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김규리, 에디터 쿠이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오래 보아 온 듯한 포근함을 주는 이들이 있다. 경계를 풀고 속을 드러내도 될 것 같은 사람, 어떤 이야기를 하든 주의 깊게 들어줄 것 같은 사람. 외적인 모습부터 내면의 청아함까지 자수정을 꼭 닮은 오늘의 인터뷰이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탁 굴러갈 때의 맑은 웃음소리가 함께 있는 모두를 기분좋고 편안하게 하는 에디터 ‘쿠이’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쿠이 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서강대학교에서 글로벌 한국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스물 네 살 김규리입니다. 잔치에는 작년에 처음 들어왔는데, 올해 또 신잔으로 들어와서 에디터 ‘쿠이’로 활동하고 있어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짧게 근황 이야기를 하고 시작하려고 해요. 최근에 어떻게 지내셨나요?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니까 신나게 방학을 즐기다가, 이제는 그래도 고학번인지라… 진로에 맞게 인턴을 구해서 요새는 출근 중입니다. 인터뷰일 기준으로 출근 2주 차에요. 대학생 때는 제가 매번 월공강을 사수했어서 월요일을 좋아하는 스폰지밥이었는데, 이제 징징이가 되었네요.(웃음)
그래도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열심히 노는 모습이 멋있는데요! 쿠이 님을 볼 때마다 소확행을 정말 잘 즐기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쿠이 님의 취미를 소개해 주신다면요?
제가 작년에 이탈리아로 교환학생을 갔었는데, 그때 ‘취미를 갈고 닦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떤 일을 잘 하거나 역량을 키우는 것 만큼이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눈을 기르고, 자신의 안목과 입맛을 만드는 게 정말 필요하더라구요. 이탈리아에서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연주나 그림들을 많이 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예술 쪽에 취미를 붙이고 있어요.
특히 저는 음악을 들으러 다니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들으러 다닌다’ 함은, 실제로 연주를 하는 공연을 보러 가거나 DJ들이 기존 음악을 편곡해서 플레이하는 행사들이 있겠네요. 최근에는 제가 좋아하는 인디밴드 ‘까데호’의 공연을 너무 재미있게 보고 왔답니다.

SNS에서 본 것 같아요. 까데호의 노래도 한 곡 추천해주세요!
하… 세 곡 추천하면 안 될까요?(웃음) 첫째로는 ‘여름방학’이라는 곡, 계절에 맞게 추천드리구요. 두 번째로는 ‘바네사’라는 곡인데, 시원한 기타 리프 도입부가 여름 바람처럼 상쾌하고 예술적인 노래예요. 마지막으로는 ‘Love your Harmony’라고, 당신의 할머니를 사랑하라…는 아니고 조화를 사랑하라는 노래입니다.
(피플팀식 개그 무슨 일이죠?)
하하, 제가 아무래도 전직 피플팀이다 보니…(웃음) 이 세 곡들은 전부 여름을 느끼면서, 또 특히 현장에서 들었을 때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노래들이에요.
추천 감사드려요. 여름 플레이리스트에 바로 추가해야겠네요. 그러면 이제 잔치 이야기로 넘어가볼게요. 에디터명 ‘쿠이’의 뜻부터 들어보고 시작할까요?

네, 이유는 너무 단순한데, 제가 쿠키를 좋아해요. 디저트 중에서도 쿠키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살짝 변형을 해서 쿠키랑 한번 지독하게 엮여볼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또, 제 이름 ‘규리’를 영어로 ‘curi’라고 쓰는데 중간 글자를 하나 생략하면 ‘쿠이’가 되더라구요. 여러모로 저와 잘 맞는 것 같아서 그렇게 지었어요.
규리라는 이름과 연관지었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쿠키는 상상도 못했던 귀여운 유래이네요. 이유를 듣고 보니 달콤하고 폭신폭신한 느낌이 드는 에디터명인 것 같아요. 쿠이 님께서는 사실 잔꾼들 중 유일하게 ‘경력직 신입’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계시잖아요. 혹시 처음 잔치를 들어오셨던 계기부터 컴백까지,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처음 잔치 면접을 볼 때 지원동기를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저는 ‘신촌이 너무 좋아서’ 잔치에 들어왔어요. 잡지든, 지도든, 인스타그램이든 상관없이 어떠한 형식의 결과물이든 ‘신촌 로컬’을 주제로 한 결과물을 내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엔 사실 매거진이라는 매체보다 로컬이라는 주제에 꽂혀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디터로 글을 쓰다 보니 오히려 주제보다도 그 주제를 전하는 ‘잡지’라는 포맷에 빠지게 되었어요. 제가 그때는 피플팀이었는데, 다소 추상적이게 느껴질 수 있는 신촌이라는 개념을 그 속에 사는 사람 한 명 한 명으로 쪼개서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를 전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이 활동을 반 년 밖에 못한다는 게 너무 아쉬워서 미련이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교환학생으로 부득이하게 동아리를 그만둘 때 다들 “쿠이 언니, 잘 가!”하는데 제가 “잘 가라고 하지 마라, 난 돌아올 거니까.”하고 떠났거든요.(웃음) 그리고 진짜로 돌아왔죠.
돌아오셔서 너무 반갑고 좋아요. 피플팀 에디터로 활동했던 2023 잔치와 아트팀 에디터로 활동한 2024 잔치,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팀이 바뀌면서 새롭고 재미있었던 점이나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각각 말해주시겠어요?
일단 팀이 바뀌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구요. 잔치가 은근히 팀별로 분업이 확실해서 다른 팀과 접점이 많지는 않은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른 팀에 투입되면서 잔치의 4개 조직 중 2개를 경험하다 보니 매거진 전체를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피플팀 에디터들은 글을 편집하는 데 굉장히 시간을 많이 쏟잖아요. 그래서 저도 계속 저는 ‘편집자’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아트팀에서 취재글을 쓰며 ‘창작자’의 영역을 맛보기도 했구요. 글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해 관심과 흥미가 높아지는 계기였어요.
어려웠던 점은, 첫 글이 너무 무서웠어요. 저는 창작을 해본 적도, 잘 하고 싶은 생각도, 앞으로 창작을 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덜컥 맡아버렸잖아요. 잘 못 해낼 것 같아서 자신이 없고 난감한 마음이 컸어요. 그래도 피드백을 해주는 잔꾼들, 도움을 주는 똑똑한 에디터들이 있어 어찌저찌 잘 해냈답니다. 한 편으로는 여전히 피플팀을 너무 좋아해서 한 학기 동안 피플 이야기를 못한다는 게 아쉽기도 했어요.
잔꾼들에겐 아트 에디터 쿠이와 피플 에디터 쿠이의 두 매력을 전부 느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면에는 또 여러 고충들이 있었군요. 24년 1학기 마지막 회의 날 쿠이 님께서 ‘1년을 통째로 다시 활동해도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라고 말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쿠이 님에게 잔치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감동적인 질문이네요! 음, 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를 선물해 준 감사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순히 주제에 이끌려 들어온 곳이었는데 글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도 너무 좋았고, 제 글을 남들이 같이 봐주고 갈고 닦아주는 기회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그것 말고도 제가 지면에 실릴 글을 쓸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항상 감사했죠.
글을 지면에 싣는다는 게, 비로소 독자에게 가서 닿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피플팀에 있을 때는 인터뷰이 분들에게도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원래라면 전혀 몰랐을 사람들에게 잔치라는 조직, 에디터라는 직책명을 내걸고 대화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게 크나큰 특권이자 행운이에요. 라포를 쌓아야 하는 시간들을 전부 뛰어넘고 처음 만난 사람의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정도의 선물까지 잔치가 저에게 해줄 거라곤 사실 예상하지 못했었어요. 또, 이번 학기에 함께했던 잔꾼들과의 인연도 저한테 너무 의미 깊게 남을 것 같아요.
다음 학기, 피플팀으로 돌아갈 쿠이 님의 글이 기대되는 답변이었어요. 혹시 새롭게 인터뷰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아직 콕 집어놓은 사람은 없는데, 작년과 방향성은 좀 달라질 것 같긴 해요. 작년에는 제가 잔치의 수치적인 지표를 만드는 데 살짝 혈안이 되어 있었어서..(웃음) 잔치 글들이 퀄리티가 너무 좋은데 숫자가 따라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어그로를 끌어서 격차를 메워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네요. 뉴진스 할배 인터뷰처럼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표면적이고 1차원적인 접근보다, 필요한 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면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인터뷰해보고 싶어요. 서사에 좀 더 집중한 인터뷰이 모색을 해보려 합니다.
너무 좋은데요. 잔치에 대한 질문은 이 정도로 하고, 쿠이 님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해보려 해요. 벌써 한 해의 절반이 넘게 지나갔는데, 쿠이 님은 올해 초에 다짐했던 것들을 이뤄나가고 계신가요?

음, 뭔가 해나가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제 올해 목표가 ‘큰 거 한 방 하려고 무리하지 말자’였거든요.(웃음) 2023년의 저는 성과 중심적인 생각이 되게 강했어요. 그 가치관이 잔치에서 글감을 고르는 일부터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쳐서, 눈에 띄는 핵심적인 성과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이것저것 했었는데 무리더라구요.
사람이 늘 도약만 할 수는 없는데, 계속 도약을 꿈꾸고 보폭을 크게만 뻗다 보니까 ‘내가 잰걸음을 똑바로 걸을 수 있나?’ 이걸 잘 모르겠더라구요. 내실이 있는 사람인지, 차근차근 하는 법을 아는지,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급하게 갈 필요 없잖아요, 사실. 도약은 좀 더 나중에 해도 되는 거구요. 그래서 올해는 천천히 똑바로 걷는 법을 스스로 익히는 한 해를 보내기로 마음먹었어요. 큰 활약을 한다기보다 내가 맡은 일을 꼼곰하게 작은 것이라도 다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속도를 낮추는 것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잘 안 되더라구요. 그래도 잘 해 나가고 계신 것 같은데요.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다는 건, 반대로 아직 절반이나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앞으로 남은 올해에 무엇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앞 질문과 연관해서, 제가 아무리 천천히 가려고 해도 기질이 기질이다보니 쉽게 질리거든요. 어렸을 적 피아노 연습할 때, 한 번 치고 포도 여러 개를 색칠하면 안 되잖아요. 지루해도 성실하게 바이엘 다섯 번을 다 치는 인내심을 갖고 싶어서 계속 노력을 하고 있어요. 지루함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 맷집을 길러야 할 수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취미를 더 만들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잘 연구해서 저에게 유용한 방법론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잔꾼으로서의 다짐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잔치에서는 정말 후회 없는 글 작성을 하고 싶어요. 생각해 보면 한 학기에 에디터에게 주어는 글 작성 기화가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하나 하나를 귀중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숙제 제출하듯이 급하게 써서 내지 않고, 정말 오랫동안 고민하고 쓰고 싶은 여러 글감들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쓰고 싶어요.
멋진 다짐이네요. 마지막 질문은 공통질문이에요. 쿠이 님께서는 무언가에 강하게 이끌려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법한 행동을 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사람에 대한 이끌림이 되게 강해서 순간순간의 매력에 잘 매료되는 것 같아요. 겉보기에 너무 화려하다기보다 이 사람만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면 이끌리는 시선을 참지 못하거든요. 친화력이 되게 좋은 편은 아닌데, 그런 상황에서는 저답지 않게 충동적으로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곤 해요. 이거 물어보면 저 사람의 매력이 더욱 펑 터질 것 같은데, 하는 질문을 참지 못하는 것이 저의 답변이 될 것 같네요.

달리는 기차에서는 내가 얼마나 빠른지 잘 알지 못하기에 가끔씩은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고, 숨을 고르는 과정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속력이 아닌 방향임을 알고 스스로의 보폭을 자유롭게 재단하는 쿠이의 다음 발걸음이 벌써 기다려진다. 해가 바뀌고 더욱 ‘쿠이다워’진 모습으로 돌아온 쿠이는, 그만의 색으로 무더운 여름을 칠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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