교체해줬어. 상냥해…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을 때 이 곳의 사장님은 플레이스테이션같은 게임기를 두고 싶다고 했다. 빔프로젝터를 설치해서 상영회를 열고 싶다고도 했다. 독립영화를 같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가 말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면 <피망과 토마토>는 신촌의 만화카페가 아니라 신촌의 문화 아지트가 될 터다. 이토록 컨텐츠와 공간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문화 아지트는 대체 얼마나 근사한 재미를 줄 것인가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물론 그 원대한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글쎄, 본분에 충실하게, 그냥 재밌게 만화책을 보면 될 뿐이다.

위치 : 서울 서대문구 명물길 27-21, 2층 (봉추찜닭 옆)
문의 : 070-8884-9031
인스타그램 ID: pimangtomato
블로그 : http://pimangtomato.blog.me/
[…] 만화카페 피망과 토마토(애칭 피토)는 이미 잔치에서 한 번 다룬 적 있는 플레이스다. 풍성한 만화책, 쾌적한 실내 환경, 아늑하면서도 유쾌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