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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6 · 05 · 27

45. 대포

Editor 은정정

※ 대박포차, 연대포, 대포찜닭… 은 아닙니다. 대포, 입니다.

 

네이버 지도조차도 알려주지 않는 이 곳은 연세로11길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여러 가게들 중 하나다. 그 중에는 신촌 근방에서 가장 유명한 감자튀김집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주 플레이스의 이야기는 감자튀김 가게의 옆집에 자리한, 아주 작고 정갈한 술집에서 시작된다.

동시에 스무 명 이상 앉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곳. 군더더기 없는 내부 인테리어. 주방 선반 위에는 추억의 주전자들이 쪼르르 공중에서 줄을 서고 있다.

 

 ‘대포’라는 가게가 빛을 발하는 분야는 단연 옥수수술. ‘거기 어때?’ 하고 친구 세 명에게 물어봤을 때, 하나같이 옥수수술 얘기만 해서 처음에는 이게 무슨 유일무이한 메뉴라도 되는 것인가 싶었다. 이 집의 보배라 할 수 있는 금빛 술은 주문 즉시 밑동이 동그란 유리병에 담겨서 나온다. 작은 술잔에 덜어 마셔보면 입술에 닿는 촉감도 혀에 감도는 맛도 의심의 여지없이 고소한 옥수수차다. 삼키고 나면 이것의 근본이 알코올임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지만, 그 흔한 목을 긁는 듯한 뒷맛조차 없이 달게 넘어간다. 그래서 딱 기분 좋게 마시기 좋다. 대포를 찾았던 그 날은 유난히 날씨도 쌀쌀맞고 눈 앞에 닥친 현실도 쌀쌀맞았다. 이래저래 우울함을 털어버리고 싶은 날이었으므로 역시 옥수수술이 제격이었다. 그렇게 친구와 등대 없이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 같은 인생을 논하면서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했다.

 

평범한 가격에 아주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싶다면,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 벽면에 붙은 메뉴판에 쓰인 점심특선요리를 고르면 된다. 아무거나 시켜도 대성공이다. 허기진 사람들에겐 최적의 일용할 양식이다. 직화구이의 스모크향은 배가 별로 안 고프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정면 반박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목삼 데리야끼의 달짝지근함은 아삭한 양파와 백년가약이라도 맺은 듯 완벽한 한 쌍을 이룬다.

장황하게 말했지만 결국은 그냥 시켜보라는 소리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한다. 특히나 이렇게 맛있는 걸 먹을 때라면 더더욱 식탁 위의 행복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데 요새는 누구와 밥을 먹든 식탁 위에 올라오는 이야기 보따리의 대다수가 개만도 못하다. 과거에 멋모르고 단추를 잘못 꿰었더니 지금에야 그 대가로 어설픈 옷가지를 걸치고 방황하게 된다. 무엇을 향해 달리던 알아서 잘 해야 하고, 처음부터 잘했던 게 아니라면 역전승은 로또만큼이나 낮은 확률로 일어난다. 이런 큰 맥락상의 침울한 이야기만 겸상하는 건 아니다. 소소하게는 블랙 코미디를 방불케 하는 사건들도 함께한다. 이를테면 조별과제를 진행해야 하는데 48시간동안 메시지 확인 안 하는 조원이라거나, 눈치게임에 소질이 없었는지 동시에 과제를 외쳐버린 교수님들, 머리로는 알겠으나 심장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어메이징하게 낮은 퀴즈 점수 등등. 당연한 결과겠지만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 어느 하나도 궁극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고, 짐을 챙겨 계산대 앞에 서자 사장님께서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맛있게 드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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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포스트 송해선생님 분위기를 풍기시는 사장님은 점심보다는 저녁때 훨씬 분주하다. 아담한 공간 안에 몇 안 되는 자리가 전부 차면 늦게 온 손님들은 아쉽지만 돌려보내야 한다. 그저께 그렇게 돌려보낸 손님이 아마 절반은 될 거라고 하셨다.

사장님은 어느 시간대에 방문하든 따뜻하게 반겨주셨다. 다소 늦은 점심 무렵에 들어갔을 땐 가게에 손님이 한 명도 없었는데, 사장님은 한쪽 구석 위에 붙은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 계셨다. 그러다가 인기척에 뒤돌아보시더니 ‘어서오세요~’ 하며 천천히 일어나 주문 받을 준비를 하셨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오랜 이웃의 집에 마실 온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여러분도 요새 고민이 많다면, 혹은 딱히 고민이 없더라도, 작은 호숫가 같은 이 곳에서 군더더기 없이 시원한 옥수수술에 그간 옥죄어 놨던 때 낀 마음을 씻어낼 수 있기를.

 


위치: 서대문구 연세로11길 21 (폼프리츠와 빠리지앵 사이)
영업시간: 11:30AM ~ 7:00PM

은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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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정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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