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2002년 이전의 이화교, 밑으로 기차가 지나다녔다.
이화여대 학생들로부터 학교 아래로 기차가 다니니 뛸 수 없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종종 신입생들은 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이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는 길 위로 제반 공사를 하여 기차를 직접 볼 수 없지만 이전에는 정문 앞에 ‘이화교’라는 다리가 걸쳐있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화교 아래로 우리가 익히 들어온 기차가 지나가고는 했습니다. 1958년에 건설된 이화교는 다리 아래로 경의선 열차가 오가던 이화여대의 상징적인 공간 중 하나였습니다. 다시 말해 당시 이화여대 학생들은 학교 아래로 경의선을 두고 기차가 오가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며 등하교했던 셈입니다.
이화교가 이화여대의 상징이 된 것은 단순히 기차가 지나는 독특한 구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화교는 이대생, 그리고 당시 신촌에 머무는 이들에게 다리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민주항쟁 당시에는, 투쟁하던 학생들을 막고자 한 전경들이 이화교를 포섭하여 정문을 통제했었고, 90년에는 금남의 구역이던 이대에 들어갈 수 없던 남학생들이 이대 학생들을 기다리던 만남의 광장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이화교는 이화여대의 단절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상징하던 공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화교에는 특별한 속설이 있었습니다.
“이화교 밑을 지나가는 기차의 꼬리를 3초 이상 밟고 지나가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
이화교 아래를 지나는 경의선의 마지막 칸이 다리 아래를 통과하는 순간, 그 위를 3초 이상 밟고 지나가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화교에는 자신의 첫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기차의 마지막 칸이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다리를 건너려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길고 긴 기차의 마지막 칸이 지나가는 순간을 정확히 맞춰, 그 위를 3초 동안 걸어 지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괜히 시도했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결국 첫사랑까지 포기하게 된 학생들도 많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교량 노후화와 경의선 전철화로 인해 이화교는 2002년 9월을 마지막으로 수많은 이들의 뜨거운 청춘을 품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시작될 이야기는, 이화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던 그해 누구보다 뜨거웠고 서툴렀던 한 학생의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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