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섹스를 묻다(With.은하선)
평화로운 세계를 위협하는 어둠의 마왕. 감히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두려움의 궁극. 누구나 분명히 알고 있지만 없다고 믿는 투명한 실체.
<해리포터>의 빌런 볼드모트에 관한 묘사다. 누군가 ‘볼드ㅁ…’라고만 해도 입을 다물게 만들어 버리는 존재. 수많은 생명과 행복을 앗아간 이에게 느끼는 두려움은 반사적으로 말문을 막는 법이다. 그런 무시무시한 볼드모트가 이야기에만 갇혀 있다고 안심할 순 없다. 이 세계에도 그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기 힘든 무서운 존재가 있다.
그 짓, 그거, 사랑, 뜨밤 …
불리는 말은 다양하다. 볼드모트와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수많은 생명과 행복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라는 것. 그 무서운 이름 두자 바로 섹스다.
우리는 언제부터 섹스를 없는 것 취급하며 살게 되었을까. 이유야 막연히 많겠지만, 말하지 않을수록 음지에서 어둠의 힘을 키워간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섹스는 이야기되는 위치와 맥락에 따라 모습과 위력이 널뛰듯 달라지기 때문이다. 볼드모트의 악함을 물리친 건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해리이듯, 섹스를 건전하게 해방시키는 것 역시 그 이름을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질 것이다.
신촌엔 내가 아는 누구보다 섹스를 많이 외치는 사람이 있다. 그이는 섹스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예민하고 섬세하게 섹스를 이야기한다. 나는 해리에게서 느꼈던 사랑과 총명함과 해방의 가능성을 그이에게서 발견한다. 그이와 함께 섹스에 관해 대화했다. 섹스로 대변되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을 발견한 당신이 주저 없이 이곳을 욕망의 텃밭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무엇을 심고 수확하든 당신의 자유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할 가능성이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달려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은하선이라고 해요. ‘드렁큰 비건’과 ‘은하선 토이즈’를 작은 공간에서 같이 운영하고 있죠. <이기적 섹스>라는 책을 내서 섹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고, 어쩌다 보니 이외에도 여러 일들을 하고 있네요.
섹스 칼럼니스트, 비건 식당과 섹스토이샵 운영자 등 타이틀이 다양해서 궁금한 게 많아요. 저는 성인이 되고 나서 섹스토이를 인지하고 관심을 두게 된 편인데요. 사장님은 언제 섹스토이에 관심이 생겼는지 듣고 싶어요.
십 대 때 처음 관심이 생겼어요. 종류를 막론하고 잡지 보는 걸 좋아했는데 집에 한창 패션지가 많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중 하나에서 섹스토이에 대한 이야기를 봤던 거죠.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섹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자기 개발 담론처럼 펼쳐지던 때였거든요.
섹스토이를 접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빨리 성인이 돼서 섹스토이 샵에 가고 싶다는 거였어요. 어떤 느낌인지 너무 궁금하고 빨리 갖고 싶다고도 생각했죠. 섹스에 대한 관심을 거슬러 가면 초등학교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PC 통신으로 성 상담방 같은 곳에서 채팅하고 소통하는 게 너무 재밌었던 기억이 있어요.
섹스토이 경험도 궁금한데요.
고등학생 때 성인을 사귀고 있었는데 그분에게 너무 갖고 싶다고 했더니 사주더라고요. 처음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해봤는데 오르가슴이라고 하는 종류의 짜릿짜릿한 기분을 경험했어요. 섹스와는 또 다른 기분을 느끼면서 섹스토이는 너무 좋은 거다, 모두가 맛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성인이 되고 샵에 갔을 땐 이렇게 즐거운 곳이 있나 싶었어요. 언젠가는 섹스토이 샵을 열거나 일해보고 싶었고 결국 아르바이트도 했답니다. 일하면서 알바비 거의 전액을 토이 사는 데 쓴 것 같아요. (웃음) 써보면서 블로그에 후기를 올리기도 했는데, 당시 한국엔 여성이 쓴 섹스토이 후기글이 없었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받았죠.
업계에서 오래 일하고 계신데 토이가 대중에게 얼마나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은하선토이즈가 올해로 10년이 됐는데요. 오픈할 때부터 섹스토이, 특히 여성 친화적인 섹스토이에 대한 많은 관심이 피어났고 여성이 운영하는 샵도 여러 개 생기기 시작했어요. 공교롭게도 강남역 사건과 맞물리는 시기이기도 했고요. 여성들이 섹스토이샵을 운영하고, 장사도 잘되는 산업이라는 걸 표면적으로 내세운 기사가 당시에 많이 나왔죠. 섹스와 섹스토이가 남성만의 시장이 아니고 여성 역시 이 주제에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실제로 이태원이나 홍대에도 대형 샵들이 많이 생기면서 이색 데이트 장소로 꼽히기도 했죠.
그런데 많은 사람이 섹스토이에 관심을 갖고 더 이상 섹스를 터부시하지 않게 됐느냐 물으면 잘 모르겠어요. 일단 저희 가게 후기 중에 섹스토이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말도 있고 외국인들도 많이 놀라는 편이거든요. 저는 어떤 공간에 가도 섹스토이 때문에 놀라지 않는 게 궁극적으로 섹스가 터부시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요. 섹스는 어차피 생활이니까.
저도 섹스토이를 신기하다고 표현했는데 아직 타자처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신기하게 볼 수 있죠. 십 년 전에 <이기적 섹스>를 냈을 때, 책을 썼으니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책을 읽고 모든 걸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은 거죠. 단 한 문장이라도 기억해주면 감사할 일인데. (웃음) 현재도 이 이야기는 무척 유효해요. 씁쓸하면서도 재밌는 부분이죠. 오히려 십 년 사이에 섹스에 대해 더 터부시하는 경우도 생겼고요.
예를 들어 어떤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는 섹스나 남성을 만나는 것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섹스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와요. 반려가전이 남성보다 더 낫다는 담론도 거기서 같이 나온 것이죠. 하지만 이건 위험할 수 있는 금욕주의로 나갈 가능성이 있어요. 누군가의 섹스를 더럽고 위험한 것으로만 치부하는 건 자기 스스로를 검열하는 작용이 되기 때문이죠. 그런 걸 보면 왜 반대로 가고 있냐는 생각을 가끔 해요.
섹스토이를 팔다 보면 손님들이 어떤 제품이 가장 잘나가는지 물어보는 경우를 많이 봐요. 그런데 섹스토이는 나에게 맞는 게 맞는 것이거든요. 밥을 먹을 때도 내가 먹고 싶은 게 가장 중요한 건데, 정작 본인의 선호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느낌이죠.
뭐가 인기 있는지는 사실 하나도 안 중요해요. 저희는 자체적으로 만드는 딜도, *다이레이터, 하네스가 인기가 많은데 그게 누군가에겐 전혀 쓸모없을 수 있어요. 만 원, 이만 원짜리 바이브레이터라고 해서 나쁜 게 아니에요. 본인한텐 최고의 섹스토이가 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인 거죠. 모두의 몸이 다 다르다는 걸 아는 게 필요해요. 자기가 뭘 원하는지를 더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섹스토이를 넘어서 결국 자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쾌락을 느끼는지 아는 게 중요한 거군요.
그게 진짜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섹스토이를 쓰는 것도 어떤 것을 야하다고 느끼는지, 어떤 것에 성적으로 자극을 받는지 등의 생각과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거죠. 그걸 알아내기 위해선 본인이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계속 탐구하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사람이 자기에 대해 100% 알 수 없지만, 섹스토이가 그 여정에 도움을 줄 순 있지 않을까요.
섹스토이에서 섹스라는 말을 쓰잖아요. 섹스할 때도 기구를 쓰지만 자위할 때도 사용하죠. 그런 다양한 성 경험을 통틀어서 섹스라고 하는 것 자체가 섹스의 스펙트럼이 큰 거라고 생각해요. 사장님도 <이기적 섹스>에서 파트너 섹스와 삽입 섹스만을 성 경험으로 인정하는 게 후지다고 말씀하셨죠.
옛날 강의에서 같은 얘기를 했어요. 섹스와 자위의 경계를 나누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그 경계를 너무 견고하게 그어놓고, 삽입을 중심으로 섹스인지 아닌지를 나누기 때문에 청소년 섹스를 터부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 논리대로면 청소년들이 삽입하기 전까지 성 경험을 하고 자위하는 건 괜찮은 거잖아요. 또 왜 특히 여성 청소년의 자위는 터부시되는지 생각해보면 삽입하고 굉장히 연관되어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을 감추지 않고 말하고 넘나들어야지 섹스가 위험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교육할 때 섹스토이를 잘 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토이라는 게 성기 삽입을 중심으로 하는 섹스가 옳다는 선입견을 깨부술 수 있는 도구가 되거든요. 실제로 토이를 보여주고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물으면 온갖 종류의 이야기가 나와요. 저는 그 상상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너무나 믿어요. 왜 섹스를 하고 싶은지, 어떤 섹스를 하고 싶은지, 어떤 걸 어떤 장소에서 하는 걸 재밌다고 느끼는지, 왜 이걸 섹시하다고 느끼는지와 같은 상상의 물꼬를 틔우는 것이죠.
섹스에 대한 다채로운 얘기를 듣다 보니 단순히 섹스를 언급한다고 어떤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절대 그럴 수 없죠. 말을 뱉는다고 전부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나는 유명해진다’, ‘모두에게 사랑받는다’고 말한다고 이뤄지지 않잖아요. (웃음) 현대인들은 바쁘다 보니 한 큐에 끝나는 걸 너무 선호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삶이란 건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잘 없죠.
사실 섹스도 삶이라는 여행길에서 탐구해봐야 하는 하나의 주제 정도인 거 같아요. 어떤 때는 깊게 탐구하기도, 소홀해 하기도, 던져놓기도 하면서요. 평생에 걸쳐 섹스만 탐구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섹스를 안 하고 싶을 수도 있어요. 당연히 섹스 싫어할 수 있고 그러면 싫어하는 나를 탐구하면 되는 거죠. 왜 싫어하는지 이유를 살펴보면서 벗어나고 싶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게 아니면 관심 없는 나를 그대로 두고. 욕망이라는 건 그냥 자유로운 흐름 안에서 느끼는 거라고 생각해요.

섹스를 건강히 이야기한다는 건 규정을 넘어 자기만의 욕망을 찾는 것이라 볼 수 있겠네요. 저도 특히 여성에게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지인과 성 경험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남성보다 여성 친구들의 경험이 비교적 극단적으로 나뉘더라고요. (삽입)섹스를 해봤거나, 안 해봤거나. 임신이나 섹스에 대한 걱정 때문이기도 한데, 공통적으로 자기 몸에 대한 탐구를 잘 못 해봐서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여성들이 섹스와 욕망에 관해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적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곳일까요?
지금 장소는 아니에요. 은하선토이즈를 시작하기 전 ‘걸스타운’이라는 가게를 여성 전용으로 운영한 적 있었는데요. 여성 전용이자 퀴어 여성을 위한 공간으로 오픈한 곳이에요. 여성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오갈 수 있었으면 했고 실제로 사랑을 많이 받아 워크샵이나 섹스토이 파티를 열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론 손님 중에 트랜스 젠더를 혐오하는 일들도 있었어요. 저희가 혐오 발언을 제재하거나 내보낸 적도 몇 번 있었고요. 간혹 여성 전용 샵이 트랜스 젠더 혐오와 결을 맞닿은 경우도 있었죠. 이런 일을 겪으면서 ‘여성 전용’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이 가게는 이제 모두가 왔다 갔다 하시죠. 그러다 혐오 발언이 나오면 약간 주의를 주는 방침으로 운영을 하고 있어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성의 성은 터부시되고 경험의 차이가 벌어지잖아요. 많은 이유를 살펴야겠지만, 어떤 맥락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일단 ‘성녀와 창녀’ 프레임, 이분법이 유효하다는 게 있겠죠. 그래서 섹스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면 여성으로서의 어떤 부분을 상실한 것처럼 보게 되고요. 성폭력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겠죠. 저는 여자들이 섹스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시대는 갔다고 생각했고 글로도 썼었거든요. 근데 너무 아닌 거죠. 놀랍게도 출산을 한 여성들이 자기 성기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봤어요. 이런 사례들이 계속해서 스스로를 섹스 칼럼니스트라고 소개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저는 경험을 터놓을 수 있는 동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껴요. 이곳에서 진행하는 ‘토이파티’가 그런 프로그램이죠?
네, 토이파티는 청소년부터 50~60대 여성까지 다양한 분들이 신청하세요. 같이 모여서 토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거죠. 제가 토이 샵을 열게 된 경험도 공유하고 토이의 역사와 이름 알기, 성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기 섹스 경험 나누기 등을 해요. 한 분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른 분들도 따라 적극적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어요. 오랜 친구 사이인데 처음 서로의 생각과 얘기를 듣는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아무래도 내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
여럿이 있을 때 눈치를 보게 되는 것도 슬프지만, 혼자 있을 때조차 정체 모를 감시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섹슈얼한 행위를 스스로 했을 때요. 그런 측면에서 <이기적 섹스>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느껴요. 섹스를 다각도로 말하는데, 궁극적으로 쾌락이나 취향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다양할 수 있는지 말하는 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읽히길 바랐고, 특히 십대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실제로 십대분들이 책을 읽고 강의 요청을 하거나 어떤 선생님이 학급 내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고 말씀해주실 때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그 책을 쓰고 제 삶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요.

한국 사회는 정답을 굉장히 중요시하는데 쾌락을 말하는 자체가 정답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라는 생각이 드네요. 건강하게 성을 소비한다는 게 뭔지 계속 되뇌게 돼요.
상대방을 검열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게 건강하게 섹스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랑 다른 섹스를 하는 게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에서 퀴어 혐오가 시작되기도 하고요. 본인이 겪었던 경험이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는 게 아니잖아요. ‘나는 안 그랬는데’로 시작해버리면 답이 없어지는 거죠. 다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을 준비가 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본인 인생에서 전부가 아닐 수 있거든요. 본인도 모르지만 분명히 갖고 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차단됐을 수도, 두려워서 꺼내지 않았을 수도, 너무 바빠서 들여다보지 못했을 수도 있죠. 그런 흐름을 인지하고 타인을 검열하지 않아야 자신에 대해서도 검열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이야기가 섹슈얼리티와 함께 자아 전체에 대한 독립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어떤 섹슈얼리티를 추구하느냐는 뭘 먹을지 선택할 권리와도 무척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정상 섹스를 하지 않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주로 먹는 것을 먹지 않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고요. 채식을 해볼까 하다가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저도 15년 가까이 채식을 하고 있는데 발랑까져서 무슨 채식을 하냐고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고요. 비건이라고 하면 금욕과 연결짓는 경향이 있고 섹스도 안 할 거란 편견이 있거든요.
어떤 사례가 생각났는데요. 저희가 만들고 판매하는 딜도는 스몰, 미디어, 라지 사이즈가 있어요. 스몰 사이즈를 만든 이유는 한국에 작은 딜도를 판매하는 곳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에요. 언젠가는 한 손님이 딜도를 보고 ‘누가 이런 걸 쓰냐’면서 비아냥 섞인 어조로 말하더라고요. 그건 다른 사람이 쓰는 토이를 폄하하는 거잖아요. 그 사실 자체가 놀라웠어요. 이런 걸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겠구나 생각하는 게 아니라 비꼰다는 게요. 그런 생각을 확장시키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 앞으로 어떤 섹스들이 더 많이 얘기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이성 간 섹스도 중요하지만, 그 이야기만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십대들의 섹스 이야기도 더 터부시되고 있다는 느낌도 받고요. 십대들과 퀴어에 관한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은데 실제로 성교육을 나가보면 피임이나 콘돔 얘기만 해도 커트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너무 중요하잖아요.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자랐는지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성교육을 더 강하게 해야 하고요. 일주일에 한 번 수업도 모자란 것 같아요. 성인이 되어서 이런 얘기를 풀려고 하면 이미 너무 힘든 상태가 되어있는 거죠. 편견은 벌써 이만큼 커져 있는데 그것을 깬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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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있던 은하선 씨는 꽁꽁 숨겨진 세상의 비밀을 발견한 모험가처럼 보였다. 자신과 세상의 본질에 몇 발치 더 다가간 이들은, 그 단단한 기풍을 들키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내외적 침입에도 쉬이 무너질 수 없는 요새를 마주한 것 같다. 그러므로 그들이 흘린 기백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믿게 되는 것이다. 그이가 발견한 세계를. 그이가 쥐어준 욕망을.
섹스를 부르는 말이 다양한 건 어쩌면 정답이었는지 모른다. 누구의 섹스도, 쾌락도 하나의 언어로 귀결될 순 없다. 언어의 구속에서 벗어난 욕망은 어디로 향할 수 있을까. 그 발자취는 우리를 어떤 미지로 데려다 줄 수 있을까.
몸 곳곳에 박힌 욕망의 기지개가 희미하게 느껴진다. 나의 또 다른 태동이다.
다이레이션(dilation)을 할 때 사용되는 봉 모양의 도구. 다이레이션은 질 내부가 협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으로, 성확정 수술을 진행한 트랜스 젠더 여성에게 필요한 과정이다. 질이 없거나 질이 막혀 있는 등의 무질증 환자나 자궁경부암 수술을 한 여성도 사용한다. (본문으로 돌아가기)

드렁큰 비건 & 은하선 토이즈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30길 13 1층
목~일 17:00 ~ 22:00 / 월~수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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