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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4 · 07 · 18

430. 작을 소에 작을 소, 소소돌방

Editor 입하

그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예니, 예쁜 사람
해인, 바다처럼 깊고 어진
하은, 하느님의 은혜
현, 물 깊고 맑은
탁, 높은
하늘, 파랗고 아득한
미금, 남양주 전철역
진실, 참되고 바른

바다의 불빛, 동녘의 버팀목…

어디선가 풍문으로 들었던 이름도 입에 담아 봅니다.

딴나라에서는 뜻없이 부르기도 하고, 나중에서야 생김새나 성미를 따라 짓기도 한답니다. 나는 배냇이름부터 고심하여 정하는 것에 익숙하여, 또 세상만사에 의미를 부여하기가 버릇과 같아 그러지를 못합니다.

동그래서 콩알, 하얗고 작아서 쌀, 어여쁘라고 꽃님, 그런 사랑스러운 이름들을 듣고는 나도 육신이 먼지만하던 때에 무엇이라 불렸는지 궁금해집니다. 아기, 우리 애기. 나는 그 호칭이 꼼지락거리는 먼지에 붙이기에 애틋하다고 여겨져 조금 간지럽습니다. 다문 입술로 그 말을 되뇌입니다. 우리 아기, 우리 애기…

어느 가로변에 남쪽을 바라보는 하얀 마차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아가 얼굴. 배실거리는 아가, 성이 난 아가, 눈을 흘기는 아가, 곤히 잠든 아가가 있습니다. 티없이 말간 눈과 뺨으로 웃음으로 반깁니다.

여기는 도장 파는 가게, 소소돌방입니다.

 

 

어떤 거를 드실지 몰라서 뜨거운 커피랑 차가운 커피 다 사왔어요.
ㄴ 저는 뜨거운 거로 마시겠습니다.
ㄱ 아, 내심 바랐습니다.

 

우리 천막에 고양이 들어오는 거 아시나요?
ㄱ 아예 사는 건가요?
ㄴ 저녁 때에는 와서 지내는 것 같아요.
ㄱ 그런 걸더러 ‘고양이한테 간택 당했다’고 하는데. 이제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가 된 거예요.
ㄴ 들었어요. 열심히 쓸고 닦고 방석도 내주고, 먹을 것도 사다 주고.

 

소개 부탁드릴게요.
ㄴ 저는 작을 소 2개를 쓰는 소소, 강신성입니다.

 

 

이 일은 얼마나 오래 하고 계신 건가요?
ㄴ 30년이 넘었어요.
ㄱ 뭔가 굉장히 외길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ㄴ 그런가요? 잘 모르겠어요. 여러분 아버님이나 어머님, 혹은 친구 부모님 중에 한 직장을 30년 넘게 다닌 사람이 많아요. 여기는 내가 다니는 직장일 뿐이에요.

 

수염이 참 멋있으세요.
ㄴ 제 트레이드 마크예요.
ㄱ 그런 것 같아요.
ㄴ 젊었을 때부터 수염 기르는 걸 좋아해서요.
음, 제가 생각하는 예술이랑 옛날 분들이 생각하는 예술이 달랐어요.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그냥 놀이예요. 예를 들어 내가 그림을 그리고 도장을 새기면서 놀고, 누군가한테 주면, 그 사람이 의미를 갖기 전에는 난 나의 의미로 충분한 거죠. 이건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예술을 가르치려고 하더라고요. 제게 “너도 나이 먹어봐, 네가 어려서 그래!” 그래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어요. 수염이 있으면 열 살쯤 많이 보이더라고요.
ㄱ 일종의 반항심?
ㄴ 그렇죠. 수염을 기르면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나이가 많든 적든. 그래서 조금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ㄱ 저도 수염이 났으면 길렀을 텐데. 언제는 살바도르 달리의 솟은 수염이 참 멋있어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수염이 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붙이기도 뭐하고. 그래서 눈썹을 기르고 싶었는데 눈썹도 딱히 길어지지 않았어요. 아쉬운 일이에요. 음, 요즘 사람들은 깔끔하게 면도를 하잖아요. 다들 그렇죠. 그 사이에서 수염을 기른다는 것부터가 이미 결이 다른 것 같아요.
ㄴ 다 똑같이 해야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달라도 되는데.
ㄱ 음악 쪽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보컬리스트는 펌을 해야 한다’. 확증편향일 수도 있지만 남자는 장발에 펌이 많고, 여자는 숏컷에 염색이 많은 것 같아요. 약간의 반항심일 수도 있고, 각자만의 스타일이기도 하고.
ㄴ 그냥, 그들은 ‘다르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난 너와 달라’ 이게 아니라, ‘그냥 서로 달라’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 세상이 너무 똑같이 살라고 얘기를 하니까요.
ㄱ 달라도 되는데.

 

 

서예랑 도장 만드는 일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ㄴ 저는 서예를 한다고 하지 않아요. ‘붓글씨를 쓴다’고 하지.
ㄱ 무슨 차이죠?
ㄴ 선생님들은 “네 멋대로 쓰면 안 돼!’” 나한테 그랬거든요. “처음에는 ‘해서’ 쓰고, 다음에 ‘전서’ 쓰고 하는 거야. 그걸 순서대로 배우고 손에 익으면 그때 네 글씨를 써”라고.
ㄱ 그렇게나 기초부터 배우는군요.
ㄴ 그러니까요. 저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내가 노는 건데, 왜 배워야 하지? 옛날에는 서류나 편지를 쓰는 데 서예가 필요했지만 이제 프린트기가 생겼어요. 똑바르게 쓰는 게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힐링으로 살아남은 게 ‘서예’라고 생각해요. 빵을 만드는 사람은 보건 검사를 받아야 하고 자동차 정비사는 국가 자격증을 따야 하지만, 예술은 먹는 것도 아니고 위험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들이 했던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ㄱ 그래서 서예가 아니고, 붓글씨. 붓글씨.

 

사람들이 요즘 도장을 많이 만드나요?
ㄴ 인감을 만들어달라고 말씀하시면 만들어 드리고, 대부분은 책도장을 만드시는 걸 좋아해요. 용도에 따라 만들어지는 게 달라져요. 인감은 여러가지 규칙이 있어서 맞춰서 만들어요. 책도장이나 낙관이라면 그 사람이 담고 싶은 걸 담거나, 제가 본 느낌을 담아요. 제가 생각하는 도장은 나를 상징하는 어떤 문양이거든요. 시인들이 찾아오면 그 사람 시를 읽어봐요. 시인들이 책도장을 많이 만들거든요.

 

 

글자들은 다 달라요. 글자들은 글자이기 이전에 선이에요. 선이 덩어리진 놈이에요. 이 덩어리진 선들이 모양이 다르고, ‘아’하고 ‘어’하고 다르죠.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글씨들인데, 똑같이 맞춰서 똑같이 세워 놓으면 답답해요. 연병장에 있는 군인들 같아요. 초등학교 조회 시간에 줄서있는 애들은 아무도 가만히 있지 않잖아요. 그런 모습이 나는 좋아요. 줄서있지만 자유로워요. 저는 이런 느낌을 광개토대왕비를 처음 봤을 때 알았어요. 저는 그때 돌도장을 새기고 있었거든요.
ㄱ 돌에 생기는 도장!
ㄴ 광개토대왕비 글씨는 삐딱삐딱 삐뚤삐뚤해요. 글씨가 첫 글자는 똑바로 있는데 두 번째 글자는 조금 옆으로 가 있고, 세 번째 글자는 또 이쪽으로 와 있고, 줄은 서 있는데 꼭 초등학교 애들 운동장처럼 돼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깨달았어요. 제가 아마 돌을 새기지 않았으면 그걸 몰랐을 거예요. 돌은 겉으로는 똑바로 새겼는데 속에서 깨지기도 해요. 그러면 돌을 버려야 하는데, 그만한 돌은 구하기가 어렵잖아요. 그 비석을 새기면서 자유롭게 새기고, 도를 이해하고. 그러면 어디서 깨지든 상관이 없어요. 금이 나가도 거기에 글자를 만들어버리면 돼요. 작게 했다가, 크게 했다가. 아, 실수해도 괜찮은 글씨를 썼구나. 그래서 내 손님들도 그렇게 조화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몇년을 있으신 건가요?
ㄴ 이대 앞에 처음 이사 온 게 한 12년에서 13년 정도 됐어요. 옛날에는 이대생들도 많이 왔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여기를 아는 학생들이 다 졸업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도 만나볼까 하고 건물에서 내려와서 노점에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다들 예쁘다고만 하고, 사지는 않아요.
ㄱ 학생들이 보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것 같아요.
ㄴ 맞아요.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도장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기 도장을 했어요. 아기들은 하늘에서 막 내려온 천사들이니까, 다들 아껴주잖아요. 아기들이라면 내가 먼저 가서라도 만들어주고 싶어서 애기들 도장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 엄마아빠들이 아기 하고 세트로 만들어 달라고… 그때 만들지 말았어야 되는데. 하하. 신조를 버리고 어른들 도장을 만들기 시작했죠. 엄마아빠 도장을 만드니까 다른 사람들도 오기 시작했어요.그래서 어른 도장, 애기 도장의 경계가 사라졌는데, 처음은 아기였어요. 갓난아기를 안고 여기까지 엄마아빠들이 오세요. 여기는 4층까지 올라와야 하는데, 참 미안하기도 했어요. 위험하기도 한데, 아기 얼굴을 보여주고 도장을 새기고 싶은 일 때문에 나를 찾아서 왔다는 게 미안하고 제게는 참 영광이었죠. 그게 제일… 아기 도장을 새길 때 뿌듯했어요.

 

누군가의 이름은, 자기 자신보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삶은 사랑은 늘 곪을까, 멍이 들까 하는 의문이 들고, 시작은 왜 이렇게 어렵고, 때로는 수정을 거듭하기보다 새로 하는 것이 더 쉬운데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고치고 고치면서 나아갈까하는 질문을 하고.

새된 비명소리, 어머니, 집,
나는,
있잖아…

거친 물살 아래 뒤엎히는 한 알 모래라고 여겼지.
그 위를 가르는 한 척 배, 그래서 돛을 펼칠 수 있다면 말이야.

…야, …아… 불러보지 않았던 이름을 불러 봅니다.

가득 차 이토록 낯설면서 친근한 이네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입에 담습니다. 내 삶이 어쩌면 괜찮을 수도 있겠다고 여전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예쁜 이, 바다만큼 어진, 높은, 맑고 깊고, 하늘, 바다에 반짝이는 햇살, 별다른 뜻이 없었던 이름, 그래도 그저 좋았던 이름. 이름,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
반전!


ㄴ 사실 이거 제 얼굴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아기 얼굴이라고 해서 그냥 그렇다고 해요.
ㄱ 옴마야!

 

+
추신.
소소돌방에서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볼 수 있는 도장을 만들었다.
3만원과 4만 5천원이었던 도장에서, 1만 5천원에 만나볼 수 있는 “놀이 도장”이 생겼으니,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싶은 사람들은 찾아보기를.

 

 

– 소소의 도장을 만나고 싶다면?

<소소돌방>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82 4층

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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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에디터 입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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