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문예] 3월호, <시작>
2025년 다시 돌아온,
신촌문예는 잔치가 제공하는 북-큐레이션 서-비스입니다.
new! 2025
신촌문예
3월호
<시작>
다시 돌아온 잔치의 신촌문예!
신촌문예의 (재)시작을 응원하며, 이번 3월호 주제는 <시작>입니다.
‘요이~땅!’을 외치는 순간, ‘시작’이라고 딱 선을 그어버리면 참 좋겠지만, 시작의 순간은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같아요. 매일 아침 뜨는 해가 다르듯이, 우리는 일분일초 매 순간 크고 작은 시작을 경험하는 셈이고, 긴장, 설렘, 떨림, 기대, 행복, 두려움, 걱정, 의지 등 각자가 느끼는 감정 역시 모두 다르니까요.
예컨대,
1월은 해의 첫 달이라 당연한 시작이고,
2월은 설 연휴가 끝난 뒤라서 본격적인 시작이고,
3월은 개강이라 비로소 새로운 시작이고,
4월은 꽃샘추위가 지난 뒤 봄이 오는 것이라 진정한 시작입니다.
결국 제각각 정의하기 나름 아닐까요. 시작은 어떠한 한 지점에서 정해지는 단면적인 개념이 아니라, 앞뒤로 무한히이어지는 미지의 영역인 것이죠.
진정한 봄의 시작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잔치의 에디터 4명이 한데 모여 ‘시작’을 키워드로 각자의 책을 떠올렸습니다. 이들의 서로 다른 정의를 지켜보는 것은 꽤 재미있는 시간이 되리라 장담합니다.
함께 할 에디터
고골리
철학을 전공한 대학생. 평소에 책을 읽는다고 말하고 다니길 좋아한다.
하지만 사실 별로 읽지 않으며, 읽는 경우에도 소설과 희곡만 읽는다.
러시아 문학과 영문학을 제일 좋아하지만, 역시 다른 문화권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것은 무척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계속 읽는다.
몽당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독서를 시작한 타입.
그렇게 시작한 독서가 지금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책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고 말하며 끊임없이 책을 사지만, 정작 읽는 속도는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편.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출판계가 돌아가는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어김없이 책을 산다.
(사실 본인이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함.) 주로 소설, 특히 한국문학을 많이 읽는다.
지평
전공(미디어)에 충실하려다 그만 활자와 서먹해지는 바람에, 숏폼의 손을 놓고 다시 우호적인 관계를 쌓으려 노력 중이다.
지대한 편식쟁이로 키세0 먹듯 덥석덥석 야금야금 한 편씩 읽어치울 수 있는 단편소설집을 좋아한다.
종이책을 읽으면서 한 쪽에 하나 꼴로 리액션을 달아놓는 게 버릇이다.
현
책 중에서 소설보단 시를, 시보다는 시인 읽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
국문과라는 타이틀(?) 덕에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사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다.
그럼에도 읽고 싶고, 쓰고 싶은 용자.
담고 사는 마음이 많아 멍 때리다가도 울고 싶은 날이 많다. 그래서 읽는다.
시는 이해가 잘 안돼서,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읽는 거야,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궁금한 책을 눌러 바로 확인해보세요!
🦉고골리 ✏️몽당 ☀️지평 🎈현
- 🦉 『첫사랑』, 이반 투르게네프
-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 ✏️ 『GV 빌런 고태경』, 정대건
- ✏️ 『원도』, 최진영
- ☀️ 『달리기의 맛』, 누카가 미오
- ☀️ 『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 🎈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 봉주연
- 🎈 『너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창작동인 뿔


▸『첫사랑』, 이반 투르게네프
첫사랑 / 귀족의 보금자리 / 무무 수록
❤️ 인간에게 변증법의 첫 단추는 첫사랑에서 발아한다.
시작은 언제나 잃어버림이다. 바로 그 안타까운 사실 때문에 첫사랑은 기억의 미화가 아니다. 그것은 자아가 타자에게 침식당하는 최초의 무대이며, 존재가 자신을 잃고 세계를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찰나의 격렬한 서사다. 『첫사랑』에서 투르게네프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부드럽고도 잔혹한 오해의 구조를 천천히 벗겨낸다. 순수한 감정이 발화되던 그 여름날, 16세의 블라디미르는 지나이다라는 타자를 통해 세계를 본다. 그때 소년의 시선은 비로소 타자를, 그리고 그 안에 반사된 자신을 자각한다. 사랑은 이처럼 자기를 벗어난 자리에서, 더 정확히는 상실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이번 기획의 주제가 “시작”이라면, 『첫사랑』은 그 출발점에 대한 가장 아이러니한 해석이 될 것이다. 시작은 희망이나 출사표의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은 무지의 자리이고, 부끄러움의 기원이며, 나로부터의 이탈이다. 우리는 흔히 시작을 능동적 행위로 오인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시작은 불시에 침입하고, 우리에게 말을 건다. 마치 그해 여름 지나이다가 블라디미르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은 사랑의 이야기를 가장한 존재론적 진술이다.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게 되는 그 어색하고 아픈 과정을 겪으며,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감정의 겹과 이름의 조건들을 통과한다. 첫사랑은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타인 앞에 선 자아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가 잃어버린 첫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을 통해 비로소 생겨난 ‘나’의 기억에 가깝다. 시작이라는 단어에 설렘만을 기대하는 이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묻는 이에게, 『첫사랑』은 아주 오래된, 그러나 본질적인 해답을 준다.
어쩌면 그대가 지닌 매력의 모든 비밀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p.120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 타인의 입술에서 시작된 언어가 나의 가슴에 머무는 경우에 대한 완벽한 재현.
어떤 시작은 선언처럼 도래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느리고 소심한 접촉으로, 조용히 그러나 불가역적으로 이루어진다. 마리오가 그랬다. 우편배달부였던 그는 어느 날 시인 네루다를 만나고, 그 만남은 그에게 새로운 기관을 부여했다. 그것은 바로 은유였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한 청년이 세상을 시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이자, 세상을 말로 건드려 보려는 첫 시도의 기록이다.
시작은 언제나 수동에서 능동으로의 이행이며, 침묵에서 언어로의 이주다. 마리오는 처음엔 네루다의 시를 빌려 연인을 유혹하지만, 점차 타인의 언어를 넘어 자신만의 문장을 꿈꾸기 시작한다. 사랑도, 우정도, 혁명도 결국 말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천진한 첫말의 아름다움만을 말하지 않는다. 언어를 가진다는 것, 말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의 무게 또한 놓치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세계에 책임을 져야 하며, 결국 ‘시’도 혁명의 언어가 된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시작’이라는 말을 가장 따뜻하고도 위태롭게 다룬다. 그것은 성장서사이자 언어의 기원에 관한 은유이며,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감각이 얼마나 큰 전환인지 일깨운다. 그러므로 시작은, 이 소설의 세계에선 언제나 누군가를 향한 인사로부터 출발한다. 사랑한다는 말이건, 시 한 줄이건. 그것은 너에게서 나로 향하는 가장 오래된 물결이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GV 빌런 고태경』, 정대건
🎬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삶’이라는 영화를 만들어가는 청춘들에게, 그 모든 포기와 시작을 응원합니다.
GV(guest visit)란? 영화 상영 이후 진행되는 관객과의 대화를 의미한다. GV에서 무례와 비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극장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을 두고 GV 빌런이라고 칭하는데, 이 소설은 GV 빌런 고태경과 내세울 만한 흥행작 하나 없는 영화 감독 조혜나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좋아하는 것을 좇아 유예된 삶을 살고 있는 청춘들, 혹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현실과 적당한 타협점을 찾은 청춘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둘 중 어떤 삶을 살고 있든 그 어떤 삶도 틀리지 않다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그 무언가를 포기하는 마음도 결코 가볍지 않기에 환호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삶을 살고 있다고. 그러므로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고, 이 소설은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해 뜨거워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등바등 최선을 다했으나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좌절해 본 청춘이라면, 누구나 이 소설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울고 싶어지지 않을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출발선에 있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포기하고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도전하는 당신에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삶이라는 영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언젠가 완성될 우리의 삶은 기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당신의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마음먹은 지금 이 순간 앞으로 나아가기를.
“비싼 수업료 치른 거로 생각해. 실패도 못 해본 사람들이 수두룩해. 실패에 자부심을 가져.” p.138
이제는 실패가 나의 일부라는 것을 명확하게 안다. 인생이 ‘원 찬스’가 아니고 내가 다 날려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기회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와 연출 노트를 열심히 쓰면서.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준비가 아직 안 된 것 같아” 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p.225

▸『원도』, 최진영
🦶“왜 죽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내가 걸어 온 모든 첫걸음의 조각들이 존재해야 한다.
횡령, 사기, 탈세, 그리고 살인미수까지.. 주인공 원도는 만신창이 도망자 신세가 되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한 여관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 시작점을 찾기 위해 자신의 무의식 속에 존재해 온 과거의 기억들을 파헤친다. 원도의 감정과 의식들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소설이라 조금은 어려울 수도, 거북할 수도, 처절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왜 죽지 않았는가.”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표면상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그 깊이는 조금 다른 듯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원도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지는 이 질문은, 결국 ‘나는 죽고 싶지 않아’라는 삶에 대한 간절한 욕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내가 죽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내 존재의 의미를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나의 모든 시작점들을 파헤쳐야만 할 것이다. 모든 시작의 순간에는 벌거벗은 듯한 내 모습이 존재한다. 삶의 중심에는 ‘나 자신’이 존재하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거쳐온 모든 출발점들을 이어 인생의 지도를 완성해 보면, 지금의 ‘죽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오롯하게 보일 것이다.
실패의 기억. 그것에 답이 있을 것이다. 실패는 많았다. 성공보다 많았다. 실패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좌절이나 절망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그것.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실패다. 사랑했으나 헤어졌고 응시했으나 떨어졌고 돈을 가졌으나 파산했고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실패고, 태어났으나 죽을 것이다. p.30
문제는 물이 아니야. 기온이야. 깊이야. 물속에 물 아닌 무엇이 있는가야. 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조건이야. 나는 지금 바다 앞에 있어. 생각보다 물이 차. 깊이도 가늠이 안 돼.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도 몰라. 아직은 아니야. 말할 수 없어. 선택할 수 없어. p.196

▸『달리기의 맛』, 누카가 미오
🔥 포기할 용기는 다시 시작할 용기이기도 하다
육상 명문고의 촉망받는 마라톤 주자인 소마에게는 마찬가지로 육상부원인 동생 하루마가 있다. 무섭도록 추격해 오는 하루마의 재능은 소마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마침 조금씩 이상했던 소마의 오른 무릎이 역전 마라톤에서 크게 무너진다. 동생에게 추월당하는 미래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제 긴긴 재활을 거치고 다시 육상부로 돌아가란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까?
소마는 아니었다. 그래서 육상부 대신 조리 실습실로 빠져 요리에 입문하게 된다. 당연하게 복귀하리라 생각했던 소마가 재활을 땡땡이치기 시작하자 선생님, 아버지, 동료가 착잡하게 한 마디씩을 던지기 시작한다. 특히 형의 등을 보고 줄곧 달려왔던 하루마만큼은, 견딜 수가 없다. 형이 달리기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래서 정말로 달리기를 그만둘까 봐.
피망고기말이, 가지구이, 로스트비프… 군침 넘어가는 챕터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함께 달려 나가다 보면 시작을 주저하던 언젠가의 완벽하지 않은 당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와 미련이야말로 인생의 필수 요소 아니던가? 『달리기의 맛』에는 도망치듯 집어 든 시작이 있고, 유예하고 싶은 시작이 있다. 쓰라린 아픔을 주먹밥과 함께 꼭꼭 씹어 넘기면서, 울면서, 달리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진한 인생을 맛보고 있을 테다.
제대로 달려라. 간단하지만 어려운 것이다, 제대로 달린다는 것은.
제대로 달리기를 계속한다는 것은. p.275
“달리기로부터도, 동생에게 지는 것으로부터도 도망쳐도 된다고 생각해.”
그런 것이, 나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p.155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 11분의 1 /리셋 / 모조 지구 혁명기 / 리틀 베이비블루 필 / 목소리를 드릴게요 / 7교시 /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수록▸『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 싹 갈아엎힌 이곳이라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어
‘공부 잘하는 약’이 넘쳐나고, 플라스틱 쓰레기와 안 입는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며, 차별과 배척이 만연한 지구를 보며 ‘인간이 죽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친환경이다’라고 생각해 본 적 있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정세랑 작가의 SF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이 단편집은 함께 엮인 8편 중 절반이 넘는 작품에서 세상이 망하는 얘기를 들려준다. 그 세상은 개인의 작은 세상일 수도, 썩어빠진 독재자의 세상일 수도, 혹은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없어서 오히려 망하기 전과의 차이가 모호한 세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에서 느껴지는 익살스러움과 생명력 때문에 디스토피아 SF 장르를 보면서도 ‘사랑스럽다’라는 감상을 남길 수밖에 없게 된다.
지독한 바이러스가 지구의 적정인구 수를 25억으로 만들어도(7교시), 거대 지렁이가 피 흘려 쌓은 인류 문명을 남김없이 헤집고 다녀도(리셋),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똑같다. 힘들고 절망스럽더라도 최대한 이타적인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 그렇게 바뀐 세대는 어쩌면 더 이상 약자를 상처입히지 않고도 잘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을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잊지 말아야 할 건 폐허야말로 가장 비옥한 토양이라는 사실!
“누군가가 개입했어.”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그건 깨달음에 가까웠다. 국제기구보다 더 큰 단위의 기구가, 지구에 개입하기로 한 것이다. p.53
수요를 한참 웃돌게, 아무도 원하지 않는 물건들을 생산했다니 과거의 풍요로움이란 굉장히 기분 나쁜 풍요로움이었던 것 같다. 이어 작은 동물원의 흔적을 찾았을 때는 여러 사람이 토했다. 윤리는 본능적인 비위에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변화하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p.82

봉주연이 보내는 오래된 편지의 ‘시작’, 봉 시인의 첫 시집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 봉주연
💌 사실 우리의 모든 속삭임은 다 편지가 아닐까. 어쩌면 그 작은 시작마저도.
우리의 모든 ‘난생처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떨렸던 만남, 다신 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쌓았던 기억, 마음 끝까지 저릿하게 벅찼던 순간까지도. 그 시작을 어떤 언어로 담을 수 있을까. 사실 시작이란, 반복되는 우리의 삶 속에서 기어코 사랑을 읽을 수 있는 작은 빌미일지도 모른다.
이달의 주제를 들었을 때부터, 봉 시인을 떠올렸다. 시를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마치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누군가는 뻔하다고 말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사람의 시는 늘 아름답다. 시는, “수없이 반복되는 ‘난생처음’의 경험.” 그러니 누군가 에디터에게도 시작을 물어온다면, 고민 없이 이 책을 들어주겠다.
길을 걷다 사람을 마주친다면 아무나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
감수해야 하는 말을 감수하면서 당신은 가만했다.
먼 과거의 삶까지 후회하면서
우리는 같은 것을 묻고
같은 것을 답했다.
― 봉주연, 「Arrival」 부분

3명의 또래 시인(최지인, 양안다, 최백규)이 활동하는 창작동인 ‘뿔’의 두 번째 시집 ▸『너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창작동인 뿔
📚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이 시집의 시와 함께
꽤 납작한 접근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만약 에디터가 지금-여기에서 벗어나 다시 처음부터 시를 읽을 수 있다면, 하고 상상해 본다. 그 미래일지 과거일지 모르는 나에게 나는 어떤 시를 슬쩍 내밀어볼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이 시집으로 왔다. 그러니까 당신이 시를 ‘시작’한다면, 그래서 처음이라면.
다른 색깔이 느껴지는 세 시인의 동인 시집이다. 시를 “더 써야겠다”는 마음이, 그들을 그들로 쓰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너무나도 괴로운 현실의 민낯, 상상할 수 있는 밝은 빛, 폭력, 세계, 사랑 그런 것들이 마구 뒤섞여 뿔의 언어가 되었다.
입문하기에 어렵지 않고, 한 권으로 세 시인을 만나볼 수 있다니, 그리고 그들의 세계를 잠시 들어볼 수 있다니 기쁜 일이 아닐까.
(사실 에디터는 뿔의, 또 뿔에 속한 어느 시인의 오랜 팬이다.^ㅡ^.. 같이 읽으면 좋으니까.)
누군가 계속해서 나의 부고를 전한다
내가 끝났다고
그럴 줄 알았으며 차라리 잘 되었다 한다
아직 아니다
하지만 좀처럼 눈을 뜨지 못하겠다
공원 곳곳에 녹슬어 망가진 철봉과 벤치처럼 서로를 마주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 뿔, 「주마등」 부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향해 매 순간을 향유하고 있는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도착이 아니라 과정이니까요!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출발을 경험하는 중일겁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가게 될 여정의 첫 페이지를 여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기를 바라며,
잔치는 언제나 당신의 무수한 시작을 응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신촌문예 4월호에서 다시 만나요!
with


너무도 반가운 신촌문예….!! 소개해주신 책 열심히 읽으면서 응원 많이하고 있을게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촌문예
당장 책 사러갑니다다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