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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6 · 06 · 02

46. 우리은행 ATM

Editor 고니

왜 소중한 건 항상 없어진 뒤에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걸까요.

 

 

신촌에서 현금을 쓸 일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밥집에서 카드로 나눠 계산하기 번거로울 때 멋지고 쿨한 친구가 카드로 쓱 긁으면 나머지 친구들이 현금으로 줄 때도 있고, 종강파티에서 만원씩, 더 놀다가 가는 사람은 만오천원씩 내야할 때도 있죠. 연세로를 걷다가 포장마차의 떡볶이가 너무 맛있어 보이면 이천원 내고 한 그릇 비워주기도 해야 하고, 갑자기 신발 밑창이 벗겨졌을 때에는 수선집에 가서 오천원을 내고 갈아주기도 해야 합니다. NFC결제니 삼성페이니 기프티콘이니 뭐니 해도, 아직은 현금이 필요한 일들이 이렇게 많이 남아있어요.

 

예전부터 신촌에서 현금을 뽑는 핫플레이스는 단연 연세대학교 앞의 약국 촌에 있는 우리은행 ATM였습니다. 약국과 약국 사이 아주 좁은 틈에 겨우 자리 잡은 한 대의 ATM. 정말이지 단 한 대밖에 들어갈 수 없는 자리여서 ATM 앞에 긴 줄을 이루는 사람들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신촌에서 수수료를 많이 떼지 않는 은행 ATM을 찾기는 좀 힘들거든요. 술집, 밥집이 가득한 골목으로 들어가기 전 현금을 충전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위치였습니다.비록 하나 뿐이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긴 하지만요.

 

가끔 일행 두 명이 한 번에 들어갈 때나 한 명이 여러 업무를 보느라고 늦게 나올 땐, 대체 안에서 뭘 하는 거야? 우리은행은 왜 하필이면 이 좁아터진 골목에다가 ATM을 한 대밖에 설치하지 않은 거야? 고객만족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속으로 끊임없이 꿍얼꿍얼 되뇌기도 했습니다. 특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뻘뻘 나는 여름엔 더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길엔 그늘이고 뭐고 없어서 줄을 설 땐 무방비로 강제 광합성을 해야만 했거든요. 또, 그렇게 기다리고 들어간 내부는 으아아 시원타 이것이 썸머 베케이션이다 렛츠 파뤼타임 할 만큼 시원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정말. 왜 소중한 건 항상 없어진 뒤에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걸까요? 며칠 전부터 체격 좋은 아저씨들이 와서 슬쩍슬쩍 ATM이 있던 곳을 손보기 시작하더니… 세상에나 거기엔 이제 ATM은 온 데 간 데 없고 웬 문이 하나 떡 세워져 있습니다. 에이, ATM이 뭐 고장나거나 해서 잠깐 임시로 세워둔 거겠지, 라는 이기적인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 문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근처 약국에서 괜히 텐텐을 하나 사면서 슬쩍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여기 옆에 있던 ATM 어디로 갔나요? 아 그거요. 그 앞에 서는 줄이 너무 길다고 민원이 들어와서 빠졌어요. 약사님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주셨습니다. 여기 카드 받으세요. 현금이 없어서 카드로 산 몇 천원짜리 텐텐은 그 날따라 맛이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글쎄요. 우리는 이제 어디서 현금을 뽑아야 할까요. 사실 찾으려고만 한다면 신촌에 ATM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신촌역 3번 출구의 신한은행으로 갈 수도 있고, 할리스커피 옆에 있는 새마을금고로 가도 되고, 더럽게 비싼 수수료를 받아처먹는 편의점 ATM을 쓸 수도 있습니다. 뭐, 그 약국 사이에 있던 ATM은 말 그대로 기계였잖아요. 새벽마다 와서 현금을 충전해가는 관리자랑 말을 섞어봤다거나, 술먹고 돈 뽑다가 부스 안에서 토를 했다던가 하는 그런 재밌는 추억같은 것도 없습니다. 그냥 기계 하나가 없어졌을 뿐이에요.

 

그러면, ATM이 없어진 자리에 서 있는 문을 보면 느껴지는 이 묘한 감정은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요. 애초에 이 감정은 뭐 때문에 생긴 걸까요. 저는 왜 이 글을 ‘소중함’이라는 단어로 시작했던 걸까요?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오랜만에 현금 뽑아 포장마차에서 술이라도 한 잔 해야겠습니다.

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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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

곤작 쓰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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