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오후 9시 즈음 웅웅대는 밤바다 앞에 섰다. 외따로 떨어진 바의 주황색 조명과 이따금 환해지는 전광판이 아무도 없는 해변에 희미한 빛을 뿌렸다. 집어삼킬 듯 달려드는 파도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머나먼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수평선도, 바다도, 하늘도 없었다. 살아가며 좀처럼 마주하기 힘든 온전한 어둠이 공간을 게걸스레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거대한 위장 한복판에서 희끄무레한 선들이 어렴풋이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문득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머리는 이러한 반응에 이름을 붙이도록 요구했다. 사실 숙소를 나서면서부터 근사한 답변을 미리 준비했으나 예상 밖의 괴리에 선뜻 꺼낼 수 없었다. 실제로 나를 엄습한 것은 원초적인 자연에 대한 경외 따위가 아니라 거북함에 가까운 얕은 두려움이었다. 얼른 자리를 뜨고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고 싶었다. 그럼에도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혀 시커먼 덩어리 쪽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어쨌든 한동안 찾아 헤매었던 이미지가, 오래 묵힌 생각들의 귀착점이 그곳에 있었던 까닭이다.

양양, 하조대 해수욕장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 시간에 잠자리에 들 만큼 어렸을 때 유독 어둠을 무서워하던 기억이 났다. 불을 끄고 누워 있자면 머리가 감각의 공백을 꾸역꾸역 메우기 위해 여기저기서 기억의 단편들을 긁어오곤 했다. 야속하게도 도움이 될 만한 조각들은 전후 맥락이 필요한 대용량 영상 파일이라 다운로드가 중간에 끊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편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단 한 장의 저해상도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럴 때마다 방 문을 빼꼼히 열었다. 틈새에 맺힌 은은한 빛은 끊임없이 이어지던 이미지의 연쇄를 끊었고 나는 마침내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사실 조금이라도 밝으면 잠에 들지 못하는 지금도 어릴 때의 습관은 그대로 남아있다.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 가면이 미래에 대한 걱정거리로, 문 틈의 빛이 스마트폰의 화면으로 대체된 것 말고는.

신촌서 살았던 빌라, 방 문틈
우리는 어둠에서 무한을 본다. 모든 것이 경계를 잃고 녹아내려 하나의 끝없는 덩어리로 엉겨붙은 상태. 각종 신화의 요람, 최초의 말과 최초의 몸짓에 의해 추방된 영원. 정신은 어떤 장애물에도 마찰에도 방해받지 않고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내달린다. 해방감도 잠시, 속도를 가늠할 수 없어 두려움에 휩싸인다. 지나치게 멀리 와버린 것 같기도, 어쩌면 단 한 뼘조차 나아가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무게와 위치와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한에 닿는 일은 언제나 ‘나’의 소멸을 요구한다.
내가 어둠 속에서 필사적으로 기억을 헤집어 이미지를 불러왔던 것은 자아에 추를 주렁주렁 매달아 존재의 감각을 되찾으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잠자리의 망상이 자꾸 파멸적인 결말로 끝맺는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인간은 행복보다는 불행에서, 삶보다는 죽음의 상에서 자기 자신을 뚜렷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신히 띄운 창백한 빛은 몇 차례 깜빡이다 금방 부서지고 만다. 마치 까마득한 허공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저 파도들처럼. 결국 슬그머니 문을 연다. 틈새로 빛이 퍼져 적당한 크기의 감옥을 짓는다. 그 아늑한 울타리 안에 갇힌 정신은 비로소 멈춰 서서 휴식을 취한다. 나는 푹신한 이불에 닿은 발가락의 감촉을 다시금 느낀다.

신촌의 언덕 꼭대기, 익숙한 골목길
눈앞의 황량한 밤바다와 반의 관계를 이루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지금쯤 굴다리 밑에서 바라보면 신촌의 하늘은 대형 전광판의 빛을 받아 애매한 검푸른색을 띄고 있을 테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가지각색의 간판 밑을 걷는 사람들이 알콜 향이 나는 더운 숨을 뱉고 있을 것이고. 신촌에는 빛과 이항대립을 형성하는 의미에서의 어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밝은 곳과 상대적으로 덜 밝은 곳이 있을 뿐이다. 과거 오랫동안 근방에서 살면서 쌓았던 기억들이 밤의 신촌 구석구석을 어렵지 않게 그려 냈다. 그렇게 완성된 거리에 멈추어 선 나는 고향이 주는 안정감과 하릴없는 권태를 동시에 맛보았다.
주변은 온통 글자와 숫자와 도형과 색으로 가득하다. 모두가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이마에 대문짝하게 붙이고 있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상대의 전부를 안다. 규정된 관계를 따라 규정된 움직임을 취하고 규정된 거리만큼 발걸음을 뗀다. 그러고 나면 상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둠에 잠겨 무한에 녹아드는 대신 여전히 빛을 받으며 0의 텅 빈 구멍 안에 그대로 들어앉는 것이다.

독수리 다방에서
밤의 신촌에서는 모든 사물이 저마다의 틈새로 빛을 뿌린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도 그렇고, 앎을 빛에 빗대는 상투적인 비유의 의미에서도 그렇다. 잘리고 나뉘고 쪼개진 빛들이 바닥과 벽면에 고인다. 시선과 잡상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웅덩이 중 하나에서 헤엄치다 금세 추방당한다. 상실감에 잠시 오들오들 떨다가 또 다른 웅덩이를 찾아 뛰어든다.
보는 행위는 상대의 표면에 부딪혀 튕겨나온 빛 알갱이들을 주워담는 일이다. 그렇기에 시각은 항상 간접적일 수밖에 없으며 상대와 나를 분리하는 단단한 격벽을 전제로 한다. 보는 것이 즉시 앎으로 이어지는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대상과 결코 하나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가령 우리가 흔히 무한과 연관짓는 풍경들이 있다. 탁 트인 바다나, 썩은 나뭇잎 더미 위에 움튼 새싹과 같은. 그러나 바다를 앞에 두고 몇 분 지나지 않으면 시야에는 하나의 선과 두 개의 면, 그리고 뭍으로 돌진하는 파도의 맹목적인 리듬만 남는다. 또한 으레 말하는 자연의 순환을 들추어 보면 단편적인 생과 멸의 이미지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누더기가 있다. 그마저도 뒤돌아 자리를 뜨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다.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는다. 그러나 피사체들은 수조에 갇힌 물고기와 같이 박탈당한 맥락을 그리워하며 조그마한 직사각형, 더 해봐야 몇 초의 구간 위를 둥둥 떠다닐 뿐이다.

잔치에서 세 번째 우려먹는 수조의 모티프
부대끼며 살기 위해 인간은 어둠의 연결하고 결합하는 힘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어둠은 단 한 줌의 빛만 마주해도 자취를 감췄고 잡으려 손을 뻗는 순간 흩어져 버렸다. 불을 피워 빛을 창조할 수는 있어도 어둠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림자로 어둠을 모방했다. 어둠을 닮았으면서도, 빛의 부산물이기에 이리저리 변형할 수 있는 무언가. 그림자, 혹은 감정.
그림자들은 비유를 통해 만났다. 특징을 파악하고, 그 특징이 자아낸 느낌이 길게 늘어지고, 늘어진 느낌이 다른 느낌에 닿았다. 그렇게 잠깐이라도 나의 몸은 이웃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횃불을 든 손의 각도를 바꿔가며 어떻게든 나의 그림자가 상대의 그림자에 가닿도록 애썼다. 그러나 종종 마구잡이로 휘두른 횃불에 모든 것이 불탔다. 사납게 일렁이는 그림자들은 욕설의 비유나 멸칭으로 만나 거대한 분노의 덩어리로 합쳐지곤 했다.
지친 인간은 빛나되 태우지 않는 전깃불을 발명했다. 전깃불 아래 그림자는 쪼개지고 흐릿해져 어둠과 동떨어졌다. 사람들은 꺼지지 않는 빛에 피로한 눈을 비비면서도 어둠과의 전쟁에서 마침내 거둔 승리를 기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0과 1로 변환되어 온갖 곳에서 여전히 이글거리는 횃불들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나 우리를 상처 입힌 것은 어둠과 닮은 무지가 아니라 두려움에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빛, 잘못된 앎이었음을.

스플릿 세컨드 옆 골목길
이러한 생각들이 작년 즈음부터 머릿속에 가득 차 둥둥 떠 다녔다. 답답함에 카메라를 들고 좋아하는 동네를 무작정 걸어도 단 한 장도 찍지 못한 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한동안 재미삼아 쓰던 짧은 글들도 도저히 써지질 않았다. 한 달 전 입사 자기소개서의 ‘나를 자유롭게 표현해 보세요’란 질문 앞에서 머리를 싸맸던 기억이 났다. 그 질문은 여태껏 살아오며 내가 발했던 빛들을 싸그리 긁어모아 열거할 것을 요구했다. 몇몇 문장들이 맺혔다가 망상 속 어둠에 부딪혀 깨지고 부서졌다. 빛이 미웠다. 그러나 막상 찾아 헤매던 진짜 어둠을 마주하고 써내린 감상이 고작 ‘거북함에 가까운 얕은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다음 날 축축하게 젖은 신발을 끌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질리도록 비가 오는 날이었다. 또다시 밤 9시 즈음의 신촌이 그려졌다. 다만 그곳에서도 비가 오고 있었다. 거리는 은은히 번지는 빛들에 흠뻑 젖었다. 사람들이 온갖 색 위를 걷고 있었다. 빛들이 그림자 없이도 만나고 합쳐졌다. 기억 속 신촌에서 두루뭉술하게 빛과 화해한 나는 비로소 토해내듯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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