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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4 · 10 · 01

228. 공학원 떡볶이 오늘도 영업하나요?

Editor 정원

어느 겨울날, 갑자기 옛날 떡볶이와 뜨끈한 어묵 국물이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학교 근처 떡볶이집을 검색하려 켠 에브리타임에 ‘공학원 떡볶이 오늘 영업하나요.’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학교 앞에 포장마차가 있었다고? 한 번도 못 봤는데?

에디터의 초등학생 시절은 떡볶이집 없이 설명할 수 없다. 6년 동안 먹고 자란 떡볶이는 고춧가루에 설탕으로 맛을 내고 흐물흐물한 대파가 간간이 씹히는 밀 떡볶이였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밀떡에 고춧가루 맛의 국물 떡볶이가 모든 떡볶이 평가의 절대 기준이었다. 그 집을 간 지도 어언 십 년이 넘었다. 8살 어린이가 25살 대학생이 되는 동안 소화 기능이 조금 떨어졌고, 죠스와 신전, 엽떡의 탄생이 있었으며, 멀리 이사도 왔다. 모든 떡볶이를 사랑하지만, 오늘 필요한 것은 배달 떡볶이도 아니요, 넓은 전골냄비에 끓이는 즉석 떡볶이도 아니다. 한 그릇에 삼천 원 하는 분식집 떡볶이가 채워주는 허기짐은 따로 있다.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서대문03번 버스가 서는 ‘연세대학교앞’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버스정류장, 서대문 쉼표, 공학원 지하 출입구가 있는 곳에 포장마차도 있다. 주소가 따로 없으니 셋 중 하나를 찍고 가면 된다. 60대 후반쯤 돼 보이시는 부부 둘이 운영하신다.

 가을의 문턱에 아직 푸르른 주변. 올해 여름에는 쉬고 9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2인분보다 작은양을 합할경우 5000원입니다.’라는 말의 의미는 다른 손님이 떡볶이랑 순대 합해서 1인분 달라고 하는 것을 듣고 알아챘다. 에디터도 자연스럽게 “떡볶이랑 튀김으로 오천 원어치 주세요”를 외친다. 0.5인분씩이지만 1인분씩 시킨 것마냥 섭섭치 않게 퍼 주신다.

 

순대

 

근래에는 순대 내장까지 주는 떡볶이집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손질하기 힘든 데다 손님들 호불호 때문에 마냥 잘 나가는 메뉴도 아니기 때문이다. 배달 떡볶이류에서는 순대는 있으면 감사하고 내장은 꿈도 못 꾼다. 저녁의 신촌역이나 홍대입구역에 포진된 떡볶이 포장마차들은 4,000원씩 받으면서도 내장이 없거나, 따로 말해야만 한 줌도 안 되게 내준다.

사장님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본질을 택했다. 야들야들한 허파와 염통을 툭 잘라내는 손길에 순대를 시킬 걸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장님 저 순대로 바꿀게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마음을 다잡고 이미 주문한 튀김을 기다리기로 했다.

 

떡볶이

끊임없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떡볶이 좌판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큰 철판에서 끓이는 떡볶이는 타이밍을 잘 맞춰 가야 완벽함을 맛볼 수 있다. 떡에 국물이 적당히 배고 육수도 충분히 졸아들 때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사장님이 그마저도 제어할 수 있으신 건지, 이곳의 떡볶이는 방문할 때마다 항상 일정한 맛이다.

사실 이 날 에디터의 첫 끼니였다. 차마 튀김을 기다리지 못하고 떡 하나 먼저 먹었다. 

쌀떡과 대파, 양파, 삶은 계란까지 한 알 모두 먹음직스럽게 붉은빛이다. 굵은 쌀떡은 밀떡과 달리 쫀득함이 있다. 전에는 강경 밀떡파였지만 이제는 소화가 잘되는 쌀떡이 더 좋다. 떡의 식감처럼, 묽다기보단 걸쭉한 국물은 물엿과 고추장으로 맛을 냈다. 진빨강이 주는 인상과 달리 매운맛은 약하다. 사실 인생 떡볶이일 정도로 특출난 맛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진득한, 추억의 맛을 찾는 이들에게는 딱이다. 

화요일 오후 네 시에는 젊은이보다 어르신 손님들이 많았다. 사장님 부부와 친분이 있으신지, 이미 벌겋게 취한 얼굴로 앉은 손님 둘은 메뉴 설명을 대신 해 준다. 한참 건너편에 있는 두 손님도 구면인 듯하다. 남자 사장님에게 닭강정을 덜 맵게 볶아달라 신신당부했지만 여전히 매웠던 모양이다. 항의하는 목소리에 취객 손님이 “이게 뭐가 매워!” 라며 장난 어린 핀잔을 건넨다.

아까 넋 놓고 바라보던 순대의 주인은 닭강정이 맵다는 아주머니 손님이었다. “언니, 조금만 달라고 했잖아!” 자칫 쓰러질 것같이 쌓아 준 순대 2인분을 보며 손사래를 친다. 곧이어 들어온 손님이 여름에는 영업을 안 하셨냐, 몇 번 찾아왔었다는 말을 건넨다. 여자 사장님은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워서 쉬었어요. 내 나이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라 대답한다. 사장님은 반가움을 담은 대화를 짧게 유지한다. 새 손님들 때문에 튀김을 잊으셨나 할 때쯤, 에디터의 마음을 읽은 듯 “학생 튀김이랬지? 고구마튀김은 안 먹고?”라고 물어오신다. 

 

튀김

오늘은 선택받지 못했지만 새우튀김도 실하고 맛있다. 

0.5인분이지만 네 개나 고를 수 있다. 오늘은 야끼만두, 야채튀김, 오징어튀김, 김말이를 택했다. 양산형 떡볶이는 우리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앗아갔는가. 순대 내장은 물론이고, 매장에서 직접 만든 튀김도 어디서나 보기는 힘들다. 비실비실한 냉동 김말이, 검지만 한 오징어튀김 하나에 구백 원을 주던 안타까움은 이곳에서 보상받았다. 평균보다 클 필요도 없다. 그저 기본에 충실한 튀김이지만 인심을 담아 더 따뜻하다.

너무 푹신하지도, 일식 튀김처럼 파삭거리지도 않는 정석 분식 튀김옷을 입었다. 

이날 처음 야끼만두를 시켰는데, 당면으로 가득한 냉동 제품을 예상했다가 놀랐다. 고기에 부추까지 얇지만 알차게 속이 들어찼다. 잡내를 잡으려 넣은 약간의 생강 같은 향도 느꼈다. 같이 먹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조화 –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튀김 – 가 완벽하다. 핫도그에 닭강정까지 취급하는 메뉴 구성에서 튀김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나중에 온 유일한 젊은 손님이 여기 핫도그도 맛있다며 정보를 흘리고 갔다. 

앞서 맛집은 아니라고 했던가? 멀리서 찾아올 맛까지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지척에 이렇게 노스탤지어를 충족할 장소가 있다면, 이곳을 맛집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여자 사장님은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얼굴이 익은 손님에게는 먼저 한두 마디를 건넨다. 무표정인지, 미소인지 모를 표정이지만 두 눈에 상냥함이 깃들어 있다. 자리가 멀어 포기한 에디터에게 직접 어묵 국물을 떠다 에디터 앞에 놓아 주셨다. 취재 이후, 앞서 입수한 정보를 확인 차 핫도그를 먹고 갔을 때에도 어묵 국물을 내어 주셨다. (핫도그는 맛있었다.)

 

 

가게 

국물을 호록 마시며 시원하게 앞뒤가 뚫린, 일반적 의미와 영 다른 의미의 오픈 키친을 구경한다. 공학관의 화강석 외벽은 이 가게의 주방 타일이 된다. 화단의 석재 경계 겸 가게 선반에는 업소용 간장과 물엿 따위가 줄지어 서 있다. 큼직한 다시다 봉지는 MSG 안 쓴다는 거짓말조차 하지 않는 솔직함의 상징이다. 식당이라면 벽에 걸려 있었을 선풍기가 나무에 동여매진 것도 눈에 들어온다. 

매장의 또 다른 벽인 갈대발 틈새로는 성산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연세대앞’인 정류장 네 개가 코앞인 덕에 버스 엔진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분식으로 배를 채우고 귀로는 손님들과 길거리의 소리를 담으며, 노점상이라면 무작정 피하려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반론하듯 세월의 흔적을 핑계로 낡은 티를 내기보다는 말끔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점포 곳곳에 보인다. 현수막 메뉴판은 정돈된 레이아웃에 카카오페이 문구까지 들어간 것을 보아하니 분명 최근 것이다. 흰색,초록색 무늬 멜라민 접시의 역할은 스테인리스 그릇이 대체했다. 바삐 오가는 손님에도 불구하고 잘 닦인 상판과 가지런한 의자는 항상 대열을 유지한다. 

왼쪽 귀퉁이의 초록은 마을버스, 건너편의 광고판은 시내버스 겸 광역버스 정류장이다. 

 

마을버스의 삐-소리를 들으며 바깥으로 나선다.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바깥 음식. 1985년 처음 개업한 이곳은 수많은 학생에게 끼니를 때울 곳이나 잔술을 마실 수 있는 아지트 같은 장소였다. 사장님은 이한열 열사가 데모하던 시절부터 자리를 지켰다고 하신다. (공교롭게도 정문 앞,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은 자리에서 직진해 올라오면 이 떡볶이집이 있다) 옛날에는 어땠냐는 질문에는 자식 같은 학생들을 넉넉히 먹이고, 때로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정치 소식도 물어보던 과거를 꺼낸다. 세월이 흐르며 술은 메뉴에서 사라지고 학생들은 점차 각자도생에 가까워졌다. “전에는 학생들 인터뷰도 많이 해 주고 그랬어, 무슨 수업 때문에 취재하러 왔다고 앞다투어 얘기하고.”라며 말씀하시는 남자 사장님은 조금은 지쳐 보였다. 장사가 예전만치 못하다는 말이 담는 신촌은 단정해졌지만 어딘지 공허함이 맴도는 공간이 아닐까.

에디터가 신촌에서 보낸 시간은 이 주소도 천장도 없는 포장마차에 비하면 찰나이다. 신촌역 2번 출구 앞 투썸이라든가 연세로 에뛰드가 사라지던 모습을 떠올리며 사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앞으로 신촌이 기운 빠진 동네로 남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골목골목 수십 년의 세월을 안고 있는 존재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 아침 일찍 김밥을 포장해 가던 학생이 교수가 되어서도 다시 찾는 공학원 포장마차는 이곳이어야만 한다.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의 추억은 아직 신촌을 쉬이 떠나지 못하게 한다. 비록 외지인에게는 맛집이 없다 투덜대더라도 추억이 생명을 유지하는 장소가 있는 한, 이곳 사람들에게는 ‘내 동네’이니까.

공학원 포장마차

영업시간: 주 7일, 오전 5시~저녁 8시

위치: 서대문03 연세대학교앞 정류장 뒤편

메뉴: 떡볶이, 튀김, 순대, 닭강정, 김밥, 어묵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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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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