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안녕!00아 나 왕잔치야
“참치 통조림도 좀 챙겨가지. 혼자 살면 먹을 것도 없잖아.”
“아, 엄마. 거기서 사 먹으면 돼. 무겁게 무슨.”
“넌 돈 많아서 좋겠다. 그럼, 이 수면양말은 챙길래? 배즙은?”
“엄마. 넣을 자리가 없어, 자리가. 영영 가는 것도 아닌데 필요하면 또 와서 가져가면 되지.”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너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가방을 이고 현관문을 나선다.
무거운 가방에 대한 불만으로 너의 입은 댓발 나와 있지만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설렘이 가득하다.
“넌 엄마랑 떨어져서 사는 게 그렇게 좋니?”
“에이, 그게 좋은 게 아니라 대.학.생인게 좋은거지.”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네가 벌써 대학생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른지. 그러고 보면 나도 이 신촌의 거리를 우리 집 안방처럼 누볐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 거리를 네가 누비겠구나.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널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신촌의 거리를 걸어본다.

앞으로 네가 바라볼 신촌은 어떨까? 나의 신촌과는 많이 다르려나.
나의 신촌은…
‘띠링’
순간 휴대폰이 얕게 진동한다. 기억 저 너머의 이름으로부터의 메일 한 통.
“안녕.OO아 나 왕잔치야..?”
이건 우연일까, 운명일까. 너를 신촌에 두고 돌아오는 길, 나의 신촌에서 빠질 수 없는 ‘잔치’로부터 메일이 왔다.
정확히는 자신을 ‘왕잔치’라고 칭하는 기억 저 너머의 인물로부터.
Y
E
S
s
s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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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OO이와 같이 잔치를 하고 있는 뉴사운드라고 합니다. 별명이나 애칭을 사용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케이블: 안녕하세요. 저는 케이블이라고 합니다. 당근마켓에서 쓰고 있는 아이디가 케이블이에요.
두토리: 안녕하세요, 26년 차 엄마이자, 30년차 초등교사인 두토리입니다. 사실, 제 이름이 ‘현미’거든요. 현미 두 톨이라고 해서 두토리입니다. (웃음)
춘식이: 안녕하세요. 저는 춘식이예요. 제 이름의 남자 버전이 춘식이인데, 어렸을 때부터 제가 남자 같아서 다들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최쫌: 안녕하세요. OO이 아빠이고요, 가족끼리의 별명은 최쫌입니다. 이야기하다가 습관적으로 ‘쫌’이라는 말을 많이 써서 별명이 되었어요.
먼저, 부모님이 생각하는 OO이에 대해 알고 싶어요. 저희가 아는 OO이와는 사뭇 다를 것 같기도 한데요, 부모님이 생각하는 OO이는 어떤 아이인가요?
케이블: OO이는 저희 집에서 가장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아이죠. 저희 집 식구들은 다 극 I, 내성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인데 OO이만 E,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을 가졌거든요. 집에 오면 저희들은 조용조용하게 늘어져 있다면, OO이는 으쌰으쌰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OO이는 아기때부터 조금 까칠한 면이 있는 친구였어요. 되게 예민하고 까칠한데 눈물은 많고, 배려심도 있는 그런 아이였죠.
또, 저희 집에선 OO이가 손이 너무 작아 애기 손이라고 불리는데 동시에 큰 손이라고 불리기도 하거든요. 집안의 대외협력을 담당하고 있는터라. (웃음) 대외 협력이나 큰일 이런 것들을 맡고 계시는 큰 손이시다보니 음식을 옮긴다거나 그릇을 치운다거나 하는 자잘한 일은 잘 못하시는 편이에요.
두토리: OO이는 엄청 사랑스러워요. 뭐 하나 사주면 무척이나 좋아해주고, 잘 웃고, 잘 울고,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죠. 여린 듯 보이지만 속이 단단하기도 하고요. 듬직한 면도 있어요. 우리에게는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밖에선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요. 친구들이 생각하는 00이는 어떤 아이인가요?
↳00이는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어른스러운 면도 있는 것 같아요.
두토리: 하하. 밖에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느라 얼마나 애쓰고 사는지…OO이는 다섯 살 때 꿈이 언니였어요.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언니’ 될거라고 그랬었죠. 너무 귀엽지 않나요?(웃음)
춘식이: 때로는 친구같기도 하고, 사려 깊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떨 땐 좀 걱정스러운 아이죠. 어디 다치진 않을까 뭘 흘리진 않을까. 그런 어설픔이 조금 있거든요.
최쫌: OO이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여러 가지를 시도하면서 자신의 꿈을 찾아나가는 ENFJ예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일 벌이는 것을 좋아해서 부모님 속도 좀 썩였죠. 고집도 참 센 친구인데, 결국 자기 하고 싶은 것은 꼭 이루더라고요. 사람들 챙기는 것도 좋아하고 공감 능력이나 배려심도 깊어서 다른 사람들은 외동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예요.

OO이를 키우시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케이블: OO이를 낳았을 때 정말 행복했었어요. OO이를 낳던 순간, ‘이렇게 예쁜 아이가 있다니.’ 되게 놀라기도 하고 한눈에 사랑에 빠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사진을 보니, 우리가 그때 굉장히 두꺼운 콩깍지로 바라봤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웃음) 그리고 속물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OO이 대학 합격했을 때도 정말 행복했었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들어하던 순간에 합격했던 것이라 기쁨이 극적으로 느껴졌거든요.
두토리: 저는 정말 딸이 갖고 싶었어요. 첫째 아들을 낳고 나서 이제 딸을 낳고 싶다고 생각을 계속해서 했었거든요. 산부인과에서 딸이라고 알려준 날, 그날 얼마나 기뻤던지. 사실은 세상의 절반이 여자잖아요.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닌데, 내 뱃속에 딸이 있다는걸 길 가는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죠.
춘식이: 사실, 이건 우문인 것 같아요. 부모는 아이를 키우는 모든 순간이 행복한데 ‘가장’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참 어렵죠. 특히 00이는 항상 저에게 뿌듯한 딸이었기 때문에.(웃음)
최쫌: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키우는 것은 늘 행복한 일이죠. 그래도 굳이 꼽자면 몇가지가 있는데요. 자라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예쁨 받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때, 엄마 대신해서 아빠에게 요리하고 디저트까지 잘 챙겨줄 때, 대견하고 자랑스럽죠. 또 OO이가 고등학교 학생이었을 때, 결혼기념일을 챙겨준다고 케이크를 미리 주문해놓고 깜짝 선물을 해준 적이 있어요. 문구점을 간다고 해놓고 케잌가게까지 뛰어서 다녀왔던거예요. 저희는 그것도 모르고 왜 이리 안오냐며 전화도 하고 그랬었는데..(웃음) 또 OO이가 최근에는 입학하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거든요. 이렇게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며 부모님 부담도 많이 덜어주고 참 예쁘죠.

00이를 처음 가지셨을 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으셨나요?
케이블: OO이가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 있을 때도 숨기지 않고 우리에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어요. OO이를 처음 가지고 나서, OO이 아빠와 ‘OO이가 기댈 수 있는 부모가 되자. 그렇게 키우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두토리: 저는 교사이기도 했으니까 특히 이런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일단 제 목표는 아이가 경쟁교육에 매몰되지 않게 키우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 00이와 정말 많이 놀러 다녔죠. 아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전에 너무 많은 걸 하게 하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것 같다는 생각에 선행학습도 시키지 않았거든요. 대신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최대한 함께하고, 대화하려고 노력했어요.저는 00이에게 필요할 때 항상 옆에 있는 부모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사실 많이 없었어요. 입학식이나 졸업식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는 조금 미안하죠.
춘식이: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기댈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어요. 따뜻한 햇살 내리쬐는 언덕처럼 기대고 싶고, 기댈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죠. 사실, 기댈 수 있는 부모는 당연한 거고 전 어렸을 때부터 내 자식이 우리 집에 왔다가 돌아갈 때 그 발걸음이 무겁지 않게 하는 부모가 되고 싶었어요.저 스스로 항상 그런 다짐을 했었는데, 제 부모님이 점점 나이 드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자신이 없어지기도 해요. 부모가 늘 자식이 걱정되는 것처럼 나이 들어가는 엄마를 홀로 두고 돌아가는 딸의 마음이 어떻게 가벼울 수 있겠어요.
최쫌: OO이를 처음 가졌을 때, 친구같은 부모가 되고 싶었어요. 저희 때는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많은 것을 해주려고 노력하셨겠지만 되게 엄하셨거든요. 부모님과 저는 그닥 살갑지는 못했던 것 같아서 OO이에게는 친구나 형제같은 그런 부모가 되고 싶었죠.

OO이는 어머님/아버님께 어떤 존재인가요?
케이블: OO이는 저의 제일 친한 친구이자 자랑스러움을 많이 주는 딸이죠.
두토리: 마냥 좋아요. 딸바보가 이런 건가 봐요.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특하고 마냥 좋은 존재죠. 걱정도 많이 돼요. 오빠도 서울에 있긴 하지만 현실 남매다 보니 둘 다 바빠서 서로 챙겨주지 못하기에, 서울에서 혼자 잘하고 있는지 그런 부분이 많이 걱정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믿고 있죠. OO이는 알아서 잘하는 스타일이어서 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춘식이: 내 마음의 산소같은 존재이죠. 산소는 없으면 살 수가 없잖아요. OO이를 키우면서 순간순간 많이 위로도 받고, 많이 배우기도 했던 것 같아요.
최쫌: 우연하게 본 표현 중에서 The apple of my eyes라는 표현이 있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람이라는 말인데, OO이가 저에게 딱 그런 사람이죠. The apple of my eyes.

휴대폰에 00이를 어떻게 저장하셨나요?
케이블 저는 ‘큰 딸 OO♥’로 저장해놨어요. 밖에서는 OO이가 귀여움받는 막내라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저는 그 이야기가 새롭고 재밌더라고요. 우리 집에서는 제일 큰 딸이자 또 친가 쪽에서는 제일 연장자이거든요. 집안의 첫 손주이자 큰언니이죠. 저희에게도 든든한 큰 딸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어주지 않아도 가지게 되는 책임감이나 동생들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두토리: 저는 ‘내 딸’이라고 저장했어요. 사랑하는 나의 딸. 사실 저보다도 OO이 아빠가 정말 딸바보이거든요. 딸이 뭐라고 하면 꼼짝도 못하는 딸바보인데 집에 자주 못오니까 되게 서운해하죠. 그래서인지 집에 오면 배가 터질 때까지 많이 먹이는 것 같아요,(웃음)
춘식이: 보물 1호. 사람들이 가장 소중한 걸 보물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보물 1호로 저장했습니다.
최쫌: ‘OO공주’라고 저장을 해뒀죠. 뒤에 방긋방긋 붙여서. ‘OO공주^^’

전 대학생이 되어 처음 집을 떠나 신촌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는데, 헤어지던 그 날 부모님이 굉장히 섭섭해하셨어요. 어머님은 혹시 00이를 처음 신촌으로 보냈던 그 날이 기억나시나요?
케이블: 저는 그날이 그렇게 섭섭하고 슬프지는 않았어요. 학교 시설이 괜찮아 보여서 되려 마음이 놓였달까. 시원섭섭한 기분도 들고요. 사실, OO이가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해서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한번 경험했던 일이라 비교적 편안하게 보내주고 왔어요. 그런데 OO이를 기숙사로 처음 보냈던 날에는 정말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참 많이 울었어요. 운전하고 오는 길에 계속 울면서 집에 왔었죠.
↳00이가 어머니께 전화는 자주 드리는 편인가요?
케이블: 아이, 그렇지는 않아요. 워낙 공사가 다망하신 분이라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생각하고 지내는 편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웃음) 지금 이 시기에는 엄마나 아빠가 비집고 들어갈만한 틈은 없을거란걸 알고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두토리: 사실 OO이가 연대를 너무너무 가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원하는 대학을 갔으니까, 처음엔 좋았던 것 같아요. 신촌 자취방에 짐을 옮겨다 주고 집에 올 때까지 너무 기쁘기만 했어요. 그런데 대전으로 돌아오고 주인 없는 OO이 방에 들어가니까 허전함이 밀려오는거예요. 그제야 ‘아, 이제 없구나.’ 싶었어요. 서울에 갔으니까 애들이 없는 게 당연한데 되게 허전했어요. 그러니 OO이가 오는 날은 참 좋죠. 오래 머물지 않아도, 시간이 될 때 집에 와서 맛있는 것 배불리 먹기만 하고 가도 좋은 게 부모 마음인가 봐요.
춘식이: OO이를 데려다주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5시간동안 계속 울었죠. 보고싶기도 하고 내가 더 이상 자식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고 필요할 때 바로 옆에 있어줄 수도 없으니까 참 슬펐어요. 지금은 감정도 마음도 익숙해졌어요. 계속 그 마음이면 어떻게 살겠어요.
최쫌: 사실 OO이를 키우면서 떨어져 산 적이 없어서 걱정이 참 많이 됐었는데요. 다행히 OO이 중학교 친구와 같이 입학해서 둘이 같이 살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날 두 집 부모님이 같이 올라가서 가구도 넣고 옷도 정리하고 준비를 다 해주고 내려왔어요. 그래도 저는 집에 비해선 부족해도 나름 괜찮은 환경이라 안심했었는데 엄마들은 또 다른가 봐요. 내려올 때 친구 엄마는 그 집에서 나오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고, OO이 엄마는 돌아오는 길 한강 변에서 오열을 하더라고요.

그럼 이제, 어머님/아버님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어머님/아버님이 00이 나이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케이블: 어려웠던 시기라 행복을 잘 못 느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남자친구랑 있었을 때가..
↳앗, 이거 말해도 되나요? 아버님이 질투하진 않으실까요?
케이블: 하하. 구남친이자 현남편이죠. OO이 나이대에 만났거든요. 대학교 2학년 때 cc로 만났어요. OO이 나이대의 저는 그 남자친구와 지냈던 시간들이 제일 기뻤었던 것 같아요.
두토리: 저는 교사가 되고 나서, 모은 돈을 다 털어 유럽 여행을 갔던 게 가장 행복했었어요. 지금은 여행이 되게 활발해졌지만 30년 전만 해도 해외여행을 많이 갈 때는 아니었거든요. 하여간 모은 돈을 다 털어서 유럽에 갔는데 정말 화려하고 반짝거리더라고요. 지금이야 한국이 많이 발전해서 그 격차가 크지 않다지만 당시에는 문명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정말 우아함을 넘어 황홀하다고까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죠. 그래서 저는 00이가 어디를 간다고 하면 막을 수가 없어요. 그때의 그 경험이 저한테 되게 중요했다는 걸 아니까 제 딸에게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은 되지만 ‘그래 가라.’ 이럴 수밖에 없죠. (웃음)
춘식이: 총학생회장 당선됐을 때? 저는 20대를 학생운동을 하며 보냈는데, 총학생회장 선거는 같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가치 실현을 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좋은 방법이어서 그때가 제일 기뻤죠. 학생운동이 가장 활발했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는 여대라서 그런지 6년 동안 *비권이었거든요. 이례적으로 제가 당선된거죠.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실현할 수 있는 전환점을 함께 만들었을 때라서 그때가 가장 기뻤어요.
*비권: 비운동권
최쫌: 가장 행복했을 때라..아무래도 지금 시대의 아이들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대학교 4학년 때 취업원서를 내고 원하는 곳에 잘 취업했을 때 가장 행복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님/아버님에게 부모님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케이블: 그리운 존재. 어머니는 계신데 아버지는 돌아가셨거든요. 한 분은 돌아가셔서 그립고, 남아계신 분에 대해서는 애틋하고 측은하고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두토리: 저에게 부모님은 닮고 싶은 사람이죠. 사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잖아요. 아들을 키우는 것도, 딸을 키우는 것도 처음이어서 미숙하기도 하고 잘못을 하기도 하고, 욕심을 부리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부모님이 나한테 어떻게 대했었는지를 기억하게 돼요. 생각해 보면, 저희 부모님은 저를 닦달하지 않으셨거든요. 편안하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대해주셨으니까. 전 OO이에게 저희 부모님만큼 대해주진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해요.
춘식이: 자식한테 부모님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는 부모님이 제 세상의 전부였고 20대 때는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면서 또 미안한 존재였죠. 제가 부모님 걱정 참 많이 시켰거든요. (웃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의 어머니는 저에게 참 아팠어요. 지금은 제가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고, 어머니가 팔순이 되셨는데 이젠 늘 애잔하고 걱정이 되는 존재죠.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부모님이 제가 평생을 살아가는 데 쓰일 가치관을 잘 정립해 주신 분이라는 거예요. 그건 정말 큰 유산인 것 같아요. 부모에게 물질적인 것을 물려받으면 내 대에 다 쓰고 없어질 수도 있지만 부모님으로부터 인생의 중요한 걸 배운 내가 아이를 낳으면 나를 통해서 그게 계속 전해지는 거니까.
최쫌: 늘 감사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만큼 표현을 잘 못해 미안한 마음만 항상 남아있어요. 내 자식한테는 친구처럼 하고 싶어 표현도 많이 하는데 아무래도 저희 세대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던지라. 부모님께는 표현하기가 참 어렵네요. OO이한테는 늘 전화하는데, 부모님한테는 전화도 거의 못 드리거든요.

휴대폰에 부모님은 어떻게 저장하셨을까요?
케이블: ‘울 엄마’, 이렇게 저장해놨어요. 저도 전화는 자주 못 드리는데, 카톡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두토리: 심플하게 ‘엄마’, ‘아빠’로 저장을 했었는데 지금은 두 분 다 하늘나라에 계셔서 휴대폰으로 연락을 드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 (웃음) 돌아가셨을 땐 진짜 많이 힘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요. 세월이 흐르고 보니,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것은 참 변함이 없는 것이더라고요. 저는 부모님이 제 안에서 살아계시고, 또 하늘에서 지켜봐주시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안에서, 제 딸 안에서 부모님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 같아요.
춘식이: ‘엄마’라고 저장했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 대해선 표현이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남들은 ‘사랑하는 엄마’라고 잘도 말하던데, 저는 이런 말도 할 줄 몰랐죠.
최쫌: 부모님은 ‘아버지’, ‘엄마’ 이런 식으로 되어있어요.
어머님/아버님께서는 부모님과 언제 처음 떨어져 지내게 되셨나요? 혹시 그 날이 기억나시나요?
케이블: 고3 때죠. 시골이어서 학교가 너무 멀었거든요. 7시에 등교하고 10시에 하교를 해야했어서 자취를 할 수 밖에 없었죠. 처음은 설렘이 컸어요. 나혼자 산다는 설렘과 자유로움이 컸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도 생기더라고요. 너무 귀찮지만 내가 지금 들어가서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내일 도시락을 쌀 수 없다는 그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땐 조금 외롭기도 했던 것 같아요. (웃음)
두토리: 대전에는 교대가 없었어서, 저는 공주에서 대학을 다녔거든요. OO이처럼 대학교 기숙사를 들어가면서 처음 부모님과 떨어지게 되었어요. OO이는 신촌으로 유학을 간 거고, 저는 시골로 유학을 간거죠. 처음 제가 집을 그렇게 나갔을 때, 저희 친정엄마는 엄청 우셨을 거예요. 그런데 저한테는 네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려고 떠나는 거니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보나마나 제가 안 보는 곳에서 우셨겠죠.
춘식이: 제가 시골에 살아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자취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지금 네가 이렇게 내 집을 나가면 다신 들어올 일이 없겠구나.’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거든요. 그런데 고등학교부터 자취하고, 대학교 때도 자취하고, 취업했다가 결혼을 하니까 정말 그런 거예요. 그래서 OO이를 기숙사에 내려놓을 때, 이 아이가 내 집으로 다시 들어올 일이 없겠구나 싶어서 더 슬펐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걸 이제 아니까요.
최쫌: 제가 대학도 고향인 부산에서 다녔던 터라, 대학생 때도 부모님과 함께 생활했었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독립하게 되었죠. 독립할 당시에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보다는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설렘과 기쁨이 먼저였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함과 동시에 생활도 독립했었는데, 그때는 마냥 좋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님/아버님의 부모님께서 생각하시는 어머님/아버님은 어떤 아이일까요?
케이블: 믿음직스럽다. 든든한 큰딸이라고 생각하실 것 같네요.
두토리: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보기 어려운 딸이자 자기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는 게 기특한 딸이지 않을까요? 살아가는 게 너무 바쁘다 보니 엄마, 아빠 옆에 못 있어 드렸던 것이 엄마, 아빠 돌아가시고 나니까 후회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OO이를 보면서 깨달았죠. ‘아, 그래도 내가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았던 것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으셨겠다. 대견하기도 하셨겠다.’ 제가 딱 OO이를 보면서 그렇게 느끼거든요. 같이 못 있어서 아쉽고 보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에 대한 대견한 마음, 아마 그 두 가지 마음을 부모님도 가지셨을 것 같아요.
춘식이: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저는 많이 미안하고 죄책감이 드는 존재였던 것 같아요. 제가 장애는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해서 많이 아팠거든요. 그래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이라고 저에겐 참 호의적이셨어요. 저희 어머니가 성격이 다정하신 분은 아니라 언니 오빠들에게는 참 매섭게 굴었는데 저에게만큼은 무조건 잘한다고 해주셨어요. (웃음) ‘안 죽고 살아났으니 그걸로 됐다.’ 인거죠. 그리고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서는, 가장 많이 의지하는 자식이 되었죠.
최쫌: 착한 아들, 제가 생각할 때는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부모님은 여전히 저를 착한 아들로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 OO에게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케이블: 솔미야, 하루하루 행복하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고,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가족 톡방에서 조금 더 활발한 답변 바란다. (웃음)
두토리: 수연아,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맙고 사랑해. 20대가 불안하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때이기도 한 것 같아. 지금 이대로 열심히 살다 보면 불안한 미래도 조금씩 안개 걷히듯 열리게 될 거야. 수연이 파이팅하고 잘 먹고 건강이 최고니까 너무 바쁘게 살지 말고… 사랑해! 우리 딸.
춘식이: 새솔아, 엄마는 직업적으로 참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마음 생김새도 다 다르거든 그런데 너는 그 많은 사람 중에서도 드문 사람이야. 어떨 땐 되게 유치하고 이상할 때도 있지만, 생각도 마음의 깊이도 남다른 아이니까 어디서 뭘 하든 잘 해낼거야. 잘한다는 것이 꼭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나 인정받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닌 거 알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서 너 자신도 잘 보듬는 삶, 그런 삶을 살길 바라. 내가 내 부모에게 받았던 것처럼, 나도 너에게 너의 가치관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길 너 역시 너의 아이에게 그런 부모가 되어주길..그런 너를 보고 자란 아이는 참 괜찮은 사람으로 자랄거야.
최쫌: 예주야, 엄마·아빠의 기대 이상으로 착하고 바르고 잘 성장해서 늘 고맙고 앞으로도 뭐든지 항상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엄마·아빠가 늘 옆에 있을 테니까 너 하고 싶은 꿈 마음껏 펼치면서 갓생 살기를 바란다.
“사랑해!”
「왕잔치에게
안녕. 너도 잘 지내지?
신기하게도 OO이를 신촌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이 메일을 받았어.
정말 운명같지 않니? 참, OO이는 내 딸이야. 시간이 정말 빠르다. 우리가 같이 신촌에서 글 쓰던 것도 엊그제같은데, 내 딸이 벌써 대학생이라니! ㅎㅎ
그동안 완전히 잊고 살았어. 인터뷰도, 인터뷰에 담긴 마음도.
사실 나는 조금 불안했거든.
내가 과연 좋은 사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맞게 가고 있는걸까.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아.
나 정말 사랑 받는 아이였구나. 우리 딸 00이만큼이나.
이런 사랑을 받은 나는 분명 좋은 사람, 좋은 부모였을거야. 옳은 길을 걸어왔을거야.
이 인터뷰를 완전히 이해하는데 30년이 걸렸네. 뭐, 어떤 것들은 시간이 지나야만 이해할 수 있으니까.
고마워. 30년 뒤의 나에게 이 인터뷰를 전해줘서.
PS.잔치 동창회 너무 좋지. 동창회 하는 김에 30년 뒤 내 딸 OO이에게 보낼 인터뷰도 좀 해주는건 어때?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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