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정해영, 에디터 유니콘
그런 글이 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는.
그런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도대체 어떤 글을 쓸까 궁금해지는.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 있다.
글을 보면 사람이 궁금해지고 사람을 보면 그의 글이 궁금해지는.
도대체 궁금한 그 사람, 유니콘을 한번 알아보자.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간단하게 부탁드려요!
유니콘: 저는 마지막 학기를 앞둔 대학생 정해영이라고 합니다. 어쩌다 보니 글을 쓰는 걸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잔치에서는 유니콘이라고 불려요.
유니콘의 마지막 겨울방학,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번 겨울방학은 뉴질랜드에 3주 동안 여행을 다녀왔어요. 정말 좋았죠. 원래 저는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굳이 ‘나의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않는 스타일이거든요. 이번에도 친구들 덕분에 가게 됐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은 거예요. 이번 여행을 통해 제 스타일에 꼭 맞는 나라를 발견한 느낌? 게다가 뉴질랜드에서는 제가 평소 하지 않던 것들도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수영을 하지 못하는데 뉴질랜드에서는 바다 수영을 마음껏 해본다든지..그런 새로운 도전을 참 많이 했죠.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바다 수영은 너무 고난도 아닌가요?
한국의 동해는 갈수록 깊어지는 지형이라면 뉴질랜드 바다는 수평선까지도 지형이 일정하게 단단해요. 마치 거대한 수영장 같은 느낌이죠. 수심도 얕고요. 수영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그 속에서 파도 맞고, 햇빛 좋으면 나와 태닝도 하고 밥도 잘 먹고…. 너무 제 스타일과 맞는 여행지를 다녀와서 좋았어요.
뉴질랜드가 마음에 무척 든 나머지 고향을 바꾸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이미 바뀌어있습니다. 전 명예 뉴질랜드인이에요.
여행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이 있나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해변의 풍경이었어요. 해변에서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이나 자신의 몸컨디션에 상관없이 벗고, 기타를 치고, 여유롭게 태닝을 하고, 시시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풍경이 너무 자유로워 보였어요. 제가 이러한 풍경 속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만한 느낌이었죠. 한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그 자유, 해변의 풍경에서 느꼈던 자유가 아무래도 가장 인상 깊었어요.

유니콘이라는 에디터 명을 짓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보고 있는 유튜버 구독자 애칭이 유니콘이기도 하고, 이에 더해서 유니콘이 제가 좋아하는 이미지의 집합이기도 해서 유니콘을 에디터 명으로 하게 되었어요. 유니콘은 귀여우면서 신비롭고, 유니크하면서도 또 다양성의 상징이기도 하잖아요. 정말 제가 좋아하는 이미지들을 짬뽕해 놓은 게 딱 유니콘이라서 하게 되었죠.
잔치, 그것도 피플팀에는 어떻게 들어오시게 되었나요?
놀랍게도 피플팀은 제 자의로 들어온 것은 아니에요. 구잔들의 판단에 의해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원래 지원했던 팀은 아트팀이었어요. 이전부터 글을 써오던 플랫폼이 아트팀과 결이 비슷해서,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피플팀은 2지망으로 지원하긴 했었어요. 그런데 면접 때 제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더니, 갑자기 피플팀으로 합격하게 되었죠. 결론적으로는 너무 좋은 판단이었죠. 제겐 피플팀으로 들어온 것이 다른 것보다 더 큰 기회였던 것 같기도 해요. 구잔들이 저를 피플팀으로 넣어준 것은 제 삶에서 신의 한 수였다고 말하고 싶네요.
2022년부터 꾸준히 칼럼이나 에세이를 기고하셨는데, 칼럼이나 에세이 쓸 때와 인터뷰를 쓸 때, 다른 점이 있나요?
아무래도 시선을 나를 중심으로 두느냐 다른 사람 중심으로 두느냐가 기본적인 차이인 것 같아요. 칼럼이나 에세이를 쓸 때는, 온전히 저의 책임이 있는 제 글이라 생각해서 도전적으로 글을 써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들을 자유롭게 늘여놓습니다. 칼럼이나 에세이는 저만의 생각이나 이상, 표현이 오히려 더 좋게 작용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인터뷰는 아무래도 그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니 표현을 조심하려고 하죠. 너무 나의 색채 때문에 저 사람이 이용당하는 것 같이 느껴지면 안 되니까요. 물론 지금까지 그러기는 했어요. 반성합니다. (웃음)
저는 오히려 그 색채가 흥미로웠어요. 인터뷰마다 유니콘만의 색채가 느껴지지만 누구랑 섞이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느낌? 체리 핑크와 피치 핑크가 다른 것처럼요.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이네요.
사실, 칼럼과 에세이도 그 기저에는 다른 사람으로 향하려는 마음이 깔려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나의 글이긴하지만 내 이야기만 들어가있는 것은 일기에 불과하잖아요.
전 칼럼을 쓸 때도 시선을 너무 나에게만 두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의식적으로라도 내 이야기를 타인 그리고 세상과 연결 짓는 것, 그런 것들이 칼럼과 에세이를 쓸 때도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에세이와 칼럼, 그리고 인터뷰는 참 비슷하면서도 다르네요. 그렇다면…. 유치한 질문인 건 알지만 유니콘님은 뭐가 더 좋으세요?
네? 너무 유치하다. 정말. (새침)
잔치랑 아트인사이트가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 거예요?
진짜 너무하네요. 그냥 저도 빠질게요. 다 같이 죽자….
대답을 듣기 전까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고르기가 참 어려워요. 아트인사이트가 내 초석이 다져졌던 곳, 마치 강원도 평창 같은 공간이라면 잔치는 제2의 고향, 서울 같은 거죠.

결국 누구를 구할거냐는 질문엔 대답하지 않고 넘어가는 유니콘…
유니콘 에디터의 인터뷰는 에디터 명만큼이나 다 특별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이 선정부터 남다르셨는데, 혹시 인터뷰이 선정에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요?
인터뷰이 선정에는 기준이란 것은 없었고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꾸준히 써왔는데, 그동안의 글을 돌이켜보니 주류가 아닌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썼더라고요. 저에겐 주류가 아닌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게 더 재밌기도 하고, 저는 다른 것들보다 그들의 목소리를 더 싣고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여러 글로 써보고 있었는데, 글도 좋지만 진짜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죠.
그러니 그 마음이 투영되어 타투라든지 퀴어라든지, 그런 대상들을 주의 깊게 보게 되고 또 시선이 가니 인터뷰로 이어지게 된 거죠.
유니콘의 글이 올라오면 잔꾼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죠. “유니콘 같은 글이다.” 유니콘의 글은 유니콘을 똑 닮았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어렵네요. 이건 당신이 저에게 말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지.
그러게요. 문체 때문인지…. 소재 때문인지(티백 만지작) 잠시 고민 좀 해볼게요. 제가 평상시에 어떻죠? 좀 별나긴 한가요?
음…. 저는 생각보다 투명한 사람인 것 같아요. 물론 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연기는 하고 살지만, 그것은 저의 텐션의 정도를 연기하는 거지 제가 느끼고 있는 것들의 카테고리 자체를 바꿔서 연기하지는 못해요. 그런 면이 글에서도 투명하게 드러나나봐요. 자신이 가진 카테고리는 계속 드러나는 법인데, 제가 또 유독 투명한 편이라서 그게 두드러지나 봅니다. (웃음)
제 생각을 물으셨으니, 대답하자면, 제 생각엔 유니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확고해서인 것 같아요. 그게 유니콘의 성격처럼 유니콘의 일부가 되어서 글에도 나타나는 게 아닐까싶습니다.
인터뷰나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나,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럴 거면 질문지를 미리 주지하는 원망이 유니콘의 눈빛에서 느껴진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이 글이 나에게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든 확장이 되는가를 항상 염두에 두는 것 같아요. 내 안에서만 머무는 글은 사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읽고 싶지도 않거든요. 나에게만 머무는 글은 일기가 아닌 이상, 무의미한 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내가 남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썼는데, 안 읽히는 것만큼 무의미한 글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제 글을 쓸 때, 계속 확장,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신경 써요.
지난 학기, 유니콘이 했던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제가 썼던 세 글의 주제들 모두 한 번쯤 말해보고 싶었던 것이었기에, 주제로만 결정한다면 정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제를 떠나서 정한다면, 두 번째 글인 것 같네요. 제 두 번째 인터뷰, 더 빠에 관한 글은 인터뷰에서만 끝나지 않고 어떤 관계 하나를 내가 만든 느낌이라 특히 기억에 남아요. 그 인터뷰를 하면서, 저는 더 빠의 사장님과의 관계나 잊지 못할 공간을 인터뷰를 통해 만들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물론 제가 그곳을 인터뷰 이후로 또 찾아가진 못했지만, 서울에서 제 기억에 이렇게 남는 공간이 몇 없거든요. 신촌으로 한정하면 더더욱 그렇고요. 아마 제 글이 가장 많이 확장된 사례가 아닐까 싶어요.

잔치를 하면서 다른 에디터들의 글들을 참 많이 읽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무엇인가요?
하나만 고르려니 참….
제가 앞에 있다고 해서 굳이 제 글을 고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껏 기대에 찬 눈으로)
사실 저는 글에 가장 담고 싶어 하는 게 글의 재미거든요. 글 읽는 맛, 사람을 웃겨주는 재미. 저는 그 재미란 것을 제가 제일 못 가졌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너무 갖고 싶다고 생각을 계속했는데, 그 재미라는 게 가장 두드러지는 글이 새솔 씨 글이었어요. 가볍단 말은 절대 아니고요. 제가 글을 쓸 때는 읽을 맛이 나게 써야 한다는 걸 대전제로 깔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더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다른 분들 글도 너무 훌륭하죠. 시나리 에디터의 깊이 있는 표현들 그런 것들도 너무 기억에 남지만 제가 제 스타일을 바꿔봐야겠다고 느낀 데에는 새솔 씨 글의 영향이 컸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자꾸만 치솟는 입꼬리를 숨기며) 어쩌다보니 새해 덕담 릴레이가 된 것 같은데, 저도 유니콘의 첫 글을 보고 놀람과 동시에 많이 반성했어요.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 인풋이 없어서 이런 글을 쓸 수 없었구나…뭐, 이런 종류의 반성을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약 4개월. 4개월 동안의 피플팀 에디터 활동은 유니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저는 생각보다 저에게 엄청나게 몰두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글을 전혀 안 읽었던 적도 있을 정도로. (웃음) 저는 정말 남들이 보기보다, 생각보다 나한테만 과할 정도로 몰두해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인터뷰하면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글이 반강제적으로라도 많이 보고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러면서 저도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피플팀 에디터로서의 4개월은 다른 사람한테 호기심을 가지고 내 품에 들여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그것을 배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죠.
피플팀 말고 잔치로 이야기하자면, 내 글을 정성스럽게 봐주고 있는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게 너무 소중했어요. 서로 피드백을 나누고 각자의 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귀했죠. 사실 4개월이면, 사람을 알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잖아요. 그런데도 잔꾼들은 엄청 친밀한 느낌이고, 괜히 애틋해요. 오래 보고 싶고, 나중에라도 가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맞아요. 잔꾼들은 다른 모임에서 만나는 것이랑은 다른 속도로 친해지는 것 같아요. 오래 봤던 친구라도 내 글을 보여주는 건 또 다른 의미잖아요.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의 글을 보여주며 관계를 새롭게 구축해 나가는 경험, 그건 참 귀하고 소중하죠.
정말 소중해요. 그런 관계는 정말 밀도 자체가 다르거든요.
2024년, 꼭 써보고 싶은 글이 있다면?
막연하게 말하면, 재밌는 글. 재밌어서 읽히는 글을 꼭 써보고 싶다. 그리고 어제 문득 들었던 생각인데, 혹시 <괴물> 보셨어요?
그거 아세요? <괴물>이라는 영화를 말했을 때 어떤 영화를 떠올리는지에 따라 세대가 나뉜다고….
아! 봉준호의 괴물이냐 고레에다의 괴물이냐에 따라서?
전 봉준호거든요.
저는 고레에다가 먼저 생각나네요. 그러면 전 MZ인 거죠? (묘한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여하튼 고레에다의 <괴물>을 보고 나서 다음 학기에 잔치에서 글을 쓴다면, 이곳 신촌의 청소년들을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들의 목소리도 생각해 보면 되게 희미하잖아요. 아무래도 신촌은 성인들의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분명 이곳에도 청소년들이 많이 살고 있을 테니까. 그들의 목소리도 좀 돋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대되네요. 생각해 보니 확실히 우리 사회에선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청소년이었는데 말이죠. 그걸 우리가 참 잊고 살아요.
끝으로, 이번 인터뷰의 테마 질문입니다. 인생곡을 하나 골라주세요!
저의 인생곡은 완전 따끈따끈한 신곡입니다. IU의 <Love wins all>
사실 인생곡에 대해 생각을 안 하고 있다가 이 노래가 나오고 나서 이걸 인생곡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Love wins all>에서 화자는 엄청 절절하게 사랑을 말는데, 여기서 나온 표현들이 이 사람이 가사를 쓰기 위해 생각해 냈다기보다 어떤 사랑의 궁극에 다가가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사랑의 궁극에 다가가서 엄청 좋기도 하고 헤매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한 그런 감정들을 다 겪고 나서 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가사를 쓴 사람 같은 거예요. 저는 아까도 말했듯 저에게만 매몰되어있는 사람인데, 언젠가는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순수하게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걸 요즘 제 인생 목표로 잡아봤거든요. 그런데 이 노래는 제가 바라는 그 사랑, 사랑의 궁극을 해본 것 같은 사람의 노래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서 자기 암시처럼 나도 뭔가 그런 사랑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인생곡으로 삼았어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곡 설명 중에 핵심적인 키워드가 혐오와 사랑이에요. 그런데 그 단어들은 제가 20살 때부터 세상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했던 단어거든요.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했던 두 단어를 기반해서 나온 노래라고 하니까 더 와닿더라고요.
사실, 다른 노래들도 너무 좋은 게 많은데 그래도 결국 팬심으로 이렇게 선정해 봤습니다.
보고 있나요. 아이유 누나?
오늘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매번 뒷조사를 하기만하다가 뒷조사의 대상이 되신 기분은 어떠신지..
일단은 제 인터뷰를 하신 분들에게 너무 미안하네요. 이제껏 저는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을 많이 드렸던 것 같거든요. 이렇게 인터뷰이가 되어보니 대답을 준비하는 데도 참 어려우셨겠어요. 인터뷰라는 형식 자체가 인터뷰어보다 인터뷰이에게 부담이 되는 것 같아서, 새삼스레 미안하네요. 그래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역시 인터뷰는 아주 좋은 대화임을 또 한번 느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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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짧은 거 아냐?”
분량을 걱정해주는 그는 역시 프로다. 이대로 떠나기가 아쉬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 일단 그를 붙잡아두기 위해 아무 질문이나 던져본다.
<부록> 아쉬워서 떠나지 못한 나 그대를 위한 즉흥 인터뷰를 빙자한 수다 엿보기
새해니까 묘비명 한번 정해보시죠.
해영: 새해부터 참 희망차네요. 그래요,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니까. 새해에는 역시 묘비명 정하기죠. 제가 딱 한 번 묘비명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군대에서 대화하다가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 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고 했거든요.
제가 죽기 전에 무언가를 남기면 그대로 제가 기억될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생각보다 안에 든 게 없는 사람이에요. 저는 쉬고, 먹고, 자고…. 일차적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적인 사람이거든요.
새솔: 에피쿠로스학파 같네요.
해영: 네, 거의 에피쿠로스처럼. 그래서 저한테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제일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요.
새솔: 그건 그렇네요. (고관대작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는 해영을 상상하려다 포기한다. 대문자 N에게도 그것은 참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뉴질랜드 이야기 더해주세요.
해영: 재미있는 게, 뉴질랜드에서는 정말 사소한 것들도 뉴스거리가 되더라고요. 어느 작은 가게의 주방에서 불이 난 것이 다음 날 뉴스에 실릴 정도로. 아마도 뉴질랜드는 한국처럼 큰 사건들이 없나 봐요. ‘뉴스거리’라고 불리는 큰 해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평화롭고. 그래서 더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해요.
새솔: 그건, 우리가 너무 가까이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햄스터도 케이지를 분리하라고 그러잖아요.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받는다고. 봐봐요. 지금도 건물들이 바로 옆에 있잖아요. 뉴질랜드는 땅이 넓으니까,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어도 되는 거지.
해영: 맞아요. 맞아.
새솔: 서울에만 지금 우리나라 인구의 약 4분의 1이 살고 있는데, 그러니 보기 싫어도 봐야 하고 스트레스받고.
해영: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끼리의 물리적 거리가 진짜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 촘촘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저 뉴질랜드 갔다 와서 다짐했잖아요. 저 진심으로 제주도에 가서 살 거라고 다짐했어요.
새솔: 와. 너무 어울린다.
해영: 한국의 뉴질랜드가 제주도니까요. 너무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새솔: 돌담집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된 해영이 벌써 눈에 그려져요. 매일 아침 차 한 잔을 대접하지만, 말은 안 걸어. 손님과 굳이 마주치려 들진 않지만, 손님 대접은 극진한 주인장.
해영: 귤 들고 가서 놓아둔 뒤 문만 두드리고 슬쩍 사라져.
새솔: 그리고 바다로 나가서 하루종일 물멍하고 있는거죠. 정말 어울려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 하다 보니까 갑자기 이 공간이 답답해지는 느낌이 드네요.
해영: 맞아요. 저도 마침 그 이야기하려 했어요. 빌딩으로 가려진 서울이 새삼스레 답답해요.

최근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해 주세요.
해영: 이 책이요. 헤르만 헤세의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읽으려고 챙겨온 책을 주섬주섬 꺼내 보인다..)
새솔: 저기요. 인상 깊은 책은 지금 당장 기억나는 책이 아니에요.
해영: 아 그런 거예요? 최근에 인상 깊었던 책이라…. 제가 기억을 정말 못해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아직 30페이지밖에 읽지 않았지만. (새솔의 따가운 눈초리를 외면하며) 이 책은 헤르만 헤세라는 사람이 정원을 가꾸는 과정도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정원을 가꾸면서 보게 되는 자연의 순환 같은 것을 엄청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든요. 표현들도 엄청나게 시적이고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정원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순환을 삶의 순환으로 완전히 대입해서 볼 수가 있어요. 이 사람은 지금 정원 가꾸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연에 가까운 삶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이 책에서 말하는 순환이라는 게 제게 정말 인상깊게 다가왔는데, 또 그걸 생각하며 제가 적은 글귀가 있어요.
(잠시 책을 펼치고 글귀를 확인한다)
순환한다는 것을 인생이라는 큰 단위로 볼 수 있지만 더 작은 단위로는 한 달, 일 년이 계속 순환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지난하게 무력하던지, 별로라던 지 그런 취약한 상황들이 계속 이어질 것 같지 않은 거예요. 지금이야 어떻든 또다시 순환될 수 있을 것 같다. 순환은 자연의 엄청난 대전제니까. 그래서 저는 순환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들여오면 또 무섭지만은 않다고 썼거든요.
새솔: 와.
해영: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원 가꾸기는 게으르면 안 돼요. 순환의 조건은 가꾸기예요. 그래서 자기를 가꾸려는 노력은 필수로 있어야 합니다.
새솔: 아프네요.
해영: 저도 아팠어요. 하지만 가꾸기만 한다면, 지금 당신이 당신을 가꾸고 있다면 모든 게 다 순환이 되지 않을까.
새솔: 순환이라는 거 정말 좋은 말인 것 같아요. 30페이지만 읽었는데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전체를 읽으면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해요.
해영: …헤르만 헤세 짱!
새솔: 헤르만 헤세 짱!
순환이라고 하니, 제 좌우명이 생각나요. 저는 인생의 좌우명이라는 걸 되게 어렸을 때 정했거든요. 11살 때, 어떤 고전 설화 같은 것을 읽었는데 거기에 나온 말이 너무 감명 깊어서 여기저기 적었어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다.”
해영:지나간다는 것, 순환이랑 비슷한데요?
새솔: 비슷한 말인 것 같아요.. 기쁠 때도 지나가고 슬플 때도 지나가니까 기쁠 때는 너무 자만하지말고 슬플 때는 너무 슬퍼하지 말고. 어찌보면 이것도 기쁨과 슬픔이 순환한다는 뜻이겠죠? 아무리 슬프거나 기쁜 일도 반드시 지나간다고 생각하니, 정말 무섭지만은 않네요.
해영: 그것이 자연의 대전제니까요. (웃음)
진짜 끝.
.
.
.
“진짜 끝이야?”
진짜 끝이다. 더 기대하셨던 분들에겐 심심한 사과를, 이제 슬슬 지루해질 참이었던 분들에게도 역시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터뷰에서 내가 알아낸 것은 단 하나의 대전제였다.
다정한 글은 다정한 마음에서 나온다.
내가 읽은 유니콘은 참 다정한 사람이었다. 보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될 만큼.
잘 가꾼 정원이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처럼, 자신을 잘 가꿔낸 사람도 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것이다.
그의 정원이 순환으로 인해 더욱 더 충만해지기를 바라며…

진짜 진짜 끝!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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