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Shiva Pub
대개, 프랜차이즈가 많다느니 몰개성하다느니 혹평을 받는 신촌이지만, 그 중에서도 조용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가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고개를 들어야만 보이는 2, 3층의 느낌있는 술집이라든지, 조그만 공간에 엄청난 양의 만화책을 쌓아둔 만화방이라든지가 그렇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shiva pub의 존재감은 거의 은둔 닌자 수준. 창천교회 뒤편, 사람들이 갈 일이 거의 없는 후미진 골목길을 걷다보면 전봇대에 대충 shiva pub이라고 쓴 조그마한 정사각형 간판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가게는 그 간판의 건너편 빌딩 지하에 위치해있다. 그렇다고 딱히 간판이 더 크게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 뭐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밖에서는 평범한 오피스텔 건물처럼 보이는 탓에, 이 건물에 정말 뭐가 있기는 한 걸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단 두 걸음만 걸어도 보이는 심상치 않은 마크들은, 이 밑에 심상치 않은 가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내려가는 길 벽에 붙어있는 그림들. 낙타의 그루브가 인상적이다
shiva pub, 그러니까 “쉬바 펍”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인도, 아니면 티벳, 아니면 네팔스러운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곳이다. 2007년 문을 연 쉬바 펍은 당시에 배낭여행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모임 장소로 쓰였다고. 그 덕에 가게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어쩐지 수상하게 여겨질 만큼 오리엔탈 판타스틱 미스테리어스한 방향으로 굳혀지게 되었다. 학생과 직장인 시절에는 쉬바 펍에 손님으로 찾아온 지금의 사장님은 몇 년 전 이 곳을 인수받아, 가게 이름도 펍의 분위기도 동일하게 운영 중이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훅 들어오는 향 냄새, 벽을 빼곡히 채우는 여행사진들, 낯선 신들이 곳곳에 등장하는 인테리어. 이런 것들을 보면 쉬바 펍의 초심자가 어쩐지 들어오는 것을 주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실제로 가게까지 내려왔다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바람에 다시 돌아가 버리는 손님도 왕왕 있다고.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읍읍

까꿍
하지만 그 손님들은 하이브리드 네오소울 컨템퍼러리 플레이스를 알게 되는 소중한 기회를 하나 놓친 셈. 쉬바 펍은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그 운영이 아주 독특한 곳이다. 일단 “pub”이니만큼 각종 칵테일과 수입맥주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데킬라, 스미노프, 잭 다니엘 등 양주도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에디터가 좋아하는 산미구엘이 300ml에 4천원이라는 저렴한 바코드를 붙이고 있어 매우 행복한 부분이다. 술 뿐만 아니라 커피와 차도 준비되어 있어, 가게의 분위기에 걸맞는 짜이에서부터 얼그레이 등 기본적인 홍차와 커피도 역시 4천원이라는 착한 가격으로 찾을 수 있다.

여러분 오른쪽에 인디카 IPA 보이세요? 저거 짱 맛있음

양주는 어딜 가든 착하지가 않지만 이 정도면 심성이 고운 수준
하지만 이 곳을 하이브리드 네오소울 컨템퍼러리 플레이스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책들이다. 상암동의 <북바이북>이나 강남의 <북티크>처럼, 최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술과 책의 조합”의 신촌 버전이 바로 쉬바 펍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약 반 년 전부터 서점을 함께 운영했기 때문에, 사실 이 곳의 정식 명칭은 이제 “shiva pub & books”다. 왜 서점을 시작했냐는 물음에 사장님의 대답은 참 간단했다. “제가 술이랑 책을 좋아해서.”

술과 책을 좋아하는 이를 위한 사장님의 인테리어 제안(※아닙니다)

중고서적을 싼 가격에 판매하기도.
원래는 번역 일을 하고 있다는 미모의 a씨와 사장님이 함께 선정한 책들이 진열된 책장을 보자면 일단 여기가 교보문고나 홍익문고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슬픈 언어장벽이 느껴지는 각종 원서에서부터 왠지 수상한 제목을 갖고 있는 책들은, 일단 한 번 뽑아 놓고 몇 장을 파라락 넘기게 만든다. 배낭여행자들의 아지트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곳의 분위기가 어쩐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인지 각종 여행지로 떠난 이야기들을 담은 여행서적들은 아예 한 탭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여행서적을 사면 칵테일 하나를 공짜로 홀짝일 수도 있다. 책들은 기본적으로 판매용이지만, 열람용 책들도 따로 있어 눈치 보지 않고 읽어도 된다. 책장에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는 기타와 젬베도 찾을 수 있는데, 손님을 위한 오픈 마이크라고 하니 음주 독서를 하다가 내 안에 차오르는 거친 감성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면 술과 텍스트와 음악이 함께하는 무아지경에 도취되는 것도 건전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리빙 포인트 : 씨엠립 아일랜드를 마시고 싶을 땐 쉬바펍에서 여행서적을 사면 좋다.

이런 책은 좀 은밀하게 진열해놔야 은밀하게 보고 은밀하게 다시 갖다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장님

어쩐지 쓸쓸해보이는 탬버린도 있다
서점을 시작한 뒤로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a씨가 지은 책장의 이름은 “기린 책장”. 기이할 기奇에 이웃 린隣 자를 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이 곳의 책에만 적용되는 단어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대학가 신촌을 지상으로 두고 조금만 밑으로 내려가면 마치 환상 톨게이트를 지난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는 이 공간 자체가, 어디서도 쉽게 사귈 수 없는, 충분히 “기이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위치 :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2-45 B1 (창천교회 뒤쪽)
운영 시간 : 2:00pm ~ 2:00am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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