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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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0 · 04 · 15

128. Sinchon Without Us

Editor 러폴

이후 내용은 과학적 검증이 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바이러스와 함께 2020년을 시작한 우리 중 누군가는, 2020년을 없애고 2021년을 새로 시작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세계 사람에게 2020년에 먹었던 나이 하나를 돌려놓고, “여러분! 2021년이 되면 나이 하나는 다시 세겠어요.” 이런 합의를 강제할 수 있는 비정부 기구가 있던가요? UN도 아니고 WHO도 아닐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에디터는, 말도 안 되지만 이번 일로 인간이 사라질 수 있겠다고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외출 없이 14일이 되던 날, 노래 없이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뉴스를 보기가 버거웠습니다. 정말 힘든 사람들에 비하면 힘들 것도 없는 생활이었는데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 읽다 말았던 책 한 권을 빌렸습니다. 책의 제목은 The World Without Us.

 이 책을 참고해서 사람 없는 신촌, 신촌 위드아웃 어스를 상상해보려 합니다.

 

SINCHON WITHOUT US

 

 신촌을 가득 채운 콘크리트 건물들은 쉽게 무너질 예정입니다. 주먹으로 쳐도 끄덕없는 멋진 건물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빗물과 바람에 결국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학교 정문의 구조물, 명물 거리의 오락실 건물, 유플렉스까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신촌 길거리에 가끔 울려 퍼지는 소리는, 콘크리트가 빗물에 쩡쩡 갈라지는 소리, 새어든 들풀 홀씨에 콘크리트 조각이 흩어져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어느 날, 몇십 년이 지난 신촌에는 공사해줄 사람도 없는데 공사장 소리만큼 큰 소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신촌에 다닥다닥 붙어 서 있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 거인의 도미노처럼 건물들은 서로 부딪히며 기대어 콘크리트는 더 으스러집니다. 빈스빈스 2층의 튼튼한 녹색 소파들이 그때까지 지금 상태로 남아 있을 리가 없고, 아마 대포찜닭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무너진 콘크리트에 막혀 쥐나 작은 동물 몇몇만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지하 가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콘크리트로 틀을 만들어 지하의 흙과 물을 막았던 공간은, 관리해줄 인간이 사라지면 금세 허물어지고 맙니다. 어느 지하 피자 가게에 붙어 있던 수많은 신촌러의 기록들은 무너진 콘크리트와 함께 찢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종이로 만들어진 메모지는, 언젠가 식물이 좋아할 줄은 모르겠지만, 흙으로 돌아가 새로 자라나는 신촌 나무들의 기억이 되겠지요.

 인간이 사라진 신촌에서 우리의 기억이 담긴 가게들은 맥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남긴 기록들도 맥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길가에 쌓일 단풍들

 

 

 콘크리트 건물들이 무너지기 전, 몇 번의 가을이 돌아올 테고 그중 우리가 없는 신촌이 맞는 첫 번째 가을은 꽤 장관일 것입니다. 단풍이 노랗게 물들고 바람에 떨어져도, 치울 사람이 없는 학교는 얕은 노란 호수가 됩니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도 한꺼번에 움직여서 파도가 치는 얕은 호수가 됩니다.

 

 

길가에 쌓일 벚꽃잎  (©️ chimtographer)

 

 가을이 오고 난 다음이면 봄이 돌아옵니다. 그중 우리가 없는 신촌이 맞는 첫 번째 봄은 더욱 장관일 것입니다. 떨어진 꽃잎을 치워줄 사람 하나 없는 신촌은, 제 것이 된 수천만 송이의 분홍 꽃잎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분홍 파도는 치우지 못한 명물 거리의 트리에 걸릴 것이고, 입구가 열린 유플렉스 안으로도 들어가 세포라 거울에 제몸을 비출 것이고, 더는 관리할 사람이 없는 신촌역 3번 출구 안으로 내려가 지하 역사 안에서 불 것입니다.

 빨간 잠수경(잠망경)은 그제야 제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이 만든 잠망경인데 사람이 사라지고 난 신촌에서야 진짜 잠망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잠망경은 그저 기쁘겠지요. 그렇지만 빨잠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할 사람은 없으니, 잠망경이 처음 제대로 본 신촌은 사람에 가리지 않은 가장 넓은 신촌, 아니면 분홍 호수이겠습니다.

 그러나 신촌 길거리를 끊임없이 쓸고 다닐 것만 같던 단풍과 봄꽃의 파도는 결국 빗물과 바람에 흩어져 콘크리트 바닥을 덮는 새로운 흙이 됩니다.

 

일회용 컵들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진한 기록은 따로 있습니다. 가게에 써 붙인 메모지들도, 콘크리트 벽에 마카로 쓴 낙서들도, 책도 아니라 바로 플라스틱입니다. 신촌의 수많은 카페에서 우리가 들고나온 일회용 컵은, 재가공해 줄 사람이 사라진 신촌에서 백 년이 지나도 분해되지 않습니다. 찌그러지고 부서지긴 해도, 미세한 플라스틱 입자들은 벚꽃잎 파도에 섞여, 단풍잎 파도에 섞여 수없이 긴 시간을 떠돌 것입니다. 그러다 신촌의 지배자가 된 길고양이의 배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지금 우리가 뚫어놓은 배수구 속을 흐르다가 신촌 바깥의 공간으로 흘러나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다 수만 년의 시간이 흘러, 진화에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지났을 때 플라스틱을 먹이로 하는 미생물이 등장한다면 그때야 신촌의 플라스틱은 분해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촌러인 우리가 신촌에 가장 진하게 남길 수 있는 기록은 파스꾸찌, 커피 스미스, 빈스빈스, 할리스, 스타벅스, 공차, 등등의 카페들에서 들고나왔던 수많은 플라스틱 컵들이 됩니다.

 기억은 지우고 싶을 때면 잘 지워지지 않듯이 플라스틱도 그러합니다. 결국 어느 봄날 벚꽃을 보며 마셨던 벚꽃라떼가, 신촌에 새겨길 가장 오래 가는 기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사라진 우리에게 슬픔이 될까요 기쁨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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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없는 신촌에 우리가 남긴 제일 진한 기록은 마시던 음료도 아닌 그 음료가 담겼던 플라스틱 컵. 떨어진 것을 치워줄 사람 없는 신촌은 서서히 부서지는 건물들과 함께 새 흙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학교 정문을 향해 걷던 길에는 흙이 쌓이고, 휘청였던 골목의 술집은 형체를 잃어버립니다. 학교 안에서 사랑받던 길고양이들의 후손이 우리가 걷던 신촌의 2차선 도로를 걸어다니고, 교내 가꾸어진 뜰을 벗어나 풀, 꽃, 나무들은 더 넓은 신촌을 향해 뻗어나갈 것입니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든, 지금으로선 자연이 분해할 수 없는 플라스틱 컵만이 우리를 다만 부끄러운 방식으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남긴 모든 신촌의 기억은 우리 없는 신촌 안에서 쉽게 바스러질 것입니다. 다만 신촌에서 쏘아올렸던 전파, 교내 라디오 방송의 어느 한 줄기는 신촌에서 출발했음을 영영 알리며 외롭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사라짐을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갑자기 사라진 우리를 아쉬워하는 고양이 몇과 비둘기 몇은 있겠지만, 결국 그들의 후손은 우리가 있었다는 점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촌은 지금 어떤 방식으로든, 플라스틱이 아닌 다른 아름다운 방식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새로운 기억으로 남아야 하겠습니다.

 

매정한(?) 신촌

 

 따라서 신촌은 영원할 수 없으며 신촌은 우리를 사랑해주지 않기에, 신촌이라는 공간은 우리를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기에, 우리는 그 누구보다 그 어느 것보다 신촌을 걸어다니던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름의 신촌 안에 있을 우리 자신 또한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촌의 악의 없는 무관심에, 우리는 이 봄을 지나 여름으로 나아가고 있는 신촌을 누구보다 응원합니다.

 신촌은 신촌러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 마음의 부재에는 의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촌러는 그런 신촌을 그저 그리워하며 사랑할 뿐입니다. 인간 없는 신촌은 이러합니다.

 

 

 


Sinchon Without Us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 ???

(©️ 네이버 지도)

러폴
AUTHOR PROFILE
러폴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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