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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17 · 10 · 02

연극 ‘아무도 아닌’ #신촌극장

Editor 고온

 

9월 초부터 신촌 곳곳에 조용히, 낯선 포스터가 붙었다. 아름다운시절, 모어댄위스키, 시바펍. 공교롭게도 가는 곳마다 붙어 있던 타이포그래피 포스터를 세 번 정도 마주쳤을 때야 자세히 포스터를 들여다보았다. 연극. <아무도 아닌>. ‘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 으로 읽는다’라는 소개말이 내내 남았다. 앞서 두 번을 그냥 지나친 것이 조금 걸렸다.

연극은 9월 20일부터 신촌극장에 올라간다고 했다.

 

 

창천교회 맞은편, 굴다리 바로 앞의 좁은 골목은 하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잘 들르지 않는 곳이다. 이날 개관한 신촌극장은 골목 가운데에 있었다. 가정집과 하숙집들 사이에 걸린 네모반듯하게 하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따금 위에서 전철 소리가 들렸다. 건물 내부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옥상 공간에 극장이 자리했다. 보통 무대만한 공간이 신촌극장의 무대이자 객석이었다.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공간에 놓인 의자에 앉아 기다리자 서 있던 배우들이 공연을 시작했다. 배우는 두 명, 간단한 큐빅 몇 개가 무대장비의 전부였다.

 

아무도…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는 말하지 않았는데.

 

빔프로젝터가 글자를 비추고, 뒤이어 배우가 대사를 천천히 읊었다.

 

“그는 좁은 좌석에서 한번 더 몸을 비틀었다. 그가 풀어둔 안전벨트의 버클이 왼쪽 엉덩이를 찔렀다. 그는 엉덩이 아래를 손으로 더듬어 버클을 빼냈다. 납작하고 따뜻한 금속이 그의 체온으로 따뜻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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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신촌극장 페이스북

 

신촌극장의 첫 번째 연극, <아무도 아닌>은 연출가 이연주가 연출을 맡았고 소설가 황정은의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 ‘누구도 가본 적 없는’과 ‘양의 미래’로 구성되었다.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은 예전에 아이를 잃은 두 중년 부부의 유럽여행 이야기, ‘양의 미래’는 행방불명된 학생을 마지막으로 본 서점 직원의 이야기이다.

공연에서 박수진, 이세영 배우는 원작 소설에 실린 텍스트를 대사로 소화하면서 무대를 통해 독자가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을 공간을 재현했다. ‘그는 ~했다’/ ‘그녀는 ~했다’라는 문장들은 배우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거나 빔프로젝터로 띄워져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전달되었다. 소설은 오롯이 텍스트로만 구성된 형태의 예술인 반면 연극은 배우, 무대와 관객이 한 시공간에 존재해야만 하는 예술이다. 소설의 문장과 연극의 공간이 만나면서, 관객들은 소설 안 미지의 시공간으로 끌려들어간 것처럼 몰입하고 화자-배우와 함께 숨을 쉬게 된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연극 <아무도 아닌>의 두 이야기, ‘누구도 가본 적 없는’과 ‘양의 미래’를 일관되게 묶은 요소는 두 작품이 과거의 상실과 지속되는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누구도 가본 적 없는’에서 부부가 아이를 잃은 것은 아주 오래전이지만 이 부재는 먼 시공간인 현재, 그들이 여행하고 있는 유럽에서도 불쑥 고개를 든다. 다른 언급 없이도 왜 아내가 이따금 이유없이 우는지, 왜 남편이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싶어 하지 않는지는 분명하다. 아이의 죽음에서 오는 절망은 그저 묻어둔 것일 뿐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유럽에서 남편이 실수를 한 아내를 책망하는 장면은 십몇년 전 사고로 아이가 죽었을 때 아내에 대한 그의 격렬한 원망과 정확히 겹쳐지면서, 참담해진다. 작은 무대는 한순간에 유럽의 공항에서 과거 아이를 잃은 숲 속으로 관객들을 이동시킨다. 이연주 연출의 표현에 따르면 “다른 공간에서 이뤄지는 상황이지만 같은 심리적 공간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내면서 확장”한 것이다. 관객을 포함해 공연을 이루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작품 속 인물의 절망을 겪는 경험은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강렬했다.

 

한편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의 상실이 개인적이고 깊은 상처에 가까웠다면, ‘양의 미래’에서의 상실은 이와 달리 화자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사회적 차원에 가깝다. 공연에서 두 배우가 번갈아 연기하는 ‘양의 미래’의 화자는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여성이다. 그는 살면서 꾸준히 좌절을 겪었고 그래서 절망에 익숙하다. 그러나 작품에서 그가 과거를 되짚어 일러주는 상실은 그 자신의 경험보다 무겁다. 그는 여학생이 납치되어 실종되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이후로도 하지 못한다(학생, 학생의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도). 그러므로 화자는 ‘그 장소를 떠난 뒤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학생의 실종을 겪고, 절망과 가난이 두려워 미래를 포기한다. 이 지점에서 ‘양의 미래’의 상실은 사회 전반의 것으로 확대된다. 결말부에서 화자는 가난한 소설가가 쓴 책에 이렇게 덧붙여 적는다.

‘아무도 없고 가난하다면 아이같은 건 만들지 않는 게 좋아. 아무도 없고 가난한 채로 죽어.’

이 문장은 무대에 유일하게, 프로젝터나 대사로 전달되지 않고 배우의 손으로 칠판에 쓰여지는 텍스트다.

 

작품 내에서 개인에서 사회로 상실의 층위가 확장되었지만, 화자들이 그에 따른 절망과 책임을 감당한다는 것은 같다. 그들은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아이의 죽음이나 학생의 실종을 겪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주어지는 단절이나 절망은 세계의 일방적인 횡포에 가깝다. 이 횡포를 겪는 작품의 화자들은 체념하고 절망을 받아들인다. 주어진 선택의 여지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작품 속 무력하고 의미없는  존재이기만 할까? 배우들이 대사로 소화하는 소설의 문장들은 화자들의 고뇌를 관객에게 이해하도록 해준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관객들 또한 그들과 같은 경험을 했고, 같은 생각을 한다. 우리도 그들과 같다. 그렇기에 그들은 ‘아무도 아닐’지언정,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아닌 것이다.

 

이 맥락-상실-에서 이연주 연출이 두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신촌극장으로 들어서는 골목에서, 먼 기억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촌의 과거와 현재를 떠올리면 더 그렇다. 과거에 활발했던 ‘생성하는 역할’을 상실한 신촌에서, 또 그 역할을 새롭게 하고자 기획된 공간인 신촌극장에서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필연적일지 모른다.

이연주 연출은 작품을 신촌극장에 올리면서 “신촌극장이 젊은 창작자들의 새로운 공간이 되길 바다”고 했다. <아무도 아닌>의 10월 1일 마지막 공연 이후 신촌극장에는 연극의 영상과 사운드를 맡은 사운드디자이너 목소와 작가 허영균의 협업작품이 올라간다. 이외에도 여러 장르와 형태를 넘나드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활발한 예술적 담론이 오갈 신촌극장은, 신촌에 아직 사람들이 있고 생성할 수 있는 기반이 있는 곳이라는 증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촌에는 여전히 사람/우리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들/우리는 ‘아무도 아닌’ 이들일지언정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은 아니니까.

 

 


신촌극장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theatresinchon/

고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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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

세상은 너무 대놓고 의욕적인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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