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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5 · 11 · 26

23. 라구식당

Editor 고니

독수리다방 뒤에는 복성각만 있는 줄 알았다. 아니면  싼 맛에 먹는 고기집이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나 왼쪽으로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이토록 놀라운 식당이 있었다니.

 


라구 파스타. 라자냐. 멜론 프로슈토. 바게트 빵. 이상 라구식당의 메뉴 끝. 그나마도 주력 메뉴를 꼽자면 선택지는 라구 파스타와 라자냐 두 개로 좁혀진다. 식전 빵-샐러드-파스타-디저트까지 고르는 가게가 범람하는 시기에 이렇게나 깔끔하고 담백한 메뉴 구성은 낯선 동시에 반가웠다. 선택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메뉴가 될 터다. 그렇다면 대체 그 라구는 무엇일까?

 

라구란? 소고기와 돼지고기, 와인 등을 함께 넣고 오랜 시간동안 푹 끓여 만드는 이탈리아 전통적인 가정식 스타일의 소스입니다.

 

그러니까 이 가게는 오직 “5시간 소스”를 원천으로 운영하는 셈. 재밌는 것은 라구식당의 사장님은 신촌에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유명 파스타집 <PASTA>의 사장님이기도 하다는 거다. 파스타와 피자, 샐러드까지 수십가지의 메뉴를 갖고 있는 <PASTA>와 이곳 라구식당은 그 궤도가 전혀 달라보이니 운영하는 사람이 같다는 사실은 퍽 충격적이다. 사장님은 라구식당은 단일 메뉴로 가기 때문에, 소금을 덜 넣어보거나 다른 재료를 넣어보거나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도가 가능한 점이 즐겁다고 했다.

 

여기 피자메뉴 좀 있으면 없어진답니다. 어서 가서 드세요

선불로 계산을 하러 카운터에 가면 재미있는 쿠폰을 만날 수 있다. 일명 “신촌골목상권부흥회”가 만든 신촌골목맛집 투어스탬프다. <PASTA>, <감싸롱>(현 Eatburger), <키친31>, <라구식당>을 방문하고 스탬프를 하나씩 찍어 4개를 완성하면 어느 가게에서든 원하는 메뉴를 하나 공짜로 먹을 수 있는 혜택을 준다. 그런데 쿠폰에 얽힌 에피소드를 듣자니 본래의 용도를 100퍼센트 발휘하지는 못하는 모양. 홍대에서 신촌으로 넘어온 지인들끼리 재미 삼아 결성한 “신촌골목상권부흥회”에 가입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거나, 차라리 한 가게에 집중한 쿠폰을 만들어달라는 손님의 제안이 들어오는 식이다.

 

 

세상에 마상에. 식당 소개를 하는 마당에 음식 소개가 뒷전이 되어버렸다. “멜론 프레슈토”는 생소한 구성과 꽤나 비싼 가격 덕에 주문량이 적어 존립이 아슬아슬한 서브메뉴이므로 소개는 패스. (왜냐하면 비싸서 에디터도 용기를 못 내봄) 그보다 라구식당에 왔으면 라구라구한 메뉴를 먹어봐야 하지 않겠라구!

 

탱글탱글한 면발과 고기소스와 고기가 어우러진 이것이 바로 라구 파스타이다. 이걸 들어올리면

 

이렇게 된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비치되어 있는 파마산 치즈를 흥분으로 떨리는 두 손으로 돌려 뿌리면

 

그렇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일년 내내 녹지 않는 알프스의 만년설처럼 고고한 자태…를 보이지만 저 치즈 가루는 알프스와는 다르게 우리의 입 안에서 녹아내리게 되고 여러분은 행복해진다. 그리고 라구 파스타의 너무나 근사한 점은 소스에 녹아든 알갱이 고기 뿐 아니라 왕건이(?)고기가 가득하다는 것.

 

그리고 파스타의 면발을 다 먹고 나서도 고기 소스와 왕건이(?)고기가 삼삼하게 남아 아쉬움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사장님은 보통 파스타 집에는 남자들끼리 오는 경우는 드문데 우리 가게에는 그런 일행이 많다며 신기해했지만, 에디터는 바로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해드릴 수 있었다. 그렇다. 바로 이 낭낭한 고기 덕인 것이다. 그런데 조리 과정에서 들어가는 고기 양에 비해 완성품에서는 생색이 잘 안 나는 것 같아,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고기 양을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신촌의 행복 지수를 한층 더 높여주는 이 분을 데려가지 않고 뭘 하는 걸까?

 

또 다른 주력 메뉴인 라자냐가 막 서빙된 모습이다. 체감상 5층 정도는 올려진 것 같은 이 라자냐를 썰면

 

이토록 앙증맞은 라자냐 미니미가 된다. 층층이 배어든 농후한 맛의 고기소스와 밀가루…. 아아, 밀가루와 고기는 언제나 어디서나 옳다는 잠언을 이 라자냐를 먹으면서 느낄 수 있다. 맛의 반전을 꾀하고 싶다면 파마산 치즈와 함께 비치되어 있는 타바스코를 톡톡 뿌려도 발랄한 식사가 될 수 있다.

 

 

사장님은 파스타가 편한 음식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냅킨 꽂고 나이프로 썰어가며 먹어야 했던 그 옛날의 돈까스가 지금은 김밥천국에서도 편하게 시킬 수 있는 음식이 된 것처럼, 파스타도 학생이든 공사장의 인부든 동네 아주머니든 편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기를. 그리고 그런 편한 마음으로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식당이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그리고 적어도 이 바람은 이미 현재진행형인 듯 하다.

초면에는 신촌 구석에 웬 이태원스러운 가게가 있다고 놀랄 수 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내 집밥으로 삼고 싶은 파스타를 파는 가게. 라구식당이었습니다.


 

위치 : 서울시 서대문구 명물1길 28 (창천동 50-19

운영 시간 : 오전 11:30 ~ 오후 10:00 (마지막 주문은 9시), 일요일 휴무

문의 : 02 364 2224

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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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

곤작 쓰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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