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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4 · 11 · 06

443. 젊은 시인이여, 사랑의 무모함을 쥐고 행진하라!

Editor 혜성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정현입니다. 제 입으로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은데, 묘의 대장이죠. (웃음) 제가 묘를 구상하고 친구들을 모았거든요. 처음에는 수평적으로 묘를 구성해 나갔었는데, 종종 의사결정을 할 때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맡은 일들이 많아지면서 결국에는 묘의 대장이 된 것 같아요.

 

묘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묘의 시집에는 창작 동인이라고 적혀 있어요. 시인들을 보면 저마다 동인이 있는 게 부러웠어요. 양안다 시인의 동인 ‘뿔’도 있고, 오은 시인의 ‘작란’이라는 동인이 있는 것처럼 저도 따라서 동인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글을 쓰는 모임을 시작했고, 거기에 더해서 시집을 만들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묘의 시작은 같이 글을 쓰고, 시집을 발간하는 일회성 프로젝트처럼 진행하려고 한 건데, 어쩌다 보니까 묘의 정체성이 독립 출판처럼 꾸준히 책을 발행하는 모임이 되었더라고요. 물론 동인의 성격은 있지만, 좀 더 출판사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지금 묘는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묘는 어떻게 모이게 되신 거예요?

전역을 하고 ‘스텔러’라는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글 쓰는 연합 동아리인데, 거기서 제가 눈여겨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죠. (웃음) 그 동아리를 나가고, 올해 초에 친한 동생이랑 ‘시집을 만들어서 서울 전역에 전단을 붙이듯 광고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이후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모았고, 우선 스텔러에서 함께 글을 쓰던 친구들 몇 명이 모였죠. 그리고 스텔러에서 글 전시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놀러 왔던 제 동기가 다음에 글 쓰는 일을 하게 된다면 같이 하고 싶다고 말했었거든요. 그 친구도 함께하게 됐어요. 또, 전단을 붙여서 홍보하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해서 제 주변에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러브콜을 보냈고요. 사실 다른 친구들은 조그맣게 하고 싶은데 왜 사람을 늘리려 하냐며 불만들이 있었는데, 저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점점 사람을 모았는데, 단체 활동이 으레 그렇듯이 저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벽이라는 게 생기잖아요. 그런 것들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원래는 구성원이 더 많았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6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래의 보라색 글씨를 누르면 묘의 웹사이트로 이동합니다)

묘의 웹사이트를 보니까, 다양한 활동을 하셨더라고요. 그중에 ‘시 버스킹’이 눈에 띄었어요. 어떻게 보면 조금 생소한 버스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 버스킹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아리수 공연장 아시려나요. 거기서 시 버스킹을 했어요. 사실 단체 활동을 하다 보면 트러블이 종종 생기기도 하고, 매번 좋을 수는 없잖아요. 그때의 묘가 그런 시기였던 것 같아요. 묘에서 제가 맡은 바가 많았지만, 실질적인 직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보니, 애매하게 행동했어요. 그래서 하려던 일도 자꾸 미뤄졌고요. 그런 상황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버스킹 하고 싶지 않았어요. 노래하거나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만히 서서 시를 낭독하는 건데 부끄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잖아요. 하지만 이미 떠벌려 놓은 것도 있었고, 제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우리에게 어떤 울림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묘의 시작에는 ‘안 되는 거 알지만 한번 해보자. 잘 안되어도 일단 해보자’라는 마인드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모두가 그걸 잊어가는 것 같았어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한번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보자, 내가 바위에 부딪힌 계란이 되어 보자- 싶었죠. 그렇게 시 버스킹을 하게 된 거예요. 어떻게 보면 무모한 거죠.

 

무모하지만 전혀 무용하지 않은, 큰 의미가 있는 도전이었네요. 버스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거리에 나가서 시를 읽었던 날은 정현 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그때 당시 정신이 너무 없어서, 그 순간이 기억이 잘 안 나요. 저희가 쓴 시와 좋아하는 다른 시인들의 시를 낭독하고, 시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어요. 날도 엄청 더웠고, 저녁 시간이었으니까 사람이 많지 않았죠. 대부분은 그냥 스쳐보고 지나갔어요. 그러다 두세 명은 앉아서 듣고 가기도 하고요. 사실 철저한 무관심은 예상했던 반응이라 생각보다 버틸 만했어요. 우리가 그런 걸 견디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글을 쓰면 자신이 쓴 글이 가장 소중하잖아요. 무엇보다 그 글에 애정을 갖게 되고요. 그렇지만 독자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물론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지만, 그렇게 느끼게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어요. 묘의 시작이 ‘안 될 걸 알지만 해보자’는 것이었으니까, 무관심에 내성이 생기려면 무시당하는 경험이 필요했던 거죠. 거기 서서 한 시간 동안 부끄러우면 앞으로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도전을 한 거예요. 어찌 되었든, 발걸음을 멈추고 들어주던 분들도 있었으니까 아예 무관심은 아니기도 했고, 여러모로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아리수 공연장에서 시 버스킹을 하셨던 정현님

 

시를 어쩌다 좋아하게 되셨는지, 또 시를 쓰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전공 수업을 듣는데, 저한테 가장 잘 맞았던 게 시 수업이었어요. 원래 저는 영화를 찍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대학교도 정말 관련이 없는 전공을 선택하게 된 거죠. 그러니 저는 교과서에서 배운 것만 알고 들어간 수준인데, 이미 안다는 전제로 많은 걸 생략해서 수업하시는 교수님들이 계시잖아요. 그런데 시 수업 교수님은 차근차근 직관적으로 알려주셨어요. 이건 좋은 문장이에요- 이렇게요. (웃음) 처음에 저는 그런 게 좋았어요. ‘아, 이게 좋은 표현이구나-’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학기 초, 문학을 좋아하는 동기들과 이야기할 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 많았어요. 그런데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까, 그런 막힘이 뚫리는 기분이더라고요. 일원이 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교수님께서 시를 좋아하면 직접 써보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시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감성 글귀처럼 썼던 것 같아요. (웃음) 당시에는 시집을 많이 읽었던 것도 아니었고 무작정 쓰기만 했으니까요. 읽지 않는 창작은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때부터 시집도 많이 읽게 되었고, 시의 매력을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점점 더 시를 사랑하게 된 거죠. 최종적으로 시 쓰는 행위까지도 좋아하게 된 건 스스로 시를 읽고 잘 쓴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좋아하게 된 것 같네요.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힘입어, 문학을 가까이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시는 진입 장벽이 높은 장르, 어려운 문학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고 해요. 그들을 위해, 시와 조금 더 친해지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어떻게 보면 시에는 살짝 괴팍한 면이 있어요. 그래서 시와 친해지려면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아요. 가성비가 안 좋은 취미 같기는 합니다. (웃음) 요즘에는 사람들이 효율성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게다가 소설은 인간의 인지적인 구조에 어느 정도 부합을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흐름이라는 게 있고, 인과관계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시는 그런 부분에서 벗어나려고 하니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거죠.

저도 솔직히 얘기하면 시를 다 이해하고 읽는 건 아니에요. 여러 번 읽으면서 새롭게 보는 부분도 많거든요. 시집을 읽을 때는 모든 걸 알 수가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시를 쓰는 사람들이 ‘다 알고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자동으로 뭔가 써지는 느낌, 무의식이다.’ 이런 말을 자주 해요. 자신도 다 잡히지 않는데, 내가 쓰고자 하는 어떤 거대함에서 답이 튀어나오면 자동으로 그걸 주워 담아 쓴다는 느낌이거든요. 사실 그러면 시인 자신도 본인의 텍스트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독자가 모든 걸 이해하기 힘든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죠. 그래서 억지로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즐긴다는 느낌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죠.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텍스트를 즐기는 것도 문학을 향유하는 좋은 방법이니까요.

맞아요. 게다가 시간이 흐르고 시인이 아티스트가 되면서 세계에 대해 올바른 말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개인의 창작과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가 됐거든요. 그러니 어려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사람의 생각을 주워 담는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교과서에서 밑줄 치듯이 공부하는 게 아니라, 영화 장면을 보듯이 한 행에 한 장면을 떠올리는 거예요. 그리고 영화에서도 가끔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이 있잖아요. 점프 컷*이라고 하나요? 불쑥 튀어나오는 장치들이 있는데, 시에도 그런 문장들이 많아요. 그 문장들은 이해는 제쳐두고 ‘아, 시인이 시를 쓰다가 불쑥 튀어나온 문장이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조금 더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요.

* 점프 컷(Jump Cut): 급격한 장면전환으로 연속성이 갖는 흐름을 깨뜨리는 편집을 말하는 영화용어.

 

그렇다면 이제 완연한 가을이 왔잖아요. 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죠. 이 글을 읽는 이들을 위해, 가을에 읽기 좋은 시집을 하나 추천해 주세요!

제가 가을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때 끼고 다녔던 시집이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었다가 며칠을 먹었다』 였는데 그게 제 입문 시집이에요. 그래서 그 책을 보면 가을 생각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실제로 가을과 잘 어울리는 시집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책은 나름 대중적인 시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후의 대중적인 시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웃음) 그리고 선물하기에도 되게 좋아요. 이름부터 너무 좋지 않나요?

 

플리마켓에서 시집 『멍의 기원』 을 선보인 묘

 

(아래의 보라색 글씨를 누르면 묘의 인스타그램으로 이동합니다)

묘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책은 내고 싶은데, 등단*은 하기 싫어요’라는 문장이 있어요. 실제로 비등단으로 시집을 내기도 하셨고요. 등단제도에 대한 정현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등단을 안 하려는 건 아니에요. 이렇게 말해도 되나요? 사실 저는 등미새거든요. (웃음) 그래서 늘 등단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묘의 모두가 등단을 등지는 건 아니라는 거죠. 묘는 각자의 개성을 제한하지 않고, 지금도 저마다 묘를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많은 제도가 수능화가 되어 있고, 등단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요. 등단작을 보면 온몸 비틀기 시가 되는 경우를 많이 봤고, 그럴 때마다 등단용 시가 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물론 저도 그런 시를 쓰기도 하지만, 자주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기약 없이 등단을 기다리기보다는 우리의 시를 세상에 한 번 보여보는 건 어떤가 싶었어요. 이 세상에서 글을 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좀 찾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독자들과 부딪쳐봐야 했던 거예요. 한편으로는 언젠가 등단한다면 지금과 같은 경험이 더 건강하게 창작을 이어 나가는 토대가 됐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도 있었어요.

그리고 묘에는 등단용 시를 쓰려면 자신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너무 잘 쓰는데, 좋은 시를 쓰는데, 등단용 시가 아니니까요. 어찌 되었든 그 세계로 들어가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게 싫은 거예요. 모두가 자기만의 세계와 목소리가 있는 건데, 등단을 위해 그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좌절을 주기 싫었어요. 그 친구들은 모두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이니까. 그래서 함께 글을 쓰고 시집을 내 본 거예요. 만약 잘 된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되어줄 수도 있는 거니까요.

* 등단()이란? 아마추어 작가들이 일정 자격 취득을 통해 프로 작가로 데뷔하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자격 취득의 방법에는 신문사 신춘문예나 문학상 수상 등이 있다.

 

시집을 낸다는 건, 세상에 정현 님이 쓴 시를 보여주는 거잖아요. 혼자서 글을 쓸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아요. 정현님은 세상에 글을 내보일 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처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제가 군대에 있을 때였어요. 제가 국어국문학과에 다니고, 관련된 동아리를 하다 보니 글을 쓰는 행위가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거지만, 군대처럼 소셜 믹스 되는 현장에 가면 글쓰기는 오로지 저만 하는 일인 거예요. 그러다 보니 20개월을 혼자 외롭게 글을 썼죠. 거기서부터 비롯된 걸 수도 있는데, 제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물론 무관심이나 혹평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글을 보여주는 일에 대해서는 늘 막연하게 설렘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역을 하고 글을 쓰는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제 글을 공유하고 싶고,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그런데 처음 시를 썼을 때 약간의 인지부조화가 있기는 했어요. 나는 좋은 글을 읽고, 학교에서도 좋은 재료를 주잖아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내가 쓰는 건 왜 이러지- 싶었던 거죠. 이런 차이 때문에 처음에는 제 글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글을 쓰는 연습이 되고 난 다음에, 그때 서야 제 글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들은 내 글이 타인에게 즐거울 수 있는가, 이해될 수 있는가, 궁금하잖아요. 독자들의 감상을 듣고 싶고요. 어찌 되었든 글을 세상에 보여준다는 건 설레는 일인 것 같아요.

 

정현 님이 글을 쓸 때 어떤 것들이 영감이 되어주나요?

영감의 루트는 시기별로 다양했던 것 같아요. 처음 글을 썼을 때 제 삶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없었거든요. 제가 봤을 때 저는 지극히 일반적인 루트로 살아왔고, 어떻게 보면 살짝 노잼 인생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기에 읽었던 게 박준 시인의 시집인데, 그 시들은 달콤하면서도 애틋한 면이 있어요. 청춘은 아니지만 항상 아프고, 그럼에도 애틋한 삶. 이런 삶을, 이런 글은 어떻게 쓰는 걸까, 고민을 해봤어요. 그러다 한편으로는 그냥 지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에는 제 상상이 창작의 원천이 되었던 것 같아요. 작품을 읽고 상상을 이어 나가다가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그걸 시로 썼던 거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글에 경험을 더할수록 허세가 줄어들고, 진짜 삶과 연결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원래는 제 삶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책임을 지게 되는 일도 하고, 연애도 오래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까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 일반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혹은 일반적인 삶을 살더라도 몇 개의 단어를 전복함으로써 좀 새로운 경험으로 배치할 수도 있겠다,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된 거죠. 그래서 요즘 제 영감의 원천은 오롯이 저의 경험에 가까운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글을 많이 쓰기도 하고요. 사실 이번 시집에 있는 「부양」도 온전한 제 경험에서 나온 시인데, 좋더라고요. 이렇게 나의 경험에 가끔 조금의 덧칠을 해주면 ‘나도 꽤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거구나-’ 나름의 위안을 얻는다고 할까요. 이런 것들이 제가 요즘 글을 쓰면서 많이 생각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조정현 「부양」 中 – 시집 『멍의 기원』 수록

* 전문은 묘의 시집 『멍의 기원』 에서 확인 가능! 좋은 시들이 가득합니다.

 

 

묘와 함께 앞으로 지향해 나갈 방향 혹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묘를 통해서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났어요. 가까운 사람들은 물론이고, 완전한 제삼자인데도 글이 좋다고 시집을 사 가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고요. 어쨌든 시집을 통해 누군가 내 시를 읽는 거니까 ‘독자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이걸 더 잘 읽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텍스트뿐만 아니라 시공간적인 요소에 대해서도 고민했어요. 익선동에서 팝업을 했었는데 이 팝업이 끝날 즈음에 아쉬움이 남았어요. 엄청난 적자를 안고 했거든요. 그런데 어차피 적자를 안고 갈거면 그걸 파는 것보다 사람들이 글을, 시를 읽게 하는 일에 집중을 하는게 좋았을 텐데. 너무 팝업의 형식에만 집착했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다 독서실 책상 같은 것만 하나 갖다 놓고 사람들이 글을 읽게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배경음악이나 의자의 기울기를 스스로 조정할 수 있고, 아니면 서서 읽을 수도 있고요. 글을 읽는 자세에는 제약이 없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독서를 체험의 반열에 올려놓는 일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다음 목표는 아마 그런 쪽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사실 조금 먼 얘기 같기는 해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많으니까요.

 

묘의 팝업스토어.

시집을 비롯해 엽서, 스티커 등 다양한 굿즈들이 보인다!

 

 

앞으로의 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이야기네요. 『멍의 기원』 다음으로 나오게 될 묘의 시집이 궁금한데, 다음 시집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일단 11월에는 아마 동네 책방들이나 독립 서점에 열심히 이메일을 보내서 한번 납품을 해보고, 공식적으로 멍의 기원은 마무리하고 싶어요. 그리고 조금 쉬었다가, 다음 시집을 만들게 되지 않을까 해요. 묘가 저번 주, 신촌 청년 잡화점에 참가했는데, 거기에 중고 책을 파시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이 세로가 15센티미터 가로가 9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책을 팔았는데, 이런 크기로 시집을 만들면 정말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시집이 정갈하면 굉장히 완성된 시들만 넣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러니 작은 크기의 연습장 같은 시집에 고삐를 풀고, 메모 같은 시들만 모아서 출판을 해봐도 좋겠다 싶었어요. 책임감을 조금 내려놓은 창작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살짝 미완성된 책을 내봐도 재미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음 책이 생긴다면 이런 방법으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다른 애들이랑 얘기해 본 적은 없지만요. (웃음) 아, 시집을 직접 제본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한 땀씩 엮어서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지 않나요?

 

아무렴 소중한 글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니까, 그 의미와 애정이 남다를 것 같아요. 또, 실물 책이 주는 뿌듯함이 있잖아요.

맞아요. 묘의 시집은 우리 모두의 글과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결과물이니까요. 멍의 기원도 저랑 다원*이랑 둘이 열심히 디자인을 했거든요. 물론 전에 해본 적이 있어서 엄청나게 끙끙대면서 하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가 사랑하는 글과 함께 노력했던 시간이 다 그 책에 들어있는 거니까요. 시집을 볼 때마다 ‘이 부분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편집을 했었지’ 책을 만들 당시의 기억이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죠. 앞으로 만들어지는 책을 볼 때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원님 또한 묘의 구성원이다. 묘의 시집『멍의 기원』의 디자인을 맡아서 하셨다.

 

가장 좋아하는 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정현 님의 시도 괜찮고, 다른 이가 쓴 시도 괜찮아요.

묘 친구들의 시를 하나씩 이야기하고 싶은데, 괜찮나요?

 

이정언 「바나나 모놀로그」 中 – 시집 『멍의 기원』 수록

 

먼저 「바나나 모놀로그」라는 시를 정언이의 시들 중에 가장 좋아해요. 사랑을 할 때 얼굴에 드러나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는데, 제 여자친구는 인중이 길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여자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던 적이 있거든요. 근데 정언이의 시를 보니까, 그게 자기 얘기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바나나처럼 얼굴이 길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인중이 길어지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더 좋아하게 됐어요.

 

이찬희 「하늘을 나는 여자」 – 시집 『멍의 기원』 수록

 

그리고 찬희라는 친구는 「하늘을 나는 여자」라는 시가 좋아요. 여자는 하늘을 날고 있는데, 화자는 집에서 그 여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거든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방도 치우고, 종이비행기도 만들고 그래요. 애틋한 시예요.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그 시는 계속 봐도 좋더라고요. 이것도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김희령 「줄줄이 낳으면 뭐가 남나요?」 中 – 시집 『멍의 기원』 수록

 

또, 「줄줄이 낳으면 뭐가 남나요」라는 희령이의 시를 좋아하는데, 시가 조금 강하기는 해요. 저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끔 우는 기계 같은데, 희령이는 진짜 안 울 것 같은 친구예요.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시에서는 감정이 잘 드러나요. 얘도 우는구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공감이 많이 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시예요. 표현들도 너무 좋고요.

 

 김승한 「52 헤르츠 인간들」 中 – 시집 『멍의 기원』 수록

 

그리고 승한이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52 헤르츠 인간들」이에요. 원래 고래가 52헤르츠보다 한 2배 정도 낮은 주파수로 울어서 소통하는데, 이 고래만 52헤르츠로 울어서 혼자가 된 거예요. 소통할 수가 없는 거죠. 승한이는 약간 독특한 면이 있고, 제가 이 친구의 그런 면모를 좋아하거든요. 딱 이 시가 승한이의 어떤 삶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 같아서 좋아해요. 자신이 특이하다- 이런 시인데, 되게 재미있어요.

 

* 모든 시의 전문은 묘의 시집 『멍의 기원』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많관부!

 

 

이야기만 들어도 너무 좋은 시들인 것 같아요. 꼭 읽어보도록 할게요.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질문인데요. 제가 질문하지 않아서 하지 못한 말들, 혹은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편하게 말씀 해주세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고대생이긴 하지만 사실 신촌이 더 친근한 느낌이 들어요. 안암은 학교에 갔을 때 잠깐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거기에 많은 추억이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신입생 때, 어릴 때는 제 삶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 집을 좋아했어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고, 군대도 다녀오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면서 나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죠. 그렇게 전역하고 들어간 동아리가 거의 신촌 기반이었거든요. 옛날에 시간 공방이라는 스터디룸이 있었는데, 늘 거기서 만났어요. 거기서 다 같이 글 얘기하고, 활동하고. 추억이 많은 곳이죠. 동아리에서 만난 연세대 친구랑 연세대 산책하면서 적진에 들어왔다고 장난치면서 웃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신촌에 정이 많은 것 같아요. 묘 활동을 할 때도 단 한 번도 신촌 바깥에서 회의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글을 쓰고, 회의를 하고, 밥을 먹고, 때로는 티격태격했던 장소도 신촌인 거죠. 신촌은 어찌 보면 제 삶의 궤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에요. 저를 인간으로 키워준 곳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신촌에서, 이곳을 다루며 건실하게 글을 쓰는 잔치를 만난 게 신기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좋았습니다. (웃음)

 

 

묘가 애정을 담아 가꾼 팝업스토어의 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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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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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우주를 떠도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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