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노래와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H에게
“이화교 밑을 지나가는 기차의 꼬리를 3초 이상 밟고 지나가면 첫사랑이 이뤄진다.”
며칠 전 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배들이 해주었던 얘기야. 이 말을 듣자마자 네가 생각 난 건 또 나만의 얘기겠지. 너도 옆 술집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한다고 하던데 오가며 마주치길 바란 것도 나만의 바람이었을 거야. 옆집에 살면서도 보기 힘든 너를 신촌의 그 많은 술집 중에서 만날 수가 있을까.
너를 처음 좋아하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개학식 날이었어.
1학년 때는 뒷반 키 큰 애 정도로 너를 기억하고 있었다? 접점도 없는 너의 이름을 알고 있는 그 자체가 사실은 관심이었겠지만, 그래도 뭐 좋아한다고 생각할 만한 무언가는 없었으니까.
개학하던 날, 출석부 명단 속 너의 이름이 바로 내 앞에 있더라.
그때 우리 학교 애들이 나를 내신에 목숨을 팔았다는 둥, 옆에만 가도 기가 빨린다는 둥 좀 어려워했잖아. 당연히 너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학기가 시작됐고, 애들은 너에게 나랑 짝하는 거 괜찮냐고 물었지. 듣자마자 올 게 왔다고 생각하고 너를 싫어할 마음의 준비를 했어. 너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와도 다른 애들처럼 싫어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그냥 웃으며 “뭐 어때”라며 내게 태연히 인사를 건네더라.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아마 네게는 정말 별일 아니었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그때 알았어. 너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걸 보면 알겠지만, 이변은 없었어.
나 원래 미신 같은 거 안 믿는데, 이화교 얘기는 한번 믿어보고 싶어.
마음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내가 감히 기차 꼬리를 밟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 싶지만,
적어도 미신을 따르는 정도의 용기는 내고 싶어.
당연히 기차 꼬리를 밟아도 네게 내 마음을 전할 배포도 없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기차는 한번 밟아볼래.
미신인 거 알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너의 옆집에서 Y가
200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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