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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2024 · 05 · 21

[2번째 외침] 너와 나의 서울은 (a.k.a 상경러의 변)

Editor 왕 잔치

오랫동안 동경했고, 강렬하게 열망했다. 그토록 찬란한 열일곱부터 열아홉을 전부 바쳐서라도,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는 한이 있어도 목적지만은 늘 변치 않았다.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다.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당연한 매일을 한 번 살아보려 태어나고 자란 도시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기차에 오를 때, 눈물을 훔치면서도 마음 한 켠이 두근거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그렇게 우리는 서울에 왔다.

 

 

 

 

긴장한 표정으로 기차역에 내린 스무 살 언저리들을 서울은 예상보다 더 화려하게 맞이했다. 신촌에서 대학가의 청춘을 만끽하고, 한강에서 피크닉을 즐기거나 남산 타워에서 자물쇠를 걸 때만 해도 즐거움의 불꽃놀이는 끝날 줄을 몰랐다. 그러나 뜨거우면서도 냉정한 이 도시는 그리 다정치 못해서, 마음 한 구석에는 허전함이 자라나고 서울이라는 구름 위를 뛰놀던 두 발은 다시 단단한 바닥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서울을 사랑할 때는 까맣게 잊었던 그곳이, 서울이 미워질 때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지친 마음에 도망치듯 향한 고향에서 다시 돌아올 때면 발걸음이 그렇게도 무거웠다. 두 개의 집을 오가며 지칠대로 지친 마음을 비슷한 처지의 ‘상경러’들과 모여 회포를 풀며 달랬다. 부산에서 온 현과 보리, 포항에서 온 유화, 평창에서 온 유니콘, 제주에서 온 입하까지. 동향이 아니더라도 왠지 모를 동질감으로 모인 우리의 주제는 어김없이,

 

너와 나의 서울.

 

 

 

우선 우리 고향부터 말해볼까?

 

: 난 부산!

 

보리: 나도 부산에서 왔어.

 

유화: 난 경북 포항!

 

유니콘: 강원도 평창입니다~

 

입하: 제주도~

 

연두: 경기도 부천시입니다…

(*수도권 출신 연두는 서기를 맡았다. 지방의 패기에 눌릴 예정)

 

 

서울에 와서 고향을 밝히면 꼭 듣는 말들 있어?

 

유화: 나는 ‘포항항 포항항*^^*’ 이거. 진짜 무조건이야. 근데 난 귀여워서 마음에 들어.

 

입하: 귀엽다. 다른 지역은 이런 거 못하나?

유니콘: 제주주 제ㅈㅜ…

입하: (무시)

 

보리: 아, 웃기다. 난 부산이라, 해산물 많이 먹냐고? 그런데 서울 오니까 해산물 못 먹는 애들이 엄청 많아서 놀랐어.

 

: 맞아. 살면서 한 번도 안 먹어 봤다는 사람들도 많더라!

 

유니콘: 난 아무래도 ‘감자’… 감자는 기본이고, 문학 좋아하는 애들은 “얘, 봄 감자가 마딛단다.” 라는 말도 하더라. [마싣따] 아니고 꼭 [마딛따]라고. 가방끈이 쓸데없이 너무 길어. 

 

입하: 나도 그거 했던 것 같은데…

 

유니콘: 그리고 물건도 감자로 사는 줄 알아. 화폐 생긴 역사가 언젠데 그럴 수 있니. 버스 탈 때도 감자 찍고 타냐고 하더라.

 

입하: 그런데 맞잖아요?

 

유니콘: 그럼 제주도는 한라봉 찍고 타세요?

 

입하: 한라봉 단가가 얼만데 그런 말씀을.

 

 

지방 출신이어서 무시당했던 경험도 있지 않아?

 

유니콘: (지금 내가 당한 거 아닌가?)

 

입하: 나 이거 할 말 많아!

 

(잔치꾼들, 입하가 뭘 말할지 예상하는 표정)

 

입하: 서울 사람한테 맛집 추천 해달라고 했더니 ‘푸라닭’을 추천해주는 거야. 기가 막혀서는… 푸라닭, 우리집 앞에도 있어요.

 

입하: 다시는 제주를 무시하지 마라.

 

유화: 서울 토박이 친구가… 굉장히 조심스럽게… “내가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데… 포항에 지하철있어?” 하는데, 뭔가 억울하지만 진짜로 없어서 할 말이 없더라.

 

입하: 와, 그래서 있냐고 물어볼 뻔했다.

 

유니콘: 나도. 지하철 있는 게 신기한 거 아냐?

 

유화: 미디어에서도 ‘지하철 없으면 뭐 타고 다녀요?’하는 얘기들 있잖아. 이제는 누가 그런 말 하면 “맞아요~ 과메기 타고 학교 가고 고기잡이 배 타고 집에 갔어요~” 하고 대답해.

 

보리: 부산에는 있는데! 헤헹!

(*이 중에서 유일하게 지하철이 있는 도시다.)

 

: 부산 지하철에는 엘리베이터도 다 있어.

 

유니콘: 와, 이건 서울이 졌다. 당연히 있어야지.

 

 

사투리 얘기도 빠질 수 없지!

 

보리: 나는 [월료일], [일료일] 발음이랑 억양 고치는 게 제일 어렵더라. 

 

유화: (심호흡을 하고)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카페에서 ‘블루베리스무디’를 시켜 먹은 적이 없는데 자꾸 해보라고 시켜! 또 생각만큼 억양이 안 세면 실망하더라. 미디어 사투리처럼 “블↘루↗베↗리↘서↘머↗디!” 해야 만족하고 말이야.

 

: 심지어 멍석 깔아주면 평소에 잘 쓰던 사투리도 괜히 어색해지잖아. 요즘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가짜 경상도 사투리도 너무 어이없지 않아? ‘맛꿀마’, ‘쌉꿀마’, ‘맛깔끼노’…

 

보리: 와,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입하: 나는 하도 제주말 시키길래 예문 하나를 정해놨어. “영 골으민 아르크냐?”

 

일동: ?

 

입하: “이렇게 말하면 알겠니?”

 

유니콘: 오, 신박한데? 전복적이야.

 

입하: 유니콘, 제주도는 감자가 고구마야. 

 

유니콘(만 24세, 감자의 도시 출생): 네?

 

입하: 아, 잘못 말했다. 감자가 고구마가 아니라 고구마가 감자고, 감자가 지슬이야. 그러니까 감자 주세요, 하면 고구마를 주는 거지.

 

(서기 연두: 어…? 감자가 고구마, 아니 고구마, 아니 감자……)

 

입하: 고구마가 감자, 감자가 지슬.

 

유니콘: 신기하다. 강원도에서는 다슬기가 골뱅이고 골뱅이가 다슬기야.

 

(울 것 같은 표정의 연두, 일동 웃음)’

 

 

 

 

다들 본가는 얼마나 자주 가는 편이야?

 

입하: 자주는 못 가. 제주도는 비행기를 타야 하니까. 게다가 내가 내려가는 시기는 보통 성수기여서 가격이 만만치 않아.

 

유화: 제주는 더 그렇겠다. 포항은 KTX 타고 2시간 반 정도 걸리고, 왕복 11만원정도 깨져.

 

유니콘: 평창은 왕복 5만원 정도? 근데 방학 때 본가에 내려가면 알바나 방학에 하는 대외활동, 동아리는 아예 할 수가 없는 것 같아. 면접도 그 시기에 대면으로 보는 곳이 많으니까.

 

유화: 3-4개월 단기 아르바이트 밖에 못 구하고.

 

: 그런데 또 본가에 내려가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과제든 뭐든 그냥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기분이 들기도 해. 

 

보리: 지금이 아니면 못 내려가니까 내려가지만, 정작 제일 보고 싶은 순간에는 못 내려가는 것 같아.

 

 

 

 

그렇구나, 그러면 본가가 제일 그리운 순간이 언제야?

 

보리: 마감이나 시험기간에 멘탈 터질 때. 가장 편안한 곳에 가서 쉬고 싶어. 간절하게.

 

유화: 나는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지날 때마다 늘 포항이 그리워. 사람이 많아도 많아도 너무 많아.

 

(연두: 엉? 그러면 매일 집에 갈 때마다 아닌가요?)

 

유화: 그런 편이죠? 특히 금요일 밤에.

 

유니콘: 무엇보다도 서울이 지겹고 벗어나고 싶을 때 본가가 자주 그리워지는 것 같아.

 

입하: 정말 지쳤는데 내가 집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때. 현관문을 열었는데 쌓인 설거지, 빨래더미가 반기면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어지지.

 

: 지금 당장 쓸 수건이 없을 때도.

 

유화: 어, 인정. 심지어 여름에는 좁고 습해서 빨래도 잘 안 말라.

 

입하: 그렇지만 나는 사람은 꼭 한 번은 혼자 살아봐야 한다고 생각해.

 

유화: 동의. 살림력도 달라지는 것 같아.

 

 

 

 

그럼 이건 어때. 서울에서 태어난 것도 스펙이라는 말, 동의해?

 

일동: 완전!

 

유화: 너무나도 스펙이지.

 

입하: 일년에 600을 월세에 태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부터.

 

유니콘: 그치. 또 서울이기에 자연스럽게 보고 접하면서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게 너무 많으니까.

 

유화: 서울에서만 열리는 전시, 팝업 같은 것들을 대학생이 되고서야 보러 다니면서 ‘이걸 어릴때부터 접했다면 얼마나 시야가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입하: 제주도는 공연장이 2개예요…

 

잔치꾼들, 점점 말이 없어진다. 어째 분위기가 점점 슬퍼지는데…

 

 

아니, 그러면 얘들아, 다시 태어난다면 어디서 태어나고 싶어?

 

일동: 그래도 내 고향!

 

오… 의외인 걸?

 

유화: 그래도 난 내가 서울러가 아니라 상경러여서 좋아. 다들 그렇지 않아?

 

: 맞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정감도 있고.

 

유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나한테는 전부 처음이고, 하나하나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란 게 좋더라구. 그만큼 세상에서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많은 거니까!

 

입하: 나는 산 보고 바다 보고 안 살았으면 미쳐버렸을 거야.

 

보리: 완전 동의.

.
.

.

유화: …그리고 다시 서울 올래.

 

입하: 탈제주.

 

보리: 무조건 서울로 가지.

 

하하, 참 모순적이네.

 

 

 

 

도대체 서울이 무엇이길래 우리를 이토록 복잡하게 하는지. 다시 태어나도 고향에서 태어나고 싶지만, 그럼에도 또 서울에 오기 위해 발버둥칠거란 말이 참 웃기고도 씁쓸하다. 매일 사람에 치이고, 회색 빌딩에 지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래도 서울을 사랑한다는 것. 아니, 적어도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툴툴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날이 서울에 적응하는 중이다. 수많은 냉정함 속에서도 한 가지 정 붙일 구석을 찾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너희가 있어서 버틴다’는 말을 주고받고, 마음에 꼭 드는 장소들로 하얀 도화지 위에 나만의 서울을 그리며. 그리고 언젠가, 서울마저도 우리의 고향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한다. 먼 훗날 더 넓은 세상을 항해하다 지치면, 그 지도를 따라 두 번째 고향인 서울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음을 되새긴다. 그 때는 서울도 나의 단단한 바닥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그래서 너와 나의 서울은, 머물면 떠나고 싶고 떠나오면 그리워지는 곳.

 

‘상경러’로 서울에서 뿌리내리기란 늘 막막하고 외로운 일이지만, 그만큼 더 단단해지고 다채로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곳에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고 다시 오지 않을 추억을 쌓는 것만으로도 서울은 꽤나 괜찮은 곳이란 생각에 슬며시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서울’이란 연필과 ‘고향’이란 지우개를 손에 쥐고, 청춘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다.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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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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