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 [다큐미니시리즈] 불패신촌!
이주 씨는 9시부터 12시까지 중앙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한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과 삼성학술정보원을 잇는 통로에 위치한 이용자통합서비스실. 이곳이 바로 이주 씨의 근무지다.
출근하는 이주 씨를 배웅하고 3시간 뒤, 퇴근한 이주 씨를 다시 만났다.
근로하는 건 좀 어때요?
화요일, 그러니까 이틀 전이 첫 근무였는데 그때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진작 할걸.
일이 맞으시나 보네요.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거예요?
형식상으로서는 도서관이용자서비스팀 업무 보조예요. 학교 도서관이다 보니 절대적으로 연대생이 많긴 하지만 생각보다 외부인이나 졸업생, 학점교류로 온 타대생도 많거든요. 그런 분들은 저희 학교 학생증이 없으니까 도서관에서 임시 바코드를 발급해 주는데, 학기초라 오늘은 그 업무를 봤어요. 그리고 하루에 3번씩 도서관 순찰도 돌아요. 도서관 내에 음식물 반입이 안 되는데 가끔 들여오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또 노트북 사용이 불가능한 좌석에서 노트북을 이용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전반적인 관리를 담당하는 거군요.
네. 그런데 사실 원래는 배가*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도서관이용자서비스팀으로 근로 신청을 넣은 건데, 알고 보니까 배가를 하려면 학술자료관리팀으로 신청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된 거라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오백 퍼센트 만족하고 있어요.
*배가: 도서관에서 하는, 도서를 청구기호 순서에 맞게 정렬하여 서가에 꽂는 작업
배가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어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는 사서가 되고 싶었거든요. 어차피 청구기호도 다 아니까 책 꽂는 데에 무리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지 않아요? 사람들이 반납한 책을 보는 일이요. 요즘엔 어떤 책이 많이 읽히는지 시류를 읽을 수도 있고요.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책을 정리하는 일이지만, 이주 씨는 그 안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향하는 방향을 읽는다.
직업병인가 싶기도 하지만요.
직업병이요? 따로 하고 있는 일이 있으신가요?
출판 마케터 일을 하고 있어요.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 매거진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럼 장래희망이 사서에서 출판 마케터로 바뀌신 건가요?
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나름 오랫동안 사서라는 길만 보고 달려왔는데, 전공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어요. 처음에는 사서가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6년이란 시간 동안 사서만 지망하다 보니까 어느새 해야만 하는 일로 바뀌어 있었거든요. 이제 와서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데? 하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 같은 거예요. 그러다가 취미로 시작한 매거진에서 뜻밖의 해답을 얻게 됐어요.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일이 정말 즐겁더라고요. 출판사와 독자를 잇는 다리 같달까요.
미대생한테 그림 그려달라 하고, 패디과한테 옷 만들어달라는 것 같아서 조금 망설여지긴 하는데요, 그렇다면 혹시 저에게도 책 한 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아, 너무 잘된 일인데요. (웃음) 마침 대학생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었거든요. 피디님도 대학생이시니까.
기대되는데요. 어떤 책인가요?
제목은 들어 본 적 있어요. 추천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이 책의 다른 제목 후보가 <경주에서 배운 것>이었대요.
경상북도 경주요? 그 지역이 배경이라서?
네. 그런데 그거 말고도 한 가지 의미가 더 있어요. 저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주위 사람들과 나 스스로를 계속해서 비교하게 되잖아요. 저 사람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나는 괜스레 뒤처지는 거 같고, 앞에 있는 사람들을 하루라도 빨리 추월해야 할 거 같고. 그럴 때 쓰는 달리기 시합의 경주(競走)라는 의미도 있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주인공이 경주(慶州)에서 경주(競走)를 통해 배운 것에 대한 이야기인 거죠. 이 책을 읽으면 주인공이 경주(競走)를 통해 배운 게 독자인 저희에게도 절실히 와닿아요.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에요. 누구나 그렇지만 대학생은 특히나 매 순간 경주하고 있잖아요.
복도 너머에서 교수님이 걸어오자 이주 씨는 꾸벅 인사한 뒤 서둘러 강의실로 들어간다. 경주에서 배운 것. 수업을 듣는 이주 씨를 바깥에서 바라보며, 그 의미를 가만히 곱씹어본다.
6년 동안 사서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왔던 이주 씨.
하지만 막상 결승선에 가까워지자 자신이 바라보던 길이 정말 자신의 길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어쩌면 이주 씨가 경주(競走)를 통해 배운 것은 잠시 멈춰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법인지도 모른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