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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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8 · 03 · 15

84. 신촌전철역 마을버스 정류장

Editor 왕 잔치

다들 어렸을 때 작은 게임기를 가지고 놀아본 적이 있지 않나요? 저는 그중에서도 포켓몬스터 게임을 제일 좋아했어요. 만화 속 지우를 내가 맡다니! 작은 마을의 주민1이었던 제가 몬스터 도감 하나와 몬스터볼 여러 개를 가지고 주인공의 길을 걸어가는 걸 보며, 내심 뿌듯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역시 만화와 현실은 좀 다르더라고요. 만화 속 주인공은 길을 헤매지도 않았고 게임 속 NPC들도 주인공에게 모두 져주는 역할이었죠. 초보 모험가는 처음에는 당황했겠지만, 나중에 무럭무럭 자라 보스들도 물리치고 전설의 포켓몬도 잡고 그렇게 게임을 끝냈답니다.

 

이 이야기는 갑자기 왜 하냐고요? 처음 모험을 떠나던 새내기 모험가의 모습이 꼭 신촌에 처음 발을 들이던 제 모습과 닮았거든요. 오른손에는 핸드폰 속 신촌 지도와 왼손에는 가는 길목마다 서있는 NPC에게 받은 전단지를 들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신촌에 처음 온 풋내기였을 거예요. 저는 그때 많은 사람, 비슷비슷하게 생긴 골목들, 시끄러운 노랫소리 그리고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버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죠. ‘아, 신촌은 진짜 나랑 너무 안 맞아’

 

신촌… 당신 너무 복잡해…..

 

시간이 흐른 지금 제법 길도 익숙해지고 길목마다 있던 NPC들의 전단지 세례도 받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지만, 신촌은 여전히 먼 공간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버스 탈 일이 생겨서 버스 정류장을 찾는데 오늘은 주말이라며 신촌 오거리의 버스정류장으로 가라더군요. ‘대체 이 동네는 왜 주말에 버스정류장이 쉬는 거야!’라고 투덜대며 버스정류장을 찾아갔어요. 신촌역 3번, 4번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있는 버스정류장. 신촌역은 꽤 자주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정류장이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누구나 버스정류장을 생각하면 떠올릴만한 의자와 가림막이 있는 모습이었죠. 마을버스만 다니는 이 정류장에는 낮보단 저녁 시간에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이곳에 가만히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니 신촌 오거리가 제 눈에 다 보이는 거 있죠. 그런데 이상했어요. 신촌 하면 흔히 ‘시끄럽고 복잡한 젊음의 거리’라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이곳에 있는 순간만큼은 그렇지 않았어요. 정류장에 앉아있으면 마치 신촌과 동떨어진 한 공간에서, 실시간 신촌TV를 보는 것 같았거든요. 단지 한 걸음 더 내디뎌 버스정류장으로 들어갔다는 차이가 이렇게까지 큰 느낌의 변화를 주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잠시 후 신촌TV의 화제작 ‘왁자지껄 오거리’가 방송됩니다~!

 

아 물론, 원래 버스정류장에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버스만 기다리는 건 맞지만  ‘이곳이 신촌이 맞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조용했어요. 앞에는 많은 차가 돌아다니고 큰 광고들이 휘황찬란하고 뒤에서는 상가들의 노랫소리가 시끄럽게 들렸지만, 이상하게 그 공간만은 고요했죠. 제가 이곳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거나,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거나, 인생에 변화가 찾아올 만큼 어떤 일을 겪은 것도 아니에요. 저는 그저 우연히 공간을 찾았을 뿐이죠.

 

거친 차들과.. 불안한 차도와… 그걸 지켜보는 나….

 

사실 이전에는 신촌에 낯을 가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곳을 알게 된 후 조금 느낌이 달라졌어요. 신촌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됨과 동시에 ‘이렇게 조용한 곳도 있었구나, 꼭 복잡한 공간만은 아니었고 내가 괜히 색안경을 끼고 있었구나.’란 생각과 함께 미안해지더라구요. 우리도 학창 시절에 엄청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에 대해서 ‘저 선생님은 무서워!’라고 생각하다가 선생님의 또 다른 면을 보게되면 괜스레 죄송스러워지고 그랬잖아요. 그런 거랑 비슷한 느낌이죠.

이곳을 방문하면 잠시 앉아보세요. 버스를 타지 않아도 좋고,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들어도 좋아요. 생각할 거리가 있다면 잠깐 앉아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좋겠네요. 신촌 모험에 많이 지치고 신촌이 아직은 낯선 새로운 신초너 당신!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건 어때요?

 

*Sinchon, new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여름을 SHOW라는 주제로 기록합니다. 매월 SHOW 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드릴 예정인데요. 이달의 ‘S’는 바로 ’Sinchon, new’입니다. 이곳에 숨겨져 있는 신촌 그리고 새로움을 찾아보세요:)

 


위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창천동 2호선 신촌역 3,4번 출구 근처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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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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