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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16 · 02 · 18

6-5. 신촌대학교 – 미술치료 후기

Editor 펭귄

미술치료 청강 후기

오후 3시, 잔치꾼 은정과 함께 성수역으로 향했다. (처음엔 신촌대학교니 상수역이겠지 하고 잘못 생각했다가 큰일날 뻔 했다.) 미술치료 상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우리 두 잔치꾼은 조심스레 서로에게 물었다. 근데 미술치료가 뭐 하는 거야? (…)

우리가 남들을 미술 치료하는 법을 배우는 걸까? 우리가 치료를 받는 걸까? 치료를 받는 것이라면 이젤 같은 걸 세워두고 그림을 그리나? 뭐지? 뭘까?

 

 

이러한 질문 속에 우리는 상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담하게 오순도순 모여있는 작은 모임이 우릴 반겼다. 이전에 청강했던 동아시아사 수업과는 정 반대의 느낌이었다. 동아시아사 수업이 패기롭고 열정 넘치는 에너제틱한 수업이었다면 미술치료는 오히려 잔잔하고 여린 소녀들이 모여있는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주 요상한 음악과 함께. 굉장히 인도 다큐멘터리에 나올 것 같은 동양적이면서도 오묘한 음악이었다. (은정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5음 음계로만 되어있는 연주라고 한다.)

 

 

수업의 진행방식은 이렇다. 주어진 시간 동안 자유롭게 주제에 맞춰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한다. 왜 이런 색을 썼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그렸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이 그냥 그린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것도 모두 의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수강생들이 그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눈다. 내가 볼 때는 이런 생각을 나타낸 것 같다. 이런 심리가 있어서 이런 그림이 나온 것 같다 등의 해석을 해준다.

 

 

이러한 음악을 깔아두고 우리는 원 그리기를 시작했다. 필자는 음악에 빠져 떠오르는 느낌을 원으로 표현했다. 마침 얼마 전 다녀온 방콕에서 힘을 쭈욱 풀고 누워서 마사지를 받는 기분이어서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녹색 크레파스의 질감을 느끼며 천천~히 원을 그려나갔다. 갈색도 썼다가 다시 녹색도 썼다가. 완성하고 나니 모두 제각기 다른 원들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제각기 다른 해석들이 나왔다.

 

그 시간 동안은 오롯이 나의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고, 어떠한 평가도 부담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당장 닥친 일이나 뒷감당해야 할 일에 무지한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내가 그린 그림들은 나의 불안함과 착잡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망작이었지만ㅎㅎ (은정)

참고로 바로 위의 사진에 왼쪽 아래의 원이 은정의 원.

 

간식과 함께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시작된 2교시는 KHTP (Kinetic House Tree Person)검사였다. 집, 나무, 사람을 그리면서 자신의 성격, 심리 등을 파악하는 수업이었다. 예를 들면, 나무에 열매가 많은 것은 애정에 대한 욕구를 의미한다든지, 나무의 가지는 타인과의 소통 의지를 의미 한다든지. 그리고 정말 신기하리만큼 제각기 다른 그림이 나왔다.

 

 

두 가지 작업을 하면서 신기했던 것은 잔치꾼 두 명에게 다른 수강생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만으로도 얼추 서로의 성향이 파악된다는 것이었다. 서로 나누는 그림에 대한 해석들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혹은 내가 의도했던 것들을 꿰뚫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처음 보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이었다.

 

(열심히 본인 얘기를 털어놓고 있는 에디터)

사실 작업만 두고 보면 굉장히 1차원적이고 단순한 작업이다. 연필, 크레파스, 색연필. 많지 않은 재료로 복잡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지만 그림을 그리면서는 정말로, 진심으로 치료를 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정답이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크레파스의 끝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 손 가는 대로 그린다. 그리고 손 가는 대로 그린 그림을 설명하는데 굳이 이 그림을 돋보이게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잘나 보일 필요도 없다. 결국 미술치료에서는 잘 그린 그림이란 존재하지 않고 잘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술술 내 이야기가 나왔다. 오히려 수업이 끝나고 정신차려 봤을 때 내가 할말 못할 말 다 한 것 같아서 약간 창피해졌을 정도랄까.

 

개인적으로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 남들이 공감해주는 것보다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갈구하는 편이다. 수업에서 ‘그래요. 그 마음 이해해요.’ 같은 허공에 뜬 말들이 나왔다면… 아마 책상을 엎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는 이런 솔루션이 있습니다! 하면서 정답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수업을 통해 근원적인 문제 이상으로 가지고 있던 무거운 짐들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은정)

 

치료, 상담이라고 하면 왠지 내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내가 환자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데 미술 치료 수업은 미술이라는 장르 때문인지 아니면 이 수업 자체의 분위기 때문인지 따뜻하게 보듬어지는 기분이었다. 은정의 말대로 대놓고 토닥토닥 힘내라는 말을 들은 것도, 너의 문제는 이것이니 이렇게 해결하도록 해라는 조언을 들은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당연하게도 수업 전이나 후에 크게 달라진 외적 상황은 없다. 요술램프를 문질러서 소원을 빈 게 아니라 그저 수업 한 번 청강한 게 전부니까. 잠깐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세상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다. (은정)

모든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상담실에서 저녁식사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고 지하철으로 향한 시간은 저녁 8시 30분. 무려 6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했다. 물론 평소 수업이 이렇게 길지는 않다. 그저 우리 두 잔치꾼이 수업에 빠져들어 말이 많아졌던 탓.(허허)

집에 오는 길, 미술치료 수업을 다시 곱씹어 보았을 때 마치 당시의 일들이 신기루처럼 잠시 꿈을 꾸고 일어난 것 같았다. 지하철은 여전히 만원이고, 내일의 나의 일정은 그대로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 시간만큼은 잠시 일상으로부터 벗어났었다.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도 미술치료 수업을 꼭 들어보길 권한다. 왜 힐링이 그렇게 요즘 시대에 대세인지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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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오늘만 사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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