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BUT SMALLER
우리는 종종 거대한 것들에 시선을 빼앗긴다.
거대한 빌딩
거대한 조형물
거대한 움직임
거대한 목소리
언제부턴가 작은 것들은 경시되기 시작했다.
몇 차례에 걸친 산업 혁명의 영향일까.
더 많은 것, 더 큰 것이 칭송 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감당할 수도 없이 거대한 무언가에 짓눌려 있음을 느낀 채 그 무게를 짊어지고 산다.
초점의 단위를 조금만 조정해보자.
킬로 헥토 데카 데시 센티 밀리 마이크로 나노 피코 펨토 아토
어쩌면 쿼크의 크기까지 고려할 수 있는 더 작은 세계로.
무엇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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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FLOOR_ (플로어)는 10월 12일부터 11월 11일까지 오픈 콜을 통해 선정된 작품들을 모아 그룹전 “Small but Smaller”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외 다양한 문화와 예술적 배경을 가진 16명의 시각 예술 작가들의 사진, 영상, 설치 작업 등을 포함한 렌즈에 기반을 둔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형 회화 작품과 공간을 압도하는 설치 작품 같은 웅장한 스케일의 작품들이 미술계의 큰 부분을 차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이러한 경향과 반대로, 대형 작품의 흐름에서 벗어난 작은 크기의 작품들이 가지는 스케일의 힘을 탐구하고자 한다.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작가들은 ‘크기가 클수록 더 좋다’라는 고정 관념에 도전하며, 작은 크기의 작업에서 관찰할 수 있는 독특한 시각과 깊이 있는 서사에 집중한다.
작은 크기의 작품들이 지닌 섬세함과 정교함에 초점을 맞춘 이번 전시는 관객들이 예술을 보다 개인적이고 집중된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은 크기의 작품들만이 줄 수 있는 예상치 못한 디테일의 아름다움을 조명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예술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압도적인 현대 미술의 규모에 신선한 대조를 이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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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서부터 찬찬히 작은 것들을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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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철, 강과 바다를 누르는 문진, Palladium Print, 2024
“손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쫓아 아날로그 프린트 작업을 하고 있다. 종이 위에 금속이 섞인 약품을 정성스레 덧바르고 물속에 여러 번 담갔다 빼는 작업을 반복하여 사진을 옮기고 나면, 종이의 무게가 한층 무거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날아가지 않도록 종이 위에 문진을 올려둔 것처럼. 때론 그저 물결과 파도를 누르려는 시도처럼 무력하기도 하지만 묵묵히 무게를 얹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눈으로 무게를 가늠할 수 없다. 어쩌면 과학 실험을 할 때 쓰이는 초정밀 저울로도.
드러내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신만의 무게를 얹고 또 얹어 쌓아나가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견고하고도 단단한가. 우리 각자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자신만의 무게를 가지고 살아간다.

Frida Braide, Untitled 1, 15, 14, 23, 13, 5, 25, 16, Archival Pigment Print, 2023
“바다를 열망하던 작가는 콘크리트를 마주하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재료인 콘크리트는 자연을 압도하며 인공적인 환경을 확장시키고 있다. 자연과 달리 콘크리트는 스스로 성장하지 않는다. 대신 서서히 굳어지다가 결국에는 점차 붕괴하기 시작한다. 바다를 열망하던 작가는 뉴욕이 백 년도 채 되지 않아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시를 이루고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들은 수십 년 동안 자연에 저항하며 유지될 것이다. 물속에 잠겨버릴 뉴욕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건물, 조형물, 혹은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것들을 덮기 위해 쓰인 시멘트, 물, 모래, 자갈 등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만든 혼합물. 우리가 죽어서도 콘크리트는 그 형태를 유지한 채 남아있을 것이다. 인류가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꿋꿋이 지구 어딘가에 자리하리라. 순환하는 자연과는 대비되는 끈질긴 영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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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예, 나비 꿈, Self-Published Publication, 2024
“아버지는 우리 세대의 많은 가부장들이 그랬듯 오랫동안 간을 혹사하다 돌아가셨다. 어떤 유언 같은 것도 남기지 않고. 다만 언젠가 도봉동의 아파트를 지켜내어 다행이다, 라고 하셨다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서울에서 유일하게 집값이 오르지 않는 동네로만 이사했던 한 가족의 마지막 보금자리, 아버지가 인생의 최고의 성취라 여겼던 아파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안팎에서 지켜본 부모님의 위태로운 결혼 생활, 앨범 속 젊은 두 사람의 낯선 역사와, 전통적인 성 역할, 독재와 경제 개발의 시간, 부동산 투자 붐 같은 거시적인 것들의 흔적도 겹쳐보았다. 오래된 아파트와 같은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한 사람의 유산이란 무엇일까. 반면에, 곧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를 통해 한 인생과 그가 지나온 시대에 대해 무엇을 드러낼 수 있을까.”
빌라와 아파트는 많은데 이 한 몸 누일 곳은 없다. 언제부터일까.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주’를 하루 끝에 지친 나를 맞이해 주는 아늑한 보금자리가 아닌 투자의 대상으로 보게 된 건.
집값이 오르고 내린다. 그리고 그러한 거시적인 흐름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힘없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개인의 삶. 그가 남기고 간 것은 비단 아파트 한 칸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 다른 것들은 또 무어라 설명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다.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 삶을 짓누르는 사각형의 무거운 추로 변모한다.
나비 꿈, 호접지몽, 인생의 덧없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Mattia Gravili, Human, Archival Pigment Print, 2022
“작가는 현대 미술로서 사진 매체가 가지는 의미에 집중한다. (…)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품은 인간으로서의 고유함을 보여주는 작은 신체적 디테일들을 강조하며 그 섬세함과 친밀감을 표현하고자 한다.”
오돌토돌한 피부 요철, 얇은 피부 너머 미세하게 비치는 작은 혈관들, 각질, 튼살, 주름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것들. 우리가 마냥 환영하지만은 않는 것들이다.
만일 이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그러한 존재를 인간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요즘 표현대로 ‘AI 아니야?’ 뭐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없어도 될 것 같은 것들이 모여 인간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만들어 낸다. 때론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이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없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무수히 많은 부분들을 온전한 나만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김기훈, 어쩌다 찍힌 사진, Archival Pigment Print, 2024
“‘어쩌다 찍힌 사진’ 연작은 언제 어떻게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우연히 찍혀 휴대폰에 저장된 어쩌다 찍힌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어쩌다 찍힌 사진들을 통해 어떠한 계획이나 의도 없이 찍혔다는 점에서 무언의 해방감을 경험한다.”
다들 사진첩에 어쩌다 찍힌 사진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지우지 않고 간직한다. 좋아하는 사진으로 지정하기도 한다. 기록광이라 해야 할지, 심각한 저장 강박이라 해야 할지.
사진은 대부분 우리의 의도를 담아 찍힌다. ‘보자… 이 사물은 프레임 안에 넣고…’ 다른 요소들과 조금이라도 어우러지지 않거나 추하다고 생각되는 물체는 가차 없이 프레임 바깥으로 밀어내 버린다. 그런데 어쩌다 찍힌 사진은?
내가 보고 싶어하는, 남기고 싶어하는 풍경이 아닌 내가 전혀 주목하지 못했던 풍경을 담는다. 내가 바라보지 못했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나도 너도 제3자도 아닌 제n자의 시각으로. 날아가던 제비의 시선, 떨어지던 낙엽의 시선, 발에 차이던 돌멩이의 시선과 우연히 같은 순간을 포착할 수도 있겠다.
‘사진’이라는 구색을 갖춘 사진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찍는 이의 손에 카메라 렌즈가 가려져 흐릿한 살색의 형체가 사진의 80%를 구성하더라도 아무렴 어떤가. 이 또한 우리가 사는 차원 너머의 무언가를 보게 해준다.


이연수, 온기…프레임, Archival Pigment Print, 2024
벽 여기저기 오래된 빌라 내부의 풍광을 담은 듯한 사진들이 흩어져 위치해 있다.
180cm를 훌쩍 넘는 듯한 높이에 걸려 있는 작품들도 있고, 지나가던 고양이의 시선에 알맞은 높이에 위치한 작품들도 있다.
까치발을 들고 발을 삐끗하지 않으려 용을 쓰고,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기웃거리며 무엇을 담은 사진인지 이리저리 살핀다.
위에는 꽃무늬 실크 벽지, 내부에 먼지 쌓인 조명등, 끝까지 올라가 있는 블라인드,
중간에는 익숙한 부엌 공간, 오래되어 누런빛을 띠는 인터폰, 베란다에 놓인 식물들과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
아래에는 욕조 배수구와 그 마개, 바닥 모서리, 반짝이는 장판 위로 비친 햇빛…
이곳저곳에 자리한 사진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그 공간 속에 들어가 내부를 구경하는 기분이 든다.
작품명처럼 프레임 속에서 알 수 없는 온기가 느껴진다. 과거 나를 따듯하게 품어주었던 공간이 겹쳐보이는 탓일까.
천천히 위아래를 넘나들며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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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것들을 우리는 더 자세히 보고자 고개를 죽 내밀어 들여다 본다.
마치 돋보기를 눈에 갖다 댄 것처럼 눈은 커지고 확장된다.
그리고 저 먼발치서 바라봤을 땐 포착하지 못했던 디테일들을 발견하고 이내 즐거움을 느낀다.
길을 걷다가 만난 이름 모를 자그마한 꽃 한 송이를 발견한 기쁨과도 같다.
작지만 다양한 스케일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이러한 행운을 줄곧 잊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종종 작은 것들에 시선 두는 일을 까먹고는 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하던 일을 멈추고, 초점을 조정해 보자.
작은 선인장
작은 상처
작은 조약돌
작은 미소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이다.

. SMALL BUT SMALLER
. 24.10.12 – 11.11
. Group Show
. FLOOR_ (플로어)
.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5길 65-6
. 12:00 pm – 7:00 pm (tue off)
아! 그리고

고소한 햇살 아래 단잠을 즐기는 문지기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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