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신, 마을 촌
신촌, 새로울 신新에 마을 촌村.
직역하자면 새로운 마을이라는 뜻이다.
내게는 특정 지명을 들으면 그 의미나 유래를 찾아보는 오래된 버릇이 있다. 지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설화를 듣다 보면 그 지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지 않은가.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서울 동부의 중심지, 왕십리.
신촌에서 2호선 열차에 몸을 싣고 좋아하는 음악 몇 곡 듣다 보면 도착하는 그곳.
갈 왕往 자에 열 십十, 그리고 거리 단위 리里로 이루어진 이름이다.
이를 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십 리 더 가라는 의미다.
그럼 자연스럽게 왜, 도대체 어디로 십 리 더 가라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따라온다. 어딘가 모르게 간질거리는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선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한다.
조선 초, 승려의 신분으로 조선의 건국에 일조했던 무학대사는 새 도읍을 정해달라는 이성계의 부탁을 받고 길을 떠났다. 개성을 출발해 계룡산을 거쳐 마침내 한양에 도착한 그는 한강을 건너 지금의 왕십리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지세에 감탄한 무학은 흡족해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과연 새 왕조가 뜻을 펼만한 곳이구나.”
그는 왕십리가 도읍 삼기에 적절한 명당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노인이 소를 끌고 그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못 배운(無學) 소야, 십 리를 남겨 놓고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냐?”
이것이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 깜짝 놀란 무학은 노인에게 “혹시 도읍이 될 만한 곳을 아십니까?”라고 물었고, 노인은 “북서쪽으로 십 리를 더 가보시오. 도읍이 될 만한 터가 있을 것이오”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노인의 말대로 발걸음을 옮긴 무학대사는 인왕산 아래에 도착했고 그 훌륭한 지세에 감탄해 곧바로 이성계에게 이를 알렸다. 그리고 이성계는 그곳에 새 궁궐을 지어 경복궁이라 이름 붙였다. 이렇게 무학대사는 노인을 만난 곳을 ‘십 리를 더 가라’고 했다 하여 왕십리라 불렀고 후세 사람들은 무학이 만난 노인이 변신한 도선대사였다고 믿어 왕십리 옆을 도선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왕십리에 갈 때마다 이 설화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조선의 도읍이 될 뻔했던 안타까운 곳이여…
그렇다면 신촌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신촌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의 ‘새터말’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어로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 ‘새터말’은 조선 건국 당시 풍수지리가 하륜이 이곳을 새로운 수도로 삼자고 주장하면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태조가 새로운 도읍터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이 인근을 둘러보고 갔다고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여러 신하들의 반대 의견으로 인해 신촌이 조선의 도읍이 되는 일은 무산되었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신촌과 왕십리의 유사성을 거론할 수도 있겠다. 새로운 도읍지의 후보로 논의될 만큼 터가 좋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그 당시에는 선택되지 않았고, 오늘날이 되어서야 대학가를 품은 곳으로 거듭났으니.
너무 건조한 설명인가? 왕십리만큼의 다이나믹한 에피소드는 없지만 누가 알겠나, 정설과 야설이 구분 없이 혼재되어 구전으로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위에서 언급된 바 외에는 현재까지 크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없는 까닭에 지명의 유래로 신촌을 톺아보기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신촌이라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는 것도 신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것을 개념화할 때 사전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보는 것도 지식 습득에 있어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니까.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신촌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면 왠지 모를 생동감이 느껴진다. 무언가 끊임없이 꿈틀대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신촌을 ‘젊음의 거리’라고 한다. 그리고 그 젊음은 보통 20대 대학생들의 치기 어린 행동—밤새 술 마시고 죽기, 비둘기 밥 만들기, 낭만을 찾아 떠나기—뭐 그런 것들로 대변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또한 신촌의 다양한 면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내 시야에는 계속해서 이와는 조금은 다른 장면들이 들어온다.
나이를 먹고선 보기 힘들게 된 형형색색의 안경을 쓰고 당찬 걸음으로 길을 횡단하는 초등학생 아이들, 고요한 새벽의 밤과 함께 깨어 자신의 몸을 싣고 갈 운송수단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그러한 이들의 허기진 마음과 배를 채워주는 자그마한 포장마차들, 고래 울음소리와 같은 주파수를 내뿜으며 신촌 골목골목을 누비는 쓰레기차와 환경미화원들,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며 부단히 인생의 푸르른 순간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해질녘이면 오랜 가게 앞에 서서 담배를 태우는 중년의 가게 주인도 있다. 어쩐지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시선, 오가는 행인들을 보며 반쯤은 잊어버린 젊은 날을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반면 카페 한구석에서는 저녁 업무가 끝난 듯한 직장인이 서류를 정리하며 늦은 커피를 마신다. 나이 듦이 곧 여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골목을 지나면 묵묵히 채소를 정리하는 노부부가 있다. 천천히 오가는 손길에서, 이곳을 오래도록 지켜온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이 흐른다. 길 건너편, 버스킹 무대 앞에서는 누군가가 손뼉을 친다. 그 사람은 대학생일 수도, 오래 전 즐겨 듣던 노래가 흘러 나와 반가운 마음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 퇴근길 직장인일 수도, 혹은 그저 이 거리를 늘 걸어 다니는 신촌의 얼굴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단순히 젊음이라고 통칭하기엔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는 생명력 말이다. 신촌은, 누군가에게는 이제 막 시작하는 공간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한때 머물다 간 자리일 테며, 또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장소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의 새로움이란, 단순히 20대의 낭만과 치기로만 설명할 수 없는, 시간과 세대가 겹쳐 만들어낸 어떤 흐름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신촌이라는 지명은 새로운 마을을 뜻하지만, 나는 그 새로움이 단순히 젊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때로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들, 보이지 않았던 순간들이 모이고 이어질 때, 비로소 신촌이라는 공간이 완성된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것 같아도 결국은 연결된 존재들이다. 때로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우리는 좁은 시야각에 갇혀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이들과, 나와 같은 버스에 탄 이들과, 심지어는 나와 이렇다 할 공통점 하나도 공유하지 않는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종종 까먹곤 한다. 그러나 이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꺾으려는 정도의 노력만 있어도 충분히 알아챌 수 있는 진리이다.
하늘을 올려다 볼 때 별자리가 선으로 이어지듯, 신촌의 골목골목에서 마주치는 얼굴과 풍경들이 서로를 잇고 이어, 하나의 흐름이 된다. 같은 거리를 걷지만, 같은 신촌을 살고 있지는 않은 사람들. 그러나 그 별의 조각들이 모여 의미가 생기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신촌이 가진 진짜 생명력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촌이라는 이름에 또 다른 의미를 지어 넣어주고 싶다.
별 신辰에 마을 촌村, 별들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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