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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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5 · 03 · 31

통학하는 사람의 생각

Editor 왕 잔치

9시 30분에 강의실에 도착하려면 8시 25분에 집을 나서야 합니다.

공학관은 정문에서 20분, 연구협력관은 정문에서 30분

이 계산은 매일 아침 반복됩니다. 강의실까지 제시간에 들어갈 수 있을까

졸린 몸을 깨워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틈에 섞이고 북어와 같이 납작 눌리고 출발합니다. 신촌역에서 내려야 합니다. 시간대에 따라 환승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다행히 이동 없이 그대로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원양어선의 수조 이동을 본 적 있습니다. 검은 물고기들이 이 수조에서 저 수조로 쏟아지고 무채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은 경의중앙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합니다.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화려한 옷을 입고 학교로 가는 상상을 종종 합니다만 아직 시도해본 적은 없습니다. 원양어선의 어항에 열대어의 기분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의 대학생들 중 서울에서 태생을 시작한 이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네 개의 대학이 모인 독특한 특성으로 이 동네는 학생들에게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동네를 지나다니던 파란 버스를 생각합니다. 학교 후문의 이름이 적힌 버스는 그 자체로 동기와 미래가 되었습니다. 그 버스를 타고 집에서 신촌으로 바쁘게 통학하는 삶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된 그것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버스에서 만난 학교 점퍼의 교표들이 그렇게 멋져 보였습니다. 초록색 남색 붉은색 혹은 검은색, 학교의 이름들이 적힌 점퍼는 공부하는 고등학생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학교 이름을 하나하나 읊으면서 공상하던 날들, 그리고 이름의 덧없음을 말하던 시인을 기억합니다. 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역시나 덧없는 이름입니다만 대학의 환상은 그때의 고등학생에게 삶의 전부였습니다.  

이곳으로 향하던 첫날을 생각합니다.  

경기도의 여러 지역에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통학하는 사람에게 신촌역에 가까워질 때쯤 울리는 지하철의 알림, 그리고 흰 백양로의 이미지는 상징적입니다. 흰 도로와 바쁘게 지나다니는 대학생들, 대학은 학문의 상아탑이라는데 정말 그렇구나. 창밖으로 보이는 상아처럼 하얀 도로와 바삭거리는 그해 3월의 감각이 생생합니다.

이어폰을 다시 꽂습니다. 지하철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시끄러운 사람들은 여정을 다소 불편하게 하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이해합니다. 울거나 소리지르거나 소란스럽게 웃거나 혹은 그 무엇도 아닌 비정형의 발화들, 

이어폰 소리를 크게 합니다. 언젠가는 이 행동을 반복하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흘러나오는 앨범의 첫 번째 트랙, 하루의 시작, 피로한 심신을 깨우고자 의도적으로 힘찬 노래를 듣고 새로운 마음을 먹습니다. 생활공간의 변화에 따라 인간은 사회적으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는 이론을 제시한 한 학자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통학은 의도적 정체성 변경의 과정일까요.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의 마음을 먹으며 아침시간 학교로 향합니다. 나는 새롭게 떠오른 나를 보고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경기도에서 자란 나와 신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스무 살 이후의 나는 다른 사람입니다. 성인과 미성년자라는 사회적 환경의 차이도 있겠습니다만 나이가 어른이 된 이후도 경기도에서 보냈더라면 그 사람은 지금의 나와 같을까 아니지 않을까. 다음 노래로 넘어가고 신나는 멜로디

앞으로 20분 남았습니다. 학교로 향하는 1시간 남짓의 시간은 짧지만은 않습니다.

 

매 학기의 시작에서 반복되는 일상적 대화들,

“이번 학기 기숙사  살 거야 아님 자취 할거야? ” “이번학기 기숙사 신청했어?”

“거리가 애매해서 난 통학할 거 같아.”

통학의 通(통)은 ‘통하다’, ‘무언가가 서로 잘 이어지다’, ‘무언가를 거쳐 지나가다’ 등을 뜻한다고 합니다. 무언가 서로 잘 이어지다,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을 납작하게 누르고 매일같이 사람들이 모여 눅진한 냄새를 풍기는 경의중앙선으로 신촌의 나와 경기도의 나는 서로 잘 이어질 수 있을까.

다음역은 신촌역입니다.

학교 가는 길 비슷한 표정을 한 많은 얼굴들을 마주합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에서 내린다면 더욱 반갑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경험했을 바삭한 3월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지하철의 푸른 창문을 기억합니다. 지하철은 사람들을 우우 쏟아내고 이들은 계단에서 흩어져 각자의 방향으로 향합니다. 학교로 직장으로 또는 다른 어딘가로, 가끔은 하루가 시작되는 지금의 순간에 마주친 사람들이 무탈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강의실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운동화가 시멘트 바닥에 닿는 감각은 경쾌합니다.

이것으로 신촌으로 향하는 저의 지하철 여정은 종결입니다. 어딘가로 향하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왕 잔치
AUTHOR PROFILE
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1

  1. 마들렌
    마들렌 2025.04.01 18:09

    설레야만 하는 삼월에 참 그렇지 못한 일들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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