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 박서연, 에디터 영원
단단하다. 이만큼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가 있을까. 이제는 알 것 같다고 느꼈던 감정이,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판단이 언제든 뒤바뀌니 말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삶의 확신을 보장하지는 않아서,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 설 때까지 흔들리게 될 것이다. 애초에 인간은 끊임없이 취약해지도록 설계된 것처럼.
단단함에 가까워지는 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났다. 자기 자신은 단단하다고 느끼지 않지만,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겠지만, 왜인지 단단함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 에디터 영원과의 대화는 암호문 같았다. 잘만 해독하면 거대한 비밀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묘하고 거대한 암호.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려요.
저는 아트팀 에디터 영원이라고 하고요.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22학번에 재학 중인 22살 박서연입니다.
영원이라는 이름에 대해 조금 더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이제는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라 당당하게 말해보자면, 제가 데이식스의 영케이 오빠를 좋아해요. 영케이가 영원이라는 타이틀 앨범도 냈었고, 그이가 진행하는 커버곡 콘텐츠의 이름도 영원일 만큼 언급을 많이 했거든요. 좋아하는 사람에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자연스럽게 영원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불변하는 건 없다고 강하게 믿어서 영원도 믿지 않는데요. 영원이 있든, 없든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는 분명 아름다운 거라고 여기면서 살아요. 그런 마음이 바로 사랑을 말하는 것 같거든요. 제가 앞으로 전하게 될 많은 마음이 누군가의 영원을 비는 것이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다 떠나서 영원이라는 글자의 모양새가 예쁘잖아요. 저는 뭐든 예쁜 게 너무너무 좋거든요.
인생의 중요한 키워드네요. 오랜만에 만났으니 근황을 듣고 싶은데, 최근에 이탈리아에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종강하자마자 한 달 동안 여행을 세 군데나 갔어요. 제주도, 부산에 있다가 이탈리아로 넘어갔죠. 유럽은 처음이었고 정말 좋았는데 사실 음식 때문에 한국에 빨리 오고 싶기도 했어요. 저는 치즈나 느끼한 크림 같은 걸 못 먹거든요. 각오는 했는데 생각보다 심했어요. 햇반이랑 볶음김치 같은 걸 가져가서 겨우 연명했죠. 돌아와서 마라 엽떡을 먹었는데 진짜 황홀했던 기억이 있어요.
음식 정말 중요한데 고생 많이 하셨네요. 그래도 분명 좋았던 것도 있었겠죠?
자연 경관이 정말 좋았죠. 절경이었어요. 저는 남부만 여행했는데 거기는 피렌체나 밀라노 같은 느낌이 아니라 바다가 있는 휴양지거든요. 바다에서 물장구치기 정도만 해도 정말 좋더라고요. 근데 너무 타서 어깨랑 등 피부가 벗겨지고 있어요. 누가 보면 때 안 민 줄 알 것 같은데… 타서 그런 거니까 다들 오해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한 학기 동안 아트팀에서 활동했는데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듣고 싶어요.
잔치에 들어온 게 저에겐 큰 도전이었거든요. 다른 에디터들과 달리 글을 써본 적이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 싶은 걸 바로 하지 않아 후회했던 적이 많아서 결국 지원하게 됐죠.
아트팀은 희망했던 팀은 아니어서 처음엔 당황했는데, 지금은 훨씬 좋다고 느껴요. 자율성이 높은 팀이어서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할 수 있으니까요. 잔치가 아니었으면 신촌이라는 곳을 이렇게까지 사랑하진 못했을 거예요. 글을 쓰려면 자세히 봐야 하는데 그러면 어느 순간 사랑스러워지더라고요. 어차피 계속 살아가야 하니 애정을 붙이면 좋은데 그럴 수 있어서 기뻐요. 팀원들의 격려도 너무 감사했고요.
예전부터 글을 안 썼다는 게 놀라워요. 봄의 향기를 “입맞춤에 심취한 꽃잎들이 만들어내는 호흡”이라고 표현한 적 있었죠. 제가 정말 애정하는 문장이거든요.
좋다고 해서 좋네요. 첫 글이라 정말 긴장했거든요.
이런 걸 보고 감각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닐까 하네요. 영원의 글을 보면 분량이 많다는 게 특히 눈에 들어와요. 그만큼 쓴다는 건 그만큼 생생히 느낀다는 것이잖아요.
사실 그게 줄인 거거든요. 제가 말이 많나 봐요. (웃음) 말씀처럼 스스로 많은 걸 감각한다고 느껴요. 저는 진짜 예민한 사람이에요. 미각, 후각, 촉각 같은 게 과할 정도로 예민하고 항상 모든 것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요. 스치는 듯한 소리에도 잠에서 깨기도 하고 대중교통 탈 때 냄새 때문에 힘들기도 하죠. 그래서 불편한 점이 더 많고 피곤해요.
글을 쓸 땐 특정 감각이나 경험을 떠올리기보단, 평소에 방대하게 감각하는 것들에서 필요한 소스를 뽑아내는 것 같아요. 충격적이었던 건 기억에 더 잘 남으니까 그런 것들을 먼저 상기하고 빼내죠.
물리적인 감각 자체가 예민하군요. 성격적인 예민함도 같이 높아질 수밖에 없겠어요.
맞아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사는 세상이니까 제 자신을 억누르려고 많이 노력한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불편한 걸 숨기려고요.
혹시 스스로 독특하다고 여기고 있는지 묻고 싶어요. ‘특별하다’보단 ‘평범하지 않다’라는 감각을 많이 하고 있는지.
음, 평소에는 독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말했듯이 감각적인 부분에선 무난하지 않지만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 저만 튀거나 다른 점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오히려 남다른 독특함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뜬금없긴 한데 아까 치즈를 못 먹는다고 했잖아요. 그럴 때 독특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요즘은 사람들 선호로 많은 음식에 치즈가 들어가잖아요. 치즈를 싫어하는 사람은 저 말고 두 명밖에 만나보지 못했어요.

영원은 글에서 다양성 혹은 주목받지 못하는 것을 많이 언급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안의 별난 면모를 자각해서 그런 키워드가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서 독특함에 대해 물어봤어요. 실제로 그런 것들이 글을 쓰는 배경이 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확실히 맞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부터 꿈이 다큐멘터리 PD였거든요. 어릴 때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부조리들을 느꼈고, 제 목소리로 이것들을 고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여전하지만 어릴 땐 더 투쟁적인 태도였던 것 같아요. 입시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든데 사회가 나를 힘들게 해서 참을 수가 없었죠. (웃음) 지금도 사회가 무관심하거나 차별하는 것들이 넘쳐나잖아요. 그런 것에 대해 꼭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런 온>이라는 드라마를 좋아했는데 이런 대사가 나와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저도 그래요. 모두가 주변을 조금만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다정해지면 많은 것이 좋은 쪽으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소신 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글을 쓴다는 게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어찌 보면 PD와 비슷하다고 느끼는데요. 글을 통해서 만들어 보고 싶은 세계가 있을지 듣고 싶어요.
얼마 전에 조현아 작가님의 <확장윤회양분세계>라는 소설을 읽었어요. 불교재단 산하의 연구소에서 해탈의 가능성을 연산해 보기 위해 가상 세계를 설계했다는 설정이에요. 그 설계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면서 낮이 사라지고 죽음도 사라지게 되거든요. 어둠 속에서 죽지도 못하고 계속 살게 된 거죠. 저는 이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장인물들은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한 줄기 빛을 찾아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요. 그들처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지금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의미를 탐색하는 것.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다뤄보고 싶어요. 종교가 인간의 무지를 인정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인문학 중에서도 종교학이 가장 인간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본주의, 공산주의 같은 체제도 종교의 질서와 관련해서 출발하기도 했고요. 무지, 종교의 세계관 같은 주제를 다뤄보고 싶네요. 생각이 진짜 너무 과하다.
조금 느슨하게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항상 궁금한 건데, 어떤 것들로 일상을 채우고 있나요?
일단 데이식스 보고요. (웃음) 데이식스가 아니어도 노래 듣는 걸 정말 좋아해요. 누군가 컴백한다고 하면 앨범 전체를 싹 들어보고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곤 하죠. 가사에 집착하는 편이라 가사들의 유기성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는 서사가 보이면 흥미로워하는 것 같아요. 외국 노래는 안 듣고 케이팝 아이돌이나 한국 밴드를 주로 듣는데, 스타일 편식이 심해서 청량한 노래만 듣고 있어요. ‘언니네 이발관’, ‘마이 엔트 메리’ 이런 느낌 너무 좋아하고요. ‘나상현씨 밴드’도 좋고 ‘솔루션스’ 노래 요즘 제일 많이 듣고 있어요.
또 맛집에도 집착하거든요. 제가 위가 크지 않아서 많이 못 먹어요. 양이 적기 때문에 한 끼를 먹어도 맛있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크죠. 서울도 지역별로 지도에 저장되어 있고 홍대도 연남, 연희로 세분해서 저장하고 지방이어도 가고 싶은 곳은 다 저장해요.
여행에도 빠져 있죠?
여행 너무 좋죠. 지금이 제 인생에서 시간이 가장 많을 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대한 지금을 즐기려고 해요. 불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잘되지는 않지만요. 그리고 옷을 좋아해서 쇼핑하는데 시간을 많이 써요. 편집샵, 빈티지샵 돌아다니는 게 너무 재밌어요. 옷을 잘 입으려면 정말 많이 입어보고 만져보고 실패도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나한테 어울리는 게 뭔지, 이 가격에 이 정도 옷을 사는 게 맞는지 잘 판단할 수 있게 되죠.

즐기지 않는다는 말이 이상할 만큼 충분히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거의 빈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요. 혹시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밴드를 하는데 3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드럼을 안 쳤거든요. 지겨워서 그만하려고 했다가 또 하고 싶어져서 다시 시작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베이스도 배우고 싶어요. 베이스가 진짜 간지 나잖아요. 뭔 느낌인지 아시죠? 한 번 베이스 매력에 빠지면 그 소리만 들린단 말이에요. 아 그리고 어제 구몬 일본어 수업을 등록했어요.
구몬이 아직도 있군요.
아직 있더라고요.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데, 의지박약이 너무 심해서 독학하면 하루 이틀하고 그만둘 게 뻔해서 등록했어요. 요즘은 화상으로 배울 수 있답니다.
일본어는 왜 배우게 됐나요?
한국어밖에 못해서 다른 언어도 배우고 싶었거든요. 영어도 정말 못하는데 애매하게 알고는 있으니까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아예 새로운 마음으로 일상에 변주를 주자는 생각에 배우게 됐어요.
그리고 수학 문제집을 좀 풀어보려고요. 스스로를 루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정도 틀에 가둘 필요가 있다고 느꼈거든요. 일상의 루틴을 만드는 용도로 아침마다 푸는 식으로 해보려 합니다.
저는 생각보다 루틴화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져요. 매일 어떤 행동을 하거나 특정 습관을 지속하는 것도 루틴이지만, 비는 시간에 무얼 할지 이런 기분일 때는 무얼 해야 할지 어느 정도 알고 정해져 있는 것도 루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깔끔히 정립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루틴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생각해 보면 전 하루에 한 번은 무조건 나가야 해요.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지치고 밤 12시가 되어도 가까운 편의점에라도 가죠. 그래야 환기가 되는 느낌이라. 제가 필라테스를 해서 활동량이 많고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거든요. 일정 때문에 이동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애매하게 뜬다 싶으면 50분이 걸린다고 해도 그냥 걸어서 가요. 힘들지만 노래 들으면서 걷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에너지를 많이 가꾸고 또 잘 방출하는 것 같아요. 많은 얘기를 들려줬는데 더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을까요?
말했다시피 글을 한 번도 안 써봤는데 많은 분의 격려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잖아요.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실 예비 에디터분들이 있다면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 보시길 추천해요. 재밌고 개성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오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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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지 못해 벌어지는 틈새엔 반드시 불안이 스며든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삶의 변덕은 어쩌면 불안의 분주한 발걸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불안을 편안히 쉬게 할 수 있으면 단단하지 않아도 괜찮은 게 아닐까. 있는 그대로 괜찮은 게 아닐까.
영원은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불안의 반댓말은 부지런함이라고. 어쩌다 보니 끌리게 된 것들에 더 많은 시간을 주고, 더 많은 체력을 주고, 더 많은 이유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내 마음을 속이지 않고 투명하게, 소신있게.
그의 전언을 믿고 취향과 체력을 존중하고 가꿔보려 한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조금 더 성실하게.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삶을 사랑해 보기 위해.



물론 불안은 부지런함을 야기해주지만 그게 영원을 너무 힘들게 하지는 않길! 그동안 좋은 글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