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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5 · 11 · 19

22. 썸타는 계단

Editor 왕 잔치

커플이 아닌 사람은 보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공원에 대한 애정이 있다. 계절마다 다른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밤공기의 설렘이 있고, 겨울은 겨울대로 고즈넉한 느낌이 있다. 바쁘지 않을 때는 가끔 들러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걷기도 한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된 서울에는 그런 공간이 없다. 그래서 가끔 혼자 걷기 위해 연남동 숲길, 경의선 숲길 등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들르게 된 곳이 이 곳이다.

 

사실 대현공원을 ‘공원’이라는 단어로 부를 수 있을까 싶다. 공원이라기보다는, 공터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법한 곳이다. 사실 그래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나름 썸의 분위기를 풍기려 한 흔적이 보였는데, 조금 작위적이지 않나 싶었다. 물론 썸을 표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안다. 썸은 0과 1 사이의 어디쯤이라 뭐라 규정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을 넘어서, SNS에도 그 아리송하고 얼떨떨한 마음들을 설명한다. TV 프로그램에는 연인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까를 묻는, ‘그린라이트’ 코너까지 등장했다. 썸의 당사자도 알지 못해 남의 의견을 구하려고 한다. 이런 애매한 관계를 벽화로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종결어를 썸으로 끝맺는다는점은 국문학도로서 넘기기 어려웠던 부분..

 

 

그런 작위적인 느낌에도 불구하고 전의 황량했던 대현공원보다는 훨씬 나았다. 몇 년 전 이 곳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저 버려진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때도 계단이 있었고 뒤에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아무도 계단에 앉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버려진 계단이 썸타는 계단으로 재탄생한 지금, 지금 사람들은 포장마차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 들고 앉아서 각자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이대의 거리에 다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데는 이 계단도 한 몫 했을 거다.

 

 

 

취재를 구상하고 나가는 길에 이런 표지판을 발견했다.

 

 

솔로면 이 공원에 들어올 수조차 없다는 표시인가. 나는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앉아있었다. 별 생각 없이 들어왔지만 누구라도 데려왔어야 했나.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개인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썸이나 연애를 강요함으로써 더 많은 소비를 이끌어내려는 자본의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화가 이런 거창한 생각으로 우리의 소비를 이끌어내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외로움을 느꼈고, 그래서 조금 서성이다가 혼자 괜히 쫓겨나듯 나와버렸다. 그렇긴 해도, 커플들에게는 꽤 좋은 시도가 아닌가. 당신이 커플이라면 더 추워지기 전에 한 번 들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이대 앞 포장마차들의 음식이 맛있다는 건 신촌에 산다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또는 손에 맥주 한 캔씩 들고 연인과 찾는다면 이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긴 어딜 가든 그러지 않겠냐마는.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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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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