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그랜드마트 신촌점
어떤 장소들은 떠나가는 자리마저 요란하다. 유난히 눈에 띄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은 어떠한 이유로라도 지나치지 않을 수 없던 공간이기 때문에. 그런 곳들의 빈자리는 우리가 매일을 사는 동안 뚜렷한 목소리로 제 부재를 주장하는 중일 것이다. 여전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마이클 잭슨이나 데이비드 보위처럼. 말하자면 연예인 같고, 꽤나 큰 임팩트를 남긴 곳들이다. 생의 가치가 장례식장에 놓인 꽃송이들의 숫자로 결정되는 세상이라면, 이 곳들은 호상을 당하는 부류인 셈이다.
반면 조용히 사라지는 공간들이 있다. 보통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한, 생활과 관련된 장소들이 그렇다. 신촌에서 거주하지 않거나, 거주하더라도 장을 보러 다니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랜드마트가 그런 곳이리라. 내 친구들에게 이곳에 관해 물었을 때, 피자몰과 자연별곡은 알아도 그 건물 지하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이들이 다수임을 알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또 그 대화 이후에도 나의 말이 생각나 그랜드마트에 한 번 들러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던 것 같다. 우리에게 이곳은 우리가 매일 거니는 신촌의 비하인드 더 신 정도인 것. 그러니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어떤 울림이 있을 리 없다. 사라질 것은 사라질 테고, 우리는 그러건 말건 어제와 똑같아 보이는 거리를 바쁘게 누비고 있을 테다.
신촌러라면 모를 리 없는 이 건물. 그 지하에 폐업을 하게 된 공간이 있다.
그런데 조금은 억울한 일 아닌가. 이렇듯 똑같이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도 신세가 다른 법이라니. 그랜드마트의 폐업 소식을 인터넷 기사로 접한 뒤 이곳을 마지막으로 다녀와 그 경험을 전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지난 일 이년 간 나의 맘속 특별한 한구석을 차지해 온 이 공간의 사라짐을 누군가 함께 아쉬워할 수 있도록, 대신 한번 야단을 떨어보겠다는.

뒷편 구석의 지상 출입구

출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는 길
사실 그랜드마트의 폐업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이곳은 1995년에 지어진 이래로 성업을 이어가다가, 2012년 재정악화로 아울렛 형태였던 지상층을 매각하고 이후 지하의 마트만 운영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창고형 매장과 인터넷 쇼핑몰의 성장으로 대형 마트의 수익이 위축되는 요즘인지라 이제 그 지하마저도 사라지게 되는 것. 그 빈자리에는 요즈음 젊은이들의 놀이 겸 쇼핑 장소로 수입되어 온 일본의 잡동사니 쇼핑몰이 들어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한다. 쇼핑몰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인터넷에서 한번쯤 본 듯 한 용도 불명의 수많은 물건들이 점원도 모르게 오고 가는 기괴한 창고 같은 것. 확실히 신촌을 오가는 대학생들에게 일반 마트보다는 훨씬 더 들러봄 직 한 장소이기는 하겠다. 씁쓸하고 우습게도.

나 또한 대학 입학 후 늘 신촌역 8번 출구를 지나치며 다녔지만, 이곳에 발을 들이고 처음 물건을 사게 되었던 것은 작년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였다. 반나절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기진맥진한 채로 연세로에서 신촌역까지 걷다가 빵 냄새에 홀리듯 이끌려 콘브레드 하나를 사 왔던 그날. 다시 학교로 향하는 길을 되짚어 올라오면서 야금야금 먹어치웠던 그 투박한 빵 맛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후 이곳은 나에게 역 근처일 때마다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간식 가방을 잔뜩 채워서 나오도록 충동질하는 애증의 공간이었다. 또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새롭고 자극적이던 대학가 음식이 식상하고 피로해져 버린 뒤에는, 익숙하고 편안한 밥을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든든한 식사 장소로 애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신촌역 8번 출입구와 연결되는 지하 통로

나의 구세주 콘브레드
1층 입구를 통해 들어서면 모습을 드러내는 그랜드마트는 늘 어중간한 모습이었다. 어중간함이라 하면 아무래도 마트의 규모와 시설에서 오는 인상이었을 것이다. 지하 일 층에서 삼 층까지 각각 공산품, 생식품, 생활잡화를 판매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동네 마트라기에는 조금 크지만 대형 마트라기에는 좁은 편이다. 거기에 더해 23년이나 된 공간이다 보니 새것 같은 선반과 냉장고에도 불구하고 복도 사이 사이로 숨길 수 없는 손때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시골의 농협 마트같은 느낌이랄까. 나쁘게 말하자면 이도 저도 아닌 것이지만 나에게는 인간미처럼 느껴지던 부분이다. 세련되기만 한 현대식 마트도 정신을 쏙 빼놓는 시장 바닥도 아닌 그 애매함 덕분에 이곳 특유의 여유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점원들은 물건을 정리하다가도 서로 혹은 오래된 단골과 수다를 떨고, 장바구니를 든 손님들은 느긋하게 복도를 누비는 평범한 풍경 속에서.

폐점을 열흘 정도 앞두고 있던 어느날
폐점을 목전에 둔 시점에 다시 마트에 들어섰을 때도 그러한 편안함은 여전했다. 예상과는 달리 조금도 직원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 있다거나 목소리에 힘이 빠져있는 것 같지 않아 약간 의아할 정도. 다만 더 물건이 입고되지 않는지라 지하 1층 공산품 코너에서는 텅텅 비어있는 선반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어 파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침 그 한 가운데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시던 손님과 직원분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손님은 마음을 굳게 먹어야겠다며 위로하고 직원분은 그럭저럭 잘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며 근황을 전하는 중이었다. 이제는 도무지 처리되지 않는 악성 재고들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마침 그 건너편에는 추석 맞이 선물 코너가 따로 설치되어있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은 냉장고를 뒤에 두고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이 왜 그리 눈에 밟히던지.

폐점 이틀 전
지하 2층 생식품 코너는 가득 차 있는 매대까지 1층보다도 더 평소대로였다.폐업을 알리는 신호가 있다면 세일 문구가 평소보다 조금 더 붙어있는 정도. 그 와중에 과일 코너의 직원분은 맛보기용 과일을 잘라서 다른 직원들에게 후식이라며 내밀고 있었고, 한과와 건과일을 파는 한쪽에서는 아저씨 한 분이 손님을 붙잡고 지방 어디의 국밥집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 중이었다. 정말 문을 닫는게 맞을까 싶을만큼 태연하던 이 곳. 간간이 이틀 뒤 폐업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왔지만, 대개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 분명 며칠 전에도 이곳을 방문했던 나나 다른 에디터가 느끼기에 폐업을 앞두고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 같았었는데, 그건 이 장소를 떠나 보내는 우리의 마음이었던 걸까.

원래도 다니지 않던 지하 3층은 습관처럼 건너뛰고 지하 2층 계산대를 지나쳐 나와 마지막으로 들렀던 장소는 식료품 코너 계산대 너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바로 출입구 바로 옆 좌우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빵굼터와 푸드코트였다. 앞서 이야기했듯 내가 이 마트에 처음 방문하게 된 계기가 된 곳이기도 하다. 지하철 방향 출입구 한쪽의 진열대에는 한 개에 2천 원, 세 개에 5천 원 하는 빵들이 놓여있고, 출입문과 마주 보는 한가운데에 놓인 할인 매대에는 그보다도 저렴한 가격에 하루 지난 빵들을 팔고 있었다. 계산대와 빵 굽는 공간이 있는 안쪽에는 만 원대의 케이크들도 보였다. 단팥빵 하나도 이삼천 원까지 하는 요즈음 이 곳에서는 두꺼운 전공서적만 한 단호박 카스테라나 찹쌀떡이 들어간 팥 빵 같은 것들이 천육칠백 원 꼴이었으니, 나는 그동안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서 빵을 사 먹으며 오히려 빵값을 아낀 셈이다. 물론 그런 가격에 고급 제과점과 같은 풍부한 맛은 아니었지만, 어릴 적부터 사 먹던 (혹은 집에서 먹던) 동네 빵집의 정겹고 투박한 맛이 늘 좋았다.


빵굼터 맞은편에 자리 잡은 푸드코트에서는 기사식당에서 팔 듯한 느낌의 식사 메뉴들을 팔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당연히 보리밥 정식. 식당 아주머니에게 주문을 넣고 계산을 마친 뒤 기다리다 보면, 뚝배기에 팔팔 끓고 있는 된장찌개와 함께 몇 가지 나물이 담긴 접시와 보리밥과 쌀밥이 넉넉히 섞인 그릇이 나온다. 상에 놓인 고추장과 참기름을 취향에 따라 넣어먹는 방식이다.


사실 처음 이 음식을 시켜 먹었을 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된장찌개는 양파와 호박, 두부 등이 듬뿍 들어있지만 고깃집에서 먹을 그것과 집에서 해 먹는 것 사이의 맛이고, 나물도 부모님 댁 냉장고에 꼭 있을 법한 부추, 당근, 시금치, 콩나물 등이 심심하게 무쳐져서 나올 뿐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후에 이곳에만 들리면 입에 감기는 제육이나 돈까스를 제쳐두고 이 메뉴를 시키게 되는 것이었다. 밥통에서 갓 나온 밥에 그 반찬을 쓱쓱 비벼 욱여넣고, 갓 끓여 보글보글 거리는 찌개를 후 후 불어 삼킬 때, 뜨끈하고 녹진하게 속을 채우는 온도와 촉감에서 묘한 안도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치 집밥을 먹는 것처럼.

그런데 그 경험이 매일 밤 온 가족이 모여 사는 집으로 돌아가는 나에게까지 감동이 되던 것은 어떤 까닭인가. 종종 보리밥을 먹은 뒤 아주 흡족한 기분으로 빨간 잠망경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통로를 걷다가, 평범한 식사에 필요 이상으로 들떠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 머쓱해지던 것도 이러한 의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 두 세시간 밀린 과제와 과외 준비를 하고, 다음 날 새벽 여섯 시에 현관을 나서 다시 신촌으로 돌아오는 나에게도 집밥은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떠올리는 것 만으로 모든 감각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하지만, 정작 간절할 때 내 앞으로 불러낼 수 없게 되어버린. 말하자면 푸드코트에서의 식사는 그 환상을 다시 현실로 불러내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마저 판타지가 되어버리려고 한다. 그랜드마트가 폐업한다는 건, 저녁 6시의 푸드코트 보리밥도 이렇게 닿을 듯 닿지 않는 그리움의 영역으로 사라져버린다는 것. 식사를 마친 뒤 마트 문 밖으로 나서는 길에 이 사실이 와 닿자마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다. 이 뿌듯하고 든든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마지막이라니. 이 곳이 있어서 치열하고 정신없던 나날들이 위로받을 수 있었는데. 이처럼 내 일상의 어떤 부분이 화려하게 빛날 수 있던 건 그 아래에서 묵묵히 흘러가는 익숙하고 사소한 나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나머지를 이루던, 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던 것들이 조용히 손 틈새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때, 그보다 더 아쉽고 섭섭할 수가 없다.

이제 옛날 빵맛이 그리우면 어디로 가야할까?
달력을 들춰보니 며칠 뒤 곧 추석이다. 생각해보면 해마다 명절 할아버지 댁 풍경에서도 자꾸만 무언가가 하나씩 줄어들고 있었다. 위암과 폐암을 연달아 앓으셨던 할머니, 해외로 떠나버린 사촌 형, 우리를 앉혀두고선 안동 김가의 역사에 대해서 열띤 강의를 하시던 할아버지의 힘찬 그 말투. 일상을 살면서 자꾸 눈에 밟히는 빈자리는 아닐지라도, 기억 한켠에 남아있다가 언제라도 고개를 비집고 나와 마음 한구석을 헛헛하게 할 그런 것들.
그러나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참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그것이 전부일 텐데. 결국 그랜드마트처럼 말없이 희미해져가는 소중한 것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헛헛함에 최대한 끈질기게 메달리는 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글을 마쳐가는 지금 내가 이 장소에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남아있는 것들을 최대한 붙들어보려고, 이번 추석에는 반드시 할아버지 댁에 들려야겠다. 사촌들의 장난스러운 푸닥거리도 지켜보고, 명절이 아니면 뵙지 못하는 큰아버지와 고모의 안부도 여쭈어볼 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할아버지의 더 앙상해져 있을 두 손을 맞잡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사랑한다는 말을 꺼낸다면 언젠가 조금은 덜 마음 시릴까.

추석 전날 밤 이 글을 고쳐쓰다가 바라본 방문. 고마웠어. 안녕.

그랜드마트 신촌점
주소: 서울 마포구 신촌로 94
영업시간 및 일정: 2018년 9월 23일 오후 8시 폐업
출산 후 집에 있느라 몰랐는데, 그랜드마트가 문을 닫았다니 아쉽네요! 그래도 이렇게 글로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듯한 글을 읽으며 책방하기 전 출근길 종종 사먹었던 빵을, 퇴근길 가끔 들러서 장봤던 기억을 추억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