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 윤지민, 디자이너 윤슬
차갑지만 고요하게 가라앉은 겨울 어느 오후. 전화기 너머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슬과 말문을 텄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잔치 디자인팀에 디자이너이자 서강대학교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윤슬입니다.
2023년 2학기 잔치 마지막 회의 후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마지막 회의가 12월 연말이었잖아요. 한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다짐하는 시간을 보냈던 거 같아요. 누구나 그렇듯이 연말이나 새해가 오면 일상적인 만남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돼요. 학교생활로 바빠서 못 봤던 친구들, 가족들과 연말, 새해를 보냈답니다.

따뜻한 연말을 보내셨군요. 에디터명을 ‘윤슬’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다른 분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에디터명을 정하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뭘 하면 좋을지 친구들, 가족들에게 물어봤지만 재미있는 이름만 추천해 주더라구요. (웃음) 혼자서 고민하다가 정한 게 윤슬이에요. 제가 윤 씨니까 윤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떠올려서 잔치 안에서의 또 다른 정체성을 만들었죠.

제가 평소에도 잔잔한 물결을 보면서 물멍 때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윤슬을 좋아해요. ‘윤슬’이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는 반짝이는 물결인데, 단어가 주는 따뜻함과 평온함이 좋았어요. 잔치에서의 활동도 반짝이는 순간이 되어서 저의 ‘윤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었어요.
에디터명이 너무 잘 어울려요. 디자인팀에 들어온 이유는 뭔가요?

지금은 사회학과로, 디자인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고 창작하는 과정을 좋아했거든요. 디자인에 대한 열망들이 남아있어서 저의 열망을 해소할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글 쓰기보다는 디자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다른 팀보다도 디자인팀이 제일 끌렸죠.
디자인팀 첫인상은 어땠나요?
너무 좋았어요. (웃음) 처음엔 지구 언니가 여행 가 있어서 보리랑 만나고, 나중에 지구 언니를 만났죠. 다들 배려하고 북돋아 주는 분위기예요. 제가 낯을 엄청 가리는 성격인데도 팀에 잘 스며들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소속된 집단에서 저보다 더 성격적으로 다양하고 배울 점도 많은 게 좋은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어서 제가 많이 배우고 의지했죠.
지구 언니는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팀장으로서의 인간상 그 자체였죠. 잘 이끌고 칭찬으로 더 격려해 줬어요. 보리는 아무래도 동갑이니까 편안하기도 해서 잘 친해졌어요. 디자인적으로 궁금한 점이나 소소한 고민거리를 물어봤던 시간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네요. 디자인 팀 회의나 일 진행 분위기는 어떤가요?
일 진행할 때도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예요. 서로 피드백할 때 경청하고, 의견을 소중하게 여기죠. 다른 분들은 디자인 전공자고 저는 비전공자라 실력적으로 부족한 면들이 많아서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칭찬과 피드백을 잘 해줘요. 스스로 더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분위기 속에서 편안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번 학기 플레이스팀 카드뉴스 제작을 맡았어요. 사실 신촌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신촌에서 많이 생활할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생각보다 신촌의 공간들에 대해서 더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플레이스팀을 맡아서 글을 많이 읽어보니까 장소의 새로운 매력들을 알아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다른 독자들보다 먼저 글을 읽었던 것도 더 좋았어요. 신촌의 새로운 공간들을 맨 처음 소개받는 기분이랄까요. (웃음) 특히나 플레이스팀에 사진을 잘 찍는 분들도 많아서 카드뉴스를 제작할 때 사진들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장소에 대한 매력이 돋보일 수 있게 색채를 보정하고, 색감도 조정하구요. 색채를 많이 고민했던 거 같아요.
저는 보케 카드뉴스 유럽 느낌 나서 너무 좋더라구요 (웃음)
감사합니다. 보케 전에는 초록색이 아니라 갈색으로 분위기를 냈었는데, 그 글이 초록색을 테마로 하다 보니 새로운 색감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초록색이라는 하나의 색감을 중심으로 카드뉴스의 분위기를 내보려고 했던 작업이었죠.

디자인팀의 매력은 뭘까요?
글로 표현된 감각을 시각적으로 다시 표현하는 거요. 저만의 느낌으로 재구조화하는 재미가 있는 거 같아요. 색다른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은 색감 하나에 따라서도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으니까요. 독자들에게도 글을 전달할 때 디자인을 거치면 감각을 입체적으로 제공할 수도 있구요.

여러 디자인을 시도한 흔적
반면에 어려웠던 점이 있나요?
많았어요. 저는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니까요. 처음부터 도전의 순간이었죠. 카드뉴스 만드는 게 익숙해질 때쯤 실물 잡지를 제작하게 되고… 또다른 도전의 순간들이 펼쳐지더라구요. 특히 실물 잡지는 디자인할 때 인디자인 툴을 사용하거든요. 저는 그런 툴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사용법을 모르는 건 당연하구요… 그래서 처음에 애를 먹었어요. 학기 중이라 학교 다니면서 시간을 쪼개 혼자 유튜브 영상 찾아서 툴 사용법과 단축키를 익혔어요.

실물 잡지 글을 처음 받은 게 도리님 글인데, 디자인하고 자괴감도 들었어요.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잡지의 이미지를 제 실력으로 구현해내기가 어려웠거든요.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그만큼 결과가 안 나온다는 생각에 답답하기도 하고, 학기 중이라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기도 하고… 손이 그것만큼 따라주지 못하니까 마음만 조급해지고… 다른 팀원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어요.
말로만 들어도 힘들었다는 게 느껴져요. 지금은 어떻게 극복했나요?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잖아요. (웃음)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 최선이 익숙함으로 이어지더라구요. 부족한 만큼 더 빨리, 시간 투자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했어요. 잔치 활동 자체가 저의 안온한 삶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시작했던 거예요. 새로운 선택, 모험이었던 만큼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했던 시행착오라 생각해요. 저를 어렵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저를 성장시킨 것도 사실이에요. 경험한 시행착오들이 나쁘게만은 기억되지 않아서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라 느꼈어요.
멋있는 마음가짐입니다. 디자인할 때 본인만의 원칙이나 스타일이 있나요?
에디터의 의견과 의도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디자인 자체가 글 뼈대에 살을 붙이는 과정이라 에디터가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싶은지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거든요. 에디터분들과 최대한 소통하려고 노력한 거 같아요.
이번 학기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업이 있나요?
개미 언니의 카드뉴스가 제 첫 작업이라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처음이라 떨리기도 하고, 글을 어떻게 추려야 할지도 고민이 많았거든요. 또 다람님의 해피앤피스커피클럽 작업할 때도 사진이 너무 예뻤어요. 편집하는 내내 힐링했던 기억이 나네요. 예쁘게 만들고 싶다는 느낌을 자극시키기도 했구요. 이렇게 떠올리니까 시나리 언니, 도리님 것도 다 좋았어요. (웃음)
실물 잡지도 하나하나 정성을 쏟아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도리님 파트를 처음에 만들었다 갈아엎기도 하고…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우주먼지님 것도 시험 기간에 만들어서 시간이 촉박했는데 제 취향의 레퍼런스를 보내주셔서 만들면서 재밌었어요. 가장 자신있다고 느껴졌거든요.
엄청 알찬 시간이었네요. 잔치 한 학기 활동이 끝나고 변한 점이 있나요?
잔치 활동이 끝났지만 디자인팀은 아직 열일 중입니다. (웃음) 실물 잡지가 남았어요. 꾸준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또 다른 팀 글도 평소에 읽지만 디자인을 맡은 플레이스팀 글을 수십번 읽기 때문에 애정이 많이 생겼어요. 글에 담긴 내용이 일상 곳곳에서 떠오르기도 하구요. 저번에 친구들이랑 카페 가서 무화과 파운드 케이크를 먹는데 다람님의 글이 떠오르는 거예요. ‘우리의 이별은 잘 익은 무화과 같다’는 문장이 생각났어요. 또 신촌에서 친구들을 만나려고 카페를 찾을 때 보케가 뜨면 엄청 반갑기도 하구요. 신촌의 공간과 그곳에서 느끼는 저의 감정들을 추억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저한테도 신촌이 소중한 공간으로 여겨지게 돼요. 신촌 생활에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떠올리려는 모습을 발견한답니다.
다음 학기 디자이너로의 포부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새롭고 다채로운 디자인에 도전하고 싶어요. 패턴과 색감을 화려하게 넣어보고 싶기도 하구요. 디자인을 처음 하다 보니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디자인이 비슷해진 면도 있는데, 탈피하고 싶어요. 타이포나 색감을 다양하게 사용해서 글마다 특색을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게 목표예요. 그러려면 아무래도 디자인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죠.
마지막으로 이번 인터뷰의 테마 질문입니다. 인생곡을 하나 골라주세요!

아이유의 ‘무릎’으로 하겠습니다. 가사가 공감도 많이 되고, 위로도 많이 되어주는 곡이어서요. 아이유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자작곡이라고 해서 처음 듣게 되었어요. 또 ‘어렸을 때는 잘 잤는데 어른이 되니까 조그마한 걱정이나 기척에도 잠을 설치고, 경계하는 어른들의 슬퍼지는 마음을 담았다’라는 멘트가 저 같았거든요. 어렸을 때 분명 고민이 없었는데, 성인이 될수록 잠도 못 자고 고민으로 머릿속이 가득 찰 때가 많아서요. ‘스르륵 깊은 잠을 잔다’는 가사를 들으면 평온한 마음으로 고민을 떨쳐내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느낌이에요. 저만의 자장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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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은 안온함을 좋아하는 자신의 성격이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좋다고 했다. 그럼에도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 말을 내뱉는 그녀는 일렁이는 물결을 닮아있었다. 인터뷰로 비친 그녀의 단단함은 윤슬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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