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책방특집 1 – 공씨책방과 헌 책의 행방불명
책장에 꽂힌 책들, 맨 위에 쌓인 책들, 바닥에 차곡차곡 누워 있는 책들. 가게 안에 들어가니 온갖 책들이 탑처럼 높이 쌓여 있는 세로의 세상이었다. 통로가 너무 좁아서, 가방으로 쌓인 책들을 칠까 봐 조심스러워졌다. 한 통로의 끝에서 에디터의 뒤통수와 사장님의 눈이 마주쳤다.
“뭐 찾는 책 있어요?”
갑자기 건넨 말씀에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께서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건네셨다.
“가방이 참 예쁘네.”

‘요새는 인터넷 서점을 많이 이용하는데… ’로 헌책방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다소 식상할 것 같다. e-book이 등장해 스마트 기기 하나로 원하는 책을 파일 형태로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세상은 이미 도래했다. 사실 굳이 e-book까지 안 가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글보다는 그림이나 영상을 통해 세상을 접하는 걸 더 선호하는 분위기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헌책방을 위협하든지간에, 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헌책방은 왜 헌책방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저 옛 것이기 때문에 보존해야 하는 걸까?

공씨책방은 공씨 성을 가진 사장님이 차린 책방이다. 원래 광화문 근처에 자리를 잡았던 공씨책방을, 기존의 주인이 갑자기 세상을 뜨고 난 뒤 그의 친척들이 신촌으로 옮겨 명맥을 이어왔다.
공씨책방에서는 몇 번 서재 어느 칸에 무슨 책이 있는지 검색해주는 전자 시스템은 없지만 대신 사장님의 놀라운 기억력이 책의 정보를 알려준다. 손님 한 분이 들어와서는 “아무개 작가의 아무개 책 있나요?” 하고 물었다. “저 뒤편에 있긴 한데, 하(下)권밖에 없어요.” 바로 나오는 사장님의 대답.
그냥 보통의 옛날 책이 있는 게 아니라 문화유산급 서적이 대거 보존되어 있다. 사장님이 구경시켜 주신 몇몇 책들만 봐도 공씨책방의 스케일을 가늠할 수 있었다. 올드한 책들을 접한 에디터의 느낌은 흡사 ‘갓 발굴한 피라미드 내부에 알고 보니 고대인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보석을 숨겨 놓았더라…’ 정도의 신기함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못 찾을까 봐 조바심을 내다가도 짠 하고 나타나는 희귀한 책이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손님들은 공씨책방을 보물섬같이 여기나 보다. 다음은 사장님이 구경시켜 주신 신기방기한 책들의 일부이다:

잡지 커버사진의 주인공은 영화배우 윤정희 씨(1944년생). 속지가 낡아 땀이 배면 바스러질 것만 같다.

이현세 작가의 대 히트작 ‘공포의 외인구단’ 소설판. 오리지날 버-죤인 만화책이 궁금해진다.

킹☆프로덕숀☆코믹스에서 나온 순정만화. 이런 책을 누가 아직까지 갖고 있는 거야? 라고 물으신다면, 공씨책방이 갖고 있읍니다.
그런데… 신촌의 오랜 친구 공씨책방이 10월중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계약 관계를 유지해 온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일정 기한까지 가게를 비워달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 것. 일단 새로 갈 곳으로 정해둔 곳은 성수동의 어느 한갓진 곳인데, 지하에 위치해 눈에 잘 안 띌까 걱정이라고. 수 만권에 이르는 책들을 나르는 것도 큰일이다. 하지만 성수동으로 책방을 옮기려는 것도 궁여지책일 뿐, 오랫동안 지켜온 신촌의 책방 터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사장님도 단골들도 마찬가지다.
떠나더라도 웃으면서 마무리해야지 얼굴 붉히고 원수 지면서 헤어져서 뭐 좋겠냐는 사장님. 수심에 가득 찬 사장님의 낯빛이 어스름한 책방 안에서 더 어두워 보였다. 그렇지만 몇 분간 이어지는 하소연은 결코 ‘건물 주인 이 나쁜 xx……’로 시작되는 원망이나 저주가 아니었다.
“사장님. 혹시 모금 운동을 벌이면 도와주실 분들이 더 있지 않을까요?”
“아이고, 어떻게 그렇게 부탁을 해. 미안해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장소이니만큼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서울시에 문의해 보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답변 뿐이었다고. 지인 분들에게 손 벌려 도움을 청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는 못 하신다니 덩달아 근심하게 되었다.

s…t…a…y…

서울 미래 유산에게 대우가 영 시원찮으니 이 사진을 찍으면서도 참 찝찝했다.
… 이 두가지 책을 가지고 싶어서 서울시내 고서점이란 고서점은 다 헤매었는데 구할수 없었는데 공씨책방에서 구해줬다. 정말 애들처럼 뛸듯이 기뻤다. 책값도 비싸게 받지 않아서 더욱 고마웠다. 반계수록 3,4권은 언제 구해 주려는지 구해준다면 절 백번정도는 해야겠다 …
위 글귀는 1990년 여름에 공씨책방에서 발행된 소식지 ‘옛책사랑’ 8호에 한 버스기사님이 투고하신 글의 일부를 인용한 것으로, 옛 책 자체에 대한 기사님의 순수한 애정이 드러난다. 시대가 변해서 더 편리하고 더 세련된 무언가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데 헌책방은 무엇을 위해 남아 있어야 하는 걸까?
시간은 가던 길을 멈추고 사람들을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어느 한 순간을 간직하는 매체는 과거를 기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중에서도 헌책은 책이 발행되는 그 순간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의미로 담을 수 있기에 조금 더 특별하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거창한 표현을 들지 않고서라도 그저 약간 바랜 종이의 사각사각한 질감이나 어색한 글자체같이 헌책만이 갖는 특징에 매료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공씨책방의 소식지 이름대로 옛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헌책방에 진한 향수를 느끼는 단골 손님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헌책방의 역사를 이어나가는 것은 의미가 있다.
바람 앞 촛불 같은 공씨책방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위치: 서대문구 신촌로 51 (창천동 112-12)
영업시간: 10:30 ~ 21:30, 연중무휴
※ 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려고 합니다.
중간고사라는 현실의 난관을 겪고 난 후, 신촌의 다른 책방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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