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 빛으로 그려낸 얼굴들은
그 사진첩을 발견한 건 세상이 무르익는 가을의 중간, 유례없이 비가 퍼붓던 날이었다. 잔재하던 약간의 더위마저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성큼 다가온 추위에 두꺼운 이불을 꺼내려 낡은 이불장의 문을 열었던 날. 긴 여름 내도록 닫혀 있었던 거대한 나무 상자에서는 짙은 나프탈렌 냄새가 났던 것 같다. 비가 오는 탓에 해가 들지 않는 방은 어두웠고, 적절한 두께의 이불을 찾으려면 손을 뻗어 더듬거려야 했다. 그러던 중, 무거운 솜들을 지탱하던 이불장의 가장 밑단에 서랍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뻑뻑한 마찰음을 내며 열린 서랍장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옛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엄마 아빠의 20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나,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젊은 시절의 할머니 할아버지.
분명 내가 모르는 모습이었지만, 사랑하는 얼굴만큼은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약하게 색이 바랜 사진 속에서 젊고 어린 피사체가 되어있는 그들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문득,
사람을 사진 속에 담는 일에 대해 묻고 싶어졌다.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연희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조한승이라고 합니다.
처음 사진 찍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특별한 계기 없이, 사진을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게다가 가업이기도 하거든요. 1950년대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3대째 이어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사진관을 하는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사진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장난감도 사진기가 많았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되었죠.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대로 쭉 사진 찍는 일을 했네요.

서울시 오래가게로 선정된 연희사진관
그럼, 사진사로 일하신 지는 얼마나 되신 거예요?
이십몇 년 된 것 같아요.
엄청 오래되셨네요. 저는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단하신 것 같아요. 혹시 일하시면서 느꼈던 불안이나 어려움은 없었나요?
사진관 하면서 불안했던 건 없어요. 다른 문제긴 한데, 가족 건강 문제처럼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지, 그 외에 사진관 일에 대한 불안은 없었어요. 저에게 사진관은 집 같은 거예요. 그래서 사진관에 올 때 일하러 간다는 생각이 아니라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오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수많은 동네 중에 신촌에 자리 잡게 되신 이유가 궁금해요!
아무래도 대학교가 있으니까요. 아버지가 옛날에 대학교 안에서 학교 앨범 관련 일을 하시면서 쭉 근처에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1997년도까지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안에 있었거든요. 학교에서 나온 뒤에도 근처에 자리를 잡았으니까, 그때부터 여기에 쭉 머물렀네요.
오래전부터 신촌에 머물고 계시는데, 신촌의 변화를 체감하신 순간이 있나요?
음, 차 없는 거리가 생겼을 때 변화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차가 많을 때는 사람들이 또 많이 왔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들어오는 입구가 너무 불편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홍대로 빠지는 건가 싶어요.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 버스킹 공연하는 건 너무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차 없는 거리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많이 변했죠. 아무래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자세히 말하지는 못하지만, 임대료 문제도 있고요. 게다가 여기(이대역 부근)가 아주 쓸쓸해요. 한 10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 노점도 많았고, 빈 가게는 찾아볼 수도 없었어요.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여기가 엄청 번화가였거든요. 사람도 되게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뭔가 활기를 찾았으면 좋겠는데 아쉽죠.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사진관이 굳건히 자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알려주시겠어요?
변화를 빨리빨리 따라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아날로그 시대였거든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뀔 때, 그걸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하고 장비적인 문제도 보완하려고 했죠. 처음 디지털카메라가 나왔을 때는 화소도 안 좋고, 그전에 있던 필름 카메라하고 해상도 차이가 엄청 많이 났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진 전공을 하다가 중간에 멀티미디어 디자인 전공도 같이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컴퓨터 세대는 아니니까 처음에는 몹시 어려웠죠. 그래도 ‘아 다시 해보자.’ 하고서 그만두지 않았어요.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벌써 컴퓨터를 만진 지가 20년이 넘었네요. 만약 변화를 거부했으면 사진관을 이어 나가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게다가 이제는 포토샵보다 마케팅 사업이에요.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고, AI가 발전하고. 근데 그것도 사진이 어색하지 않게 적절히 잘 써야 하거든요. 이렇게 세상은 계속 변해요. 어려운데, 변화를 따라가야 하죠.
사장님께서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그건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데, 사진을 찍는 순간에 집중하고, 그 사진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집중해서 사진을 찍다 보면 ‘이 사람이 여기를 신경 쓰겠다.’ 싶은 부분이 보이거든요. 사진을 찍을 때 그런 부분 위주로 보고, 포토샵 할 때도 가장 먼저 신경 써요. 그 사람은 거슬리는 부분만 보일 거니까, 그 부분이 먼저 해결되면 이후로는 마음이 편안해질 거예요. 그런데 제가 신경 쓰지 않으면 손님이 ‘이 부분 수정 안 해주시면 어떡하지.’ 불안할 수도 있잖아요. 먼저 알아서 딱 수정하고 손님 표정을 보면 웃고 계셔요. 이런 게 노하우인 거죠. 근데 불쾌할 수도 있으니까, 이런 부분을 먼저 말하지는 않아요. 나중에 어떻게 아셨냐 물어보시면 그냥 웃죠 (웃음). 그래서 리뷰 댓글을 보면 알아서 잘해줍니다- 이런 글이 많은 것 같아요.

(이제는 포토샵의 달인이 된 사장님…)
요즘 대부분의 사진관이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연희 사진관은 예약제가 아니라고 들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예약제를 하면 보통 한 시간에 두 명, 이런 식으로 (고객 수를) 정해두고 예약을 받거든요. 그런데 막상 사진을 찍다 보면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많아요. 손님이 준비를 오래 하실 수도 있고, 저도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다 보면 사실 한 사람 사진에 한 시간이 걸릴 때도 있는 거죠. 그렇게 되면 뒤에 예약하신 분이 더 기다려야 하니까, 가끔 화를 내기도 하시거든요. 그러면 손님들이 서로 불쾌해지고, 사진은 엉망이 되고.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예약제를 안 하게 됐어요. 물론 예약제가 아닌 걸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고, 예약 없이 오라고 해서 왔는데 사람이 왜 이렇게 많냐고 화를 내고 욕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작업한 사진으로 욕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나아요. 손님이 많아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쓴소리 듣는 건 어찌 되었든 사진에 대해서 욕먹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힘들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조금 욕먹더라도, 손님 한 분 한 분에 확실히 집중하는 게 좋아요. 그래서 자주 오시는 분들은 예약제 아닌 게 훨씬 낫다고 말하기도 해요.
어찌 되었든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이 종종 있을 것 같은데요. 사장님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사람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운동을 하거나 바이크를 타요. 집에서 하도 못 타게 해서 1년에 몇 번 타는 정도지만요. 그렇지만 바이크 타는 사람들은 꼭 그걸 타지 않더라도 관상용으로 놔둬요. 두고 보면서 닦아주고 하는 거죠. 컴퓨터 배경 화면도 바이크예요. 자주 타지는 못하고 투어 같은 것도 못 나가지만, 보기만 해도 좋은 것 같아요.

사장님께 사람을 찍는 일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제가 찍은 사진이 좋은 데 쓰이는 경우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어요. 슬픈 사진도 있고, 기쁜 사진도 있는 거죠. 예전에는 사진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면 행복을 준다고 긍정적으로 답변했는데, 사실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시험에 합격해서 기쁜 마음으로 제출해야 하는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도 있고, 울면서 영정사진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죠. 그 의미는 다양한 것 같아요. 기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고.
그렇다면 사진관을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화가 있나요?
신촌 쪽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이에요. 평생 일만 하시다가 2002년 월드컵 때 돈을 많이 버셔서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분이었어요. 내도록 일만 한다고 해외여행 한 번 간 적이 없어서, 이제서야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신다고 사진을 찍으러 오셨는데, 그때 찍은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되게 좋아하셨어요. 농담 삼아 영정 사진으로도 써야겠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그다음 날에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진짜 그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되어버린 거죠. 마음이 되게 안 좋았어요.
게다가 이런 경험이 한 번 더 있었거든요. 그분도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영정 사진으로도 쓰고 싶다고 농담조로 말하시고 얼마 안 있다 돌아가셨어요. 아들이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울면서 왔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말해요. 그리고 본인이 직접 나 췌장암 말기인데 떠나기 전에 여기 와서 사진 찍는다고 말하셨던 분도 계셨어요. 사진 찍고 나가시면서 이번에 돌아가면 나는 하나님한테 갈 것 같으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하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말하셨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죠. 저희 집안은 원래 불교 집안인데, 그 어머니 떠나가시고 나서 혼자 조용히 교회를 나가게 됐어요. 생각해 보면 손님들로 인해서 저한테 변화도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때로는 반성도 하고. 물론 좋을 때도 많았어요.
근데 원래 좋았던 일은 슬펐던 일에 비하면 기억이 잘 안 나지.
사진관을 계속하시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지금은 특별히 사진관을 더 키우고 싶은 욕심이나 생각은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오는 손님 한 분 한 분 잘 맞춰서 해드리고, 서로 이야기 나누면서 일하는 게 좋아요. 동네에 계시는 어르신들도 많이 오시거든요. 어르신들께서 가끔 밥 먹으러 오라고 초대도 해주시고 그래요(웃음). 이렇게 사람 사는 것처럼 소소하게, 동네에서 오랫동안 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오랜 시간 이 곳에서 운영하셨으니, 꾸준히 발걸음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겠군요.
그렇죠. 몇십 년을 있었으니까요. 제 첫 손님이 중학생일 때 왔었는데 지금 40대가 다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같이 늙어가는 게 되게 정감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저희 아버지가 사진관을 할 때부터 알던 분들도 많고, 연세대에 있을 때부터 오시던 손님도 아직 많이 오시죠. 저희 가게가 예전에 신촌역 3번 출구 앞에 있었는데, 15년 전에 왔던 손님들이 가끔 전화 와서 신촌역 3번 출구에 왜 가게가 없어졌냐고 물어보세요. 일이 있어서 신촌에 오시면 아직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거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잊지 않고 찾아준다는 건 그만큼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되게 감동적이네요. 옛 손님들이 오랜만에 찾아오셨을 때, 아주 반가우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오랜만에 보면 외적으로 변하신 분들도 많은데, 세월이 흐르면서 풍파를 이겨내지 못하셨구나 해요 (웃음). 그건 모두가 다 똑같은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약간 서글프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어서 변화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이렇게 사진을 오래 했나,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체감하는 것 같아요.

이대역 3번 출구에 있는 연희사진관
혹시 제가 질문하지 않아서 못 하신 말이 있다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너무 벗어나서 답변한 건 아닐까 싶어요. 옛날에는 질문을 받으면 정형화되고 꾸며진 답변을 했거든요. 근데 이제 그런 게 싫더라고요. 모든 걸 좋게 포장해서 말하는 건 솔직하지 못한 거니까요. 전에는 사진이 행복만 준다고 말했었는데, 그건 절대 아닌 것 같아요. 생각하면 되게 슬펐던 일도 많았으니까요. 다양한 감정이 드는 일이에요.

누군가의 말마따나 세상에 영원한 건 없을지도 모른다.
익숙했던 가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우리도 나이를 먹어가고, 이 땅에 굳게 뿌리 내린 어떤 신념들도 언젠가는 변하겠지. 그럼에도 영원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자주 가는 동네 카페, 서로가 주고받는 다정, 신촌을 달구는 청춘의 열기 같은 것들. 나는 한 때 사랑하는 것들의 영원을 그토록 빌었던 적이 있었다. 몇 번의 이별을 겪어보니, 뭐든 흐르는 시간에는 면역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우리가 영원과 맞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매개체가 아닐까 싶다. 소중히 살아낸 순간을 담은 사진이 있는 한, 우리는 평생 그때의 얼굴과 감정과 기억을 회상할 수 있을 테니까.
연희 사진관의 사장님은 사진이 꼭 행복의 집합체는 아니라고 하셨지만, 이 글을 빌려 그 사진이 스쳐 간 어떤 순간에는 분명 행복이 존재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을 빛으로 그려내는 일에 대한 존경도 함께 덧붙인다.
혹여나 사진에 담긴 마음들의 총체가 슬픔으로, 그리고 그리움으로 귀결되더라도 괜찮다.
우리는 그리워하는 마음마저 사랑임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순간을 소중히 살아가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보자!

연희 사진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16 지하 1층
Instagram @yonhee_photo_studio
월~금 (11:00~20:00)
토요일(11:00~19:00)
일요일(14:00~17:00)
*주말에는 사전 연락 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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