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너다운 도서관
1.

빠-앙.
뚜두두두 뚜두두두 뚜두두두.
에… 여러분 이번 학기 과제는…
새 학기는 눈 뜨기도 전에 시작되었다.
아침 공기를 확 들이키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것처럼,
모든 일도 그렇게
상쾌하게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는 것 쯤이야
다 알고 있지만
아직 나는 침대 속의 무거운 공기가
따뜻하고 익숙하게 느껴질 뿐이다.
벗어나고 싶지 않다.
아직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이 안 되는데
할 일들은 와다다다다다다
눈곱조차 떼지 못한 내게 달려온다.
아, 일어나기 싫다…………………
2.

학기가 시작된 신촌에는 활기가 있다. 대학가 특유의 생동이 있다. 거대한 인간 무리가 바닷속을 몰려다니는 물고기 떼처럼 웅성웅성 신촌 거리를 누빈다. 모두가 조금씩 바쁘게 움직이고 있고, 그 바쁨이 신촌을 신촌답게 만든다.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오늘 강의가 어땠는지 이야기하며 걷는 학생들, 카페 창가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 그 부지런한 풍경 속에 있으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차곡차곡 차오른다. 어디서 그렇게 새로운 일들이 일개 대학생일 뿐인 에디터에게 알아서 찾아들 오시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가끔은 도망치고 싶다. 찰나의 순간들은 종종 도망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도망은 완전한 답이 될 수 없는 잠깐의 눈가림일 뿐이다. 영원히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자꾸 자신을 어딘가로 내던지곤 한다.
.
.
어이쿠.
새로운 환경에 떨어지면 인간은 작동한다. 일단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존 본능을 동력 삼아 에디터는 존재하는 공간을 바꿔가며 도망으로부터 계속 도망친다. 하여 홈 스윗 홈에서 추방된 어느 날은 학교 도서관에 떨어져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전공 공부를 해보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아름다운 카페를 찾아 커피를 홀짝이며 심장 쫄리게 밀린 과제를 처리한다. 시험기간에는 마치 고등학생 때로 되돌아간 것처럼 스터디카페에 방문하여 열정적인 벼락치기를 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학생증을 찍고, 카페에서는 음료를 사 마시고, 스터디카페에서는 자릿값을 낸다. 고작 할 일을 좀 해보겠다고 지불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심지어는 질리기까지 한다. 그리 오래는 아니지만, 대학 생활을 1년 정도 하면서 벌써부터 학교 공간, 신촌 카페들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도서관은 이미 너무 많이 갔다. 익숙해질 만큼 갔다. 카페 가자니 지갑 사정이 먼저 생각난다. 사실 배도 이미 빵빵하다. 그렇다고 해서 스터디카페에 들어가기에는 시험 기간도 아니라 과한 느낌이다. 그렇게 한참을 신촌의 거리에서 서성이다가 결국 핸드폰을 꺼내 든다. 네이버 지도를 켜고 검색창을 연다. 그리고 천천히 단어 하나를 입력한다.
3.

토독토독토독.
검색한다.
네이버 지도에
나는 검색한다.
도서관을.
그러다 발견한
신촌 한복판에 있는 수상한 이곳.
햇살이 깊이 스며들고
테라스 공간도 있는,
건물 6층 어딘가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밝고 자그마한 도서관.

이름은 더다운 도서관.
소개 글은 간단.
이렇게 간단한 소개를 보니
오히려 조금 수상해진다.
신촌 한복판에서
무료로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대화도 할 수 있다고?
직접 방문하기 전까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장소는 없다. 에디터는 여전히 의구심을 품은 채 ‘더다운 도서관’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지도의 화살표를 믿고 따라가 보니 어젯밤 소란이 채 가시지 않은 신촌의 술집 거리가 나타났다. “정말 이런 곳에 도서관이 있다고?” 의문은 층층이 쌓여갔고, 도서관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본 뒤에야 거리의 번잡한 소음들을 따돌리는 짙은 남색 간판 하나가 걸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도서관 안내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안도한 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5층 버튼을 누른다. 문이 열리고 복도를 향해 한 걸음 내딛자 6층 공간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인다. 눈이 부셔온다. 건물 안으로 넘쳐흐르는 빛이 보인다. 그 빛 속으로 두둠칫 피아노 음악 소리가 귓가에 울리기 시작한다. 번잡한 거리에서 방황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마지막 관문인 계단을 오르고 도서관 문을 열면, 또다시 빛이 사방팔방으로 쏴아아아— 하고 쏟아져 들어온다. 창이 정말 많다. 3면이 다 창문이다. 더다운 도서관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층에 해당하기에 빛이 주변 건물에 가려지는 일은 없다. 자리에 앉아 짐을 정리한 뒤, 창을 바라보면 건물들의 끄트머리가 넘실거리는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바다의 윗면이다. 저 아래 사람 무리는 아직도 웅성거리고 이곳의 우리는 수면 위로 파하—하고 숨을 내쉰다.
소란스럽고 분주한 바깥 신촌과는 달리, 흐르는 음악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사람들은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노트북을 펴고 공부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포근한 인상의 도서관 운영자분은 처음 보는 방문자들에게 말을 건다. “처음 오셨어요? 편안히 머물다 가세요.” 그분의 말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편안함’이다. 그 한마디 속에 모든 사람이 편히 머물다 갔으면 하는 따뜻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듯한 야트막한 핸드메이드 책장에는 꽤 많은 책들이 꽂혀 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책 종류도 다양하다. 문학, 인문, 에세이, 사회과학까지. 세상 곳곳에서 작은 도서관으로 흘러 들어온 귀여운 책들의 모임이다. 소규모이긴 하지만, 그래도 도서관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듯 책을 만 삼천여 권이나 보유하고 있다.
공간 곳곳에는 놓인 물건들에서는 세심함이 드러난다. 정수기도, 테이블과 의자도 딱 필요한 만큼 놓여 있다. 조그마한 매점에는 1,000원에서 2,000원만 내면 마실 수 있는 커피와 음료가 마련되어 있다. 책상에는 학생들이 공부할 때 필요로 하는 필기도구와 포스트잇도 있다. 학생들의 가방을 걸 수 있는 분홍색과 하늘색의 가방걸이도 있다. 아기자기하게 세심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화장실도 좋다. 푸하하 웃음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공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화장실의 쾌적함은 무엇보다 중대한 지표가 아니던가. 화장실이 아주 깔끔하고 꽤 넓다. 무엇보다 화장실에도 큰 창이 있어 빛이 들어온다. 타일 위로 부서지는 노란 햇빛을 받으며 도서관 화장실에서 광합성을 하는 뜻밖의 경험이라니. 이러한 순간까지 따뜻함이 느껴져 포근하다.

전체적으로 크지는 않지만 아늑하다. 어디선가 한 번쯤 본 것 같은, 마음이 편해지는 정겨운 분위기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카메라 렌즈 속에서만 유효할 것 같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돈된 공간들을 마주하곤 한다. 그런 완벽한 미감은 분명 감탄을 자아내지만, 때로는 그 틈 없는 아름다움이 방문객에게 긴장감을 요구하기도 한다.
더다운 도서관은 그런 세상의 파도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파도가 들이치는 장소다. 이곳은 감탄하기보다 안심하게 되는 곳에 가깝다. 완벽하게 정제된 인테리어 대신, 사람의 손때가 묻고 세월이 자연스럽게 내려앉은 가구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말 그대로 ‘사람다운’ 공간. 이곳의 불완전함은 오히려 우리에게 마음 놓고 숨을 쉬어도 좋다는 허락처럼 느껴진다.
5.
이 도서관은 카페에서 공부하다 쫓겨나는 학생들이 안쓰러워 만들어졌다고 한다. 운영자분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웃는다. 공간이 필요한 많은 학생에게 이 작은 도서관이 잘 알려지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다, 갑자기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신다.

“자, 뇌물.” 사탕이다. 조그마한 초콜릿 맛 사탕이다. 자주 이곳을 찾아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담긴 갑작스러운 뇌물에 에디터의 웃음도 터진다. 커피도 원래는 무료로 제공했지만, 학생들이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책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허허 웃으시며 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따스했다.

운영자분께서는 에디터에게 테라스 공간을 소개해 주셨다. 테라스에는 쉴 수 있는 의자와 식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야심 차게 준비한 공간에서 식물이나 키우고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종류와 수를 보니 식물 키우기를 제대로 즐기고 계신 것 같았다. 상추와 고추를 키우고 있다고 하시길래, “오 그럼 고기도 구워야겠는데요?”하고 친 에디터의 농담을 “진짜 고기도 구워 먹어요! “라고 진담으로 받으신다. 진짜 고기를 굽는다고 한다. 도서관 테라스에서! 시험기간에 지칠 때 공부하다 나와서 수다도 떨고 고기도 구울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도서관은 너무나도 멋지다. 에디터는 보지 못했지만, 노을도 아름답게 진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신촌이라는 동네는 보통 우리를 계속 움직이게 만든다. 신촌에서의 우리는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카페에 가고, 과제를 하고, 다시 어딘가로 이동한다. 가만히 머물러 있기보다는 계속 다음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그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권리도 어떠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가능하다. 소비를 하거나, 무언가를 증명해야 자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더다운 도서관은 조금 다르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어도 되고 그냥 앉아 있어도 된다. 소곤소곤 이야기하거나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봐도 된다. 더다운 도서관에서 우리는 세상의 틀 안에서 잠깐 벗어나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아직 여기에도 존재한다는 작은 확인을 받는다.
6.
신촌에서 잠깐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이 하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위로가 된다.
신촌 한복판에서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와
할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환대 받을 수 있는 공간.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나 다워지는
너 다워지는
더다운 도서관.
이곳을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었다.

7.
더다운 도서관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7안길 10 6층
월–금 13:00–19:00
시험기간 연장 운영 13:00–23:00
@downtown_library.thedown

![246. [말.환.추] 말차라떼에 환대 추가!](https://wsrv.nl/?url=64.media.tumblr.com%2Fba775695c234adb2751915eccb649046%2F323c51fb8a933f89-ef%2Fs1280x1920%2Ff6fce732662ec6a33e3e1d14f8f1de769c2dac67.jpg&output=webp&q=80&w=800&we=&l=6)

화장실의 쾌적함 즁요하지요
에디터님 다운 글 ㅎ.ㅎ 사장님 너무 재치잇으시네오 저도 담에 한번 공부하러 들려보고 싶네요
제목이.. ‘너다운’인데.. ‘더다운’ 맞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